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32화 외전 26화
핏줄을 타고 펄떡이던 젊은 혈기도 한풀 꺾이고 검고 숱 많던 머리도 희끗희끗해질 나이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젊은 시절 찾지 않았던 보양식에 눈 돌리게 되기 마련이었다.
소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한 마흔쯤부터 찾아 먹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서른까지만 해도 평생 젊을 줄만 알았는데, 서른 끝물에서 꺾이고 나니 하루가 다르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절 위해서 보양탕을 끓였지요.
그전까진 남을 대접하기 위해서만 보양탕을 끓였는데, 막상 절 위해 탕을 끓이니 그 맛이 참.
부지깽이로 아궁이의 숯을 뒤적이던 소년은 혀끝에 그 맛이 떠올랐는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회한을 닮아 있었다.
“서글픈 맛이었겠구나.”
“예,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각별하더군요.”
태감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아직 걸어갈 길이 구만리인 젊은이에게 공감 가는 주제는 아니었으리라.
소년은 샐쭉한 얼굴로 입술을 비죽였다.
댁도 언젠가는 뼛골이 욱신거린다는 말이 뭔지 알게 될 때가 있을 거요.
소년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궁이 불을 쬐며 하품을 한 태감은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확실히, 종일 인피면구를 쓰고 있으려면 보양식을 먹고 원기를 보충하긴 해야겠구나. 그러면, 오늘 점심은 보양탕인가?”
“원래는 탕을 끓일 생각이었습니다만, 물에 빠진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으시니 다른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생선은.
소년의 대답에 턱 끝을 매만지던 태감은 주방 한편에 놓아둔 들통을 가리켰다.
들통에는 오늘 아침 예봉에서 막 들여온 신선한 쏘가리가 담겨 있었다.
돛처럼 펼쳐진 날카로운 등지느러미. 황갈색의 위엄있는 얼룩무늬로 치장한 그 늠름한 자태는 과연 민물고기의 제왕이라 칭할 만했다.
오늘 새벽에 그물이 아닌 낚시로 잡아 올려서인지 놈은 한번 뒤척일 때마다 들통을 요란하게 뒤흔들 만큼 힘이 좋았다.
맛을 아는 이라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물 좋은 놈이었지만 태감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쏘가리, 보양에 좋은 생선이기는 하지. 맛도 뭐, 좋고.”
“가시도 적어 발라먹기도 편하지요.”
살집 두툼한 것 좀 보십시오. 어찌나 기름이 잘 올랐는지 배에 황금빛 윤기가 자르르하게 돌지 않습니까? 경사에서도 이런 놈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생선 장수처럼 열변을 토하던 소년은 태감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김이 샜다는 듯 혀를 찼다.
“아니, 고기는 잔뼈 많은 것도 잘만 드시면서 생선은 가시 적은 놈도 이리 박대를 하십니까.”
“박대라니, 듣는 쏘가리 섭섭하게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럼 홀대라고 할까요?”
투덜거리며 돌아선 소년은 쏘가리를 도마 위에 올리고는 칼등으로 가볍게 머리를 내려쳐 기절시켰다.
막상 요리가 시작되니 호기심이 동했는지 새치름한 얼굴로 아궁이 가에 앉아 있던 태감도 도마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쏘가리로 어떤 요리를 만들 생각이냐?”
“쏘가리 구이요리. 고화람궤어(烤花揽鳜魚)를 만들 생각입니다.”
쏘가리 구이, 고화람궤어(烤花揽鳜魚)는 그 명성 드높은 공자 가문의 연회인 공부연(孔府宴)에 빠지지 않는 요리로 그 요리법이 비밀스럽기에 식객들도 그 맛은 누구나 아나 그 조리법은 누구도 몰라 공부(孔府)를 방문해야만 맛볼 수 있는 요리로 유명했다.
“예로부터 쏘가리는 입이 커 복스러운 물고기로 불렸다지요? 거기에 살은 또 어찌나 단지 물에 사는 돼지라 하여 수돈(水豚)이란 이름도 있지요.”
“수돈이라. 정말 돼지였으면 더 좋았으련만.”
“쏘가리가 특히 유명한 고장이라면 산동의 남사호를 빼놓을 수 없지요. 남사호의 쏘가리는 크기가 크고 사납기는 다른 쏘가리보다 배는 더 사나운데 맛은 곱절은 더 좋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이니, 그래서 산동 연회상엔 쏘가리 요리가 빠지질 않나 봅니다.”
태감의 서글픈 푸념을 무시한 채 소년은 쏘가리에 대한 잡지식을 떠들며 요리를 서둘렀다.
깨끗하게 비늘을 벗긴 쏘가리는 뜨거운 물에 슬쩍 데쳐 껍질의 검은 반점을 벗겨내고 소금과 산초, 파와 생강을 문질러 십오 분가량을 재워준다.
