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60화 외전 53화
젊은이였다. 그들을 뒷골목의 깊은 곳으로 안내하는 노름꾼은.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는 젊은 노름꾼은, 아마도 불을 쓰는 업종에 종사하는 듯했다. 아니, 종사했었던 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노인은 허름하고 끝자락이 해진 옷을 대충 걸친 노름꾼의 목덜미와 어깨, 등. 그리고 팔과 손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이글거리는 화광에 벌겋게 익은 목과 얼굴. 긴 시간 무거운 것을 들고 버티며 굵고 튼튼하게 단련된 어깨와 등판.
뜨거운 불티가 남긴 자잘한 흉터가 아로새겨진 팔뚝. 그리고 물집이 생기고 터지며 두껍게 굳은살이 박인 손.
노인에겐 익숙한 손이었다.
“유리 장인인가.”
노름꾼은, 젊은이는 조금 느릿한 동작으로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인은 가만히 손을 들어 손바닥을 쫙 펴고는 그에게 보여주었다.
고된 노동으로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과 세월에 풍화된 바위처럼 박인 굳은살이 다시 닳아버린 손바닥.
젊은이에겐 익숙한 손이었다.
“어르신께서는?”
“요리일세.”
“아, 어쩐지.”
젊은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하지만 젊은이가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구구절절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지 않아도. 노인은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손기술 하나로 밥을 벌어먹는 삶을 살아온 이였기에.
업종은 다를지언정, 그런 이들이 사는 방식은 대부분 비슷하다.
제법 촉망받는 장인이었으리라. 불과 땀으로 일그러진 투박한 손을 보면 그의 솜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법 재능도 있었을 것이고, 재능이 있으니 일이 손에 붙는 것도 빨랐으리라. 물론 노력 또한 뒷받침되었을 테지.
유리를 만드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이던가. 펄펄 끓는 가마 앞에 지키고 서서 모래가 녹기를 기다리고, 녹은 유리 물을 받아 비틀고 주무르고 숨을 불어넣어 작품으로 완성하는 일이.
기술 배우는 일이 어디 녹록한 일이던가. 공방에 도제로 들어가,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식은 밥 한 덩이 얻어먹으며 혹사당하고. 구박받고,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기술을 익혔을 테지.
그렇게 간신히 한 명의 장인으로 인정받고 나면, 당연히 욕심이 들기 마련이지.
“제 공방이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지.”
젊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은 이미 그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한두 푼 가지고 공방을 차릴 수 있나. 땅도 땅이고, 유리를 끓이는 가마도 보통 비싼 물건이 아니다.
쥐꼬리에 비하기도 민망한 도제 월급으로 모은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딴생각이 들었던 게지.
그리고 그 잠깐의 딴생각은. 노인은 상념을 멈추었다. 노름꾼이 발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어르신.”
“이곳인가?”
“예, 여깁니다.”
여기가 동정호에서 가장 큰 도박장, 양호루(洋湖樓)입니다.
젊은 노름꾼이 한걸음 비켜서자 노인에게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칠 층으로 쌓아 올린 누각이 드리운 그림자였다.
제국의 수도인 경사에서도 쉽게 보기 드문 거대한 규모의 누각은 수천 개의 홍등을 내건 채 방문하는 이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고생 많았네. 이제 사례를 해야겠군.”
공돈 좀 벌어볼 생각에 희희낙락하며 굽실거렸던 젊은이는 이제 적개심마저 느껴지는 시선으로 노인을 쏘아보고 있었다.
안면도 없는 늙은이가 괜한 오지랖으로 해묵은 상처를 들쑤셔놓은 것이 어지간히도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당장에라도 육두문자를 내뱉을 듯 달싹이는 젊은이의 입술을 올려다보며 노인은 느릿하게 품에 손을 넣었다.
드디어 젊은 노름꾼이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 온 것이다.
염병할 영감쟁이, 왜, 인생 훈수라도 두고 싶었나 보지? 돈만 받으면 바로 내빼야겠어. 그리고 일단 술 한잔 거하게 걸치고, 그다음에는…….
“지금 뭐 하는 거요?”
마치 가지 끝에 매달린 감처럼, 손바닥 위에 떨어질락 말락 하는 주머니를 보며 노름꾼은 신경질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시답지 않은 장난을 계속하겠다면 이쪽도 그에 상응하는 장난을 쳐주겠다는 듯이.
그 순간 여인의 손이 노름꾼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손은 틀림없이 여인의 것이었지만 노름꾼은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 존재가 여인이라는 것을, 정확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는 그의 손목에서 연상되는 것은 갈고리발톱을 세운 맹금류의 발, 혹은.
“그만. 노름을 하든 일을 하든 손목은 멀쩡해야 뭘 할 거 아닌가.”
