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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272화 (273/314)

환관의 요리사 272화 외전 63화

털가죽도 깃털도 가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늘이 달린 것도 아니며,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발가락 사이에는 물갈퀴가 있고 아가미가 아닌 폐호흡을 하면서도 물에서 사는 것.

성질이 차며 간에 쌓인 열독을 풀어주고 보혈 효능이 있으며 특히 축난 원기를 돋구는 데는 으뜸으로 치는 식재료.

황제 폐하께서도 극찬하신 그것은 바로……!

“자라로구나! 이거 간만인걸.”

“경사에서는 물 좋은 놈 구하기가 쉽지 않아 자주 올리지 못했지요. 아마 후궁에서 한 번 올린 뒤로는 구경 못 하셨지요?”

소년의 말에 태감은 입에 군침을 한가득 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 먹었던 자라탕 맛이 어찌나 좋았는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더구나.”

“허허. 저도 태감님께 죽을 만들 국물을 남기지 않았다고 욕을 먹었던 일이 영 잊히지 않더군요.”

그때야 밑바닥 노비 놈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홀로 삭였지만…….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던 소년의 얼굴에 실핏줄과 함께 해묵은 원한이 떠올랐다.

흠집 난 유리구슬 같은 소년의 노회한 눈동자가 과거를 거스르는 것을 본 태감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태감과 풀지 못한 매듭이 많이 남아 있었지요.”

“커흠, 이 좋은 날에 굳이 해묵은 일들을 들출 필요는 없지 않으냐.”

“물론, 오늘만 날은 아니지요.”

경사로 돌아가면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져봅시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전한 은밀한 권유로 태감을 창백하게 질리게 한 후, 소년은 화제를 다시 자라에 관한 것으로 옮겨놓았다.

“경사로 돌아가면 한동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미리 원기를 보충해 두고 가야지요.”

“그래. 한동안은 정말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게 되겠지. 그런데 자라는 어찌 요리할 생각이냐? 역시 탕이겠지?”

“자라는 구워도 맛좋고 튀겨도 좋지만, 역시 자라의 짙은 약성을 온전히 받으려면 탕이 좋지요.”

이번엔 자라탕 중에서도 맛 좋고 귀하기로 유명한 노방회주(老蚌懷珠)를 만들 생각입니다.

소년의 말에 태감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방(老蚌)이라 하면 펄조개를 이르는 말이 아니냐. 노방회주를 풀자면 펄조개(老蚌)가 구슬을 품었다(懷珠)는 뜻인데. 그것이 자라 요리와 무슨 연관이 있느냐?”

“그것이 설명하자면 좀 긴데…….”

소년은 마치 오랜 옛이야기를 뒤적이듯이 느릿하게 운을 띄웠다.

“전하는 데에 의하면, 이 노방회주라는 요리를 처음 만든 것은 그 유명한 홍루몽(紅樓夢)을 저술한 소설가 조설근(曺雪芹)이라 합니다.”

조설근은 청나라 때의 인물로 본래 그의 가문은 금릉 일대에 위세가 대단하던 세도가였는데, 말년에 가세가 기울어 어쩔 수 없이 북경의 외곽에 자리를 잡고는 홍루몽을 집필하며 여생을 마무리하였다 한다.

“그리고 노방회주는 조설근이 뜻이 맞는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 강북 토박이인 친구들에게 강남의 맛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요리가 그 시작이었다 합니다. 노방회주는 본래 자라가 아니라 큰 생선을 반으로 갈라 비둘기 알 모양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낸 동과와 함께 쪄내는 요리였는데 그 모양이 꼭 진주를 품은 조개와 같다 하여 노방회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는군요.”

그리고 후대에 요리사들이 민물고기 대신 보다 영양가 있고 귀한 자라를 이용해 만들게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옛사람들은 자라를 단단한 껍데기가 있고 물에서 나니 조개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하는군요. 그러니 노방회주라는 이름에도 잘 맞지 않습니까.”

“자라와 동과라……. 맛은 좋을 듯하나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자라와 동과는 둘 다 음기가 강한 식재료가 아니냐. 특히 동과는 몸을 냉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 여름철 더위 먹은 사람에게 주로 처방하는 식재료인데. 그것들을 함께 복용하였다가 배앓이를 하게 될 것 같아 겁이 나는구나.”

태감이 우려스럽다는 듯 말하자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그냥 무턱대고 드시기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찌 약식동원(藥食同源)을 모르고 미식가라 자부할 수 있겠느냐?. 물론 전문가인 의원이나 요리사만은 못 하다만, 나도 기본 정도는 깨우치고 있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태감의 의외의 면모에 경악을 금치 못하던 소년은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는 태감의 질문에 답했다.

