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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245화 (246/314)

환관의 요리사 245화 외전 39화

일평생 중화요리의 길을 걸었고, 죽는 그 순간까지 중화 요리사였으며.

다시 태어난 지금도 중화 요리사를 업으로 삼고 있고. 앞으로도 중화 요리사 외의 다른 업종에 눈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동경을 들여다보며 소년은 자신이 말년에 꽃피운 재주에 짙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연기에 이만한 재능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거참.”

태감은 옹졸하게 늙은 추레한 졸부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소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쉽기는 아쉽구나. 진작에 연기에 눈을 돌렸다면 제국 경극계에 신성이 되었을 텐데.”

제 재능 살려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그리고 네가 요리에 재능이 없던 것도 아니고.

태감의 말에 소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야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저도 참 복 받은 놈이군요. 남들은 하나 가지기도 힘든 재능을 두 개나 가지고 태어났으니.”

그래서 이렇게 사는데 바람 잘 날이 없나 봅니다. 원래 재주 많은 놈은 인생도 복잡다단하기 마련이지요.

입꼬리를 길게 찢어 올린 소년을 보며 태감은 살짝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웃는 얼굴에 이런 말 하기 미안하다만, 고개 좀 돌려다오. 꿈에 나올 것 같아 무섭다.”

“참나, 이런 잘생긴 얼굴이 꿈에 나오면 좋지요. 자주 보기 어려운 얼굴이니 두고두고 담아두십쇼.”

“잘생겼다고?”

“분위기가 그윽하지 않습니까. 크으, 이렇게만 생겼으면 진작에 요리사가 아니라 연기의 길을 걸었을 텐데.”

해괴망측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는 태감을 본체만체하며 소년은 연신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감탄사를 흘렸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날카로운 눈매. 음산하고 우울한 매부리코에 고된 세월의 피로가 짙게 배인 이마. 축 늘어져 심술궂어 보이는 뺨과 칼로 짼 듯 얇은 입술. 짙은 음영이 드리운 노인의 얼굴은 창백하고도 괴기스러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을 마주하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꿈에 나올까 무서워 고개를 돌릴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소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그렸다.

얼굴이 얼굴인지라 만족감에 찬 함박웃음조차도 소름 끼칠 만큼 무시무시했다.

“캬아, 좋다 좋아. 그래, 남자 얼굴이 이 정도는 돼야지. 비리비리하게 기생오라비처럼 멀끔하기보다는.”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자고로 남자는 얼굴에서 이렇게 관록이 배어 나와야지. 희멀건 놈들은 표정에 매가리가 없어서 못 써먹는다니까.”

“나 옆에 있다? 듣고 있니?”

태감의 항의를 야멸차게 무시하며 소년은 동경 앞에서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극장에 오르기만 하면 천만 관객 동원은 일도 아닐 것만 같은, 관록 넘치는 연기파 악역 노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풍모는 소년의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못다 피운 젊은 날의 가능성을 그리며 한참 동안 동경 앞을 떠나지 못하던 소년은 문득 창밖의 달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털었다.

기우뚱하게 기운 달은 경매장의 개장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제 일할 시간이군요.”

“벌써 그리되었느냐?. 웃고 떠들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구나.”

아직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얼굴 위로 면사를 드리우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흘리듯 중얼거렸다.

“웃고 떠들 날이야 금방 돌아오겠지요.”

“일을 잘 마무리 짓는다면. 말이지.”

“잘 마무리해야지요. 좋은 날 오려면.”

그들에게. 황제 폐하께. 그리고 제국에, 좋은 날이 오려면.

입술을 달싹이던 소년은 입속에 응어리진 그 말을 폐부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객실의 문밖에선 인기척이 느껴졌다.

“손님. 경매 시간입니다.”

“알겠네. 곧 나가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소년은 늙고 탐욕스러운 졸부 노인네의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면사로 얼굴을 가린 태감이 충직한 수행원의 모습으로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세워두었던 지팡이를 집어 든 소년은 지팡이 손잡이를 이루는 뱀의 머리를 한번 보고는 사나운 미소를 그려냈다.

“자, 돈 좀 써 봅시다.”

내일을 향해 기울어지는 달이 객실의 작은 창으로 드리운 그림자를 등진 채, 소년은 객실을 나섰다.

* * *

암시장의 젊은 안내인. 그는 자신의 업종에 만족과 자부심을 가진 이 시대에 참 보기 드문 젊은이였다.

