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93화 외전 81화
일도 대충 마무리가 되었으니, 배에 기름칠 좀 합시다. 사람이 먹어야 또 일을 하지.
왕부의 정원.
키 작은 영산홍과 연못가의 창포가 낮게 부는 동풍에 수선거리는, 까치와 참새가 종종걸음으로 자갈 위를 뛰노는 고즈넉한 정원 한구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향기로운 연기. 소나무 장작을 태우는 연기였다.
소나무 장작 위로는 켜켜이 말린 솔잎이 쌓여 있었다. 누런 솔잎이 타며 타닥타닥 소리가 난다.
부지깽이를 쥐고 불씨를 키우던 소년은 송진이 그을리는 향긋한 냄새가 솔솔 피어오를 때쯤 큰 원형 철판을 가져와 불 위에 올렸다.
성인 남성이 팔을 힘껏 뻗어야 간신히 양 끝을 쥘 수 있을 만큼의 큰 철판은 두께도 대단했다.
그때 주방에서 큼지막한 단지를 지고 아이들이 달려왔다.
“고기 가져왔어요!”
“어이쿠, 고생 많았다. 무거웠을 텐데.”
“그런데 이건 어떤 고기에요?”
“양고기를 채 썬 파와 함께 간장에 재워둔 거란다. 오늘은 고육(烤肉)을 만들 거거든.”
소년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단지로 모였다.
벼 타작하는 마당에 모인 참새처럼 조잘거리며 질문해 오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소년은 고육의 유래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고육은 원래 북방의 유목민족이 먹던 투박한 양고기 요리가 발전된 형태로…….”
고육은 달리 북경고육이라 하며, 몽골에서 손질한 양고기의 자투리를 볶아먹던 요리가 양고기를 좋아하는 북경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탄생한 요리였다.
그 모양은 한국의 불고기와 비슷하나 한국의 불고기와는 달리 설탕을 넣지 않아 짭짤한 맛이 주를 이루며, 소고기보다는 양고기를 주로 사용하는 만큼 양고기의 누린내를 잡기 위해 파를 듬뿍 넣고, 장작으로 향기가 좋은 소나무를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육은 먹는 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첫 번째는 긴 젓가락을 들고 철판 앞에 서서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무흘(武吃)과 식탁에 앉아 종업원이 구워주는 고기를 천천히 감상하며 먹는 문흘(文吃)로 나뉜단다. 무흘은 거칠고 호방하며 문흘은 고상하고 우아하니 각자의 장단점이 있지.”
“전 무흘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서서 직접 구워 먹는 게 좋아요.”
“나도 개인적으로 무흘을 더 좋아하지만, 서서 먹으라고 하면 그 양반이 피곤하고 귀찮다고 구시렁거릴 테니 오늘은 앉아서 먹자꾸나.”
아, 마침 오네. ‘그’ 양반. 하여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소년의 뒷담화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밥때가 되어 배가 고파 나왔는지 정원의 한쪽에서 태감이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었다.
“향이 아주 좋구나. 소나무인가?”
“예. 양고기를 구우려고 소나무 장작을 태웠습니다.”
“그래, 배에 기름칠하는 데는 양고기가 으뜸이지.”
“거기 상 차려 놓았으니, 가서 앉아 계십쇼.”
“난 서서 먹어도 괜찮다만.”
역시, 들었구만.
소년은 샐쭉한 얼굴로 입술을 비죽이는 태감을 보고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하여간, 쓸데없이 귀는 밝아요.
“에이, 뭣 하러 옷에 연기 냄새 배게 서서 먹습니까. 앉아 계십쇼. 제가 구워서 내갈 테니. 애들아, 가서 단 호위님 모셔오렴. 슬슬 구워야겠다.”
아이들은 발랄한 이중창으로 답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정원을 뛰어갔다.
아이들을 웃는 낯으로 배웅한 후, 소년은 아직도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는 태감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직도 삐지셨습니까?”
“그렇다면?”
“기분을 풀어드려야지요. 입에 뭘 좀 넣어서.”
예를 들어, 짭짤하게 양념해 바싹 구워낸 양고기라던가.
소년의 말과 함께 날고기가 불에 오그라드는 치이이익 소리가 태감의 귀를 파고들었다.
귓바퀴를 간질이는 소리, 고기가 철판에 구워지는 소리, 육즙이 끓어오르는 소리.
소리의 뒤를 따라 이번엔 향기가 찾아왔다.
그을린 파의 향기, 육즙과 함께 졸아드는 간장의 향기. 그리고 양고기. 뜨거운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양고기의 향기.
향기가 춤을 추며 코의 점막에 스며든다. 짭조름하고, 알싸하며, 그윽한. 붉은 살코기의 짙은 육향.
