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226화 (226/314)

환관의 요리사 226화 외전 20화

순금의 취구를 타고 소년의 숨이 호각을 울린다.

옥으로 만들어진 우아한 몸체가 진동하며 청아한 음색이 덥고 습한 주방 안을 맴돌았다.

취구에서 입을 뗀 소년은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진짜 그냥 호각이었군요.”

“호각이지. 그럼 뭘 바랐느냐?”

“폐하께서 보내신 거길래 뭐 대단한 기능이 숨겨져 있을 줄 알았습니다.”

호각 소리를 들은 사람이 갑자기 잠이 든다거나. 아니면 호각에 사실 독침이 숨겨져 있어 호각을 불면 독침이 발사된 다거나.

나이에 비해 대단히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소년을 보며 태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전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독침이라니. 그 작은 호각에 숨길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럼 도대체 뭐에 쓰라고 보내주신 물건입니까?”

“모르느냐? 호각은 원래 신호를 보내기 위해 쓰는 물건이란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봅니까?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려던 소년은 입술을 다물어야만 했다. 창밖에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깃털 가진 것이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 태감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창문을 열어 주렴. 들어올 수 있도록.”

“뭐가 들어올지 대충 예상이 됩니다만……. 주방을 어지럽히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길이 잘 들었으니. 훈련받은 사냥개보다도 얌전하고 충성스럽지.”

미심쩍다는 듯이 태감을 바라본 소년은 하는 수 없이 창문으로 다가가서는 조심스럽게 창을 열었다.

푸드득 날갯짓 소리.

무언가가 날아드는 것을 확인한 소년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한참 후, 날갯짓 소리가 가라앉고 나서야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떠냐. 우아하지?”

소년은 으스대는 태감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쭉 뻗은 그의 팔을 횃대 삼아 한 마리의 매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라고는 했지만 어지간한 독수리만큼이나 거대한 놈이었다. 저런 놈이 어떻게 작은 주방 창을 넘어 날아든 걸까.

그리고 저런 큰 놈을 태감은 어떻게 한쪽 팔로 지탱하고 있는 걸까.

소년은 가만히 태감의 팔을 바라보았다.

어떠한 보호장구도 없이, 얇은 비단옷만을 걸친 태감의 팔을 감싸 쥔 맹금류의 발톱은 소름 끼칠 만큼 날카로워 보였다.

하지만 소년의 염려와는 달리 태감의 팔은 갈기갈기 찢어져 붉은 피를 흩뿌리지도, 맹금류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처지는 일도 없었다.

태감은 매를 팔에 올린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최소한 훈련받은 개 만큼이나 얌전하고 충성스럽다는 말은 증명된 셈이었다.

소년은 그제야 매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잘생긴 놈이었다.

그 부리부터 발톱, 날개 끝자락까지 관찰을 끝낸 소년은 뒤늦게 밀려 있었던 찬사를 내뱉었다.

“좀 경박한 표현이라 최근에는 사용을 지양하고 있었습니다만, 이것 참 끝내주는군요.”

“비룡응(飛龍鷹)이라 한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빨리 나는 매이지.”

태감의 팔에 앉은 매는 비룡이란 이름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날개 끝자락부터 꽁지깃까지, 그 늠름한 부리와 억센 발, 갈고리 같은 발톱까지.

사람을 지긋이 응시하는 그 눈마저. 놈은 온통 새카만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길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검은색은 아니었다.

마치 덕망 있는 문사가 먹으로 쳐낸 것처럼, 사람의 시선을 빼앗은 격조 높은 우아한 검은색이었다.

홀린 듯 매를 바라보는 소년에게 태감은 팔을 내밀었다.

“태감님.”

“네 팔에 한 번 올려 보아라.”

“예?”

“괜찮대도. 자, 어서.”

태감이 부드럽게 팔을 위아래로 흔들자 비룡응이 홰를 치며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엉겁결에 팔을 내민 소년의 팔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가느다란 팔뚝을 단단히 움켜쥐는 힘. 그러나 통증이 느껴질 만큼 우악스럽지는 않았다.

발톱이 연약한 살점을 파고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려 깊은 날짐승을 보며 소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게가, 가볍다기보다는…….”

“느껴지지 않지?”

소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오른팔을 움직여 보았다.

큰 매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는데도 그의 오른팔은 경쾌하리만치 가볍게 움직였다.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소년은 태감을 돌아보았다.

“비룡응의 깃털 사이에는 늘 바람이 맴돈단다. 바람이 날개를 받쳐주기에 팔 위에 올려도 무게가 없는 것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바람이, 그렇기에 이토록…….”

