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04화
“사석에서 마주 보는 것은 처음인가.”
“처음이지요. 설마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마주 보고 담소를 나눌 사이는 아니지 않았나.”
안양비와 마주 앉은 사례 태감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권력을 두고 다투었던 정적이었으며, 끝내 피를 보아야만 했던 사이. 결코, 웃으며 친목을 다질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태감을 지긋이 보던 안양비가 빙긋 웃었다.
“다툴 때는 자네가 참 무서워 보였네. 쥐고 있는 칼도 무서웠지만, 그보다는 빈틈없는 면모가 더 무서웠지. 털어서 먼지 한 톨 없는 사람이 세상 어디 있겠느냐마는, 자네는 참 지독할 만큼 청렴했네. 그래서 함부로 물어뜯을 수가 없었지.”
“청렴한 것이 아니라, 청렴해 보이도록 잘 숨긴 것이었지요. 청렴한 정치가라니. 이보다 모순적인 말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치부를 들키지 않게 숨기고, 지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치가의 청렴 아니겠는가.”
참 난감한 상대였어. 자네의 흠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한 탓에, 결국에는 공격의 적기를 놓치고 말았지.
고민과 갈등으로 지새워야 했던 밤을 떠올린 안양비는 일그러진 시선으로 태감을 바라보았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결국 바둑에서나 의미 있는 말이었군.”
“바둑은 적과 나. 둘만의 세계지요.”
“정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 적과 나. 승리와 패배. 이 간단한 결과를 빚어내는데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 그렇기에 그토록 신중했던 거로군? 최대한 출혈을 줄이기 위해서.”
“그저 남보다 겁이 많았을 뿐입니다. 겁이 많으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겁이 많은 것은, 그만큼 어깨의 책임이 무겁다는 뜻이지. 그럴 수밖에. 개인의 영달이 아닌, 황실의 명운이 걸려 있는데. 겁쟁이가 될 수밖에.
“아니 그런가. 황자 진오운.”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금칠이 대수인가. 존귀한 용의 혈통을 타고나신 분께.”
천천히 태감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안양비는 이내 무거운 숨을 토해냈다.
“역시, 닮았군. 폐하와.”
그래.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나. 안양비의 말에 태감은 담백한 대답을 내놓았다.
“만약 저 혼자였다면, 저의 패배였을 겁니다.”
그 말은 얼핏 위로처럼 들렸으나, 태감의 담담한 표정은 그 말이 사실임을 고백하고 있었다. 소년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 안양비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결국, 승패는 사람에서 갈리는군. 사람을 끄는 것은 덕과 인품이니, 나의 부족함을 탓할 수밖에.”
날 선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소년은 짝다리를 짚은 채 혀를 차며 말했다.
“앞으로 한솥밥 먹을 사람들끼리 적당히 합시다.”
“그것도 그렇군. 앞으로 잘 부탁드리오.”
“하하, 조금 전 무례는 부디 잊어주십시오. 안양비 님.”
“이제는 비가 아니지 않소.”
안양비의 말에 태감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지요. 그렇다면.”
“본명으로 불러주시오. 단혜림(檀慧臨)이라고.”
“그럼 단 호위라 부르지요.”
호북 출신, 비호(飛虎) 단(檀)가의 장녀. 단혜림. 그것이 안양비의 본명이었다.
안양비. 단혜림이 시선을 보내자 소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단 호위.”
“그럼, 녹봉을 받는 만큼은 해야지. 걱정하지 말게나.”
“받은 만큼만 하신다, 이거군요?”
“받은 만큼은 한다는 거지.”
품위 있는 연봉 인상 요청에 소년은 구슬픈 넋두리를 흘렸다.
칼만 안 들었지 아주 날강도야 날강도.
소년은 책임의 무게에 휜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고, 일단 연봉 협상은 나중에 하고, 식사나 합시다. 뭐들 드시고 싶으신 거 없으십니까?”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니냐. 과거의 은원을 잊고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의미로 고기가 좋겠다.”
“하여간 핑계는 좋습니다그려. 안양비 님, 아니, 단 호위는 뭐 따로 드시고 싶은 거 없습니까?”
“이왕이면 굽거나 튀긴 고기가 좋겠네.”
물론 삶아도 좋고 쪄도 좋고 조려도 좋지만, 역시 고기를 요리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숯에 직화로 굽는 것 아니겠나. 양념이 잘 밴 고깃덩어리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것만큼 맛있는 요리는 세상에 없지.
바싹 마른 듯 가슬가슬한 표면.
그윽하게 배인 숯 향기.
씹으면 배어 나오는 고소한 기름.
사람이 송곳니를 가진 짐승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그 충실함.
안양비의 웅변에 태감은 탄복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기에 아주 해박하시군요.”