태감의 새침한 표정이 점차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소년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고기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태감을 비웃는 조소였으며, 동시에 승리를 만끽하는 기쁨의 미소였다.
“자, 그럼 아이들이 오기 전에, 먼저 한 입 맛보시겠습니까?”
* * *
잡티 하나 없는 우아한 백자 접시 위로 양고기 구이가 올라간다.
물기 없이 바싹 볶아진 양고기와 그을린 파, 간장의 향기는 간신히 붙들어둔 이성을 불사를 만큼 농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먹을 땐 여기, 지마소병이나 전병에 끼워 드셔도 좋습니다.”
식탁에는 깨를 뿌려 화덕에 구워낸 아이주먹만 한 크기의 지마소병과 참기름을 발라 쪄낸 얇은 전병이 있었다.
하지만 태감은 그 어떤 것도 집어 들지 않고 고기만을 집어 들었다.
“물론,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요.”
소년은 싱긋 웃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갈증과 굶주림에 허덕이던 태감이 양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 채는 듯한 사나운 기세로.
뜨거운 것이 입으로 들어온다. 마른 듯하게 볶아진 고기의 가슬가슬한 감촉, 그와 함께 간장의 그윽한 짠맛이 혀 위에 번진다. 입안을 메마르게 하는 강렬한 짠맛.
하지만 건조해진 혀는 금세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씹을 때마다 담뿍 배어 나오는 향기로운 육즙과 자제력을 잃은 침샘이 쏟아내는 군침으로.
“이제 막 풀을 뜯기 시작한 어린 양 고기입니다. 지금이 딱 먹기 좋을 때지요.”
살집이 도톰하게 오른, 아직 젖먹이 특유의 연분홍빛이 살짝 남은 붉은 살코기의 육즙은 달콤하고, 순했으며, 살짝 풀 향기가 났다.
기름이 한껏 오른 다 자란 양의 느끼한 감칠맛이 아닌, 얇은 기름층이 살짝 덮인 연한 살코기의 섬세한 감칠맛이 있었다.
“연하군. 아주 부드러워. 그리고.”
즙이 많아. 태감은 더운 숨을 몰아쉬고는 탁자에 놓여 있던 전병을 집어 앞접시에 펼쳐놓았다.
얇고 흰, 아직 그 어떤 물감으로도 물들지 않은 순백의 도화지.
도화지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향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바삭하게 구운 오리 껍질을 싸 먹어도 좋고, 차지게 반죽해 튀겨낸 소고기 완자도 좋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게 조려낸 돼지고기 조림도 훌륭하지만.
그 순간, 태감은 확신했다. 전병에 어울리는 최고의 속 재료는 이 양고기 구이라고.
태감은 숙련된 손놀림으로 파와 양고기를 올린 다음 양 귀퉁이를 접어 둥글게 말았다.
보들보들하면서도 쫄깃한 전병의 감촉, 얇게 펴 바른 참기름의 고소함은 그을린 불 향기가 그윽하게 배인 양고기와 근사한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번엔 지마소병으로 먹어볼까.”
잘 발효된 반죽에 깨를 송송 뿌려 화덕에 구워낸 지마소병의 폭신함 역시 양고기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역시.
태감은 먹으면 먹을수록 뱃속 깊은 곳에서 아우성치는 공허함을 느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린 듯한, 결핍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던 태감을 보며 소년은 낮게 킬킬거렸다.
“무언가 하나, 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 무언가가. 식탁에 없어선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짭짤한 양고기의 맛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전병으로도 지마소병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한 위장을 채워주는. 따뜻하고 고슬고슬한.
“역시, 간장으로 짭짤하게 간한 고기요리에는 쌀밥이 빠질 수 없지요.”
소년은 큼직한 사발에 수북하게 퍼온 쌀밥을 태감에게 내밀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봉긋한 쌀밥의 언덕.
떨리는 손으로 사발을 받아들며, 태감은 기적을 목도한 신도와도 같은 얼굴로 헐떡이며 말했다.
“지금이라면, 평생 양고기만 먹고 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구나.”
“거 다행이군요. 앞으로 한동안은 질리도록 드셔야 할 테니. 굽고 삶고 찌고 조려서.”
튀김은 빼고.
소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태감은 곧 그 이유를 깨닫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행 중에 튀김은 힘들지.
“사막이라, 한동안은 돼지고기는 구경도 못 하겟지?”
“대신 다른 고기는 실컷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양고기나 염소고기, 낙타고기. 가끔 별미로 말이나 당나귀 고기도 먹고.”
“당나귀라? 그래, 당나귀 고기가 맛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 경사에서는 당나귀 고기를 먹으면 당나귀처럼 비리비리한 자식을 낳게 된다는 말이 있어 즐겨 먹지는 않지만…….”
