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90화
벽엔 그을음이 끼고 대들보엔 먼지가 쌓인 다 쓰러져가는 철방.
가열로에 불조차 피워놓지 않은 그 을씨년스러운 곳에서 세 명의 사내가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상다리가 낮은 상 주위로 둘러앉은 세 명. 노인. 중년. 그리고 소년은 간소한 무침 하나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거나한 트름을 하며 노인이 잔에 술을 부었다. 술이 넘쳐흐르자 보고 있던 소년이 핀잔을 주었다.
“적당히 드쇼.”
“좋은 날인데 마셔야지. 안 그러냐?”
“좋은 날인가?”
“마시고 취할 수 있으면 좋은 날이지.”
하여간, 단순무식한 노인네.
백윤을 흉본 소년은 자신의 잔에도 술을 가득 채우고는 주윤에게 술병을 넘겼다.
소년과 주윤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늙은 대장장이는 술잔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문일, 문일이라.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이름이야.”
“댁한테는 익숙하겠어.”
“그렇지. 나한테는 익숙한 이름이지.”
아득한 세월의 더께 너머로 묻어두었던 추억을 떠올린 백윤은 그 해묵은 시간을 곱씹는 대신 현재에서 살아 숨 쉬는 소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흐리멍텅한 시선을 소년에게 돌린 백윤은 메말라 갈라진 입술을 비집어 열었다.
“그럼. 문일 그 양반을 잡아야 한다. 이 말이냐?”
“그렇지. 일단은.”
“그자를 잡으면? 네 몸뚱아리가 고쳐지나?”
취기에 붉어진 노인의 얼굴을 보던 소년은 주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추궁하는 듯한 소년의 시선에 주윤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은 오직 소년과 주윤만의 비밀이었다.
비밀이 엄중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재확인한 소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양반이 고쳐주면. 등이랑 다리도 펴지겠지.”
“그럼 꼭 잡아야겠구먼.”
이제 병신새끼라고 놀리지도 못하겠어. 그런데, 잡을 수는 있냐? 미심쩍다는 듯한 백윤의 말에 소년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잡겠지. 황제 폐하께서 잡으신다는데, 그 양반이 뭔 용빼는 재주 있겠어.”
“폐하께서? 정말이냐?”
“그렇다던데. 태감께서 그러시니 뭐, 그렇겠지.”
“그래. 그거 한시름 덜었구먼. 잘됐어.”
노인과 낄낄거리던 소년은 주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씨익 웃었다.
이제 걱정할 것 없다는, 그 배려심 깊은 미소는 주윤의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후회와 죄책감을 누그러지게 했다.
안도의 숨을 내쉰 주윤은 껄껄 웃으며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건배를 해야지. 어르신, 안 그렇습니까?”
“응? 그래. 건배해야지. 좋은 날인데, 건배가 빠지면 쓰나.”
걸걸한 건배사와 함께 도수 높은 청주를 마신 백윤은 타는 듯한 목구멍으로 무침을 밀어 넣었다.
쫄깃쫄깃 꼬들꼬들한 식감에 새콤달콤한 양념이 된 무침은 씁쓰름한 청주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야, 이거 맛있다. 뭐로 만든 거냐?”
“오골계 껍질에 돼지 껍질, 그리고 해파리를 가늘게 썬 다음에 참기름에 식초, 간장, 지마장(芝麻醬)으로 간해서 무친 거요. 삼피사(三皮絲)라고 부르는데, 섬서성 명물이지.”
“삼피사? 특이한 이름이구먼.”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꼭 들어야겠수?”
해파리를 질겅거리던 소년은 빤히 자신을 보는 둘의 시선에 하는 수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 옛날에 섬서성에 못돼먹은 관리 세 명이 있었다는구먼. 셋이서 몰려다니며 온갖 패악질을 부려서 백성들을 괴롭히니 백성들이 그 셋을 세 마리 표범이라고 부르며 욕을 했다는군.”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서안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주방장 여 씨가 세 마리 표범의 껍질을 벗긴다는 의미로 검은 오골계 껍질과 불그스레한 해파리, 하얀 돼지 껍질을 가지고 술안주를 만든 거요. 그러니 어찌 되었겠수? 소년의 말에 백윤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봉변을 크게 당했겠군.”
“그렇지. 소식을 들은 세 악인이 여 씨를 때려죽였지. 그 소식을 들은 섬서 사람들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식당에 너도나도 삼피사를 내놓기 시작한 거요. 그러니 천하의 악당 놈들도 그 많은 사람을 다 때려죽일 수는 없으니 참고 넘어갔다는군.”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백윤은 소년의 말이 더 이어지지 않자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걸로 끝이냐?”