쏘가리를 재우는 동안 쏘가리 뱃속에 채울 소를 만드는데, 이 속 재료로는 닭고기와 돼지 뱃살, 해삼과 죽순 표고버섯에 말린 관자, 그리고 짭짤한 향장(香肠) 등을 이용했다.
“닭고기는 돼지비계와 함께 곱게 다져 계란 흰자와 술을 넣어 버무리고, 돼지 뱃살은 잘게 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서 써야 기름이 적당히 빠져 담백한 맛이 살지요. 표고와 해삼, 죽순도 잘게 썬 다음 말린 관자와 함께 끓는 물에 데쳐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안휘산 향장은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준비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속에 채울 재료는 모두 같은 크기로 다져야 한다는 점이죠.”
고기소가 풍부하게 들어간 덕분인지 태감은 몹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잠시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태감을 흘겨보던 소년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눈앞의 요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다음 뱃속에 향장을 제외한 다른 재료를 모두 채워 넣고, 쏘가리에 먹기 좋게 칼집을 넣어준 다음 칼집을 벌려 안쪽으로 향장을 넣어준다.
이제 밀가루를 소금과 물을 넣고 반죽하여 얇게 핀 다음 그 위에 쏘가리를 올려 감싸고, 그대로 석쇠에 올려 구워내면 완성이었다.
쏘가리가 다 구워지자 석쇠에서 내린 소년은 조심스럽게 칼을 놀려 반죽을 걷어냈다.
딱딱하게 굳은 반죽이 깨지자 그 틈으로 기름이 한껏 오른 흰살생선 특유의 향기가 용솟음쳤다.
향기에 취한 듯 몽롱하게 풀린 태감의 얼굴을 보며 소년은 퉁명스러운 핀잔을 흘렸다.
“어이구, 생선 먹기 싫다 한 사람 어디 갔습니까?”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쏘가리구이를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토록 크고, 기름지고, 신선한 쏘가리를.”
변죽도 좋다며 코웃음 친 소년은 배시시 웃고 있는 태감에게 젓가락을 내어주고는 자신도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젓가락을 가져가는 곳은 단연 살집 두툼하고 가시가 적어 먹기 좋은 등살.
큼직하게 한 점 집어 올린 소년은 그것을 태감의 앞접시에 덜어주었다.
“쏘가리는 생강과 식초를 곁들여 드시면 더 좋습니다. 드셔보시지요.”
“너도 어서 먹거라. 오늘 제일 고생할 사람은 네가 아니냐.”
다정한 염려의 말로 상관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태감의 젓가락은 욕망의 이끌림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팍하게 살이 오른 쏘가리는 도저히 떨치기 어려울 만큼 유혹적이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껍질과 결대로 찢어지는 즙 많은 살점.
그 진줏빛으로 빛나는 살점 앞에서 태감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년에게 전해야 할 당부의 말을 잠시 미룬 채 태감은 쏘가리를 입에 넣었다.
따끈따끈한 살점은 간이 충분히 배어 있음에도 참으로 순하고 부드러웠다.
강렬한 소금기에 젖은 바닷고기와는 다른, 담백하고 정순한 민물고기의 은은한 감칠맛. 향기롭고, 그윽하면서도 참으로 달콤했다.
혀끝으로 밀면 결대로 풀어지며 살며시 녹아드는 그 다디단 살코기는 오직 네 발 달린 것과 두 발 달린 것만 취급하겠다는 편협한 육식주의자를 개심케 만드는 호소력 짙은 설득이었으며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배려심 깊은 길동무이기도 했다.
“이번엔 여기, 뱃살도 한번 드셔보시지요.”
소년이 권한 뱃살을 한입 베어 문 태감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그 기름진 살점에 혀를 내둘렀다.
처음 입에 넣었던 등살이 순하고 부드러웠다면, 지금 입에 들어온 뱃살은 쫀득하고도 강렬했다.
두툼한 등살과는 달리 뱃살은 얇지만 더 기름이 잘 올라있었고 식감은 야들야들하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지금껏 외면해왔던 낯선 황홀경 속에서 태감은 조금씩 쏘가리의 진가를 탐구했다.
태감이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쏘가리로 뱃속을 든든히 채운 소년은 기운차게 일어섰다. 이젠 일을 할 시간이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분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전하.”
기운찬 발걸음을 잡아채는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는 어느새 화장 솜이며 붓, 인조 수염과 가발 등을 든 동창의 요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가정을 꾸린 이들이라면 잠자리를, 술친구 많은 주당이라면 술자리를 준비할, 지평선 끄트머리에 걸린 황혼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시간.
그 따사로운 빛무리를 받아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끌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장봉의 저택으로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한껏 차려입고 온 모양새.
