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10화 외전 4화
“내려쳐!”
비명과도 같은 노인의 지시에 소년은 주저 없이 망치를 내려쳤다.
쇠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뒤이어 백윤의 작은 망치가 철판을 내려쳤다.
그때마다 집게를 쥔 표자승의 두툼한 팔은 경련하듯 떨렸다. 거의 반나절 내내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운철을 녹여 빚어낸 합금은 지독하리만치 질기고 단단했다.
망치를 내려칠 때마다 사내들의 등허리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바닥을 적시는 일은 없었다.
가열로의 불꽃은 달빛의 창백함을 조롱하듯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열기는 가혹했다.
밤공기를 끓어오르게 하는 그 열기 탓에 철방 안에는 아지랑이가 일렁일 정도였다.
“더 세게!”
노인의 요구는 집요하게 이어졌다.
불빛이 들어찬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망치를 내려치는 노인의 모습은 극의 절정을 지휘하는 지휘자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휘자의 열정에 부흥하려는 연주자들에게도 결국 한계는 찾아왔다.
가장 먼저 지친 기색을 내비친 것은 표자승이었다.
한평생 불과 어울려 살며 폐부에 남은 한 줌의 공기마저 불사르는 열기에 익숙해진 둘과는 달리 표자승은 그 가혹함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고작 하루, 아니, 반나절 만에 불에 익숙해지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대장장이와 쌍벽을 이루는 요리사의 노련함으로 표자승의 얼굴을 면밀하게 관찰하고는 신호를 보냈다.
“영감.”
“그래.”
메마른 입술은 곧바로 대답을 토해냈지만 백윤의 눈은 달아오른 쇳덩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쇳덩이는 어느새 말간 색으로 식어 있었다.
더는 망치질이 소용이 없으리란 것을 확신한 백윤은 그것을 가열로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짧은 휴식이 주어지자 소년은 철방 한구석에서 물 주전자와 소금 단지를 꺼내왔다.
“그냥 널브러져 있지 말고 소금 좀 먹어라. 그러다 쓰러진다.”
“전 괜찮습니다. 스승님 먼저 드시지요.”
불길에 얼굴이 벌겋게 익었는데도 스승을 먼저 챙기는 갸륵한 제자를 보며 감격한 소년은 다정한 말로 실랑이를 벌이는 대신 그의 입에 강제로 주전자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살뜰히 제자를 챙긴 후, 소년은 반절쯤 가벼워진 주전자를 들고 백윤에게 다가갔다.
“영감도 목 좀 축이쇼.”
“됐다, 너나 마셔라.”
“그 나이 먹고 허세 부리다간 진짜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오는 데는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다, 이놈아.”
한마디만 더 나불대면 먼 길 떠나게 해주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은 백윤은 옆자리에 걸터앉은 소년을 본체만체하며 가열로에 시선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의 땀에 젖은 목덜미와 희미하게 경련하는 어깨는 누적된 피로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간, 노인네 고집하고는. 소년은 주전자를 기울여 입술을 살짝 축인 후, 백윤의 손이 닿는 위치에 주전자를 내려놓고는 그를 슬며시 곁눈질했다.
애써 시선을 가열로에 두었지만, 백윤의 시선은 슬금슬금 아래를 향했다.
한차례 소년을 흘겨본 후, 백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거 일도 아니었을 텐데. 나도 늙긴 늙은 모양이다.”
“다 그렇지.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지.”
“그래. 그래서 더 안타까워. 기술은 손에 익었는데 몸이 예전 같지를 않으니.”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는 이의 서글픈 한탄을 들으며 소년은 자신의 손을 굽어보았다.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여 있지만,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손을.
과연, 이 손은 얼마나 더 세월을 보내야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소년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람은 제 나이 먹은 대로 살아야 하는 거야.”
세상에 늙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소년은 과연 젊어지게 해준다고 하였을 때, 그것을, 그 기적을 순순히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 역시 불가능한 기적의 원치 않는 수혜자였기에, 빛나는 청춘을 대가로 풋풋한 젊은 날의 실수와 고뇌를 되풀이하는 것에 지친 소년은 쓰디쓴 한숨을 내쉬었다.
“웬 한숨이냐.”
“그냥…… 영감탱이 늙은 걸 보니 영 마음이 아프네.”
“왜, 너한테 상주 노릇이라도 시킬까 봐 그러냐?”
