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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304화 (305/314)

환관의 요리사 304화 외전 90화

베어 물면 입술에 반드르르 윤이 날 만큼 기름지고, 눈물이 찔끔 나고 코끝이 아릴 만큼 맵고, 뺨 안쪽이 사르르 녹을 만큼 달콤한. 야시장의 음식들이 하나둘 상을 채운다.

고추와 산초가 각각 한 움큼은 들어간 듯한 민물장어 볶음, 버터로 튀기듯 익힌 전복, 달콤한 과실주 졸인 양념을 끼얹은 굴 튀김과 뼈가 붙은 양 갈비 수육.

마지막으로, 꿀과 물엿을 발라 구워낸 광동식 새끼돼지 통구이. 소유저(燒乳豬).

정갈하고, 깨끗하며, 담백한. 황실의 요리에 지치고 질려 버린 여인들의 입에서 달뜬 탄성이 흘러나온다.

소년은 발갛게 상기된 여인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운철 칼을 높게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칼날이 서늘한 빛을 뿌리며, 새끼 돼지의 등을 갈랐다.

칼끝이 껍질을 파고드는 소리.

귓바퀴를 타고 바사삭 소리가 맴돈다.

바삭. 바삭.

얇은 기름층을 발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 금빛 껍질의 옆으로는 굵은 설탕과 겨자를 담은 종지가 곁들여진다.

“기호에 따라 설탕을 찍어도, 겨자를 찍어도, 그대로 드셔도 좋습니다.”

설탕을 살짝 찍는다면, 분명 그 어떤 과자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달콤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씹을 때마다 어금니를 타고 귓가를 간질이는 ‘바삭’ 소리와 혀 위로 녹아드는 설탕의 깨끗한 백색의 단맛.

그리고 그 순수한 단맛을 보다 복잡하고, 풍성하며 깊이 있는 감칠맛으로 엮어내는 향기롭고 고소한 돼지기름의 풍미.

무더운 여름날 흐드러지게 핀 꽃에 고인 꿀보다도 달고, 근사하리라.

그렇다면 겨자는 어떨까.

그 노오랗고 톡 쏘는, 잘못 먹으면 눈물 콧물 쏙 빼게 만드는 그 개구진 조미료는 어떨까.

기름진 모든 것의 친구. 알싸하고 향기로운 겨자 또한 새끼 돼지의 달콤한 기름기와 놀라운 조화를 보여줄 것이다.

껍질 다음으로는 연약하고 가느다란 뼈마디 위에 살포시 얹어져 있는 젖먹이 돼지의 섬세한 살코기와 보드라운 비곗살을 즐길 차례다.

연하디연한 뱃살은 입술로 문대기만 해도 녹을 만큼 부들부들하고, 살집 좋은 등심은 젖 향기 살짝 감도는 향기롭고 담백한 육즙을 뿜어낼 테지.

아, 실팍한 정강이와 넓적다리는 어떨까.

양손의 검지로 끝을 살짝 쥐고,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려 한입 물어뜯는다면.

가슴속에서 부풀어 오른 상상이 점점 코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비들의 고운 입술 안쪽에선 군침이 차올랐다.

마치 선지자가 메마른 땅에 샘이 솟는 기적을 베푼 것처럼.

이성의 제어를 뿌리친 침샘에서 넘쳐흐른 맑은 침이 입안을 흥건하게 적셨다.

“저 넓적다리를…….”

껍질을 벗겨내지 않은. 그을린 자국 한 점 없이 고르게 구워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금갈색 껍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저 통통한 다리 살.

저것을 한입 가득, 양 볼이 미어지도록 베어 문다면 어떨까.

한없이 팽창한 기대감은 허기와 갈증으로 변해 그녀들의 입술과 위장에 불을 질렀다.

당장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 자리에 뜨거운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고기가 놓여 있었기에 더욱 극심했다.

하지만 소년은 시선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 믿는 듯한 비들의 뜨거운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단히 공을 들인다는 티를 한껏 내며 느릿하게 새끼돼지를 손질했다.

“자, 소유저(燒乳豬) 손질도 끝났으니.”

껍질과 부위별로 나눈 살점, 토막 낸 갈비와 다리.

완벽하게 해체된 젖먹이 돼지의 고기가 우아한 백자 접시에 올라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통과 격식을 중시하는 제국인답게 젓가락을 이용하든, 아니면 유사 이래 그 어떤 식기로도 대체할 수 없었던 가장 편리한 식기인 손을 이용하든, 이제 집어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소년의 말은 뚜껑을 억지로 눌러놓은 솥처럼 펄펄 끓어오르던 비들의 눈에 의아함을 떠오르게 했다.

“이제 무대의 주연을 모셔보지요.”

“주연이라면, 이 새끼돼지가 아니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뜬 부여비를 보며 소년이 너털웃음을 흘린다.