“허어, 그 맛 좋은 당나귀 고기를 안 먹는다니, 인생 손해 보고 사셨군요. 살코기가 분홍빛이 도는데 연하고, 달고 고소한 것이…… 날것으로 먹어도 좋지요. 아, 하북 지방에서는 려육화소(驢肉火燒)라 하여 구운 당나귀 고기를 밀가루 떡에 싸 먹는 요리가 있는데, 간식으로는 으뜸이요,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두런두런 음식 이야기를 하는 사이 종종걸음으로 오는 아이들이 단혜림과 함께 정원을 가로질러 도착했다.
한껏 허기져 보이는 아이들과 단혜림을 본 소년은 호들갑스럽게 철판에서 막 구워진 양고기를 상에 올리고는 말했다.
“자, 점심 두둑하게 드시고 배에 기름칠 좀 하십시오. 내일은 좀 부실할 테니.”
“어디, 가야 할 곳이라도 있느냐?”
“예, 태감님 배에 기름칠을 해드렸으니, 이제 다른 곳에 기름칠을 하러 가야지요.”
* * *
식사가 끝난 후,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이쑤시개를 물고 부른 배를 두드리던 태감은 소년이 타다 남은 장작에 부삽으로 모래를 끼얹는 것을 보고는 늘어져 있던 상반신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그득하게 부른 배 때문에 그 동작은 대단히 느리고 힘겨워 보였다.
“그래서, 내일은 어디로 기름칠을 하러 가느냐?”
“예? 아아, 후궁에 좀 다녀올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비치지 않았잖습니까? 그간 소홀했으니, 벌충을 하고 와야지요.”
난화비 님께 했던 약속도 지켜야 하고, 홍엽비 님께 매운 것도 해드리고, 부여비 님께…….
말끝을 끌던 소년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부담감에 짓눌려 있는 무거운 숨에 태감이 쓴웃음을 지었다.
“궁에 오기 전에 내주고 온 숙제가 어떻게 돼 있을지, 기대되는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번엔 도대체 뭐가 나와 있을지…….”
저번엔 화약 병기로 몇 마디 주절거렸다가 총이 나왔으니, 이번엔…….
그늘이 드리운 소년의 눈가를 들여다보던 태감은 등허리를 기어오르는 오싹한 한기에 몸을 떨었다.
“제대로, 안전한 거였겠지?”
“예. 최소한 병기로 연결된 만한 주제는 아니었지요.”
분명, 병사의 사기 향상을 위한 보존 식량 개선 방법을 주제로 병조림에 관한 단서를 몇 개 던져주고 온 것이 전부였으니, 설마 그걸로 무슨 위험천만한 무기가 만들어지지는 않겠지.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예, 분명 ‘안전’한 거였습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다만.”
전적이 있으니 말이지. 전에는 내가 후궁에 있었으니 만약의 사태에 대처할 수 있었지만…….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자신을 쏘아보는 태감에게 고개를 돌린 채 소년은 땀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번엔 보존식이 주제였습니다. 설마 그걸 가지고 무슨 위험한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보존식이라, 확실히 먹는 것을 연구하다가 병기가 개발되는 일은 없겠지. 내가 조금 과민했던 것 같구나.”
태감의 사과를 받으며 소년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내일은 후궁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니.”
“그래, 후궁에 들어가려면 신분패가 필요하겠군.”
“전에 쓰던 신분은 안 되겠지요?”
“상호 오운은 사례 태감 양단과 함께 은퇴하였으니, 새 신분패가 필요할 게다.”
어디, 저번에는 종5품의 상호(尙弧)였으니, 이번엔 상온(尙醞)직을 달아주랴? 태감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소년은 헛웃음으로 대답했다.
“상온이면 종3품 아닙니까. 2계급 특진이라니, 대단한 벼락출세군요. 역시 뒷배는 두고 볼 일이라니까.”
“허허, 마침 상온은 술빚는 일을 관장하는 자리이니, 네게 잘 어울리는구나. 아니면, 더 높은 자리가 좋으려나?”
“아예 사례 태감 자리를 주시지요?”
“허허, 자리가 비어 있는 내관 태감이라면 모를까, 사례 태감은 안되지.”
소년은 작게 웃음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랬지요. 사례감의 태감직은 이미 주인이 있었지요.”
“그래, 그러니 내관 태감은 어떠냐. 후궁에서 가장 큰돈을 움직이는 자리인데.”
“됐습니다. 이미 가진 것도 많은데, 착복해서 돈 모아봐야 꿈자리만 뒤숭숭하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폐하께서 내관 태감에 앉힐 인재가 없어 고민이 깊으시다던데.”
태감은 아쉽다는 듯 짧게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옅은 웃음과 함께 한마디를 남기고 천천히 걸어갔다.
“만나거든, 사례 태감에게 안부 전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