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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241화 (242/314)

환관의 요리사 241화 외전 35화

국수를 넉넉하게 준비했다고는 하나 딸린 입이 수백 명에 하나같이 쇠도 씹어먹을 청춘들이다 보니 한사람 앞에 돌아간 국수의 양은 충분하지 않았다.

최소한, 태감에게 충분한 양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태감의 허기를 달랠 야식거리를 준비하게 된 소년은 입술을 비죽거리고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니, 이 야심한 시각에 무슨 야식거리를 상에 올려야 한단 말인가. 번거로운 요리를 하자니 몸이 고단하고, 대충 준비하여 상을 차리면 태감님의 입이 댓 발은 튀어나오겠지?”

다행스럽게도 재료는 충분했으며 주방의 상태 또한 훌륭했다.

일행이 여장을 푼 곳은 거간꾼을 통해 대여한 임시거처가 아닌 황실 소유의 저택이었고, 저택의 관리인들은 언제 손님이 찾아와도 대접할 수 있도록 저택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식재료 창고 또한 가득 채워두었다.

만약 충분한 인력과 시간만 있다면 당장에 만한전석이라도 차려낼 수 있을 만큼.

창고를 찬찬히 둘러본 후, 태감과 소년은 숨을 몰아쉬며 상반된 감상을 내놓았다.

“이렇게 잘 갖춰두었을 줄이야. 이만큼 준비되어 있다면 뭐든 차려낼 수 있겠구나.”

눈을 반짝이는 태감을 향해 소년은 떨떠름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터무니없는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사표명이었다.

태감은 유쾌한 홍소를 터뜨리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신이 그렇게 염치없는 사람으로 보이냐는 의미의 동작.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밤에 호화로운 연회상을 바라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지. 허기만 면하면 족하다.”

“그렇다고 정말 허기만 면할 음식을 내어드리면 섭섭해하실 거지요?”

“아마 오늘 밤 내내 베갯잇을 씹을지도 모르지.”

“저택 관리인들에게 수고를 끼치기는 싫으니 어쩔 수 없군요.”

배가 쉬이 꺼지지 않을 만큼 포만감이 높고, 그러면서도 달고 기름져 태감의 입을 만족시킬 음식.

먹고 나면 푹신한 침상에 몸을 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식곤증을 유발하는 음식.

창고를 둘러보던 소년은 창고의 구석진 곳에 놓인 광주리를 보고는 눈을 빛내었다.

“떡이 있군요.”

“떡이라. 확실히 포만감이 있는 음식이지.”

광주리에 들어 있는 것은 길쭉하게 뽑은 흰 가래떡이었다.

불에 살짝 눌어붙도록 구워 조청이나 꿀을 찍어 먹어도 좋고, 바삭하게 튀겨 매콤달콤한 양념을 발라도 좋고, 여의치 않다면 그대로 먹어도 고소하고 쫄깃한.

소년은 떡이 든 광주리와 함께 살이 두툼한 돼지갈비 한 짝을 짊어지고는 태감을 돌아보았다.

“태감님, 혹시 배골년고(排骨年糕)라는 요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돼지갈비와 떡이라. 경사에서 익숙한 조합은 아니구나.”

배골년고는 떡 좋아하기로 유명한 상해 사람들이 발명해 낸 요리로 달착지근한 간장양념에 조린 갈비와 떡 요리였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 요리가 어떤 요리인지 설명하기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복잡한 설명이나 사진 자료를 첨부할 필요도 없이, 돼지갈비를 넣은 궁중 떡볶이라 하면 열에 아홉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니까.

소년은 딱딱해진 가래떡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며 말했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강남 지방에 떡 유명하지 않은 곳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상해 사람들의 떡 사랑은 유별나지요. 상해 사람들은 단순히 간식으로 떡을 즐기는 것을 넘어 온갖 요리에 떡을 넣어 주식으로 즐깁니다. 바삭하게 튀겨 매운 양념에 찍어 먹기도 하고, 게가 실하게 살이 오르는 계절이면 게와 함께 달착지근한 양념을 해 볶아 먹기도 하고. 탕에 넣어 부들부들하게 즐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배골년고는 상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그 어떤 요리보다도 특별하지요.”

“특별하다? 어째서 특별하지?”

“그야 가장 맛있으니까요.”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들려준 후, 작게 토막 친 돼지갈비를 간장과 참기름, 꿀, 파, 생강, 술 등의 양념에 절인 소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돼지갈비로 탕수육을 만들어 먹었는데 또 돼지갈비군요.”

“자고로 좋은 것은 다시 봐도 좋은 법이다. 자주 보지 못해 서운할 수는 있어도 자주 본다고 지겹다 할 일은 없으니 걱정 말거라.”

그 말에는 앞으로도 돼지갈비와 자주 왕래하고 싶다는 소망이 내포되어 있었다.