노인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나누며 소년은 다시금 그를 올려다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나잇대로 늙은,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진 노인의 모습에서 소년은 야속함과도 같은 서운함을 느꼈다.
자신보다 먼저 훌쩍 떠나갈 친구를 바라보며 소년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내뱉지는 않았다.
결국,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싱거운 화제였다.
“영감, 끝나면 몸보신 좀 해야지.”
“몸보신? 그래, 해야지. 뜨끈뜨끈한 국물 한 사발 들이켰으면 소원이 없겠다.”
“탕은 뭔 탕이야. 이빨 빠진 늙은이도 아니고.”
“염병할 놈. 네 이빨은 언제까지 성할지 두고 보자.”
씨근거리던 백윤은 소년의 얼굴을 빤히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네놈은 뭐가 제일 먹고 싶은데?”
“글쎄? 먹고 싶은 거야 많지. 예를 들자면, 야들야들하게 삶은 양고기 수육이라던가.”
“수육?”
“그래, 수육. 굽거나 튀긴 건 지친 몸에 너무 기름지니까. 근데 수육은 기름기는 쪽 빠졌지만 고기는 부들부들하고 입에 착 달라붙잖아?”
소년의 설명은 흠잡을 데 없이 논리적이었기에 백윤은 그의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하였다.
수육, 수육이라.
백윤의 검버섯 핀 목울대가 꿈틀거리자 소년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설명을 이었다.
“양고기 수육이야 어떤 부위를 삶아도 좋지만 그중 제일은 역시 양 갈비지. 뼈대가 얇은 갈비를 먹기 좋게 삶아서 토막 치면 손에 쥐고 먹기도 좋아. 소금 살짝 찍어 뜯으면 연하고 보드라운 살점에서 고소한 육즙이 크으! 여기에 달착지근한 탁주 한 사발 걸치면!”
“탁주? 청주가 아니라 탁주를 마신다고?”
“에헤이. 영감, 술 마실 줄 모르네. 이렇게 지쳤을 때는 탁주가 제격이지.”
술 마실 줄을 몰라?
소년의 도발적인 언사에 발끈했던 백윤은 점차 소년의 말에 빠져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좀 해보쇼. 거른 술은 독하니까 피곤할 때 먹으면 장이 쓰리다고. 하지만 탁주는 부드럽고 순해서 지친 위장에도 잘 받아. 거기에 마시면 든든하니 밥보다 속도 편해.”
“그건 좀 그럴듯한데.”
“안 그래도 내가 저번에 인삼이랑 꿀을 넣고 탁주를 담갔는데 맛이 기가 막혀. 일 끝나면 한 동이 풀지.”
“인삼? 그거 약재 아니냐?”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흔드는 백윤을 보며 소년은 비웃음을 흘렸다.
“쓴 술은 괜찮고 쓴 인삼은 싫은가? 나이 헛먹었구만.”
“쓴 술은 취하면 달아지지만, 인삼은 먹어도 안 취하잖냐.”
“그건 마셔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지. 한번 드셔보쇼.”
인삼의 그 쌉싸름한 향이 살짝 감돌면서 마시면 내쉬는 숨에 살짝 꿀 향이 섞이는데,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알싸함을 떠올린 소년은 참지 못하고 물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들이켰다.
물은 미지근했고, 그 미지근한 온도감은 소년을 짜증스럽게 했다.
“술 한 모금이 이렇게 그리웠던 적도 없는 것 같으이.”
“일만 끝내면 술독에 빠져 뒈져도 뭐라 할 사람 없다.”
“영감, 지금 빠져 뒈지라고 고사 지내는 거요?”
과연 술독에 빠져 죽는 건 호상이라 칠 수 있을까?
실없는 생각에 잠겨 있던 소년은 망치 자루를 움켜쥐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대자로 늘어져 있던 표자승 또한 무거운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표자승에게 손을 뻗어 일으켜 세우며 소년은 낄낄거렸다.
“자, 술독에 빠져 뒈지려면 우선 일부터 끝내야지. 그래야 기쁜 마음으로 익사하지 않겠어.”
* * *
노동자의 식사가 갖추어야 할 미덕 세 가지를 뽑는다면 첫 번째는 부족함 없는 양이요, 두 번째는 지친 혀를 위로할 맛이며, 세 번째는 식사가 나오는 속도였다.
