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87화
연회에서 돌아온 직후, 소년은 마치 얼이 빠진 사람처럼 굴어 태감을 난처하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태감의 채근에도 소년은 멀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태감은 그의 옆을 서성거리며 소년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는데도 태감은 소년의 옆을 떠나지 못했다. 마치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년이 당장에라도 지는 석양 너머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태감은 소년의 옆으로 걸터앉았다.
소년에게 할 말.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리며 태감은 그의 옆얼굴을 돌아보았다.
마치 먹물로 그려 넣은 것만 같은 눈동자는 허무감만이 느껴졌다. 일말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무의미한 눈동자에 태감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 눈동자에서 그 어떠한 의미도 찾아내지 못한 태감은 결국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두꺼운 구름의 장막에 포위당한 태양이 어슴푸레한 빛을 불태우며 떨어지고 있었다. 일몰의 시간. 하늘은 검붉었다. 저물어가는 태양은 태감에게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재촉을 이기지 못한 태감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뭉그적거리며 일어선 순간. 음산하고 낮은 목소리가 태감의 허리 아래에서 울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태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고개를 돌렸다. 한발 늦게 목뼈가 비틀리는 소리와 통증이 찾아왔지만, 태감은 개의치 않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괜찮으냐?”
“저녁 인사로 썩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일단은 의미는 통했다 해두지요. 예, 좋은 저녁입니다.”
아니, 밤이 다 되었으니 좋은 밤이라고 해야겠군요. 늘어지게 하품을 한 소년은 태감의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피식 웃음 지었다.
“배가 고프시겠습니다.”
“배?”
“예, 밥도 제대로 안 드셨을 것 아닙니까.”
조금 늦었지만, 저녁을 드셔야겠군요. 아니면 이른 야식이라고 할까요? 어느새 검푸른 색으로 낯빛을 바꾼 하늘을 본 소년은 주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멍하니 그의 등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태감은 소년의 모습이 멀어지자 화들짝 놀라 달리듯 그의 뒤를 쫓았다.
“저기 그…….”
“저녁은 뭐가 좋으시겠습니까? 역시 고기겠지요?”
“고기, 그래. 고기도 좋겠지. 그런데 말이다.”
“고기는 무슨 고기가 좋으십니까?”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염소고기도 있습니다. 풀냄새가 나고 질기지만 건강에 좋지요. 아쉽게도 뱀은 없습니다만, 찾아보면 큰 도롱뇽은 있을 겁니다.
아, 도롱뇽은 고기라는 느낌이 안 들지요? 거위에 오리 같은 큰 새를 통째로 조리거나 튀겨볼까요? 아니면 밤이 늦었으니 메추리나 비둘기도 좋겠지요. 작지만 알차고, 부담도 없지요. 겨울 사슴이나 노루도 좋고, 꿩도 있습니다. 장끼 말고 까투리 말입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소년의 말에 휘말린 태감은 그만 자신의 질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태감은 소년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며 그와 토론했다.
“오리라. 오리도 좋지, 집오리도 좋고, 야생오리도 좋고.”
“특별한 걸 좋아하시면 자고새나 칠면조도 있습니다. 칠면조는 가슴팍 살점이 실팍하지요. 혼자 먹기는 좀 부담스럽습니다만.”
태감님께선 걱정 없으시겠지요.
소년의 말에 태감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왕성한 식욕을 내비치는 태감의 모습에 신이 난 소년은 창고 안의 식재료를 모조리 열거했다.
“멧돼지도 좋고. 야식으론 좀 사치스럽지만, 새끼돼지도 준비된 게 있습니다. 운남에서 들여온 화퇴도 있고, 또 타조 고기도 있더군요.”
“타조? 타조는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구나.”
“뭐, 그렇게 특색이 강한 재료는 아닙니다.”
기름기가 없는 붉은 살인데, 꼭 소고기와 비슷하지요.
소년의 말에 타조 고기의 맛을 상상하던 태감은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럼 그냥 소고기를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
“그건 그렇지요.”
“그럼 소고기를 먹자꾸나.”
태감의 명쾌한 결정이 내려지자 소년은 바쁘게 주방 안을 들쑤시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궁이에 잿가루를 긁어내고 장작을 채운 다음 불을 크게 피우고, 철과를 가져오고, 도마에는 큼직한 무와 소 사태살이 올라갔다.
“무가 참 좋구나.”
“모래땅에서 키운 무입니다. 보통 무보다 훨씬 물이 많고 부드럽지요. 생으로 먹어도 아삭아삭하니 달콤합니다.”
소고기를 깍둑 썰고, 무를 큼직하게 나박 썰기로 썬 소년은 물을 끓여 무와 소고기를 슬쩍 데쳐내었다. 무를 데쳐내면서도 소년은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마치 지금까지 침묵했던 것에 대한 한을 푼다는 듯이, 소년은 지금 하는 요리에 대해 주절거렸다.
“지금 요리는 사천의 제염공들이 만들던 요리입니다.”