낄낄거리며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다음, 소년은 뜨겁게 달군 철과에 절임 양념과 함께 갈비를 쏟아 넣었다.

이제는 요리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소년이 그렇게 선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철과와 주걱을 쥔 소년의 얼굴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태감은 초청받은 객에 어울리는 겸손한 태도로 침묵했다.

꿀을 아낌없이 넣은 양념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점차 끈적해졌고 뼈에 붙은 살코기에 빛나는 윤기를 덧입혔다.

양념은 점차 뚝뚝 방울져 떨어지는 점도에서 끈적하게 늘어지는 점도까지 졸아붙었고 살코기는 수축하여 뼈를 드러냈다.

꿀과 간장이 졸여지며 농후하게 농축된 향기가 불꽃의 상승기류를 타고 춤춘다.

양념이 끓는 소리. 장작불 타오르는 소리. 주걱이 철과 바닥을 뒤집을 때마다 뼛조각이 울리는 달그락 소리.

그 기묘한 삼중주에 새로운 음이 추가된다.

넋을 잃은 채 춤과 연주에 빠져 있던 태감은 눈을 크게 뜨고는 새로운 독주가 연주되는 쪽을 바라보았다.

격렬하고 열정적인 독주였다.

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소리.

소년이 기름 솥에 떡을 집어넣고 있었다.

황홀경과 경악의 중간선상에 선 채 입을 다물지 못하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배시시 웃었다.

“갈비와 떡을 함께 끓이는 것이 전통이지만, 요즘은 이렇게 떡을 튀겨서 내는 것이 유행이더군요.”

하얀 떡이 점차 노릇한 황금빛으로 물들며 부풀어 올랐다.

소년은 다 튀겨진 떡을 기름에서 건져 철과에 쏟아 넣은 다음 재빨리 버무려 접시에 담아냈다.

마무리는 고소한 통깨를 솔솔 뿌려서. 윤기가 흐르는 배골년고를 상에 올린 소년은 혹시나 한다는 투로 태감에게 물었다.

“떡이 있어 굳이 밥은 내지 않았습니다만, 혹시 필요하십니까?”

“떡이 충분히 들어갔으니 굳이 밥을 먹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 달착지근한 간장양념에 버무려진 갈비를 보면…….”

“고슬고슬한 흰쌀밥 한 숟갈이 간절하겠지요.”

예, 먼저 들고 계십시오.

소년은 멀겋게 웃고는 솥에 안쳐둔 밥을 푸기 위해 태감에게서 돌아섰다.

소년에게 충분히, 넉넉하게, 넘치도록 이라는 주문을 남긴 태감은 젓가락을 집어 들기 전, 혀 밑에 흥건하게 고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입안이 요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확인한 후, 경건한 동작으로 갈비를 집어 들었다.

작은 토막이었다. 검지 두 마디쯤 되는 크기의 뼈. 그 위에 붙은 고기는 열에 수축해 더욱 작았다.

한입에 쏙 집어넣어도 부담이 없는 크기.

하지만 그 만족감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보다 빼어났다.

부드러운 고기는 아니었다. 조직이 야들야들하게 풀어지도록 시간과 공을 들여 푹 익힌 고기가 아니었다.

사람의 입에 송곳니가 있는 이유를 실감하게 되는, 탄력 있는 살코기였다.

어금니를 밀어 올리는 그 쫄깃함. 씹을 때마다 배어 나오는 기름진 육즙. 거기에 녹아드는 달콤한 꿀과 짭조름한 간장의 진한 맛.

씹으면 씹을수록 달고 향기로운 즙이 솟아나는 갈비는 마치 감칠맛의 화수분과도 같았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튀긴 떡을 더한다면? 이것이 과연 하나의 음식으로 융화될 수 있을까?

아니면 졸인 갈비와 튀긴 떡이라는 별개의 음식을 한 접시에 올린 듯 서로 겉도는 것은 아닐까?

태감은 의혹을 숨기지 못한 채 간장양념 묻은 떡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

떡은 아직 바삭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단단하게 튀겨진 겉 부분의 뜨거운 온기가 입술을 달구는 순간 태감은 자신의 의혹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떡은 바삭했고, 속은 쫀득했으며. 갈비의 기름이 녹아든 달착지근한 양념과 놀라울 만큼 어울렸다.

어금니를 희롱하는 그 말랑말랑한 식감. 혀끝에 은근하게 번지는 쌀의 순박한 단맛. 그리고 다시 갈비.

졸아든 양념의 진한 맛. 입을 우물거릴 때마다 스며 나오는 향기로운 골즙. 그리고 다시 떡.

한차례의 순환을 끝낸 후, 태감은 위장 한구석에서 슬며시 차오르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역시, 밥이 있어야 해.”

쌀을 찧어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떡은 결코 밥의 대용이 될 수 없었다.