“예, 물론 동과와 자라는 음기가 강하여 과잉 복용하면 배에 탈이 나기 십상이지요. 그렇기에 노방회주를 끓일 때는 장을 따뜻하게 하는 닭과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구기자를 함께 끓여 자라와 동과의 음기를 눌러주고 약성을 돋굽니다.”

설명은 이만하면 되었지요? 이젠 입으로 직접 경험해 보시죠.

* * *

노방회주(老蚌懷珠) 만드는 법.

노방회주를 끓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싱싱하고 좋은 자라를 구하는 것이다.

소년은 이른 새벽 동정호에서 구해온 자라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좋은 자라를 구분하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너무 큰 것은 살이 질기고 비린내가 나니 중간치 되는 크기에 등껍질이 짙은 녹색이 돌고 속이 꽉 차 무거운 것을 고르는 것이 요령이란다. 거기에 자라는 성질이 더러운 만큼 손질하기도 까다롭지.”

“자라는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럼. 거기에 턱 힘이 엄청나서 억지로 떼어내려 하면 살점이 떨어질 정도지. 예전에 내 아는 사람 중에도 자라에게 물려서 손가락 마디 하나가 짧아진 사람이 있었는데…….”

에비, 요놈.

소년이 쑥 자라를 들이밀자 지레 겁먹은 장소가 찬물 맞은 고양이처럼 풀쩍 뛰어올랐다.

소년은 낄낄 웃고는 칼을 들어 자라의 닭 뼈처럼 가느다란 늑골을 끊어 제쳐 올리고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방광과 쓸개, 간과 창자, 심장 순으로 들어냈다.

“자, 자라를 손질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할 게 이 방광이랑 쓸개란다. 방광은 안에 든 오줌이 터지면 고기를 못 먹게 되니 그렇고, 쓸개는 왜 그럴까?”

“쓸개요?”

“어…… 쓸개가 터지면 쓸개즙의 씁쓸한 맛이 고기에 배서 그런……가?”

소년의 손바닥 위에 놓인 새끼손톱보다 작은 짙은 녹색의 쓸개를 보며 고민하던 아이들은 우물쭈물하며 답을 내놓았다.

아이들이 주저하며 내민 답에 소년은 경쾌한 어조로 오답 판정을 내렸다.

“땡! 아쉽지만 오답이라 상품은 못 받겠구나.”

“그럼 답은 뭐예요?”

“정답은, ‘쓸개는 자라에서 딱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라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란다.”

자라 생피에 타가지고 한 모금 마시면, 크으! 남자한텐 정말 좋은데. 이것 참. 애들이라 이 좋은 걸 알려줄 수가 없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쓸개를 한입에 털어 넣은 소년은 손질한 자라를 껍질까지 통으로 끓는 물에 한 번 데친 다음 껍질 벗긴 닭과 파, 생강, 구기자를 작은 단지에 담아 자박자박하게 잠기도록 물을 붓고는 찜기에 올려 센 불에 찌기 시작했다.

“자라는 등껍질까지 함께 쪄야 진국이 우러난단다. 등껍질의 가장자리 부분은 끓이면 그대로 녹아 나오는 연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거든.”

찜을 준비하였으니 이제는 건더기를 준비할 차례였다.

소년은 우윳빛이 나는 닭가슴살과 동정호의 특산물인 통통한 민물조개를 가져와서는 곱게 다져 소금과 달걀흰자, 닭 육수, 기름을 넣고 치대 비둘기 알만한 완자를 만들어냈다.

“이제 비둘기 알은 삶아서 껍질을 까고 동과는 껍질을 벗기고 작은 공 모양으로 만들면 밑 준비는 다 끝났단다.”

자라가 다 익으면 완자와 나머지 건더기를 찜에 넣고 완자가 다 익을 때까지 익히기만 하면 노방회주가 완성되었다.

이렇듯 들어가는 재료가 진귀할 뿐만 아니라 손도 많이 가다 보니 노방회주는 어떤 연회에서도 정중앙의 상석을 놓치는 법이 없는 고급 요리였다.

“이 요리의 핵심은 바로 조화란다. 자라와 완자, 비둘기 알과 동과의 맛이 모난 구석 없이 조화롭게 얽히면서도 각자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 줘야 진정 잘 만들어진 노방회주라 할 수 있지.”

잘 만들어진 노방회주는 그 어떤 귀한 찜 요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맛을 자랑한단다.

자라의 맛이 그윽하게 우러난 국물은 입술이 쩍 달라붙을 만큼 진하면서도 동과의 은근한 단맛이 살아 있어 마시고 나면 개운하지.

거기에 야들야들한 자라의 살코기는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 보면 흐물흐물 녹아서 목구멍으로 사르르 미끄러질 만큼 연하지.

