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09화 외전 3화
“그래서, 귀하신 전하께서 이 누추한 곳엔 어인 일이냐?”
“설마 영감 얼굴 보고 싶어서 왔을까.”
“후레자식 같으니, 빈말로라도 말 좀 곱게 해봐라.”
“영감 꼬실 것도 아닌데 곱게 해서 뭐해.”
세월에 메마르고 갈라진 노인의 입술에 흐릿한 웃음기가 번진다. 앉은 자리가 바뀌었는데도 변함없는 친구를 보며 느낀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소년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그 점을 들먹이지는 않았다. 사근사근함과 부드러움을 함양하지 못한 채 늙어버린 서글픈 노인네들은 그렇게 서투른 안부를 물었다.
“커흠, 그래서 얼굴이나 보자고 온 건 아닐 테고, 일이냐?”
“일이지.”
“손님은 저 아가씬가?”
백윤은 투박한 노인이 아닌 대장장이의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불꽃을 보며 쇠를 치는 이의 눈. 그 시선이 향한 곳은 소년의 뒤쪽이었다.
노회한 대장장이의 눈동자에 불빛이 번뜩인다. 검수가 명검을 알아보듯이 대장장이는 검수를 알아본다.
마치 극지의 하늘을 수놓는 극광과도 같이 강렬한 시선에 단혜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무게중심이 잘 잡힌 걸음걸이. 담대하게 벌어진 어깨와 대나무처럼 꼿꼿한 허리. 칼자루를 쥐는 모든 부분에 두껍게 박여 있는 손바닥의 굳은살.
대장장이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탄사가 흘러나왔다.
“역시 세상은 넓구나. 이런 자가 아직 재야에 묻혀 있었다니.”
그녀는 참으로 검과도 같은 여인이었다. 그 고아한 자태에 살점을 탐하는 폭력성과 야수성을 숨긴. 강철의 본질과도 같은. 그녀의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날카로움은 늙은 대장장이를 설레게 했다.
마른 침을 삼킨 백윤의 시선이 자신의 발끝으로 향했다. 먼저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며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라 그와 단혜림을 번갈아 보았다.
“백윤이라고 하는 보잘것없는 대장장이유.”
“단혜림이라 합니다. 노공(老公).”
“손님을 너무 오래 세워뒀군. 안으로 들어오시구려.”
점잖게 그들을 철방 안쪽으로 안내한 백윤은 무려 차와 과자를 내와 소년을 경악시켰다.
저 옹색한 노인에게도 손님을 접대할 다과가 있었다는 사실에 소년이 놀라움과 분노를 금치 못하는 동안 단혜림과 백윤은 소년을 완전히 배제한 채 대장장이와 검수라는, 온전히 그들만의 세계에서만 호응받을 수 있는 대화에 빠져들었다.
“노공, 괜찮으시다면 제 검을 좀 봐주시겠습니까?”
“허어, 날에 새겨진 음각을 보아하니 송검사(松劍寺)의 혜인검장께서 벼리신 물건이군. 검날에 새긴 이 독특한 필체는 그분의 솜씨지.”
“장인의 손을 탄 지 오래된 물건입니다.”
“검신이 뒤틀린 것도 아니고, 날이 상한 것도 아니니 굳이 장인의 손을 탈 필요가 없는 물건이오. 관리를 잘하셨구려.”
날붙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그 방향성이 다르므로 요리사인 소년은 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소외감을 느낀다고 내색하기에도 민망할 따름이었기에 소년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둘의 담소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길어지다 못해 담소에서 토론으로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에 소년은 징징거려야 할지 엄포를 놓아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상다리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햇빛이 마침내 그들의 정수리를 비출 때까지 그들의 토론은 이어졌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었는데 점심까지 거르게 되었다며 속으로 분통을 터뜨리던 소년은 창밖으로 야속하리만치 찬란한 봄날의 태양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입술을 비집어 열었다.
“거, 검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각자의 견해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일부터 합시다. 끝나면 밥도 먹고.”
“이런, 전하께서 외로우셨겠군.”
“정 그러면 너도 끼지 그러냐.”
“이보쇼, 같은 칼잡이기는 하지만 단 호위랑 난 취급하는 분야가 너무 다르잖수.”
상대를 요리한다는 관용구를 쓸 수 있다는 것 외에 요리사와 검수의 공통점이 또 뭐가 있지?
그리 재치 있는 농담은 아니었기에 소년이 이끌어낸 반응은 미묘한 실소. 그것도 한 명분뿐이었다. 모시는 주인을 위한 단혜림의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소년은 훨씬 더 모멸감을 느꼈으리라.
“아무튼, 칼 한 자루 주문하고 싶은데. 시간 비쇼?”
“비고 말고. 없던 시간도 만들어야지.”
“거참, 나 때는 더럽게 까탈을 부리더니.”
“간도 사람 봐가면서 봐야지.”
소년은 순간 눈앞의 늙은 대장장이를 ‘간’ 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올랐지만, 이 이상 말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잠시 그 충동을 유보했다.
길었던 사설과는 달리 주문은 거의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백윤은 뛰어난 대장장이였고 소년은 물 쓰듯 써도 남을 돈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합의에는 막힘이 없었다.