그리고 소년은 조리기구도 변변치 않은 궁색한 철방의 주방에서도 마법과 같은 솜씨로 세 가지 미덕을 전부 갖춘 요리를 만들어내어 백윤과 표자승을 감동케 했다.
늦은 밤, 남자들끼리 일할 때 불편하다는 명목으로 소년이 단혜림을 돌려보냈기에 식탁에 둘러앉을 사람은 셋뿐이었다.
위장에 당장에라도 뭔가를 밀어 넣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의 면면을 돌아보며 소년은 서둘러 음식을 내왔다.
달이 중천에서 기울어질 때까지 이어진 단조 작업으로 굶주린 그들에게 소년이 내어준 야식은 홍콩식 떡갈비라 할 수 있는 육병(肉餠)을 고슬고슬한 쌀밥 위에 올린 덮밥이었다.
찜통에 쪄 보드랍고 살짝 분홍빛이 도는 고기 위로 파릇파릇한 파를 흩뿌린, 그 매혹적인 야식을 받아든 표자승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 늦은 시간에 먹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나?”
“너무 황홀해서 그렇습니다. 조금 전까진 혀끝이 모래를 씹은 것처럼 푸석했는데, 요리를 보자마자 군침이 절로 도는군요.”
“신소리 말고 먹기나 해라. 먹어야 또 일하지.”
덮밥의 구성은 단출했다.
살코기와 기름의 비율이 반쯤 되는 고기를 곱게 다진 다음 올방개 가루와 생강즙, 밀가루와 참기름을 넣고 치대어 십여 분간 찜통에서 찐 육병과 쌀밥.
손바닥만 한 크기의 넓적한 육병을 젓가락으로 먹기 좋게 찢은 표자승은 그 위로 살짝 간장을 둘렀다.
달착지근한 돼지기름이 짭조름한 간장과 뒤섞여 밥에 배어든다. 짠맛이 너무 과하지 않도록 간장의 양은 신중하게. 한 바퀴만 둘러준다.
식전 준비가 끝난 후, 표자승은 엄숙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소년을 만족시킬 만큼 게걸스럽게 덮밥을 먹어치웠다.
게눈 감추듯이 라는 관용구가 지극히 사실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신속한 식사 후, 표자승은 지나친 만복감의 폐해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식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이다.
“저 친구 자는데.”
“자게 두쇼. 피곤하겠지. 철방 일이 익숙하지도 않은데.”
“그래도 잘 버텼어. 역시 사막을 오가는 무역상 출신이어서 그런지 더위를 참는 법을 알아.”
결국,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식탁 위로 고꾸라진 표자승의 등허리에는 허연 소금기가 엉겨 있었다.
그것은 백윤과 소년의 옷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식탁에 둘러앉은 왕과 대장장이는 각자 잔을 들었다.
쨍그랑하는 가벼운 울림.
작업의 진전을 자축하는 건배였으나 야속하게도 그들의 잔에 담긴 것은 달콤한 술이 아닌 멀건 찻물이었다. 그것도 미지근한.
목구멍이 깔깔하니 죽겠군.
투덜거리며 찻물을 들이킨 소년은 잔을 내리고는 거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에 백윤은 입술을 비죽이고는 키득대었다.
“한숨 한번 요란하다. 술 마시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라도 내자는 거지, 기분이라도.”
부루퉁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던 소년은 세상모르고 잠든 표자승을 향해 시선을 떨구었다.
수염이 부숭부숭하고 안와가 툭 튀어나와 험상궂게 생긴, 이런 산적 같은 놈이 대 상단의 상단주라니.
잠든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소년은 그의 눈가에 거뭇한 그늘을 보고는 자신도 그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던 양심이라는 기관이 쿡쿡 찔리는 것을 느꼈다.
바쁘신 상단주 나으리를 이리 부려먹었으니, 일이 끝나면 두둑하게 성의 표시를 해줘야 하리라.
땀방울이 새벽녘 이슬처럼 맺힌 표자승의 머리칼에서 눈을 돌린 소년은 갈라진 입술 사이로 뿌연 연기를 뻐끔거리는 노인을 보았다.
“영감, 영감도 보수가 있어야지.”
“보수? 뭘 새삼스럽게. 누런 놈으로 다오.”
“세상만사 다 돈으로 치르려 하면 정 없어 영감.”
“개소리가 그럴듯한 걸 보니 너도 정치꾼은 정치꾼이구나.”