“호오, 제염공이 만들던 요리라?”
“예. 사천의 제염공들은 지하의 함수(鹹水)를 퍼 올리기 위해 소를 이용했지요. 일하다 늙어 죽은 소고기가 얼마나 질기겠습니까. 자연스레 제염공들의 소고기 요리는 푹 삶거나, 얇게 썰거나 하는 식으로 발전했지요.”
철과에 유채 씨 기름을 두른 소년은 기름이 달궈지자 두반장 반 국자와 산초, 마른고추를 넣고는 향이 우러나도록 은근한 불에서 볶아주었다. 맵싸한 향기가 코끝을 찌를 때쯤, 소년은 데친 무와 소고기를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뚜껑을 덮었다.
“제염공들이 아무렇게나 만들던 음식이라 특별한 이름도 없습니다. 홍소우육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라우육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 요리는 소금이 넉넉하게 들어가야 제맛이 납니다. 제염공들이니 소금을 아낄 필요가 없었겠지요. 소금을 듬뿍 넣은 소년은 무가 물렁물렁해지고 소고기가 부드러워질 때쯤 움푹한 그릇에 흰 쌀밥을 가득 퍼 담았다.
“이렇게 밥 위에 요리를 올려 덮밥으로 먹으면 매콤한 육수가 하얀 쌀밥에 배어들지요.”
“아주 합리적인 식사방법이구나. 그릇을 하나만 사용하니 설거짓거리도 줄어들고, 맛도 배가 되니 일거양득이로다.”
그릇을 받아든 태감은 후후 불어 김을 식힌 다음 우악스럽게 그릇을 들고 밥을 마시듯 쓸어 담았다. 그 호쾌한 식사를 본 소년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떨떠름한 소년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안 가득 무와 고기와 밥을 욱여넣은 태감은 입안 가득 채워지는 충족감에 몸을 떨었다.
제염공들의 거칠고 투박한 식사는 화려한 요리로는 채울 수 없는 영혼의 공복을 채워주었다.
꾸밈없이 솔직한, 고된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사.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을 위한 식사에선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순박한 상냥함이 배어 있었다.
그 따스한 온기가 배를 채우는 것을 느끼며 태감은 밥풀이 묻은 입술을 열었다.
“매콤하고, 알싸하구나. 하지만 혀가 저릴 정도로 폭력적인 매운맛은 아니야. 피로에 찌든 혀를 부드럽게 깨워주는 다정한 자극이야.”
그 은은한 매운맛이 배어든 무는 살캉살캉 씹히는 부분 없이 푹 물러 부드러웠고 양념을 흠뻑 빨아들여 속까지 매콤함이 배어 있었다. 무의 단맛이 혀에 스며드는 동안 송곳니와 어금니는 쫄깃한 사태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힘줄이 많은 고기 특유의 쫄깃하면서도 씹다 보면 말캉하게 녹는 듯한 느낌.
그리고 무와 소고기의 즙이 녹아든 매운 양념에 흠뻑 적셔진 하얀 쌀밥. 벌겋게 물든 쌀밥을 볼이 미어지도록 씹다 보면 묘하게 마음에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밥을 먹고 있다는, 위장을 채우고 있다는 평온함. 표정근이 부드럽게 풀려 헤실거리는 태감을 본 소년은 실소를 흘렸다.
“천천히 드십시오. 체합니다.”
태감에게 차게 식힌 녹차를 내어준 소년은 자신 또한 의자에 걸터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도 없이 그릇을 손으로 들고 먹는 식사였지만 소년도, 태감도 그것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소고기 조림 한 냄비. 밥 한 솥을 비운 태감은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이를 쑤셨다. 점잖게 트림을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태감은 소년의 미적지근한 시선에 헛기침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 이야기를 할 준비는 되었느냐?”
막상 이야기할 기회가 오자 소년은 숨이 턱 막혀 입을 열지 못했다. 목구멍 언저리에서 간질거리는 말들을 토해내려 애쓰던 소년은 결국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달뜬 숨만을 몰아쉬었다. 주윤이 그에게 해주었던 이야기. 그것들을 뇌리에 되새긴 순간 소년은 타든 듯한 갈증을 느꼈다.
한참을 떠듬거리던 소년은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일입니다.”
갑작스럽게 던져진 전 동창 제독의 이름에 태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달갑지 않은, 기억 속에 잊혀져 있던 이름이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순간 태감은 등허리를 기어오르는 끔찍한 불길함을 느꼈다. 감정을 채 수습하지 못한 태감은 입술을 떨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문일이라니.”
“문일. 전 동장 제독이라는 작자가 제 몸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사특한 비술을 사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의 허리를 굽게 만들고 다리를 절게 만든 건 문일임이 틀림없었다.
태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윤 그 양반에게 들었습니다. 혈도라는 것은 그렇게 장시간 묶어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군요. 하긴, 그렇지요. 피가 흐르는 길을 묶었는데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요. 진작 알아챘어야 했는데.”