그러다 부러지겠네.
노인의 만류에 여인은 손아귀에 힘을 풀고는 물러섰다.
남은 것은 멍청하니 서서는 손목을 주무르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노름꾼뿐이었다.
노인은 분노와 억울함이 응어리진 노름꾼의 눈앞에 주머니를 흔들었다.
“이 돈을 받으면 뭘 하겠나. 기껏해야 술이나 푸고 노름이나 하겠지?”
“육시럴, 뭔 상관이요?”
당신이 내 부모라도 됩니까?
마치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다는 듯 그를 노려보는 노름꾼에게, 노인은 마치 나쁜 짓을 권유하는 못된 친구 같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탕진할 돈이면, 이 늙은이랑 같이 큰 판에서 탕진해 보지 않겠나.”
혹시 아나. 운수 좋으면 크게 한탕 딸지도 모르지.
* * *
“도대체 무슨 판을 벌이려고 그 지랄을 하나 했는데, 기껏 한다는 게 투기장이요?”
그것도 자기 호위무사를 출전시켜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자신을 보는 노름꾼을 향해 노인은 킬킬거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양호루의 투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특실로 아편쟁이나 노름꾼 같은 무뢰배들과 얽히기 싫어하는 부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한 식경 빌리는데 한 움큼의 은으로 값을 치러야 하는 값비싼 곳이었음에도, 정작 특실을 빌린 노인은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일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 따분한 한숨을 쉬고 있었다.
크게 뚫린 창 아래로 울리는 환호성과 비명, 야유를 들으며 고개를 흔든 노름꾼은 불손한 시선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뭔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돈을 딸 생각으로 출전시킨 거면 관두쇼. 송장 치우기 전에.”
“송장을 치우기는 하겠지.”
그것도 꽤 많이.
그런데 자네 돈은 걸었나?
태평하기 그지없는 노인의 질문에 젊은 노름꾼은 혀를 찼다.
“지금 걸어두는 게 좋을 텐데? 도전자일 때가 배당이 제일 크지 않나. 큰돈 벌려면 지금이 기회일세.”
“말귀가 안 통하는군. 미친 늙은이 같으니.”
“자네가 직접 확인해 보고도 의심이 들던가?”
노름꾼은 호위무사에게 잡혔던 손목을 등 뒤로 숨기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털던 노름꾼은 문득 그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한참 전에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도대체 왜 이 노망난 늙은이의 도락에 어울려주고 있었던 거지? 이 노인네가 제 호위무사를 죽이든 살리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 깨달음은 이내 톡 쏘는 조소로 변했다.
“맘대로 하쇼. 돈 잘 받았수다.”
“문은 열어두겠네.”
“일 없수다.”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며 노름꾼은 특실을 나섰다.
노름꾼의 발걸음이 멀어지고 한참 후, 노인의 뒤에 서 있던 수행원 중 한 명이 노인의 앞에 마주 앉았다.
“기분 좋아 보이는군.”
“그래 보입니까?”
잠시 주위를 둘러본 노인은 복도 쪽에서 울리는 소리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주름진 가죽을 떼어내었다.
노인이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수행원 또한 태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드리운 면사가 성가시다는 듯 벗어던진 태감은 씨근덕거리던 노름꾼이 박차고 나간 자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는 무엇을 위한 안배지?”
“안배? 아아, 저 친구는 쓰려고 부른 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노인네 오지랖입니다. 태감님.”
뒷골목에 쭈그려 앉아 신세 한탄하기에는 아까운 나이 아닙니까. 혹시 압니까, 돈 좀 쥐여주면 그럴듯하게 재기할지.
소년의 말에 태감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그저 측은지심이었단 말이냐? 단순히? 다른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고?”
암시장주를 노리기 위한 포석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눈에 띈 젊은이가 보기에 딱하여 후의를 베푼 것뿐이란 말이냐?
소년은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태감을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그 박수는 태감으로 하여금 실소를 흘리게 했다.
“이제 제법 정치가 티가 나는구나. 그래, 적을 속이려면 우선 아군부터 속여야지.”
“거기까지 추측하셨으면 속아 넘어간 척해서 기 좀 살려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이런, 내 미처 배려하지 못했구나. 다음부터는 꼭 속아 넘어가 주마.”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무슨. 샐쭉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비죽인 소년은 마지못해 알려준다는 듯 손을 입가에 대고 속삭였다.
“경매든 도박이든, 판돈을 키우려면 바람잡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씩씩거리며 계단을 내려온 젊은 노름꾼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밀도가 느껴지는 자욱한 연기였다.
코를 톡 쏘는 듯 매캐하면서도 어딘가 들척지근한, 들이마시면 그대로 폐에 들러붙을 것만 같은 냄새. 아편을 태우는 연기였다.