이죽거리는 백윤을 보며 샐쭉한 표정을 지은 소년은 이내 입술을 다물고는 지긋이 백윤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는 그 엄중한 침묵의 시선에 백윤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치인의 노련한 기술로 순박한 노인을 긴장시켜 본 소년은 이내 그 꼴이 퍽 우스움을 깨닫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긴장 풀어, 영감. 누가 보면 청혼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너 그러다 진짜 제명에 못 죽는다.”
“아무리 그래도 영감보다는 오래 살겠지. 아무튼, 영감 혹시 동정호에 가본 적 있수?”
동정호?
제국인 이라면 모를 수 없는, 호북과 호남의 경계선에 위치한 제국 최대의 호수의 이름을 들은 백윤은 목젖 바로 밑까지 치밀어오른 노기를 잠시 삭히며 되물었다.
“오래전에 한 번 가본 적은 있다만, 머문 기간이 짧아서……. 뭣 때문에 그러냐?”
“별일은 아니고, 그냥 일 끝나면 동정호로 여행이나 갈까 해서.”
“팔자 한번 좋구나.”
하긴, 평생 치 고생은 후궁에서 다하고 왔을 테니.
잠시 환관 노릇을 하던 시절의 소년을 떠올리며 그때의 비참한 몰골을 상기한 백윤은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역시 관광하면 동정호를 빼놓을 수 없지.
여행길의 안전을 당부하는 덕담을 꺼내놓으려던 백윤은 이어진 소년의 말에 김빠진 소리를 내뱉어야 했다.
“그래서 그런데 영감. 영감도 한자리 끼지 않겠어?”
“뭐?”
“마차에 자리가 남더라고. 여덟 마리 준마가 끄는 팔두마차라서 자리가 넉넉하거든.”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양 말하는 소년의 표정에 백윤은 심술궂게 볼을 씰룩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마차 자리 하나 내주고 칼값을 퉁 치겠다?”
“어차피 칼 만든 재료는 내가 되찾아온 거고, 드는 건 공임 아뇨.”
“이런 개도 안 물어갈 염치없는 놈을 봤나. 날강도 같은 놈.”
“영감도 유유자적 유람 좀 다니면 좋지. 그 나이에 뭔 부귀영화를 다 누리겠다고 철방에 들러붙어 있어.”
그래서, 생각 없나?
소년의 거듭된 제안에 노인은 잠시 혹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됐다. 다리 힘 빠질 나이에 뭔 여행. 이 나이 되면 살던 자리 지키고 눌러앉아 있는 게 제일이야.”
“어차피 마차 타고 돌아다닐 건데, 뭔 다리 핑계는.”
“그리고, 표자승 저 친구 일도 도와줘야 하고.”
자기 이름이 언급되는 줄도 모르고 코를 고는 표자승을 향해 시선을 돌린 소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고민하던 백윤은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묘한 눈으로 표자승을 흘겨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 녀석, 이번에 철방을 차렸거든.”
“철방?”
“그래. 돈을 처발라서 시설은 그럴듯한데, 정작 사람은 맹탕이야.”
“아아, 그래서 영감이 손 좀 봐주기로 했나?”
“저놈 덕분에 말년에 회초리 휘두르고 다니게 생겼다.”
골치 좀 썩으시겠어. 소년은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백윤을 격분시킨 다음 동정호에서 기념품을 사다주겠다는 말로 철저히 격파했다.
반쯤 돌아버린 경사 토박이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욕설을 폭풍처럼 쏟아낸 백윤은 진 빠진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늘어졌다.
“네놈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 죽겠다.”
“저런. 그럼 가기 전에 거하게 먹고 가야겠구만.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잖수. 양껏 드시고 편히 잠드쇼.”
완벽한 마무리로 백윤의 복장을 뒤집어엎은 소년은 기세 좋게 기지개를 켜며 약속했다.
“암튼, 이번 일만 끝나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서 먹어야지. 미련 안 남게.”
“고맙다 쌍놈아.”
“뭘 고마워. 이런 걸 가지고.”
소년은 끝까지 입꼬리를 씰룩였고 백윤은 열광적인 반응으로 소년을 들뜨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걸쭉한 욕설에는 어느샌가 표자승의 코 고는 소리가 섞여들어 기묘한 불협화음을 자아냈다.
욕설과 고함, 드르렁거리는 소리에 때때로 뿌드득 이가는 소리. 그 엉망진창인 합주는 아침 해가 차오를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