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236화 (237/314)

환관의 요리사 236화 외전 30화

갈비는 기름진 부위였다. 그것이 소든, 돼지든, 양이든. 설령 먹기엔 귀찮고 남 주기엔 아깝다는 의미로 자주 거론되는 계륵조차도.

유사 이래 모든 인류가 탐해온 그 달콤한 살코기는 온갖 방법으로 조리되어 식탁의 한가운데를 차지해 왔다.

굵은 소금으로만 간하여 숯불에 구워서, 뚝뚝 떨어지는 기름과 고기에 배어든 그윽한 불향을 즐기기도 하고.

때론 물오른 과실의 달콤함과 오래 묵은 간장의 짙은 감칠맛을 더하기도 하며.

먹기 좋게 썰어 꿀과 함께 뭉근한 불에 조려 윤기를 내기도 하고, 넉넉한 물에 푹 삶아 그 진한 기름기와 그윽한 육즙을 우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굽고 삶고 찌고 조리는 것으론 만족할 수 없었던 탐욕스러운 요리사들은 끝내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야 말았다.

기름진 것.

그 한껏 기름이 오른 그것을 다시 기름에 튀긴다는, 실로 패악적인 발상을 실행에 옮기고야 만 것이다.

연하고 부드러우며 담백한, 안심이나 등심 같은 분홍빛 고기가 아니었다.

늑골에 들러붙어 심장과 폐 같은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충분히 기름을 함양한, 육색 짙은 바탕에 눈꽃처럼 우아한 지방이 점점이 박힌.

그런 고기였다.

그것을 바삭하게 튀겨내 달고 향기로운 당초에 적셨으니, 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음식인가.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맛인가.

태감은 달뜬 숨과 함께 혀 밑에 묻어두었던 탄식을 내뱉었다.

“군자라면 멀리해야 할 음식이구나.”

하지만 군자연하기 위해 멀리하기엔 너무나도 달고 향기롭구나.

탄식하면서도 젓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 태감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세상 어느 누가 이 앞에서 절제의 미덕을 말할 수 있을까.

젠체하며 검소함이야말로 군자의 덕이라 말하는 이들의 민낯을 폭로하는 이 기름진 감칠맛 앞에서.

태감의 옆자리에서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이던 단혜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뜻을 둔 자라면 거친 것을 입고 거친 것을 먹고 거친 잠자리에서 잠드는 것을 두려워 말라. 목전의 쾌락에 초연하지 못한 자가 세운 뜻은 무른 쇠와 같아 쉬이 접히고 꺾이는 법이니. 분명 그리 가르침 받고 그 격언을 지침 삼아 살아왔건만, 전하께서 내어주신 음식만큼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구려.”

스승님들을 뵐 면목이 없소.

쓰디쓴 자책을 말하는 단혜림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태감은 위로의 말을 전하지는 못했다.

부드럽고 상냥한 말들을 머금기에 그의 혀는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큼함 감귤향의 새큼한 당초가 넉넉하게 묻은 바삭한 튀김옷.

그 매혹적인 옷으로 치장한 갈빗살. 그리고 그 속에 품은 단단한 뼈.

혀는 바쁠 수밖에 없었다.

뼈에 붙은 살코기는 기름이 담뿍 올라있었음에도 탄탄하고 야성적인 육질을 자랑했다.

송곳니와 어금니가 다분히 활약해야 하는 그 탄력 있는 살코기는 씹으면 씹을수록 달큼한 육즙과 함께 골즙의 구수한 맛이 샘솟았다.

새콤달콤한 맛에 젖은 혀 위로 묵직하고 짙은 갈빗살의 풍미가 번지고, 그 강렬한 맛에 혀가 지칠 때면 또다시 상큼한 당초의 풍미가 밀려온다.

마치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와 같은 맛의 순환구조는 위장의 한계를 무시하고 영원히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입에는 좀 맞으십니까?”

능글맞은 웃음소리.

부정적 평가 따윈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그 오만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태감은 잠시 젓가락을 멈추고 그에게 답해줄 말을 고민했다.

솔직하게 찬사를 바칠 것인가. 아니면 옹졸하고 편협해 보일 것을 감수하고 혹평을 늘어놓을 것인가.

후자를 고려하던 태감은 젓가락으로 집어 든 탕수육을 입으로 가져가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요리를 헐뜯고 비난하기엔 자신의 혀는 너무나 솔직했다.

이 천상의 희열 앞에 어찌 오물을 던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태감은 요리를 칭찬하고 싶은 솔직한 속내와 소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아집의 타협점을 찾아냈다.

“맛은 있구나, 맛은.”

맛은 있다. 맛은 있지만.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오기를 부리는 그 궁색한 대답에 소년은 대꾸하는 대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태감은 소년이 원하는 대로 패배에 승복하지 못하고 심통을 부리는 전형적인 패배자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소년을 기쁘게 했다.

소년은 더없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식사를 내올까 하는데, 혹시 요리가 부족하거나 하진 않으십니까?”