설마요, 모처럼 귀하신 분들을 모셨는데, 고작 새끼돼지 하나로 생색을 낼 수는 없지요.

소년은 입꼬리를 귀밑까지 길게 찢고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식탁의 진정한 주연을 모셔왔다.

마치 개선장군과도 같은 위엄있는 자태를 과시하며, 소년의 시중을 받아 상 위에 오른 식탁의 주연은 바로-

“고양퇴(烤羊腿)입니다.”

통째로 구워낸 양의 넓적다리였다.

곳곳에 칼집을 넣어 마늘과 미질향(迷迭香, rosemary)를 끼워 넣고 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향기롭게 구워낸. 호방하고 호쾌한 요리.

고양퇴는 그 풍모부터가 장엄했다.

소유저가 장인이 한껏 공을 들여 빚어낸 극상의 예술품과 같은 고상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고양퇴는 비와 바람과 시간이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들여 깎아낸 장대한 산맥과 같은 웅장함이 있었다.

뜨거운 기름을 뚝뚝 떨어트리는 거대한 고깃덩어리. 툭 튀어나온 굵은 뼈.

숯불의 그윽한 불 향을 입은 고기는 비바람에 닳고 깎인 바위산의 한 면과도 같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미끄러졌다.

차가운 금속이 파고들 때마다 더운 김을 뿜어내던 갈색의 산맥은 그 태고의 속살을 드러내었다.

짙은 갈색에서 옅은 회색, 그리고 은은한 분홍색.

곳곳에 로즈메리와 마늘을 품은 고깃점이 한 점 한 점 접시 위에 쌓인다.

고깃점이 겹겹이 쌓일 때마다 향기가 부풀어 오른다. 더해진다. 쌓인다.

고기의 향기.

젖먹이 돼지의 야들야들하고 녹아내릴 듯 보드라운 향기가 아닌, 풀을 씹고 발굽으로 대지를 박차며 뿔로 들이박는, 다 자란 양의 거칠고 강렬한 육향이 솟아오른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켜켜이 쌓인 고기의 언덕에 굵은 소금을 솔솔 뿌리고는 비들을 바라보았다.

비들은 마치 머리에 당근을 매달아둔 당나귀처럼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소년은 낄낄 웃고는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 * *

소년은 뒷걸음질로 가림막에서 네다섯 걸음 물러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목덜미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주르륵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땀방울과 함께 폐부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피로가 메마른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하아.

소년은 비칠비칠 발을 끌며 걷다가, 구석진 곳에 쌓아둔 상자 위에 걸터앉았다.

상자는 폭죽을 담아두던 상자인 듯했다. 희미하게 화약 냄새가 났다.

소년은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가 있으셨을지 모르겠군.”

어떻게 해본다고 애는 써 봤는데, 고린내 나는 늙은이가 준비한 거라 아가씨들 취향에 맞았을지 모르겠어. 괜히 귀찮게만 해드린 건 아닐지…….

소년은 자조적으로 끌끌거리다가 다시 숨을 몰아쉬고는 가림막을 둘러친 곳을 바라보았다.

가림막 안쪽에서는 활기찬 웃음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있었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에 찌들지도, 그늘이 드리우지도 않은. 명랑하고 활발하고, 호들갑스러운.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다운 웃음. 평범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소리를 등지고 누군가가 걸어온다. 작은 보폭으로, 살금살금.

누군가가 걸어와서는, 소년에게 말해주었다.

“재밌었어요.”

“난화비님.”

“정말로. 정말로 재밌었어요.”

난화비는 치맛자락을 손으로 쓸어 만지고는 가만히 소년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소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소년의 의문에, 불안에 답해주었다.

“부여비님도 즐거워하셨어요. 홍엽비님도, 라하비님도. 그리고 로샨 양도요.”

“즐거워하셨다니. 준비한 보람이 있군요.”

명가의 자제로 태어나, 금이야 옥이야 자란 그녀들이.

잘 가꿔놓은 분재처럼 비바람 들이치면 젖을까, 센바람 불면 깨질까 귀하게만 자라온 그녀들이.

언제 이렇게 놀아봤겠는가. 언제 이렇게 웃어보았겠는가.

언제 이렇게.

“자유를, 만끽해 봤겠어요.”

그리고 그 자유는.

자유를 몰랐던 여인들에게도 각별했겠지만, 누리던 것을 빼앗긴 여인에게는 더욱더 각별했으리라.

소년은 배시시 웃는 난화비를 보며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삼켰다.

“다음에는.”

서역에 다녀와, 태감이 동창 제독으로 복직하고, 자신이 숙친왕으로 정계에 자리를 잡는다면.

이부상서의 세를 줄이고, 부패한 탐관오리들을 척결한다면.

그리하여 황제 폐하께서 황권을 반석 위에 올리신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후궁를 둘러싼 울타리도, 조금은 낮아지지 않을까. 조금은 틈이 생기지 않을까.

