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63화 특별외전
경사의 그늘진 뒷골목.
그 음침하고 우울한 골목길의 끝자락엔 가느다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허름한 건물이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지붕에 간신히 얹어져 있는 낡은 기와. 처마 아래로 주렁주렁 걸린 수상쩍은 약재들.
누가 봐도 아편굴임이 분명한 의심스러운 건물이었지만.
“어이쿠, 삼이 왔니?”
“주윤 아저씨!”
사실은 실력 좋은 시술사가 싼값에 몸을 치료해 주는 추나 시술소였다.
몇 번이나 드나들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은 음산한 건물 외관에 혀를 내두르던 소년은 이삼을 안아 들고 살이 빠진 것 아니냐며 호들갑을 떠는 주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마침 잘 왔다. 오늘은 어르신도 와 계시거든.”
“예? 그 영감탱이도?”
휘적휘적 입구의 발을 헤치고 들어서니 거적 위에 엎드린 궁상맞은 노인네가 부항을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월에 마르고 닳은 고목과도 같은 노인의 몸을 잠시 바라보던 소년은 이내 들으라는 듯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노인네가 부항으로 뽑을 피나 있나? 그러다 빈혈로 쓰러지면 어쩌려고.”
“뭐야, 젊은 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긴, 추나 좀 받으러 왔지.”
고개를 반쯤 들어 올린 백윤은 소년의 비루한 얼굴을 확인하고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낄낄거리며 백윤의 옆에 드러누운 소년은 꼼지락거리며 웃옷을 벗었다.
허름한 작업복 안쪽으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뚱이가 훤히 드러났다.
소년을 힐끔거린 백윤은 못 볼 꼴을 봤다는 투로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얼씨구, 꼴이 그게 뭐냐. 피죽도 못 먹고 다니는 놈처럼.”
“노인네가 나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노인네야말로 맨날 술만 푸느라 끼니는 대충 때우고 다니는 거 아뇨?”
“너보다는 낫지.”
“노인네보다는 내가 낫지.”
서로 똥 묻은 개인 줄을 모르고 으르렁거리던 둘의 신경전은 주윤이 들어오고 나서야 멈췄다.
넉살 좋게 웃는 주윤 앞에서 차마 쌍소리를 할 수 없었던 둘은 욕설 대신 다채로운 표정으로 서로를 헐뜯었다.
“자, 보니까 오래 몸을 혹사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균형이 조금 틀어진 것 같구나. 특히 목 쪽이랑 어깨 쪽이 좀 안 좋고, 으음, 허리랑 골반 쪽도, 다리는 원체 안 좋았던 부분이라…….”
“그냥 전체적으로 다 안 좋단 말씀이시죠?”
“쯧쯧, 젊은 놈이 벌써부터…….”
“참나, 노인네 건강이나 잘 챙기쇼. 딱 봐도 병풍 뒤에서 향내 맡을 날 얼마 안 남은 것 같구만.”
“너도 내 옆에서 향냄새 같이 맡고 싶냐?”
노인네 옆에 있으면 고린내 때문에 향냄새도 안 날 것 같은데.
부루퉁한 소리를 쏘아붙이려던 소년은 다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통통하게 살 오른 주윤의 손가락이 그의 턱과 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른 당부의 말을 다급히 내뱉으려던 순간.
“저, 좀만 살살…….”
“어허, 시술 중에 입을 열면 큰일 난단다.”
그러다 혀 깨물지도 몰라.
웃음기 살짝 배인 충고와 함께 소년의 목뼈 마디에서 무자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뼈마디를 뽑아 비튼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무시무시한 소리. 척추 깊숙한 곳에 스며드는 둔탁한 충격.
의외로 통증은 없었다. 통증은 없었지만, 통증이 없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마치 개구리를 꾹 누른 듯한 미묘한 신음과 함께 소년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주윤의 사려 깊은 손이 소년의 척추 마디를 짚었다.
목 바로 아래쪽의 경추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흉추와 요추를 짚으며 내려간 주윤의 손이 멈춘 곳은 허리 아래의 엉치뼈를 이루는 천추(薦椎) 부근이었다.
주윤은 더없이 명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듣는 이에게는 더없이 살벌하고 음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긴 조금 아플 거란다.”
“아파요? 예? 아니 잠깐만!”
커흑.
소년의 말은 입속에서 완성되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스러졌다.
폐부의 공기를 모조리 쥐어짜는 듯한 신음은 마치 단말마와도 같이 섬뜩하고 비통했다.
소년의 고개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백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이, 살아 있냐?”
조금 늦게, 소년의 고개가 까딱여졌다. 하지만 간신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고 미약한 움직임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채 사지를 늘어뜨린 소년을 보며 백윤은 끔찍하고 두려운 예감이 그의 등허리를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름진 이마에서 차갑게 식은 땀방울을 떨어뜨리는 백윤을 본 소년이 작게 고개를 들었다.
“이거, 영감한테도 합니까?”