“미식가로 유명하신 태감에 비하면 변변치 않소. 태감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즉석에서 숯불에 구워 먹는 숯불구이는 무척 매력적인 음식이지요. 소, 돼지, 양, 각종 가금류. 어떤 고기에도 잘 어울리고 어떤 양념을 해도 훌륭하지요. 간단히 소금 후추로만 해도 좋지만 간장 양념에 푹 재운다든가, 매콤한 고춧가루와 산초 양념에 절여도 좋고. 혹은 구운 다음에 고추기름이나 지마장에 찍어도 색다르지요. 하지만 전 숯불구이보다는…….”
그들의 토론이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을 예감한 소년은 귀를 막고 방을 나섰다.
찌푸려진 소년의 얼굴을 본 장소와 이삼은 열띤 토론이 한창인 방안을 슬쩍 보고는 소년의 뒤를 따랐다.
“저…… 전하?”
그 서먹한 호칭에 고개를 돌린 소년은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손을 올렸다. 소년의 손짓에 아이들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쓰다듬어보는 그 부슬부슬한 머리카락을 소년은 마음껏 헝클어 주었다.
“전하는 무슨. 할아버지라고 불러. 사적인 곳에서만.”
“그래도 될까요?”
“안될 것 뭐 있느냐? 내가 왕인데.”
소년의 다짐에 아이들은 그제야 발랄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때 묻지 않은, 그 순수하고 하얀 미소에 소년은 가슴 한구석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너희들에게 참 많이도 위로를 받았구나.’
태감의 수하가 되어 살얼음판 같은 후궁을 구르면서 얼마나 위로를 받았던가. 얼마나 의지가 되었던가.
아이들의 순수함에 기대었던 지난날을 떠올린 소년은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투박한 노인네가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쑥스러운. 지나치게 솔직한 그런 말들.
한참 동안 입술을 우물거리던 소년은 결국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 먹고 싶은 건 없니?”
“으음, 그래도 태감님이…….”
“그 양반은 신경 쓰지 말고. 너희가 먹고 싶은 걸 말해보렴.”
소년의 말에 장소와 이삼은 한참 동안 둘이서 키득거리며 속닥거렸다.
뜨문뜨문 들려오는 단어들을 주워들은 소년은 아이들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둘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합의가 끝나자 헛기침을 한 장소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양고기요!”
“양고기구이로 할래요!”
“양고기구이. 좋은 선택이다. 양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비장에 스며든 한기를 몰아내어 원기를 돋구어주는 식재료지. 쌀쌀한 날씨에 즐기기에 제격인 식재료라 할 수 있다.”
기특하다는 듯 한 번 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소년은 호쾌한 발길질로 문을 걷어차 열었다.
아이들과는 다르게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못난 어른들을 향해 소년이 선언했다.
“토론 중에 죄송하지만, 오늘 저녁은 양위포육(羊胃包肉)으로 결정 났습니다.”
양의 위로 감싼 고기. 그 생소한 이름에 태감과 단혜림의 시선이 소년에게로 모였다.
* * *
“양 위로 감싼 고기라. 이름만 들어서는 과연 어떤 요리일지 짐작이 가질 않는구나.”
“양위포육은 신장 탑극랍마간(塔克拉瑪干) 사막 유목민족의 전통 요리입니다. 사막 민족 특유의 호방함과 간결함이 살아있는 요리지요.”
한번 직접 보시겠습니까?
소년은 그들을 어슴푸레한 노을 끝자락이 내려앉은 연좌궁의 내원으로 이끌었다. 해당화가 우거진 모래땅. 그곳에선 장소와 이삼이 숯불을 피워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위포육은 조리도구가 변변치 않은 사막의 요리답게 오직 숯과 양의 위. 두 가지 조리도구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요. 원래 양의 위를 사용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양의 방광을 쓰기도 합니다.”
소년은 깨끗하게 씻은 양의 위에 후추와 마늘, 생강으로 양념한 양고기를 채워 넣은 다음 철사로 끄트머리를 단단히 묶었다.
고기가 가득 담긴 주머니가 완성되면 이제 남은 것은 숯불과 시간의 힘을 빌리는 것뿐이었다.
화르륵 타오르던 불기운이 잦아들고 하얀 숯과 재만 남은 모래 위에 고기 주머니를 내려놓자 뜨겁게 가열된 모래 알갱이가 위장의 수분에 타닥타닥 튀어 올랐다.
그 위를 숯과 재로 덮은 소년은 이마에 솟은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이제 네 시간쯤 기다리면 됩니다.”
“네 시간이라. 인고의 시간이 되겠군. 하지만 기다린 값어치는 있을 것 같아. 풍성한 저녁이 되겠어.”
입맛을 다시던 단혜림은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 해괴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단혜림을 보던 소년은 그녀가 아직 그들에게, 태감의 식사량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녁 식사 준비는 이제 시작인데요.”
“저기 숯에 묻은 양고기만 해도 족히 양 반 마리쯤은 될 것 같은데?”
“고작 양고기 반 마리로 누구 코에 붙이겠습니까.”
태감님 혼자 드시는 거라면 모를까. 실소를 흘린 소년은 다리가 두꺼운 탁자 위에 가져온 고기를 가득 쌓아 올렸다.