“그러니 비룡이란 이름을 쓸 수 있는 게지. 바람결을 타고 날아 만 리를 날아도 지치지 않고 빠르기는 몰아치는 폭풍우조차 그 꽁지깃을 잡지 못하니. 세상 어느 날짐승이 이에 비할까. 깃털 달린 모든 것들의 왕이 바로 이 비룡응이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부리지 못하고, 오직 금룡의 피를 이어받은 황실의 사람만이 비룡응을 부릴 수 있지.

태감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소년은 가만히 비룡응의 가슴 깃으로 손을 가져갔다.

태감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부드러운 깃털 사이로는 서늘한 바람이 손끝을 간질였다.

이 상서로운 짐승을 도저히 한낮 날짐승이라 부를 수 없었기에 소년은 이 고상한 매에겐 영물이란 호칭이 적절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꺼냈다. 태감 역시 동의했다.

“그럼, 앞으로는 이 비룡응을 전서응(傳書鷹) 삼아 황제 폐하께 서신을 보내면 되겠군요. 오직 황실의 사람만을 따르니 비밀성도 보장될 것이고.”

“전서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지. 거기에 다른 맹금류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똑똑해. 그 어느 하늘에 풀어놔도 목적지를 헤매는 법이 없지.”

아무리 훈련을 잘 시킨 비둘기도 낯선 하늘에 풀어주면 열에 아홉은 방향감각을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룡응은 장소가 아닌 용의 피를 찾아 날기 때문에 절대 목적지를 잃어버리는 법이 없지.

설명을 끝낸 태감은 부드럽게 웃으며 소년의 어깨를 짚었다.

“이젠 네가 비룡응의 주인이다.”

“그럼, 뭐라도 먹여야겠군요. 그래도 주인행세 하려면.”

“원래 짐승은 밥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따르긴 하지만, 글쎄다. 비룡응이 평소에 뭘 먹는지는 폐하께서도 잘 모르시는 것 같더구나.”

“예? 그럼 사육사도 따로 없습니까?”

“오직 용의 피만을 따르는 놈인데 어떻게 사육사를 둘 수 있겠느냐?. 정무 보기도 바쁘신 폐하께서 매까지 돌보실 수는 없지.”

평소에는 그저 반룡궁의 횃대에 앉아 있다가 때가 되면 사냥을 나간다더구나. 그러니 따로 뭘 챙겨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만.

고민하던 태감은 그리 자신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매이니, 살코기를 주면 먹지 않겠느냐?”

“글쎄요……. 일단 줘보기나 해야겠군요.”

태감에게 비룡응을 넘긴 소년은 주방 한 편에서 아직 조리하지 않은 날고기를 가져다가 비룡응의 앞에 쭉 펼쳐놓았다.

깃털을 깨끗하게 뽑은 생닭. 손질해둔 토끼. 그리고 쓰고 남은 돼지 내장. 약간의 소고기.

그것들을 빤히 바라보던 비룡응은 부리로 닭을 가리켰다.

“허어, 이놈 똑똑하네.”

“붉은 살보다는 흰 살을 선호하는 모양이구나.”

“어디, 한번 발라줘 봐야겠습니다.”

소년은 즉석에서 껍질과 가슴살, 다리살을 분리하여 비룡응에게 내밀었다.

뼈를 발라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썬 고깃점 중에서 비룡응은 오직 기름기 없이 연한 분홍빛 나는 가슴살만을 콕콕 쪼아먹었다.

“다리랑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싫은가 보구나.”

“까다롭기도 해라.”

소년은 가슴살 몇 점을 더 썰어 접시에 놓아주었다.

하지만 비룡응은 세 첨을 먹은 다음에는 그 이상 부리를 대지 않았다.

그 이상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서일까. 날개가 둔해지는 것이 싫어서일까.

영특하다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소년은 묘한 표정으로 태감을 바라보았다.

매도 절제의 미덕을 아는데 댁은 어째…….

“왜 그러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태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 소년은 괜히 비룡응의 가슴 깃을 쓰다듬으며 딴청을 부렸다.

소년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에서 대충 의미를 짐작한 태감은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창밖으로 비룡을을 날려 보냈다.

“앞으로 부를 일이 있다면 그 호각을 불어라. 네가 어디에 있든 호각을 불면 비룡응이 날아올 테니.”

“가급 적 자주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그려.”

쓰게 웃으며 창을 닫은 소년은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도마에 꽂아두었던 칼을 집어 들었다.

“뭘 하려 그러느냐?”

“단 호위님이랑 악 대주님 요깃거리나 만들어두려 그럽니다. 한껏 움직이셨으니 허기지실 것 아닙니까.”

“재료는 있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변통해서 써야지요.”

그래도 매가 다리는 먹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다리는 두 개이니, 두 분이 하나씩은 드실 수 있겠습니다.

소년의 말에 태감은 닭에게 세 번째 다리가 없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저녁 식사 전 허기를 면하기 위해 임시변통으로 만든 간식이었지만, 땀을 잔뜩 흘리고는 빈 위장을 부여잡고 돌아온 단혜림과 악진평은 더없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국수로군.”