“응? 어르신께도? 그야 해야지. 어르신도 요즘 허리가 많이 안 좋아지셔서, 이번 기회에 교정을 좀 해드려야 하거든.”
“그렇다는데. 영감.”
백윤은 교수대 앞에 선 죄인과 같은 얼굴로 소년에게 물었다.
“그거, 많이 아프냐.”
“아프냐고.”
소년은 건조한 어조로 중얼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의 고통을 표현하기에는 단어가 너무 적다는 듯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고민하는 소년을 보며 백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말해, 뜸 들이지 말고!
잠시 후, 소년은 공허한 눈으로 벼락처럼 내리꽂혔던 고통의 순간을 설명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사타구니 있잖아.”
“사타구니?”
“그래. 사타구니 안쪽으로 큰 칼 한 자루가 쑥! 하고 들어오는 기분이었어.”
“됐다. 그만 말해도 돼.”
“근데 그 칼이 척추 안쪽을 파고드는데…….”
“그만 말하라니까!”
엄습해 오는 공포에 떨며 소리 지르던 백윤은 어느 순간 소년의 입이 멈췄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늙은 대장장이의 위론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잠깐만! 오늘은 상태가 안 좋으니까, 추나는 다음에!”
“상태가 안 좋으실수록 추나를 받으셔야죠. 어르신.”
좀 아플 수도 있습니다.
* * *
“허, 받을 땐 뒈질 것 같더니, 끝나고 나니까 개운하네.”
“사내놈이 엄살은. 옆에서 보는데 사람 하나 잡는 줄 알았다.”
“어딜 혼자만 발 빼려고 그래. 난 영감 통곡하길래 초상 난 줄 알았잖아.”
가벼워진 허리와 어깨를 비틀고 돌려보며 씨근덕거리던 둘은 이내 씨익 웃고는 돗자리 위에 주저앉았다.
비틀고 뽑고 주무르고 꺾고, 가열 찬 추나 시술로 팔다리가 녹아내린 탓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오뉴월 햇볕 받는 늙은이처럼 멍하니 입을 반쯤 벌린 채 허공을 올려다보는 소년을 보며 킬킬거리던 백윤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소년에게 물었다.
“그런데, 삼이는 어디 갔냐? 올 때 같이 오지 않았어?”
“심부름 좀 보냈지. 추나로 땀 좀 뺐으니 몸보신 좀 해야 하지 않겠어.”
몸보신? 어디 닭이라도 한 마리 삶게?
백윤의 말에 소년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곤에 죽겠는데 닭을 언제 삶고 있어.”
“그러면?”
“거참, 좀 기다려 보쇼. 아, 마침 오네.”
때마침 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있는 이삼이 종종걸음으로 시술소 안으로 들어왔다.
한껏 달뜬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다가온 이삼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 백윤은 소년보다 먼저 일어나 보따리를 받아들고는 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돼지 뱃살 아니냐. 허어, 살집 두둑한 게 좋네. 껍질도 붙어 있고. 간장에 조려 먹으면 좋겠군. 아니면 생강이랑 파 좀 넣고 푹 삶던가.”
“먹을 줄 모르는 티 내지 말고 빠지쇼. 이 좋은 고기를 물에 빠뜨리면 뭔 맛으로 먹나?”
“그럼 이 기름진 놈을 어떻게 먹을 생각이냐? 설마 튀기기라도 하게?”
“튀기는 것도 맛은 있겠다만, 오늘은 귀찮아서 못하겠고.”
이렇게 질 좋은 삼겹살을 숯불에 구워야 제맛이지.
돼지고기는 보통 삶고 찌고 조리는 세 가지 조리법으로만 즐겨온 백윤으로서는 숯불에 구운 돼지 삼겹살의 모습을 쉬이 떠올리기 어려웠다.
기름이 잘 박히고 껍질이 얇은 돼지 뱃살은 자고로 달착지근한 간장에 야들야들하게 조려 먹거나 생강과 파를 듬뿍 올려 기름이 쪽 빠지도록 찌는 것이 제일인데.
의아해하던 백윤은 이내 피식 웃고는 심드렁한 얼굴로 보따리를 내밀었다.
요리사인 놈이 알아서 하겠지.
이죽거리며 백윤에게 보따리를 받아든 소년은 한달음에 주방으로 달려가서는 고기를 손질해 왔다.
손질이라고 해봐야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납작납작하게 썰어낸 것뿐이었지만.
양념은커녕 소금 한 줌 뿌려지지 않은 날고기를 들고 온 소년을 보며 백윤은 미심쩍다는 투로 되물었다.
“진짜 고기만 달랑 썰어왔구만. 하긴, 좋은 고기니 이대로 굽기만 해도 맛있긴 하겠군.”
“아, 삼겹살은 원래 알싸한 거 한잔 걸쳐 줘야 제맛인데, 추나 받자마자 술 마시기도 뭐하고.”