그가 몸담은 업종이 남들에게 손가락질받기에 좋은 불법적이고 불건전한 업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젊은 안내인이 자신의 업종과 지위에 만족감과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하고자 하는 건전한 직업윤리와 겸허함을 갖추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암시장의, 그것도 지부장급의 고위인사도 아닌 일개 안내인으로 만족하는 이유는 무척 소박한 것이었다.

“간단한 이유지요. 암시장의 안내인이야말로 고수익과 목숨의 안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불법적인 업종이 합법적인 업종에 비해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안전성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아함에 물든 소년의 질문에 젊은 안내인은 당차게 대답했다.

“책임이 높아질수록 위험 또한 커지는 법이지요. 지부장급 인사라면 저잣거리에 목이 효수되지만, 저 같은 안내인 나부랭이는 기껏해야 곤장이나 맞으면 끝입니다. 엉덩이가 좀 붓는 것을 대가로 다년간 풍족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젊은이의 말을 곱씹으며 소년은 어떤 평가를 내려줘야 할지 고민했다.

과욕을 멀리하고 제 분수를 아는 현명한 젊은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지 멀쩡한 놈이 벌써부터 땀 흘려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못된 꾀나 부린다고 욕을 해줘야 할까.

잠시 혀끝에 감돌았던 패악적인 말들을 가슴 깊은 곳에 묻은 소년은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그래, 그렇구먼. 아주…… 재치있는 발상일세. 편하게 돈을 벌고 싶으니 암시장에서 일하지만, 동시에 목이 달아나는 건 싫으니 안내인으로 만족한다. 이것 참.”

할 말이 궁색해진 소년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는 화제를 돌렸다.

자신의 독특한 직업관을 설파할 기회를 잃은 젊은 안내인은 애석한 얼굴로 소년의 질문에 대답했다.

“경매에 출품되는 물건이 궁금하시다고요?”

“귀띔해 줄 수 있겠나?”

“죄송하지만, 원칙적으로 경매장의 출품 명단을 발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에 제가 손님께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귀한 물건을 구하고 싶으시다면 1부보다는 2부 경매에 더 집중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젊은 안내인의 조심스러운 조언에 멈춰선 소년은 흥미롭다는 투로 되물었다.

“2부에 올라오는 물품이 더 귀한 것인가 보지?”

“더 귀하다기보다는, 더 가치가 입증되어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경매 1부에 출품되는 물건은 주로 본 경매인 2부가 시작되기 전 가볍게 흥을 띄울 요량으로 올라오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지요. 장물이나 빚 때문에 압류당한 물건들 말입니다. 개중에 귀한 물건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도박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본 경매인 2부 경매를 대비해 화살을 아껴두는 편이 좋단 말이지? 조언 고맙네, 젊은이.”

소년은 말뿐만이 아닌 감사로 젊은 안내인을 행복하게 했다.

허리의 유연함을 과시하며 감사를 표하는 젊은 안내인에게 손을 내저으며 앞으로 걸어 나온 소년은 갑판으로 올라가는 주 승강구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시선을 의식하여 힘겹게 걸어 올라가는 척하는 소년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젊은 안내인은 그의 뒤편에 멀뚱히 서 있는 수행원들을 흘겨보고는 살가운 얼굴로 소년에게 다가섰다.

“손님, 조금 도와드려도 될까요?”

“허허, 고맙지만 괜찮네. 아직 계단 올라갈 힘은 남아 있으니. 그보다는 다른 걸 부탁하고 싶은데.”

경매가 갑판 위에서 열리는 것 같던데, 혹시 병풍 같은 게 있다면 좀 구해다 주겠나? 나이가 들면 영 뼈마디가 시려서 말이지.

소년의 부탁에 젊은 안내인은 대가 따윈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는 선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혹시 화로도 필요하신가요?”

“화로도 있으면 좋겠지.”

그럼 정말 고마울 것 같네.

은근히 기대감을 부추기는 소년의 말에 젊은 안내인은 황급히 달려 나갔다.

잰걸음으로 달려 나가는 안내인의 등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소년은 한 걸음 뒷걸음질 쳐서는 그의 뒤에 서 있던 단혜림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허리춤에 검을 찬 여인의 시선이 주름진 거죽 위로 떨어졌다.

“새끼 호랑이 가죽은 1부에 출품될 것 같습니다.”

“다 큰 호랑이의 가죽이라면 모를까, 새끼 호랑이의 가죽은 특이하기는 해도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은 아니지.”

“다행히 약속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아갈 때쯤이면 완연한 여름이겠지요. 풀이 무성하게 자랐을 텐데,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년의 염려 섞인 말에 단혜림은 단조롭게 대답했다.