소년은 기대감에 한껏 달아오른 아이들을 보며 은근한 어조로 노방회주의 깊은 맛을 묘사했다.

“노방회주를 논할 때 또 비둘기 알을 빼놓을 수 없지, 불도장을 비롯한 진귀한 요리에서 비둘기 알은 늘 주빈 대우를 받았지. 말랑하면서도 탄력 있는 흰자에 흔해 빠진 달걀노른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농후한 노른자의 품위 있는 고소함. 그리고 살캉살캉 씹히는 동과의 식감 또한 매력적이지.”

거기에 쫄깃한 조갯살이 박혀 있는 오동통한 닭고기 완자의 맛은 또 어떻고.

그 길고 장황한 묘사의 마지막 마무리는 천둥처럼 울리는 군침 삼키는 소리였다.

꼴깍꼴깍 침을 삼킬 때마다 움찔대는 아이들의 목울대를 보던 소년은 문득 아이들의 목울대가 은근히 도드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삼아, 너랑 장소가 동갑이었지? 너희가 이제 몇 살이지?”

“네? 저희요? 그러니까…….”

“이제 막 열네 살이 돼요.”

열넷. 벌써 그렇게 되었나.

소년은 눈을 비비고는 손가락을 꼽으며 제 나이를 새어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그시 눈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보다 키도 한 뼘쯤 더 커진 것 같고, 턱선도 좀 굵어진 것 같다.

그간 무심하여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을 천천히 살피며 소년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이렇게 품에 안고 귀여워해 주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머지않아 청년으로 발돋움하리라.

어른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장소와 이삼을 보며 소년은 가슴 한구석에 멍울졌던 것이 녹아내리는 애달픔을 맛보았다.

젊은이들과 발맞춰 걷지 못하고 그들의 등을 보며 떠나보내야만 하는. 늙고 지친 노인의 쓸쓸함과 허전함.

그 씁쓸한 감정을 시원섭섭함이란 말로 포장해 본 소년은 그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귀찮다는 이유로 자식도 아내도 없이 제멋대로 살아온 괴팍한 늙은이에게는 과분한 선물이었다.

손을 들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던 소년은 아이들의 부슬부슬한 머리 대신 아직은 가냘픈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열넷이라.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이젠 정말 다 컸는걸.”

“정말요?”

“그럼, 다 컸고말고.”

“그러면…….”

“그래도 술은 아직 일러.”

소년의 단호한 태도에 장소와 이삼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 뾰로통한 얼굴에 소년이 손자의 투정을 받아주는 노인과 같은 웃음을 흘렸다.

“술을 마시려면 적어도 약관은 넘겨야지. 그전에는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된다.”

“히잉, 그럼 육 년이나 남았는데요?”

“그 대신 너희들이 술 마실 나이가 되면 근사하게 술상을 차려주마.”

옥을 깎아 만든 잔에 순금으로 만든 술병으로. 술은 상산의 봉밀주가 좋겠지. 안주는 사슴고기 육포에 꿀에 절인 대추. 그리고 소금에 절여 참기름을 발라 말린 숭어 알. 어떠냐, 상상만 해도 침이 절로 나오지?

소년의 말에 아이들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아직 술맛을 모르는 애들한테 사슴고기 육포며 어란 같은 것이 얼마나 흥미를 끌 수 있겠는가.

“하여간, 그 좋은 걸 모르니, 아직 애구나.”

“아까는 다 크셨다고 하셨잖아요.”

“다 크기는 했지. 그래.”

다 컸고말고. 제 하고 싶은 걸 찾아 훨훨 날아갈 만큼 컸지.

소년은 입가를 잠시 매만지고는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소년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겠지.”

하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세상을 보는 눈높이가 달라지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거다.

그게 장사일수도 있고. 아니면 나라의 녹을 받는 관리일 수도 있겠지.

말끝을 흐린 채 고민하던 소년은 불안에 물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물론 나이가 찼으니 나가라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왕부에 남아 있어도 괜찮아. 다만, 훗날 너희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호위무사라는 자리가 너희들의 족쇄가 되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훨훨 날아가거라.

소년은 아이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는 일어섰다. 어울리지도 않게 낯부끄러운 말을 했다고 얼굴을 붉히며.

그때 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소년에게 다가왔다. 배시시 웃음을 지은 채. 소년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 때가 되었구나. 어서 하렴.

그의 예상대로 아이들은 말했다.

“사실, 예전부터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언제 말씀드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래, 지금이 좋을 때지.”

그리고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가장 기쁘고, 가장 놀라운 형태로.

멍하니 서서는 되묻는 소년을 향해 장소와 이삼은 자신의 꿈을 고백했다.

“저희는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그것은 분명, 괴팍하고 옹졸한 늙은이에게는 과분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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