“추나 시술받자마자 술을 푸는 건 좀…… 저놈한테 미안하지.”
만두처럼 퉁퉁한 주윤의 얼굴을 보며 입맛을 다신 소년과 백윤은 한숨을 쉬고는 시술소 앞마당에 간소한 상을 차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에 철망. 그리고 고기 구울 집게와 젓가락. 소금 후추 섞어놓은 종지 그릇 하나.
음식을 차릴 식탁이자 궁둥이 붙일 의자로 마련되지 않은 간소하다기보단 궁박한 차림이었지만 소년의 백윤은 개의치 않고 시시덕거리며 고기를 구웠다.
“거나하게 상 차려봤자 뭐해, 치우기만 귀찮지.”
“아무렴.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먹으나 차려입고 젠체하며 먹으나 고기는 고기지.”
“역시 영감이 뭘 좀 알아.”
“너도 어린놈치고는 싹수가 제법이다.”
모난 덕담을 서로 나누며 낄낄거리던 사이 마침내 석쇠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년은 신중한 동작으로 따로 떼어놓은 비곗살로 석쇠에 골고루 기름칠한 다음 도톰하게 썬 고깃점을 석쇠에 올렸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뜨거운 숯불의 열기에 고기가 오그라들며 기름이 배어 나오는, 그 감미롭고 우아한 선율.
핏기 어린 고기가 서서히 하얗게 변하며 고기의 표면 위론 말간 육즙과 기름이 송골송골 스며 나온다.
코점막 안쪽으로 깊게 파고드는 돼지기름의 고소한 향기.
소년이 석쇠를 뒤집는 순간 표면에 고여 있던 기름이 뜨거운 숯 위로 떨어지며 폭발적인 선율을 연주했다.
“이 삼겹살은 하아…… 이 굽는 걸 보면서 마시는 한 잔이 진국인데 말이지.”
“원래 뭐든지 첫맛이 제일 맛있지.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불러서 혀랑 코가 둔해지거든.”
“그런데 이렇게 굽는 걸 보고 있으면 먹을 수는 없는 데 향기는 솔솔 피어오르니 사람 애간장이 끓거든. 이거야말로 최고의 안주 아니겠어.”
짙은 초록색의, 알루미늄 뚜껑을 비틀 때 나는 그 까드득 소리. 꼴꼴꼴 잔을 채우는 그 청량한 소리.
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탄 것뿐인지라 풍미라곤 기대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그 들큼하면서도 쌉싸름한 한 모금.
한숨을 내쉰 소년은 입에 고인 침을 삼키고는 집게를 들어 석쇠를 탕탕 두드렸다.
기름이 빠지고 숯 향기가 그윽하게 배어든, 노릇노릇한 삼겹살 한 점이 백윤의 앞에 놓였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든 백윤은 소금을 찍기 전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웃었다.
“네가 웬일로 장유유서를 챙기냐.”
“장유유서는 무슨, 비루먹은 늙은이 불쌍해서 고기 한 점 주는 걸 가지고.”
“하여간 저 싹퉁바가지 없는 주둥이는.”
백윤은 끌끌 웃으며 잘 구워진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소년을 바라보았다.
“어때? 영감.”
“이건, 허…….”
탄식과도 같은 숨을 몰아쉬며 백윤은 입안에 들어온 뜨겁고 기름진 고깃점을 공들여 씹었다.
삼겹살은 그야말로 구워 먹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완벽했다.
숯불에 오그라들어 쫀득해진 껍질과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기름이 샘솟은 지방층, 그리고 탄탄한 고기. 그리고.
“이, 불 향.”
고기 전체에 은은하게 배어든 숯불의 향기.
그 향기로운 숯불의 향이 자칫 느글거리게 느껴질 수 있는 고기의 기름기를 개운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킨 후, 달뜬 숨을 몰아쉰 백윤은 비어 있는 왼손에서 참을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정말로, 술 한 잔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못 참겠지?”
“아, 이것 참. 원래 시술받고 술 마시면 안 좋은데…….”
시술이 바빠 아직 식사에 참석하지 못한 주윤을 힐끔거리며 백윤은 입맛을 다셨다.
땀 흘려 가며 애를 써준 주윤과의 의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이런 안주를 두고 술 한잔 안 하는 건 너무 아쉽겠지?”
이 늙은이를 위해 땀 흘려 고기를 구워준 소년과의 의리를 지킬 것인가.
갈등에 젖어 있던 백윤은 절대로 지켜지지 않을 타협안을 내놓았다.
“딱 한 잔만 마시면 어떨까. 딱 한 잔만.”
“원래 식사 때 반주 한 잔 곁들이는 건 건강에 좋다잖아? 혈액순환에도 좋고, 소화도 잘되고.”
음충맞은 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마주 본 후, 백윤과 소년은 각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며 고기를 날름날름 집어 먹던 이삼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휴, 난 어른이 되어도 절대 술 마시지 말아야지.”
그 또한 지켜지지 않을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