“철은?”
“최고급.”
“검집은?”
“최고급.”
“흠, 장식은 어떻게?”
“알아서. 제일 비싼 거로.”
무조건 장인의 재량에 일임하는 관용적인 고객의 태도에 백윤은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감명을 받은 것은 검의 실소유주가 될 단혜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탄이 함축되어있는 둘의 시선에 소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스스로 철이 덜 들었다 자부하는 소년이었지만 그렇다고 돈 자랑에 으스댈 정도로 후안무치하게 늙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뭐 필요한 거라도 있수?”
“힘쓸 놈. 두 놈 정도.”
“망치 잡을 놈이랑 집게 잡을 놈?”
비록 노쇠하였지만 늙은 대장장이는 대부분 작업을 홀로 해내었다. 앙상하게 마른 노인의 팔이 건장한 장정 두셋의 일을 해낸다는 것을 아는 소년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뭘 칠 생각인데 그러쇼? 저번처럼 운철이라도 치게?”
“그래. 비싼 걸 주문했으니 값은 해야지.”
“어디서 구했수? 운철이 쉬이 들어오는 물건도 아니고.”
“어디서 구했긴. 네가 가져온 것 아니냐.”
마치 선문답 같은 모호한 말에 소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백윤에게 가져온 것.
운철.
과거의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단편적인 기억들이 짜 맞춰지며 그리 유쾌하지 않은 추억을 구성하는 순간 소년은 눈을 부릅뜨며 백윤을 바라보았다.
“내가 댁한테 준 건 하나밖에 없는데.”
“그래. 그걸 쓸 생각이다.”
“영감, 치매요?”
“쌍놈 자식, 똥칠하게 되면 가장 먼저 네 면상에 펴 발라 주마.”
말하는 게 멀쩡한 걸 보면 치매는 아닌데. 소년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백윤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작품을 녹이겠다고 주장하는 대장장이가 정상일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백윤에게선 특유의 유아 퇴행 증상이나 병적인 행동이 엿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소년은 좋은 쪽으로 단정 짓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잊은 거요?”
“그럴 리가. 어찌 잊겠느냐, 아직도 그 망할 놈 얼굴이 꿈에 나오는데.”
“그러면?”
“하지만, 그냥 먼지 쌓이게 두기에는 칼이 아깝지.”
운철로 만든 칼이다.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먼지 쌓이게 둘 수는 없지 않으냐.
노인의 말에 소년은 식방각주에게서 빼앗아온 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좋은 칼이었다. 주인을 잘못 만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칼의 죄는 아니지 않은가. 소년의 수긍에 백윤은 만족했다.
“그래. 비록 종사하는 업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칼은 쓰이는 쪽을 선택할 거다.”
“확신할 수 있수? 내 생각에는 사람 피는 익숙해지기 어려울 텐데?”
“선택은 쇠를 치는 놈의 몫이지.”
“그럼 내가 한몫 거들지.”
대답은 갈라진 입술이 아닌 다른 곳에서 튀어나왔다. 낮고 무거웠지만, 여인 특유의 낭랑함이 깃든 목소리는 당혹감에 젖어 있었다.
“설마, 전하께서 직접 망치를 드시겠단 말인가?”
“못 미더워 보이리란 건 알고 있습니다만, 단 호위. 이래 보여도 사지 멀쩡합니다.”
“신체의 장애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닐세.”
“그 외에 망치를 잡는데 다른 조건이 있습니까? 영감, 혹시 망치 잡는데 특별한 자격이 필요해?”
불과 철이 요구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힘과 체력.
학력도, 신분도, 재력도 불 앞에서는 평등했다. 고집스러운 왕의 모습은 그의 호위무사로 하여금 황당한 갈등을 느끼게 했다.
호위무사의 검을 직접 벼려주는 왕이라니. 이에 무한한 영광을 느껴야 할지, 아니면 그 체면을 고려하여 말려야 할지를 고민한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중립적이면서도 미온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집게를 잡을 사람이 한 명 비겠군.”
“오, 설마 단 호위께서?”
“전하께서 모범을 보이시는데, 어찌 호위무사가 태만할까.”
소년은 허락하는 대신 고갯짓으로 백윤을 가리켰다. 그리고 단혜림은 그 동작을 이해했다.
그의 주인은 소년이었지만, 대장간의 주인은 백윤이었다. 잠시 단혜림을 응시하던 백윤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답은 거절이었다.
“아가씨는 안 되겠수.”
“노공.”
세상에 뱃사람만큼이나 미신적인 이들을 하나 더 꼽아보라 한다면 열에 아홉은 대장장이를 꼽을 것이다. 땀과 불꽃과 고통으로 꽉 들어찬 세계를 살다 보면 으레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그런 만큼 단혜림은 여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철방의 주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윤이 꺼낸 말은 단혜림이 각오한 그 어떤 말보다도 미신적이고도 기이한 것이었다.
“아가씨는 검을 쥐어야 하지 않수.”
“그것이 어째서 집게를 쥐지 못할 이유가 된단 말입니까?”