“찾을 수 있을 걸세. 반드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기억하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한 확신이 배어 있었다.

그 이상 물을 말이 없었던 소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멀리서는 재기발랄한 젊은 안내인이 숯을 가득 담은 화로를 양손으로 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 * *

뱃속을 울리는 중저음의 묵직한 소리가 별 하늘 아래에 울린다. 경매의 시작을 알린 것은 웃통을 벗어 던진 건장한 장사가 치는 징 소리였다.

한밤중에 열리는 행사치고는 대단히 소란스러운 시작이었지만 이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없었다.

갑판의 끝자락. 뱃전과 가까운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소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배의 이물 쪽에 마련된 단상을 바라보았다.

단상에 올라 호들갑스럽게 물품을 소개하는 경매 진행자는 이제 막 방년이나 넘었을까 싶은 앳된 처녀였다.

통통 튀는듯한 발랄한 목소리의 처녀를 보며 소년은 기이하다는 듯 물었다.

“보통 경매 진행자는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인물이 맡기 마련인데, 특이하군요.”

“글쎄? 의외로 저 여인이 경매 진행자 자리를 맡을 만한 직급의 인물일지도 모르지.”

“물론 나이가 꼭 직급과 경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저 처자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조금 지나치게 어리지 않습니까?”

경매에 대해 그리 관심 없는 이들은 막연한 망상으로 경매 진행자 자리를 우습게 보고는 한다.

얼핏 보면 경매 물품을 소개하고 낙찰가를 부르기만 하면 되니 쉬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세계적인 요리사로서 상류층의 삶을 엿볼 기회가 있었던 소년은 진행자야말로 가장 책임이 무거운 자리라 단언할 수 있었다.

경매 진행자는 단순히 경매를 매끄럽게 진행하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경매에 출품된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때론 경매인 간의 은근한 경쟁을 유도하여 출품된 물건의 값어치를 올리기도 해야 하고, 반대로 지나친 경쟁으로 경매가 과열되어 자칫 경매인끼리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도 해야 했다.

한마디로 경매의 모든 책임을 짊어진 총책임자 자리가 바로 경매 진행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책임 막중한 자리라면 응당 오랜 경륜으로 무장한 이를 내보내야 할 텐데도. 골똘히 고민에 잠겨 있던 소년은 곧 그 무의미하며 무익한 고민을 머리 한편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어야 했다.

경쾌한 말로 경매의 시작을 알린 진행자가 첫 번째 물건을 단상 위에 진열하고 있었다.

“아, 정말 귀한 물건이 출품되었네요! 새끼 호랑이 가죽입니다! 이 선명한 무늬, 털의 윤기 좀 보십시오. 아직 어미 젖도 떼지 못한 새끼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털 결이 곱고 부드러운 게 깔개를 만들어도 좋겠고, 시린 겨울을 대비에 옷의 안감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경매 시작가는 금 오십 전입니다!”

“저 처자, 날강도가 따로 없군요.”

다 큰 호랑이 가죽도 아니고, 새끼 호랑이 가죽에 은도 아니고 금을 받아먹으려 하다니.

떨떠름한 소년의 말에 동의를 표한 것은 그의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갑판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은 참석자 중 상당수가 실소에 가까운 비웃음과 함께 야유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 싸늘한 반응에도 진행자는 꿋꿋하게 처음 시작가를 고수했다.

“자, 한번 보시고, 원하신다면 만져보셔도 좋습니다! 다 큰 호랑이의 뻣뻣한 털가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보드라운 이 감촉.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진짜 새끼 호랑이 가죽입니다!”

“참, 저런 날강도 같은 처자한테 피 같은 금 오십 전을 뜯겨야 한다니.”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 올린 소년은 다섯 손가락을 쭉 펴고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것을 본 진행자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금 오십! 오십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없습니까?”

“어찌 보면 다행이군요. 저 처자가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액수를 불러서 경쟁자가 붙질 않았으니.”

세상 어느 미친놈이 새끼 호랑이 가죽에 금을 오십 전이나 쓰겠습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하품한 소년은 동의를 구하기 위해 태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다며 맞장구를 쳐주어야 할 태감은 기묘한 눈으로 갑판의 한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을 목도한 당혹감에 물든 태감의 눈에 소년이 입을 열려고 한 순간, 찢어지는 여인의 목소리가 갑판 위에 다시 울려 퍼졌다.

“육십! 육십 나왔습니다!”

“뭐? 육십? 어떤 육시랄 놈이?”

어떤 놈이 내 호랑이 가죽을 상회입찰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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