동량의 포만감이 동량의 만족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태감은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고슬고슬하게 지은 쌀밥 한 숟갈을 떠올렸다.

이 달고 짭조름하고 기름진 양념에는 하얀 쌀밥이 필요했다.

떡으로는 부족했다. 배는 채울 수 있을지언정 마음이, 영혼이 차오르질 않는다.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선.

“역시 밥이 필요하지요?”

“그래.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간절히. 애타게, 그걸 기다리고 있었어.

가늘게 떨리는 태감의 외침에 소년은 피식 웃으며 고봉밥을 내려놓았다.

수북하게 담은 밥은 진주와 같은 우아한 색이었다.

기름진 갈비와 튀긴 떡. 그리고 고봉밥. 완전히 탄수화물과 지방으로 점철된 식단이었다.

분명 다 먹고 나면 그대로 베개와 입맞춤한 채 내일 오후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리라.

소년은 잠시 애석한 얼굴로 태감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맘 편히 그를 침상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으면 서로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소년은 태감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소년은 태감이 요리와 밥을 반쯤 비웠을 때 입을 열었다.

“태감. 오늘 산 표 말입니다.”

총 다섯 장이었지요?

소년의 질문에 고개를 든 태감은 입가에 묻은 양념을 혀로 핥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총 다섯 장이었지. 네 것, 아이들 것, 단 호위 것. 그리고 내 것. 총 다섯 장.”

“왜 다섯 장이었습니까?”

태감은 문득 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민하던 태감은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너무 적게 준비한 것이 불만인 것이냐. 물론 표를 더 준비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인원을 데려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많은 인원은 이목을 끌게 되고, 이목이 집중되면 필연적으로 암시장 관계자들의 경계를 사게 될 것이다.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만?”

“아니요. 너무 많아서 문제인 겁니다. 표는 네 장이면 충분했습니다.”

제 것 한 장, 아이들 것 두 장. 그리고 단 호위의 것 한 장. 총 네 장이면 충분합니다. 태감님 것은 필요 없지요.

소년의 말에 태감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한 표정을 꾸며내었다.

“내가 필요 없단 말이냐? 그렇게 가슴 아픈 말을 하다니.”

“원한다면 욕설이라도 해드리지요. 다시 여쭙겠습니다. 태감님이 현장에 계실 필요가 있습니까?”

칼을 쓸 일이면 단 호위님과 아이들이면 충분하고, 속여넘기고 구워삶는 것은 제 일이지요. 태감님께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에 계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야멸차게 쏘아붙이는 소년을 보며 태감은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질문했다.

“왜 묻지 않았지?”

“예?”

“왜 당시에 묻지 않았냐는 말이다. 표를 산 직후에 물어보았어도 될 질문을. 이 야심한 시각, 단둘이 남았을 때로 미룬 이유는 뭐지?”

연속된 질문은 자칫 상대를 공박하는 태도로 비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감의 어조는 단조로웠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렇기에 소년은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태감의 질문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말끝을 흐리며 미간을 일그러뜨린 소년을 보며 태감은 소년의 머릿속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던 답을 짜 맞춰 주었다.

“그래. 나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서지. 내가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 다른 수하들 앞에서 동창 제독의 권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일부러 질문을 삼간 것이지.”

소년은 어렴풋이 태감이 다섯 장의 표를 구매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년의 머릿속에서 느낌으로만 머물 뿐 명확한 확신으로 구체화 되지는 않았다.

태감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소년의 요구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만약 이곳이 경사였다면, 난 네 말대로 안전한 곳에서 네가 낭보를 들고 오기만을 기다렸을 거다. 경사는 좁은 곳이고, 곳곳에 동창의 눈이 깔려 있지. 난 필요하다면 즉각적으로 보고를 받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어.”

하지만 이곳은 그럴 수 없지. 암시장은 동정호의 한가운데에 떠 있고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동정호 밖에서 보고를 받을 수 있는 수단은 하나뿐이야.

하지만 그 수단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지.

태감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떨구었다.

“비룡응. 예, 비룡응이라면 거의 동시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매는 밤눈이 어두우니.”

“밤에는 써먹을 수 없는 연락 수단이지. 암시장은 아쉽게도 늦은 밤에만 개최되고. 그것이 내가 현장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대답이 되었느냐?”

“제가 대신할 수는 없는 겁니까?”

젓가락을 들던 태감은 흘리듯 말하는 소년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나를 대신하여 결정을 내린다면. 그 책임 또한, 너의 것이 되지 않느냐. 이번 일은 황제 폐하께 임명받은 동창 제독인 내가 입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 또한 내가 지는 것이 바른 일이겠지.”

다시 식사를 시작하기 전, 태감은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소년을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밤이 늦었구나. 오늘은 이만 쉬거라. 내일은 바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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