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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309화 (에필로그) (310/314)

환관의 요리사 309화 에필로그 1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What makes the desert beautiful, is that somewhere it hides a well…….”

-어린왕자-

오직 자갈과 모래만이 남아 있는 메마른 땅.

쉬어갈 그늘을 찾지 못한 바람이 낮게 불다가 이내 한숨처럼 사그라드는 황량한 땅. 탑극랍마간(塔克拉玛干) 사막에도 샘은 있었다.

세월이 벼려낸 날카로운 바위와 자갈밭, 희게 불타오르는 모래언덕 너머에서 소년은 샘을 발견했다.

조각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사막의 하늘만큼이나 맑고 푸른 물이 샘솟는 샘을.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길잡이를 바라보았다.

길잡이, 표자승은 익숙하다는 듯 샘에 손을 담그고는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고인 샘입니다. 근방의 유목민들이 식수를 뜨러 다니는 곳이지요.”

“만년설이 녹은 물이라.”

확실히, 길잡이를 잘 골랐단 말이야.

소년은 노련한 사막의 여행자다운 가볍고 튼튼한 방풍복 차림의 표자승을 물끄러미 보다가 샘에 손을 담갔다.

정수리 위에서는 독이 바짝 오른 태양이 증오에 가득 찬 열기를 쏟아붓고 있었지만, 샘물은 손끝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다.

한 모금. 등허리를 타고 오싹 소름이 기어오른다.

뱃속을 저릿하게 울리는 냉기에 어깨를 떨며, 소년이 탄사를 흘렸다.

“크으, 물맛 좋다.”

“이곳은 유목민들이 자주 들리는 곳이니, 운이 좋으면 양이나 당나귀를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럼 이곳에서 쉬어가는 것이 좋겠구나. 마침 밥도 먹어야 하고.”

저 양반 뭐라도 먹여놔야지. 저대로 뒀다간 말라비틀어지겠다.

소년의 말에 표자승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이 타고 온 마차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비들비들 말려놓은 건어물처럼 메마른 태감이 아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마차에서 내려서고 있었다.

소년은 가면을 반쯤 걸치고 질질 끌려 나오는 태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할 텐데 미안하다, 뒤쪽으로 가서 여기서 쉬어가겠다고 말 좀 전해다오.”

표자승은 마차의 뒤쪽으로 꾸역꾸역 밀려오는 사절단 행렬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자승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동작으로 말에 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 소년은 꾹 누르면 버석버석 소리가 날 것만 같은 태감에게 다가섰다.

어이구, 이래서 곱게 자란 양반은.

소년은 푸념하듯 몇 마디 중얼거리고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붉은 끈으로 묶어둔 옥색 비단 주머니.

소년은 그 안에서 작은 알갱이 몇 알을 꺼내 태감의 입에 물려주었다.

달착지근한 향기, 쫄깃한 식감과 함께 혀끝에 농후한 단맛이 퍼진다.

오래 묵은 술, 밤나무 꿀, 갈색으로 그을린 설탕 따위를 연상시키는 그윽한 단맛.

썩은 생선 눈알 같았던 태감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달구나. 사탕이나 엿은 아닌 것 같은데, 이리도 단 것이…….”

“건포도입니다. 토로번(吐魯番)의 건포도.”

신장 토로번(吐魯番).

일 년 중 비 내리는 날을 한 손에 꼽을 수 있다는, 제국에서 가장 무덥고 건조한 땅으로 악명높은 토로번은 제국에서 가장 달콤한 포도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사람이 숨쉬기 어려운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무르익고 얼어붙을 것 같은 한밤중의 냉기에 농축된 그 당도는 과실의 영역을 넘어 꿀이나 설탕과 같은 감미료에 견줄 정도였다.

“단 걸 먹으니 기운이 좀 돌지요?”

“확실히, 달달한 것이 입에 들어가니 입에 침이 확 고이는구나.”

“그럼 이것도 한번 드셔 보십쇼.”

“이건 또 무엇이냐?”

“마인탕(玛仁糖)이라고 하는 과자입니다. 신장절편이라고도 하지요.”

소년이 내민 것은 짙은 갈색 엿으로 호두를 뭉쳐놓은 납작한 절편이었다.

소년은 마인탕을 뚝 부러뜨려 장소와 이삼의 입에 쏙 넣어주고는 남은 주머니를 통째로 태감에게 쥐여주며 말했다.

“이것도 포도로 만드는 음식입니다. 원래 토로번 사람들이 겨울철 먹을 보존식으로 만들던 음식인데, 잘 익은 포도를 으깨 즙을 짜서, 그 즙을 졸여 만든 당액에 볶은 호두를 넣어 만들지요.”

“오직 포도만을 쓴단 말이냐? 설탕이나 꿀, 아니면 밀가루나 녹말 같은 건 쓰지 않고?”

“예, 원체 당분이 높아, 포도즙만 졸여도 이렇게 끈끈하게 뭉쳐지지요.”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마십쇼, 밥 못 먹습니다.