소년은 충혈된 눈동자로 자신 만큼이나 파랗게 질린 태감을 바라보았다. 그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잠깐의 시간을 기다린 후, 소년은 입을 열었다.
“제 지척에 있을 거라는군요. 문일이. 지난 십 년간 말입니다.”
소년의 마지막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 * *
늦은 밤.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워야 할 장소인 황제의 침실은 때아닌 불청객에 몸살을 겪었다. 숨을 씩씩 몰아쉬며 다짜고짜 찾아온 태감을 보며 황제는 분노조차 잊은 채 얼떨떨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아니, 이 늦은 밤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
혹시 적국이 국경을 침범했다는 소식이라도 들어온 건가?
만약 그런 중대사안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하지만 그런 중대사안이 아니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황제의 뜻이었다. 하지만 태감은 호들갑스럽게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지도, 다급한 급보를 떠들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단호하게 한 마디를 입에 담았다.
“형님.”
황제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 다정하고도 가슴 아픈 한마디에 황제는 준비했던 준엄한 질책을 송두리째 잊어버렸다.
흉금 안쪽으로 파고든 그 말을 곱씹던 황제는 당황스러움에 목소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당황스럽구나.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아니, 그래.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구나. 이리와 앉거라.”
태감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걸터앉고는 옆자리를 툭툭 쳤다.
“오랜만이구나. 이렇게 너와 침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건.”
부드럽게 운을 띄우며 태감을 돌아본 황제는 초조함과 긴장으로 얼어붙은 태감의 표정에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었다. 녀석, 농담도 못 하겠구나.
“그래, 무슨 일이냐.”
마치 어린 동생의 투정을 들어주듯 관용적인 미소로 자신을 대하는 황제의 태도에 태감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혈기에 못 이겨 천방지축으로 날뛸 나이도 아닌데. 자신이 너무 무례했음을 깨달은 태감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황제의 숙면을 방해해야 했던 용건을 이야기했다.
“형님, 문일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에 황제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문일. 선황 폐하를 모셨던 전 동창 제독. 잊을 수 없는 그 이름을 되새기며 황제는 태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태감은 횡설수설하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장황하게 늘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취합한 황제는 그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문일이, 지금 황궁에. 후궁에 있단 말이냐?”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형님.”
“선황 폐하와 함께 떠난 문일이? 도대체 어떤 연유로 말이냐?”
그 아이 때문이냐? 황제는 태감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태감의 눈을 들여다본 황제는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일이, 문일이 붙어 있단 말이지. 그 아이가 문일의 손을 탄 아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긴 시간을 감시하고 있었다고? 문일이?”
선황 폐하를 모셔야 할 자가. 그 의무마저 포기하고?
황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직 선황 폐하에게만 충성하고 선황 폐하만을 위해 봉사했던, 그자가. 인생의 마지막 의무마저 저버린 채 소년을 감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제의 상념이 길어지자 태감은 조급함에 몸이 메마르는 듯했다.
“형님.”
“그만. 네가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너라면, 내 대답이 무엇인지 또한 알 수 있겠지.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번복할 수 없는 단호함이 담긴 황제의 말에 태감은 신음을 흘렸다. 참담함으로 물든 동생의 얼굴에 황제는 변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너도 알겠지만, 문일은 나의 신하가 아니지 않으냐.”
“그렇지요. 그자는 오직 선황 폐하의 신하였지요.”
축 늘어진 동생의 얼굴을 보며 황제는 그 어깨를 감싸 안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자신의 온기가 위로가 되리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는 대신 화제를 돌려 그의 기분을 환기하려 했다.
“그건 그렇고, 갑작스럽게 문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째서냐. 순전히 문일이 후궁에 숨어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서냐?”
“아니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상호를 위해서였겠구나.”
황제가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묻자 태감의 얼굴에도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태감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집요하게 그 사실을 파고들었다.
“냉혹한 동창 제독. 탐욕스러운 사례감의 태감인 네가 그토록 그 아이에게 마음을 쓰다니. 역시 비밀을 공유한 사이여서인가? 아니면 혹시 다른 연유가 있는 것 아니냐?”
쿡쿡 찌르는 듯한 황제의 질문에 태감은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예?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미온적인 태도로 황제의 공세를 막아내던 태감은 문득 지금이 비밀을 묻기에 적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차마 묻지 못했던. 소년의 혈통에 관한 이야기. 짐작은 하면서도 끝내 그것을 묻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황제의 폐부를 찌르는 급소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태감의 눈동자에 각오의 기색이 번지자 황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물어볼 것이 있느냐?”
“예. 형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문제였다고. 이대로 문제를 남겨두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태감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황제를 고통스럽게 할지, 얼마나 긴긴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감은 한참을 망설이며 황제의 안색만을 살폈다.
“왜 그러느냐? 어서 묻지 않고.”
“예. 형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황제의 거듭된 재촉은 태감의 입을 느슨하게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문을 열어버린 태감은 자신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입안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놓았다.
“누님께서는, 궁을 나가신 후 어떻게 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