“아무리 가증스럽고 흉악한 놈이라도 부모의 눈에는 이뻐 보이는 법이라오.”
논리성이 결여된 대답에 말문이 막힌 단혜림은 소년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소년은 그 대답을 완전히 이해한 듯했고, 심지어 퍽 인상적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말을 뗀 이래 단 한 번도 자신의 이해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본 적 없었던 그녀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불가해함에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도전적인 불꽃이 타오르자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이해하기 어려우시겠군.”
백윤은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끌끌거리던 웃음소리는 점차 작아지더니 결국 쿨럭이는 기침으로 변했다.
폐에 쌓인 잿가루를 토해내듯이 한참 동안 기침을 한 백윤은 목이 걸근거린다는 듯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소년은 그가 맨정신으로 하기엔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당히 긴 뜸 들이기가 끝난 후, 백윤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이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대장장이는 칼을 만들 때 제 아이를 낳는다는 심정으로 만든다오. 제가 낳은 아이가 살점을 헤집고 파헤치는 교활하고 잔혹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탄생시키는 순간에는 모든 정성을 다 쏟아 넣지. 그러니 검은 내 자식이란 말이오. 천하의 간악하고 가증스러운 놈일지라도.”
“그렇다면.”
“하지만 검이란 비정한 물건 아니겠수.”
혼돈과 의심으로 얼룩져있던 단혜림의 얼굴에 비로소 뚜렷한 확신이 떠올랐다. 늙은 대장장이는 기쁜 마음으로 설명을 이었다.
“그러니 검을 쥐는 사람은 안되우. 검에 비정해질 수 없으니까. 검이란 언젠가 부러지고 꺾여야 하는 물건인데, 검에 마음을 주면 그 순간에 결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단 말이오.”
“자신을 위해 검을 희생시키는 대신, 검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게 된다. 그 말씀이시군요.”
단혜림은 뒤로 물러섰다. 그녀 역시 검수였기 때문이었다. 대장장이의 조언을 무시하는 검수는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침묵을 존중의 의미로 받아들인 백윤은 새롭게 대두된 문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집게잡이는 누구로 한다.”
“사실 집게잡이는 크게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지.”
“힘 좋고, 말귀만 알아먹으면 족하지.”
정확함과 요령을 요구하는 망치잡이와는 달리 집게잡이는 사람 말을 이해할 정도의 청해력(聽解力)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뒤집으라면 뒤집고, 가열로에 넣으랄 때 넣고, 빼라면 뺄 정도의.
“이런 건 좀 근성 있는 놈이 해야 하는데.”
“근성 있는 놈이라. 요즘 귀하더군.”
“옛날에도 귀했어.”
그렇게 싹수 좋은 놈이 있었으면 진작에 데려가 키웠지.
툴툴거리는 노인에게서 눈을 돌린 소년은 낡고 갈라진 벽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소년은 고민거리가 해소되었다는 듯 시원하게 말했다.
“마침 집게 잡을 놈도 오네.”
“그런 쓸 만한 놈이?”
“수염이 좀 덥수룩하긴 해도 아직 쓸 만한 친구야.”
백윤은 바깥을 향해 귀 기울이고는 싱겁다는 듯 소년을 보았다. 건장한 체격을 다짐하는 묵직한 발걸음. 하지만 잰걸음으로 뛰어오는 듯 촉박했다.
노인의 입술이 헛웃음을 터뜨리기 전, 삐그덕거리는 경첩이 부서질 듯 덜컥이며 문이 열렸다.
“어르신! 잠시 여쭙고 싶은 것이…….”
사내의 굵직한 목소리는 끝맺어지지 못하고 허공에서 아스라이 흩어졌다.
격렬한 당혹스러움과 순박한 기쁨이 공존하는 표자승의 얼굴을 보며 소년과 백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근성은 있어 보이네.”
“힘도 좋지.”
“스승……. 아니, 전하. 전하께서 어찌…….”
“왜, 내가 못 올 데 왔나 보다?”
선량한 웃음을 머금은 소년의 입꼬리가 점차 사악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믐달처럼 가늘고 길게 찢어지는 그 소름 끼치는 미소는 사례 태감의 심복 오상호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새빨간 혀로 얇은 입술 핥은 소년은 먹잇감의 크기를 재어보는 뱀과도 같이 표자승을 맴돌았다.
“많이 컸구나. 표자승. 사람 섭섭하게 할 줄도 알고. 그래, 이제 스승 대접해 주기 귀찮을 때도 됐지. 응?”
“아닙니다. 제가 어찌.”
“전하냐. 스승님이냐.”
“그야 스승님이지요.”
그래? 소년의 손짓에 표자승은 거의 엎드리다시피 넙죽 고개를 낮추었다. 그 넓은 어깨 위로 팔을 걸치며 소년은 속삭이듯 제안했다.
“표자승, 나랑 일 하나 해야겠다.”
거부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으나 그것은 분명히 제안이었다. 소년은 그렇게 주장했고 표자승 역시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거대 상단의 상단주가 집게를 잡고 왕이 쳤으며 철왕의 마지막 후예가 벼려낸 역사적인 검이 만들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