소년은 건성으로 답하는 태감을 한번 흘겨보고는 샘터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모닥불을 피웠다.

뒤늦게 샘터에 도착한 금군의 병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전하, 이런 일은.”

“손 남는 사람이 하는 거지. 자네들도 와서 불씨나 받아가게.”

소년은 자꾸 시간 끌면 손수 요리를 해주겠다는, 황송하기 그지없는 협박으로 병사들을 물리쳤다.

몸 둘 바를 모르는 병사들이 우물쭈물하며 떠나가는 것을 본 태감이 핀잔을 주듯 말했다.

“너무 구박하지 말거라. 저 친구들도 나름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인데.”

“제가 언제 구박을 했습니까. 밥해준다 했을 뿐인데.”

“과한 친절은 거북한 법이지. 그것이 상사가 베푸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아랫사람에게 지나친 친절과 관심을 베푸는 것도 윗사람으로서 지양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그걸 그렇게 잘 아시는 양반이 옛날엔…….”

소년이 해묵은 과거의 일을 들추자 태감의 얼굴엔 곤혹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소년은 그 표정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소년의 입꼬리 한쪽이 히죽 올라가자 태감이 곰살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무엇이냐?”

“예, 조반(抓饭)을 만들 생각입니다.”

조반.

그 낯선 이름에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중 의문을 표하지 않은 것은 무역상을 이끌며 사막을 자주 오갔던 표자승뿐이었다.

소년은 도마 위에 색이 노란 무를 올려놓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조반은 신장지역에서 명절이나 경사가 있을 때 먹는 음식으로, 양고기나 소고기로 만들어 달리 육반이라고도 부르지요. 재료로는 고기와 쌀에 신장에서 나는 온갖 채소가 들어가는데, 특히 이 노란 무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노란 무는 모래땅에서 자라는 신장의 특산품인데, 보통 무보다 맛이 달고 질긴 힘줄이 없어 식감이 부드럽지요.

소년은 노란 무를 굵게 채 친 다음 선홍빛에 노르스름한 지방이 두툼하게 붙은 양고기를 올렸다.

“토마토를 조금 넣기도 하고, 양파나 부추를 넣기도 하지요. 그 외에 달게 먹는 조반도 있는데, 이때는 고기를 넣지 않고 계란과 땅콩기름, 견과류, 건포도를 넣어 밥을 짓지요.”

“호오, 우리가 간식으로 먹는 팔보반과 비슷한 맛일 것 같군.”

“맛도 비슷하지만, 팔보반보다는 훨씬 기름집니다. 신장의 음식은 대부분 기름이 많이 들어가지요.”

낮에는 찌는 듯이 덥고 밤에는 동상이 걸릴 만큼 추운 극한 환경에서 버티기 위함인지, 사막의 음식은 기름지고 간이 센 것이 특징이었다.

그 말을 들은 태감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름지고 간이 세며, 채소가 적고 고기가 많다라. 갑자기 사막이 조금 좋아진 것 같다.”

“그리 좋으시면 평생 사십쇼. 저흰 경사로 돌아갈 테니.”

소년은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걸대 위에 솥을 걸었다.

바닥이 두꺼운 무쇠솥이 달아오르고 잠시 후, 사막의 청명한 하늘 아래서 고소한 양기름 냄새가 솔솔 피어올랐다.

* * *

양의 어깨살과 뱃살, 뼈 채로 토막 낸 넓적다리와 정강이. 고기가 뭉텅이로 솥에 들어간다.

소년은 한 움큼씩 고기를 집어넣다가 아예 도마를 들고는 고깃덩어리를 솥으로 쓸어 넣었다.

그 호쾌한 모습에 태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어, 좋구나. 참으로 좋아.”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 조금 더 일찍, 조금만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더라면.

입가에 아쉬움이 맺힌 순간, 태감은 도리질 쳐 그 아쉬움을 떨쳐내었다.

아쉬워할 것 없다. 자신은 아직 젊지 않은가. 그간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지 않은가.

그 길고 고단한 삶 속에서, 위로가 되어줄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도록 하자.

군침으로 통통해진 태감의 볼을 보며 소년이 낄낄거렸다.

“그리도 좋으십니까?”

“그래, 좋다. 좋구나. 누가 싫다 하겠느냐? 이렇게 고기가 담뿍 들어갔는데.”

깍둑썰기한 고기, 뼈 채로 토막 내어 들고 뜯을 수 있는 고기, 고기. 고기가 흘러넘친다.

뼈에서 우러난 골즙과 녹아내린 지방이 고기를 흠뻑 적신다. 지방으로 고기가 튀겨지듯 익는다.

소년은 고기의 겉에 노릇한 색이 돌 때쯤, 미리 썰어둔 노란 무를 집어넣었다.

노란 무에 함유되어 있던 베타카로틴이 양고기의 지방으로 인하여 사람이 흡수할 수 있는 비타민 A로 변한다.