후궁이란 황제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이니. 혼인으로 유력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황권을 공고히 다진다면, 후궁의 규모 또한 축소되리라.

그리된다면 조금은.

“서역에 다녀온 다음에든, 다시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정말요?”

“그럼요. 다음번에는 서역의 진귀한 물산을 가져와, 더 화려하고 성대하게 벌여보지요.”

소년은 희망을 약속하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을 약속하지 않았다. 기약 없는 희망, 허황하기만 한 미래를 떠벌리지 않았다.

그저 이룰 수 있는 것만을,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것만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난화비는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약속하신 거에요?”

“그럼요. 다음번에는, 야바위 실력도 좀 더 길러 오지요.”

“후후, 기대되네요. 저도 짬짬이 연습 좀 해둬야겠는걸요?”

난화비는 생긋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봐야겠어요. 제 몫이 없어지기 전에.

난화비를 배웅하던 소년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붙잡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리던 난화비는, 묘하게 힘이 빠지는 피시식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하늘을 올려다보십쇼.”

“하늘을?”

피슈욱. 피식.

빛나는 홍등 위로 드리운 새카만 융단 위로, 점점이 작은 불빛이 떠오른다.

별이라 하기엔 너무 가까운 것.

지상에서 쏘아 올린 불빛.

그 정체를 고민하던 난화비의 눈이 일순간 커진다.

그와 함께, 밤하늘의 한가운데에 맺혀 있던 불빛이 초여름의 꽃망울처럼 터지고 있었다.

펑!

* * *

“어디에 쓰려고 화약을 그리도 많이 반출하나 했는데.”

“볼만하지요?”

“그래, 보기는 좋구나.”

밤하늘을 가득 채운 만개한 불꽃 아래서. 그 그늘에 숨어 소년은 태감을 만났다.

면사를 대신하는 장군탈에 방물장수가 늘어놓은 싸구려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치고, 양손에는 꼬치며 사탕이며 노점상이 파는 음식을 가득 쥐고 있는 태감을 보며 소년이 실소를 흘렸다.

“아주 만끽하고 오셨나 봅니다.”

“커흠. 즐기라고 깔아둔 무대에 올랐으니, 양껏 놀고 가는 것이 예의 아니겠느냐?”

“비분들 놀라고 깔아둔 무대인데, 어째 태감님이 더 잘 즐기신 것 같습니다그려. 아, 애들은 어디 있습니까? 단 호위님은?”

“애들은 아직 기예단을 구경하고 있을 거다. 단 호위는 빙당호로 살 때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뭐, 어디 계시겠지요. 사방이 동창 요원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소년은 피식거리고는 따로 포장해 두었던 꾸러미를 태감에게 내밀었다.

연잎으로 단단히 감싼 그것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꾸러미를 받아든 태감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년이 답을 알려주었다.

“고양퇴(烤羊腿) 남은 겁니다. 하나 드셔보십쇼.”

“고양퇴? 남은 것이 있었느냐?”

“남지요. 양 하나를 잡으면 네 개나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니 부족한 것 아니냐.”

이 인간이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년이 이내 태감이 자신의 기준대로, 다리 한 개가 일 인분이라 짐작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태감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보통 양다리 하나면 네다섯 명은 너끈히 먹습니다.”

“그래? 단 호위도 보통 다리 하나 정도는.”

“흰소리 말고 식기 전에 드시기나 하십쇼.”

소년의 타박에 태감은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연잎을 풀어 잘 익은 양 넓적다리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소년에게 칼을 발리지도 않고, 드러난 뼈를 양손으로 쥐고는 그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 작은 입과 얇은 턱으로 고기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뜯으려 애를 쓰는 태감을 보며 소년이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욕심은.

소년은 기침하듯 짧게 웃고는 양 볼이 미어지도록 고기를 뜯는 태감의 옆에 주저앉았다.

물끄러미 하늘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불꽃을 보던 소년에게, 태감이 말했다.

“이제, 일은 모두 마무리 지었느냐?”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들. 여행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미련들을. 전부 마무리 지었느냐?

태감의 질문에 소년은 밤하늘에 두었던 시선을 가만히 태감에게로 옮겼다.

“돌아올 곳에 미련이 남아 있으면, 발걸음을 뗄 수가 없지요.”

“그래, 그러니 단단히 매듭을 지어둬야지.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이제, 남은 미련은 없느냐?

태감의 부드러운 채근에, 소년은 잠시 입을 다물고는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태감이 먼저 알아차려 주기를 기대하며.

하지만 침묵의 부탁은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결국, 소년이 서두를 열어야만 했다.

해묵은 이야기였다.

“한 가지, 있지요.”

동정호에서. 태감과 제가, 민망하고 불편하여 묻어두었던 것 말입니다.

소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문일을 만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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