식사라는 말에 얌전히 탕수육을 먹고 있던 아이들의 고개가 소년을 향했다.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맹금류가 그러하듯 쾌속한 동작이었다.

기대감으로 빛나는 아이들을 본 태감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니, 이만하면 되었다. 고기는 충분히 먹었으니 이젠 배를 채울 차례지.”

작은 언덕을 이루는 뼈 무더기를 흘깃 바라본 소년은 군말 없이 쟁반에 식사를 날라왔다.

각자의 앞에 놓인 접시는 두 개였다.

“원래 칸막이로 나눈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런 그릇을 구할 수가 없어 두 그릇에 나눴습니다.”

“번거로웠겠구나.”

“요리할 때야 크게 번거로울 것 없지요. 설거지할 때는 좀 귀찮긴 하겠습니다만.”

아이들의 앞에 놓인 것은 한 그릇 분량의 면을 반으로 나눠 담은 작은 그릇이었지만, 태감의 앞에 놓인 것은 곱빼기 분량의 면을 각각 담은 대야 같은 큰 그릇이었다.

이것을 짬짜면이라 불러도 좋을까?

잠시 짬짜면의 사전적 정의를 두고 고민하던 소년은 고개를 부르르 털고는 접시를 내려놓았다.

“단 호위는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일반인용을 드릴까요? 아니면 태감님용?”

“일반인용으로 충분할 것 같지만, 태감께서 드시는 걸 보니 도전욕이 샘솟는군. 큰 거로 주시게.”

설마 장난삼아 말한 선택지에 진지한 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던 소년은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어지간한 장정도 견주지 못할 대식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름진 탕수육으로 배를 채우고 거기에 또 욕심껏 면을 추가해 거의 사 인분에 달하는 탄수화물을 더하는 것은…….

땀으로 젖은 이마를 훔치며 말을 고르는 소년을 향해 단혜림은 담담한 웃음을 지었다.

“괜찮네. 오늘은 조금 든든하게 먹어두고 싶어 그러니.”

“이유가 있으십니까?”

“오늘은 밤이 유독 길 것만 같아 그러네.”

그러니 든든히 배를 채워둬야 버티지 않겠나.

그녀의 대답에 소년은 반문하지 않았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소년은 고개를 깊게 숙이고는 그녀의 앞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예. 밤이 길어질 것 같으니, 충분히 드셔두십시오.”

* * *

별들을 거느린 새벽달이 하늘 끝자락에서 지평선을 향해 고개를 떨구는 시간.

포만감에 젖어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침상에 밀어 넣고 목 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준 다음에 소년은 손에 술 한 병과 잔 세 개, 약간의 안줏거리를 챙겨 들고는 돌아왔다.

온갖 기름진 것들로 입술과 목에 윤을 내었기에 안주는 간소하고 기름기 없이 메마른 것들로만 준비되었다.

가늘게 찢어 불에 살짝 구워낸 육포와 어포. 그리고 약간의 건과일이 전부였다.

술상을 차려 올린 소년은 육포 한 조각을 입에 열고는 태감을 바라보았다.

마치 등을 떠미는 듯 부릅뜬 소년의 눈에 태감은 난처한 얼굴로 괜스레 헛기침만 연달아서 했다.

답답함에 소년 또한 홧술을 들이켰지만, 소년에게도 뾰족한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때 세 치 혀로 정계 인사들을 쥐락펴락하며 후궁 제일의 권력자라 불린 태감이 말을 꺼내길 주저하고, 하늘 아래 오직 황제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을 권리가 있는 숙친왕조차 함부로 거론하지 못하는 주제.

그것을 알면서도 단혜림은 뜻 모를 모호한 웃음을 입에 머금은 채 그들이 먼저 말문을 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신가?”

“크흠, 단 호위. 그것이…….”

“밤이 길기는 하지만, 이 이상 허비했다간 해뜨기 전에 이야기를 끝마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단혜림의 부드러운 채근에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태감과 소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태감이었다.

“오늘은 단 호위께 여쭤볼 것이 있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어려워 말고,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이미 한배를 탄 사이나 다름없는데 무엇을 숨기겠소.”

거리낌 없이 질문하라는 단혜림의 허락에도 태감은 쉽사리 입을 떼질 못했다.

전전긍긍하며 시선을 내리깐 둘을 보며 단혜림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해하오. 천하의 달변가라 할지라도 묻기 어려운 것이지.”

타인의 부모를 거론하는 것은 참 껄끄러운 일이야. 그것이 좋지 않은 의도로 말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입꼬리를 가늘게 찢은 그녀는 담백한 어조로 말했다.

“나의 아버지. 이부상서에 관해 물을 것이 있지 않소.”

“그, 춘부장께 별다른…….”

“억하심정이야 많겠지. 서로 그리 돈독한 사이는 아니지 않소? 온건하게 표현하자면 정적일 테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같은 하늘을 이고는 못 살 불구대천의 숙적일 텐데.”