“끝이여. 털어도 더 나올 거 없으니까 무침이나 잡숴.”
“아니, 그래서 그 개잡놈들은 어떻게 됐는데?”
“내가 아나? 호의호식하다 늙어 뒤졌겠지. 그럼 뭐, 유치찬란한 권선징악 마무리라도 바랬나?”
이 오라질 놈아 뭔 놈의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 늙은 대장장이의 묵직한 호통에 소년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비아냥댔다.
“늙은이가 꿈이 많네. 응? 감수성이 풍부해. 아니면 철이 덜 들었던지.”
“뭐? 이 어린놈의 새끼가 못하는 말이 없어 그냥!”
“어린놈? 관짝에 한 다리 걸친 늙은이가, 아주 오늘 병풍 뒤에서 향냄새 한번 맡고 싶어?”
“오냐, 나올 땐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어 쌍놈 새끼야!”
정겨운 육두문자와 함께 연장을 집어 든 둘이 으르렁거리자 식은땀을 흘리던 주윤이 황급히 둘을 말렸다.
그 솥뚜껑 같은 손이 어깨를 내리누르자 뼈마디가 앙상한 둘은 앓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이 좋은 날에 뭣 때문에 그렇게 싸웁니까. 좋게 술이나 마십시다.”
“알았으니까 어깨나 놔라. 이놈아. 뼈마디 무너지겠다.”
“아이고, 알았으니까 손 좀 놔주십쇼.”
주윤의 두툼한 손바닥에 제지당한 둘은 하는 수 없이 들고 있던 장도리와 줄칼을 내려놓았다.
“육시랄 놈 같으니. 하여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혀는 아주…….”
“나중에 일 끝나면 봅시다. 그때도 어린놈이라고 부를 수 있나.”
“뭐?”
“됐고, 술이나 드쇼.”
소년이 흘리듯 중얼거린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윤은 주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찐빵처럼 통통한 볼을 붉게 물들인 주윤의 얼굴을 흘겨보던 백윤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저번에 말이다. 다리를 놔주기로 한 거.”
“음? 그거? 그거야 말만 하면 지금도…….”
“혹시, 저 녀석도 한자리 끼워줄 수 있냐?”
백윤의 말에 주윤은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전 지금도 충분히…….”
“안될 거 뭐 있어. 자리 하나 만드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럼 부탁 좀 하자. 저 녀석 언제까지 뒷골목에서 썩힐 수는 없지 않냐.”
“그러기엔 가진 기술이 아깝지.”
둘은 주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의사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려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장래를 고민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 할지 고민하던 주윤은 둘이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줄 때까지 잠자코 무침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노인과 중년. 소년. 그리고 세 가지 껍질 무침.
술에 취해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었다.
* * *
장소와 이삼을 두고 왔기에 소년은 궁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은 주윤이 맡게 되었다.
뚱뚱한 거한의 호위를 받으며 뒷골목 길을 빠져나온 소년은 뻐근한 목덜미를 주물러준 후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면 됐습니다.”
“섭섭하게 왜 그러느냐? 궁까지 바래다주마.”
“그럼, 사양은 안 하겠습니다.”
소년은 담백하게 인사를 올리고는 주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절뚝거리는 소년을 굽어보던 주윤은 문득 그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척 어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친구의 소개로 만난 사이인 것처럼, 제삼자를 포함하지 않은 둘의 관계는 숨 막히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허둥지둥 대화 주제를 찾는 주윤을 올려다보며 소년이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얼 말하는 것이냐.”
“백윤 영감쟁이가 한 말 말입니다.”
“아, 어르신이…….”
주윤은 마치 변명을 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우물거렸다.
난처함으로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본 소년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대답을 유보했다.
“뭐, 지금 당장 결정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고민하실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대답해 주십쇼.”
“시간…….”
소년의 말을 되새기던 주윤의 눈동자에 애틋한 감정이 멍울졌다.
백윤이 있던 자리에선 하지 못했던 말.
비밀로 남기기로 약속했던 말을 입에 머금은 주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것을 내뱉었다.
“과연. 너에게 남은 시간 안에 그자를 잡을 수 있겠느냐?”
“글쎄요. 운이 좋다면 잡을 것이고, 아니면 뭐, 어쩔 수 없지요.”
뭐, 잡기 전에 죽으면 그것도 팔자겠지요.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들리는 소년의 말은 주윤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태감께는 말씀드렸느냐?”
“목숨에 관한 거라면, 말씀 안 드렸습니다.”
“만약 태감께서 미뤄두었다가 때를 놓치면 어쩌려고.”