“땀 흘린 다음에 후루룩 먹는 국수만큼 맛있는 것도 없지요.”

닭 뼈로 맑게 낸 육수에 걸어서 말린 건면의 일종인 괘면(掛麵)을 삶아 넣은 다음 송송 썬 파 한 줌과 바삭하게 튀긴 닭 다리살을 고명으로 올린 국수는 격렬한 대련 이후 굶주린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땀으로 등허리를 흠뻑 적신 이들을 위해 육수는 간을 진하게 했으며 면발은 후루룩 빨아들이면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갈 만큼 부드러웠고, 튀겨낸 다리살은 기름졌다.

“후우, 어째서 땀 흘린 후에 먹는 기름진 음식은 이토록 달콤한지.”

“무인으로서 사양해야 함은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지요.”

둘은 모든 앙금을 털어내었는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무인은 말이 아닌 칼로 대화를 나눠야 한단 말인가.

유혈사태를 걱정하던 소년은 자신의 우려가 헛짓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할지 분개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손님이 왔단 말입니까? 저에게?”

“그래. 정확히는 우리의 손님이지.”

“태감님과 저의?”

의아한 표정으로 일어선 소년은 태감을 따라 장원의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성이는 남루한 차림의 중년인이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이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르신.”

그들을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길삼이었다.

한때 홍문에서 피혁상을 했던, 피혁상의 불문율을 깨고 새끼 호랑이의 가죽을 탐한 우를 범한, 홍문에 호환을 불러온 간접적 원인 제공자.

그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흐릿하게 웃고는 용건을 물었다.

“호환이 해결되었는지 궁금하셔서 오셨습니까?”

“그, 그렇소. 그리고 태수의 일도 궁금하여…….”

“호환은 해결되었습니다.”

소년에게 확답을 받은 길삼은 허물어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간절한 목소리로 소년에게 되물었다.

“그럼 태수는, 태수는 어찌 되오?”

“허허, 말씀드릴 수는 없지요. 나랏일 아닙니까.”

단조로운 어조로 대답한 소년은 시선을 돌려 태감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차를 들이켜던 태감은 소년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한 번, 두 번.

소년은 대답했다.

“정확히 말씀은 못 드립니다만, 다 잘될 겁니다.”

“잘된다. 그렇군. 그렇구려. 답해줘서 고맙소.”

소년은 의뭉스러운 웃음을 띤 채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길삼은 거듭 고개 숙여 감사를 말했다.

물기 어린 중년인의 목소리에 떨림이 잦아들 때쯤, 소년이 질문했다.

“어르신,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든지, 뭐든 물어보시오. 내 아는 거라면 전부 알려주리다.”

“어르신께 호랑이 가죽을 판 사냥꾼들, 어디로 갔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생겼습니까?

소년의 질문 속에 내포된 음산한 의도를 파악한 길삼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는 도대체 왜 그것을 묻는지, 그걸 알아 무엇을 하려는지 물을 수 없었다.

길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치는 않소만, 동정호 쪽으로 간다 들었소. 이맘때쯤엔 그쪽 인근에서 담비나 수달이 많이 잡히거든. 특히 동정호 인근에서 잡은 수달 가죽은 최상품이니, 아마 그쪽으로 갔을 거요.”

“그렇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은 그 이상 궁금한 것은 없다는 듯 정중한 축객령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길삼에게는 아직 용무가 남아 있었다. 절박한 표정으로 다급히 일어선 길삼은 막상 말하려 하니 잘 나오지 않는지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결국에는 소년이 그의 말문을 터주어야 했다.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더 궁금한 것은 없으시오?”

“더 궁금한 거라 하시면?”

“새끼 호랑이 가죽의, 행방이라던가.”

순간, 사교적인 웃음을 그리고 있던 소년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소년은 멍하니 중년인의 그늘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입에선 힘없는 질문이 내뱉어졌다.

“알고 계십니까?”

“혹시, 당신들이 궁금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아서. 수소문해 알아보았소.”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그 가죽을 산 부호가 이번에 파산했다더군. 그동안 모아온 수집품을 처분한다고 하던데, 그냥은 처분 못 할 물건이 많은지 암시장에 넘긴다고 하더이다.”

암시장.

눈을 가늘게 뜬 소년은 길삼이 한 말을 곱씹었다. 암시장이라면.

“동정호의 암시장이겠군요.”

“그렇다고 들었소.”

그, 도움이 되었소?

소년은 죄책감에 얼룩진 중년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초췌한 중년인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소년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내의 손을 마주 잡았다.

평생 가죽을 만져온 그의 손끝은 가죽을 무두질하는 약이 스며 갈라져 있었다.

“예, 어르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거 사례를 해야겠군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