숙적이란 표현은 조금 과했던 것 같군.

황제 폐하의 치세를 방해하는 장애물. 또는 권력욕에 미쳐 나라를 어지럽히고 황실의 권위를 능멸한 적신(賊臣)이며 망국신(亡國臣)이라 해도 되겠지.

자신의 부모를 평가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랄한 표현에 소년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소년은 그녀가 어떤 여인이었는지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여인이었다.

혈육이라 하여 칼끝에 자비를 두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것이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진정 나라를 살릴 길이라 믿는다면.

최선도 차선도 아닌, 그녀가 제국을 위해 선택한 차악책을 다시금 떠올린 소년은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그녀의 뜻이 꺾이지 않았다면 제국은 어찌 되었을까.

소년의 긴장을 읽은 단혜림은 빙그레 웃음 지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께는 섭섭한 일이 많지.”

사실 섭섭한 걸 따지면 춘부장께 섭섭한 일보다는 저희에게 섭섭한 일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만.

목젖까지 치밀어 오른 한마디를 삼킨 소년은 경솔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입을 굳게 걸어 잠갔다.

굳이 과거의 은원을 들먹여 분위기를 경직시킬 필요는 없으리라.

그리고 그 심중을 알아차린 태감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미 짐작하셨을 테니 기탄없이 여쭙겠습니다. 단 호위, 저흰 증거가 필요합니다.”

“아버지께서 인신매매를 주도하셨다는 증거 말이오.”

“춘부장께서 직접 진두지휘하셨을 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문서에 이름이 올라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겠지.”

아버지께 겨눌 칼로써 쓰든, 인신매매 조직을 뿌리 뽑든.

어느 쪽으로든 칼을 뽑기 위해선 그럴 만한 명분이 필요한 법이지.

잠시 생각에 잠긴 단혜림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참 공교로운 일이 아닌가. 나의 몰락의 시발점이 되었던 사건이, 이제는 아버지를 겨누기 위한 칼날이 되어 돌아왔으니.”

“경사에서의 일 말씀이시군요. 염사방주의 사건을 묻기 위해서, 춘부장께서 제게 교섭을 요청하셨지요.”

“아아, 나의 목을 건 교섭이었지. 아버지께선 자신의 치부를 묻는 대가로 나와의 연을 끊으셨고, 그대는 이부상서라는 방패막이가 사라진 나의 숨통을 끊으려 했지.”

비정한 후궁에서의 기억을 상기한 그녀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래전, 안양비라는 이름으로 후궁을 양분했던 시절의 얼굴.

하지만 그 사납고 도발적인 미소는 이내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소년이 품 안에 손을 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 보실 것 없네. 이미 청산한 은원 아닌가. 이제 와 패배한 결과를 뒤집겠다 구차하게 매달릴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제 믿음이 부족했나 봅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소년에게 손을 내저은 단혜림은 어포를 입에 넣고는 그대로 술을 들이마셨다.

씁쓸하고 독한 한 모금으로 목을 뜨겁게 달군 그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더운 숨을 토해냈다.

“아버지께선 의심이 많으신 분이시오. 자신의 비밀을 쉬이 남과 나누는 분이 아니시지.”

“단 호위께도 말입니까.”

“아버님께 남의 기준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뜻한다오. 피를 나눈 혈육이라 하여 마음을 놓으실 호락호락한 분이셨다면 진작에 상서 자리에서 내려오셨을 테지.”

어쩌면 그 지독함과 철두철미함이야말로 상서 자리까지 올라온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혈육마저 저버린 냉혹함에 치를 떤 소년은 진저리난다는 투로 말했다.

“단 호위께서도 특별히 아시는 것이 없다면. 물증을 잡기는 어렵겠군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그자가 말하지 않았소. 납치한 처녀들은 동정호로 보내진다고.

단혜림의 말에 태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동정호로 가야겠군요.”

“그곳에서 증거를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곳이 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시장이라는 거요.”

만약 그곳이 아니라면 증거가 있을 곳은 아버지의 개인 금고뿐이겠지.

말을 끝마친 단혜림은 술잔을 기울여 목을 축였다. 그러고는 앞으로의 일정을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는 둘을 바라보았다.

“다 털어버리고 가벼워진 어깨에 또다시 짐이 실렸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애초에 이번 여행도 유람이나 다닐 생각으로 나온 건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참…….”

한탄하듯 우울한 얼굴로 잔을 비운 소년의 잔을 채우며 단혜림이 물었다.

“그런데도 괜찮으시오? 만약 이번에 한번 발을 들이면, 쉽사리 발을 빼지 못할 텐데.”

“어쩌겠습니까.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면 모를까, 이미 봐 버렸으니.”

이것도 팔자인가 봅니다.

서글픈 말을 중얼거리던 소년은 육포를 입에 문 채 고심하는 태감을 바라보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태감께선 이미 마음을 먹으신 것 같으니, 별수 없지요. 한번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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