“어쩐 일이야? 조금 전에 다 털었다고 일어나지 않았나?”
“그냥, 구경 좀 하러 왔지.”
“하긴, 구경은 공짜지.”
그를 알아본 다른 노름꾼들의 시시껄렁한 잡담에 적당히 대꾸하며 젊은 노름꾼은 대진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마치 대진표를 태우기라도 할 것처럼 활활 끓어오르는 그의 시선에 의아함을 느낀 한 명이 그를 불렀다.
“왜,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
“이번에 새로 출전하는…….”
“아아! 그 아가씨!”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되었는지 모여앉아 연기를 뻐끔대던 이들의 입에서 맞장구가 터져 나왔다.
여자가 모래판 위에 올라온 게 몇 년 만이지?
혹시 얼굴 본 사람 있나? 면사로 가리긴 했어도…….
노름꾼들의 대다수는 새로운 투사의 실력보다는 면사로 가린 그 미모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조금 다른 관심사를 표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 아가씨한테 걸 생각인가?”
그 순간 젊은 노름꾼, 길성의 얼굴에는 혹한다는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던 여인의 악력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분명 실력 또한 범상치 않으리라.
거기에 여인은 이제 막 모래판 위에 오른, 검증되지 않은 투사였다.
당연히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놈이면 처음 모래판에 오른 투사에게 돈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게는 지금 상당한 거금이 있었다.
만약 이 돈을 전부 여인에게 건다면, 이 돈을 몇 배로 불릴 수 있을까.
지금까지 진 노름빚을 전부 갚고도 남을까. 그렇다면 남은 돈으로는…….
망상이 제법 그럴듯한 현실감을 품고 부풀어 오르는 순간, 길성은 사납게 도리질 쳤다.
‘지금 걸어두는 게 좋을 텐데? 도전자일 때가 배당이 제일 크지 않나. 큰돈 벌려면 지금이 기회일세.’
개소리하고 있어, 미친 영감쟁이가.
입꼬리를 사납게 끌어올린 길성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한번 주무르고는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제법 두툼하게 찬 주머니가 상에 오르자 노름꾼들의 시선에 대번에 쏠렸다.
“길성이 자네, 어디서 그런 돈을?”
“출처가 중요한가? 아니면 돈이 중요한가?”
“그야 돈이 중요하지.”
그리고 돈이 향할 곳도. 노름꾼들이 뿜어내는, 거의 질식할 것만 같은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일어선 길성은, 젊은 노름꾼은 거의 투척에 가까운 동작으로 발권을 준비 중인 도박장 직원에게 주머니를 내밀었다.
“거기 든 거 다 걸겠수.”
“예? 아, 예. 어떤 투사에게 거시겠습니까? 이번에 새로 올라온 투사? 아니면.”
“뭘 당연한 걸 물어보쇼.”
그야 당연히.
“상대에게 걸겠지요.”
“단순히 너에 대한 반발심리만으로?”
투기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특실에서 아래를 굽어보던 소년은 단정 짓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쪽에서 번지는 소란의 물결을 보던 태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고작 그것만으로 악수를 둔단 말이냐?”
“둡니다. 사람은. 물론 태감께선 이해 못 하시겠지만.”
하지만 모든 사람이 태감님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대다수는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으로 일을 처리하지요.
특히 젊을수록, 무언가에 찌들어 있을수록 더.
낄낄거리던 소년은 창틀에서 손을 떼고는 의자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그 친구와 저는 꽤 닮았습니다.”
“닮았다고?”
소년은 손바닥을 쫙 펴서는 태감에게 보여주었다.
물집과 화상으로 뒤덮인 장인의 손.
세월이 아로새겨진 손을 보며 태감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고생스러운 업종에 몸담아 기술을 배우고 실력을 쌓아, 둘 다 화상에 짓무르고 물집이 터져 흉측한 손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친구와 저 사이에는 차이가 한가지 있지요.”
그 친구는 실패했고, 저는 성공했지요. 누구는 공방 한 칸 내보려고 노름을 했다가 쫄딱 말아먹었는데, 누구는 거금을 탕진하면서도 웃고 있으니,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생길 수밖에요.
차분하게 젊은 노름꾼이 심중에 품고 있을 시기심을 이야기하는 소년을 보며 태감은 등허리를 기어오르는 한기를 느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소년의 모습.
요리사로서, 나이 지긋한 친구로서의 모습이 아닌. 세 치 혀로 상대를 부리고 이용하는 정치가의 모습.
태감은 그늘이 드리운 소년의 얼굴에서 늙은 환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옷깃을 여몄다.
“정치가가 되었구나.”
“예.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기, 단 호위님이 나오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