소, 돼지, 양, 사슴, 멧돼지, 토끼, 닭, 말, 집오리, 들오리, 거위, 꿩, 메추라기, 비둘기, 자고새, 뇌조, 타조.
단혜림은 쌓아 올려지는 고기의 무게에 탁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듣고는 얼이 빠진 채 소년을 돌아보았다.
부패한 육식주의자의 낙원이 그곳에 있었다. 채소 이파리 한 장. 비늘 달린 것 한 마리도 없이 육고기만이 넘쳐 흐르는. 단혜림은 자신의 양심에 손을 얹었다.
이대로 좋은가. 채소도, 과일로, 생선도 없이. 비계와 고기만으로 이루어진 저녁. 이 만찬. 이것을 용인할 수 있는가.
비둘기를 들오리 뱃속에 넣고, 들오리를 집오리 배에 넣어 세 마리 새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찜 요리 삼투압(三套鴨)부터 닭에 찹쌀과 죽순, 은행과 밤 등의 여덟 가지 재료를 채워 넣고 찐 팔보계(八寶鷄). 얼얼하게 매운 호남식 쇠고기 전골인 상덕발자채(常德鉢子菜), 경사식 돼지고기 수육인 백자육(白煮肉). 꿀을 발라 구운 메추라기. 바싹하게 튀겨서 간장에 졸인 꿩. 자고새탕.
고기, 고기, 고기, 고기 요리가 쌓여 간다.
단혜림은 가슴에 올렸던 손을 내려 젓가락을 쥐었다. 양심을 배신케 하는 충동. 살코기를 향한 갈망이 번질거리는 눈동자가 소년을 바라본다.
굶주린 야수의 시선을 받으며 소년은 최후의 요리를 상에 올렸다.
“자, 양위포육(羊胃包肉)입니다.”
소년이 검게 그을린 주머니를 찢는 순간. 위장에 갇혀 있었던 그윽한 냄새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달아오른 모래의 열기에 농축된 육즙. 녹아내리는 기름, 촉촉하게 젖은 고기.
자신을 향해 쏠린 사나운 눈동자들을 마주한 소년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자, 뜨거우니 조심하십시오.”
난도질할 것만 같은 기세로 젓가락이 날아들었다. 각자 노리고 있었던 고기를 잡아챈 젓가락은 감상할 잠깐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입으로 들어갔다.
애달프게 기다리던 혀가 고기를 맞이하는 순간. 달아오른 열기가 입안을 채우는 순간.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입에선 탄식과도 같은 숨이 흘러나왔다. 거칠고 투박한 조리법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보드라운 고기.
어금니를 부드럽게 밀어 올리는 섬세한 탄력. 영원히 입에 담아두고만 싶은 그 전율은 찰나의 순간만 허락된 것이었기에 더욱 애틋하고도 간절했다.
“짙군. 육향이 짙어.”
“위장에 담은 채로 구우면서 육즙은 농축되고, 불 향기는 은근하게 배어들지요.”
자, 어서 드십시오. 식기 전에. 소년의 재촉에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고기를 베어 물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녀의 잔이 비자 태감이 그녀의 잔에 술을 따른다.
놀랍다는 듯 태감을 보던 그녀 또한 태감의 빈 잔에 술을 따른다.
넘쳐 흐르는 술과 고기. 불콰하게 치밀어 오르는 취기와 차오른 만복감.
떠들썩한 분위기는 무한한 포용력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새로운 출발, 도전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젊은이들을 돌아보며 노인은 지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그 소란과는 무관한 사람인 양. 가장 시끄럽고 호들갑스러운 자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소년은 가만히 자신의 잔을 기울였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넘어가고, 씁쓸한 맛이 입에 남는다. 잔을 채우려던 소년은 병이 비었음을 깨달았다.
“왜 그러느냐?”
“아, 나으리.”
무거운 목소리에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곱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위정이 그를 굽어보고 있었다.
“좀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그래, 피곤하겠지. 가서 좀 쉬거라.”
“예, 쉬어야지요. 그래도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 가겠습니다.”
취한 듯 몽롱한 소년의 눈을 들여다본 위정은 그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으로, 그가 바라보는 광경을 함께 보았다.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 혹독했던 겨울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연회. 소년이 이루어낸 것들을 지켜보며 위정은 느릿한 동작으로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고생 많았다.”
“나으리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무슨 고생을 했다고. 다 네 공이지.”
“이게 어디 저 혼자 이룬 일입니까. 나으리께서. 주변에서 다 받쳐줬으니 이룬 것이지요.”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정에게 병을 받아든 소년은 그의 잔에도 가득 술을 따랐다.
그리고 둘은 건배도 없이 술을 들이켰다. 잔을 만지작거리던 소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단 호위 칼을 한 자루 맞춰주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그 영감탱이 얼굴 좀 보러 가야겠군요.”
태감과 식탁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그의 호위를 보며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