“가뜩이나 바쁜 분이십니다. 굳이 이런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귀찮게 해드릴 필요는 없지요.”
일이 끝나면.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 말하지요. 사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때는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그리하면 될 일 아닙니까.
소년은 단호하게 말을 끊고는 억지로 화제를 돌리려 했다. 자신의 목숨을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 이야기하는 소년의 태도에 주윤은 서글프게 뇌까렸다.
“슬퍼하실 거다. 만약 네가 죽는다면.”
“예. 그러시겠지요.”
“백윤 어르신도 슬퍼하실 거고. 양이도. 그리고…….”
“그렇겠지요.”
늘어지는 주윤의 말에 소년은 필요 이상의 짜증을 느꼈다.
그 퉁퉁한 입술이 말하는 걱정은 소년의 말라비틀어진 양심을 지나치게 고통스럽게 했다.
누가 모르겠는가. 누구는 몰라서 말하지 않는 줄 아나.
치밀어오른 분기가 자아낸 날카로운 말들을 쏘아붙이려 했던 소년은 입술을 굳게 눌러 닫았다.
소년이 입을 연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태감께선 지금 중대한 일을 추진하고 계십니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정확히 설명해 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투로 말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주윤은 혀뿌리가 마르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그 일은, 너의 목숨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일이냐.”
“예. 그 정도로 중요한 일입니다. 저 같은 놈의 목숨 따위에 흔들려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라의 명운이 달린 일,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대한 일입니다.
말을 끝낸 소년은 파랗게 질린 주윤의 얼굴을 보고는 후회 섞인 두통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정치완 무관한 소시민에게 조금 전 이야기는 너무 자극적이었으리라.
주윤을 바라본 소년은 그가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할 것을 확신했다. 밤마다 후궁의 음산한 음모와 계략을 상상하며 가슴을 졸이게 되리라.
잠자코 생각에 잠겨 있던 주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구나.”
“괘념치 마십시오. 저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 놈입니다.”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할 일을 내가 괜히 앞서 걱정하고 있었구나.”
대화를 끝마친 이후, 둘은 오그라드는 침묵 속에서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둘 다 필사적으로 새로운 주제를 찾았지만, 떨떠름하게 경직된 침묵은 어설픈 농담이나 영양가 없는 한담을 용인하지 않았다.
적당히 무게가 있으면서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마법과도 같은 주제를 찾아 헤매던 둘은 멀리서 달려오는 이삼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주윤 아저씨!”
“어이구, 우리 양이 왔어?”
“삼아, 잘 놀다 왔니?”
“네? 네. 오랜만에 어머니한테 인사드리고 왔어요. 두 분은…….”
아 우리야 잘 지냈지. 안 그렇습니까? 소년의 번뜩이는 눈동자에 주윤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격렬하게 친분을 과시하는 둘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이삼은 이내 배시시 웃었다.
“에헤헤, 즐거우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래그래. 하여간 우리 삼이는 마음씨도 고와.”
이삼이 지어 보인 순진무구한 미소는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게 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한.
소년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주윤에게 인사했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살펴 들어가거라.”
몸조심하고. 굳이 할 필요가 없을 뒷말을 삼킨 주윤은 퉁퉁한 몸을 돌려 뒷골목의 그늘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 그가 남기고 간 말들을 되새기며 왼쪽 가슴 아래를 쓸어 만진 소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이 겨울을 넘기고 나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난 후에.
그때 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래.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는 없지.’
태감에게도. 장소에게도. 이삼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필요할 것 아닌가.
최선을 다했지만, 안간힘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이 문일을 잡지 못했을 때를. 그의 죽음을 대비할 시간을.
지금껏 수없이 보내왔던 이별을 떠올리며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었다 해도, 이별의 순간은 사무치도록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알고 맞는 게 덜 아플 테니까.”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자, 어서 가서 저녁 먹어야지.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으음, 전……. 닭고기요!”
그래. 닭고기 좋지. 그럼 삼이가 좋아하는 튀김으로 할까?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을 삼키며 소년은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그저 추억으로 남은 채 지나갈 수 있기를. 웃으며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이기적인 욕심일 것이다.
“삼아, 만약에…….”
복받쳐 오른 감정에 입을 뗀 소년은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말을 멈추었다. 낯익은 사내였다.
가늘게 찢어진 여우 눈에 턱선이 가는 사내였다. 손이 곱고 좋은 옷을 차려입은. 젊은 환관. 그자가 소년을 향해 다가왔다.
“전에 한 번 뵈었지요? 오상호 님.”
금조라고 합니다. 정중한 인사와 함께 깊게 허리를 숙인 젊은 환관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살갑게 말을 걸었다.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잠시 이야기 좀 나누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