자리에 모인 모두가 하나같이 예봉에선 힘깨나 쓴다는 인물들이었다.
노인으로 분장한 소년은 연회를 연 주최자답게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검소하지도 않은 복장으로 초청받은 손님들을 맞이했다.
깊게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소년의 눈은 손님들의 차림새와 얼굴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광택이 흐르는 훌륭한 붉은색 비단옷을 차려입은 이, 담비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걸친 이. 개중에는 나름 먹물 먹은 티를 내고 싶은 듯 문사복에 깃털 부채를 손에든 이도 있었다.
하나같이 나름의 개성이 드러나는 복장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복장을 걸친 이들은 하나같이 몰개성하기 그지없었다.
‘닝기미, 어쩜 이렇게 다들 똑같이 생겼냐. 예봉이 사실 집성촌이었나?’
돼지머리 대신 고사상에 올려놓으면 좋을 것 같은 퉁퉁한 얼굴에 세월이 쌓은 인덕이라 웃어넘기기도 민망한 배. 허벅지에 살이 올라 똑바로 걷지도 못하고 어기적대는 꼴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모인 인원이 열 명이 넘는데 개중 한 명은 마른 인물도 있을 법하건만, 도저히 외울 엄두가 나지 않아 전전긍긍하던 소년은 무리의 끝에 선 젊은 사내를 발견하고는 숨죽여 탄성을 내질렀다.
대부분 중년을 넘은 손님 중 고작 약관이나 넘었을까 싶은 사내는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보통사람보다도 조금 마른듯한 체격에 훤칠한 키, 옥빛의 비단옷을 걸친 사내는 설령 돼지들 사이가 아니라 시장터 한가운데에 데려다 놓아도 눈에 확 들어올 만큼 수려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 아닌 군돈일학(群豚一鶴).
하지만 그 한 마리의 학은 돼지들의 사이에서 배척받지도, 백안시당하지도 않고 무리에 융화되어 있었다.
모인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는 사내를 주시하던 소년은 자리에 사람들이 모두 착석하자 헛기침으로 이목을 끌었다.
“크흠, 오늘 이 보잘것없는 늙은이의 초청에 왕림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겸허한 자기소개와 함께 예의상 지껄일 수밖에 없는 지루한 말들이 줄줄 읊어졌다.
‘비록 차린 것은 변변치 않으나’로 시작하여 ‘부디 느긋하게 즐겨주십시오’로 끝나는 말들.
간신히 지루함을 내색하지 않고 있었던 손님들은 노인의 말이 끝날 때쯤 의례적인 박수로 화답했다.
그 박수가 자리를 마련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인지, 아니면 지루한 인사말을 짧게 끝내준 것에 대한 감사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지루함에 젖어 하품을 참고 있던 손님들도 막상 차려진 요리 앞에서는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고풍스러운 깃털 부채를 살랑이며 눈에는 수정 안경을 쓴, 매 순간 안경다리에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선사하던 중년인은 당혹스러운 흥분을 숨기지 못한 채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건 상어지느러미가 아닙니까!”
“허허, 귀하신 손님들을 대접할 땐 역시 어시연(魚翅宴)이지요.”
상어지느러미를 대접하는 연회. 어시연은 가장 극진한 손님 대접으로 손꼽히는 연회였다.
그 융숭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던 손님들은 그제야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는 소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거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자, 어서들 드시지요. 아, 이런. 술이 아직 나오질 않았군요.”
소년이 신호를 보내자 미리 하인으로 분장하고 있었던 동창의 요원들이 술을 내왔다.
옥을 깎아 만든 잔에 천하에 보기 드문 미주가 줄줄이 나오자 상에 둘러앉은 이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럼, 어르신께서 개시할 술을 골라주시겠습니까?”
침 삼키는 소리가 상 위를 맴도는 가운데 소년은 신중한 표정으로 술병을 골랐다.
이건 어떨까. 아니, 이건 너무 달지. 이건 너무 쓰고. 이건 너무 칼칼해.
홍옥 반지를 낀 검지가 느릿하게 술병 위를 옮겨갈 때마다 상 주위에 둘러앉은 이들의 입안 또한 메말라갔다.
혀뿌리가 바싹 말라 모래처럼 푸석해지고 입술이 갈라질 때쯤, 마침내 술이 상위에 올라왔다.
“역시 개시는 향기로운 술이 좋겠지요?”
상에 오른 술은 달고 향기로우며 독하기로도 유명한 화산의 매화주 금병매(金甁梅)였다.
한잔은 어린아이도 마시나 석 잔이면 장사도 고꾸라진다는 독주를 가득 따르며 소년은 명랑한 웃음과 함께 잔을 들어 올렸다.
“자, 건배합시다. 우선은, 예봉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