노란 무가 반투명하게 변할 때쯤, 미리 불려둔 쌀과 한 잔의 샘물을 넣고 그대로 솥뚜껑을 덮었다.

“물은 한 잔이면 되는 것이냐?”

“무에서 충분한 물이 나오니 괜찮습니다.”

그럼 조반은 다 준비가 되었으니. 이번에는.

소년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도마 위, 아직 손도 대지 않은 두툼한 양갈비 덩어리를 향해 흥분과 기대가 서린 시선이 쏟아진다.

소년은 갈비의 뼈대에 붙은 기름을 칼로 긁어내고는, 뼈와 뼈 사이로 칼을 넣어 고기를 분리했다.

다 자란 양의, 두툼한 살점이 그대로 붙은 뼈.

지켜보는 이들이 숨을 삼킨다.

“고기가 많이 들어간 밥이니, 곁들이로 숯불에 구운 양갈비구이를 낼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흠잡을 데 없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소년의 제안에 사람들의 갈채가 쏟아졌다.

소년은 마치 구국의 영웅이나 받을 법한 찬사를 받으며 뼈가 붙은 양갈비를 쇠꼬챙이에 꾀었다.

소금은 뿌리지 않고, 냄새를 잡아줄 후추만 넉넉하게.

굵은 후추알갱이가 송송 뿌려진 갈비가 모래 위에 피워진 숯불 위로 오른다.

달궈진 모래 위로 뜨거운 기름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붉었던 고기는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그을린다.

향기로운 숯불의 향기를 입은 고기 위로 소년이 고운 소금을 뿌린다. 그리고는.

“조반도 다 지어졌군요. 이제 먹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사막의 식사답게, 요리는 쟁반처럼 넓은 접시 위에 차려졌다.

우선은 무의 노오란 색으로 물든 밥을 접시 위에 넓게 펴 담고, 그 위로 굵직굵직한 고기를 올린다.

양기름을 흠뻑 빨아들인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알.

고슬고슬한 밥알은 주걱으로 퍼낼 때마다 더운 김과 함께 고소한 냄새를 한껏 뿜어냈다.

침 삼키는 소리. 계곡물 흐르듯 작았던 소리가 점차 천둥처럼 커진다.

소년은 목울대가 연주하는 합주곡에 귀를 기울이며 요리에 마지막 장식을 올렸다.

구운 갈비.

기름이 자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조반의 위를 장식한다. 희고 고운 뼈마디를 들어낸 갈비가 둥글게 배치되었다.

마치 왕관과도 같은 우장한 자태.

그 무게에 절로 고개가 숙어질 것만 같은 장엄한 왕관.

요리를 완성한 사람이 숟가락을 꺼내 사람들에게 돌렸다.

“원래 조반은 손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익숙하지 않으시겠지요?”

주어진 도구는 오직 숟가락뿐이었다. 고기를 집어 먹을 젓가락은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금세 이해했다.

젓가락은. 그런 가느다랗고 나약한 도구는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다섯 개의,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있었으니까.

소년이 마치 시범을 보이듯 잘 구워진 양갈비의 뼈를 왼손으로 집어 들고는, 반대쪽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자, 식기 전에 어서 먹읍시다.”

소년의 말을 신호 삼아,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고기를 들고, 숟가락을 움직이고, 턱을 움직이고, 삼키느라. 바쁘고, 소란스럽고, 시끄럽고, 유쾌하다.

무더운 사막의 하늘 아래서 펼쳐진 사막의 연회는 술도 노래도 춤도 없었지만, 충분히 즐거웠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양갈비를 물어뜯는다.

고기의 표면은 숯불에 익어 가슬가슬했고 씹으면 뜨거운 육즙이 쏟아졌다.

지독한 태양의 패악질에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에 자르르 윤기가 돌고, 말라붙은 진액이 샘솟는다. 더위에 지쳐 늘어진 심장이 거세게 맥동한다.

고기를 뜯고, 기름진 밥알을 입안에 쓸어 담는다.

살캉거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익은 무와 양의 즙을 흡수한 밥알.

꼬들꼬들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하고, 입에 담고 우물우물 씹다 보면 슬그머니 쌀의 단맛이 배어 나온다.

먹다가 목이 메면 언제든 축일 수 있는 샘이 바로 옆에 있었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소름이 돋을 만큼 청량한 샘물이.

뜨거운 기름으로 달궈진 못을 쓸어내리는 서늘한 한 모금에, 태감이 신음을 흘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기 전까지는, 이 척박하고 황량한 땅을 어찌 건너야 할까 그 걱정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땅이구나. 생명을 싹틔울 수 있는 땅이었어.”

오지 않았더라면, 보지 않았더라면 분명 몰랐으리라.

태감은 더운 숨을 몰아쉬고는 물결치는 맑은 샘과, 그 너머로 광활한 모래의 땅을 보았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분명.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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