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74화
소년에게 부름을 받은 장소와 이삼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잠깐 좀 보자는 소년의 말은 담담하게 가라앉아 있었기에 더욱더 소름 끼쳤다.
마치 큰 비밀을 고백하기 직전 의도적으로 평온함을 가장하는 것처럼.
장소가 떨리는 손으로 주방의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겨울의 냉기에 얼어붙은 문고리에선 저릿한 한기가 느껴졌다. 이삼에게 동의를 구하듯 뒤를 돌아본 장소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주방 안에 울렸다. 문이 느릿하게 열렸기에 그 소리는 더욱 크고 길게 울렸다. 등골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 불길한 소리에 장소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어두컴컴한 주방 안을 돌아보았다.
창가와 가까운 자리. 소년은 볕이 드는 자리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그의 무릎에는 직사각형의 큰 칼이 한 자루 올려져 있었다.
표면에 빛이 내리쪼일 때마다 은은한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칼. 운철로 만들어진 칼이었다. 소년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세상의 심원한 비밀에 대해 깊이 사색하는 것처럼. 소년의 표정에서는 긴 시간을 흘려보내는 무정물과도 같은 건조함이 드러나 있었다.
번뇌와 고민.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질척한 모든 것들과는 연이 없다는 듯이. 소년은 평온해 보였다.
그 순간 햇볕이 일렁이며 거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냈다. 그의 좁은 이마에 찬란한 빛이 번지며 그를 감싸는 모습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싶어질 만큼 경건했다. 그의 묵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장소와 이삼은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하며 소년이 그들을 바라볼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흔들리는 바람결이 콧잔등을 간질이자 기나긴 묵상에서 고개를 든 소년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장소와 이삼을 환영했다.
“미안하구나. 잠깐 정신을 집중하느라.”
오늘은 장소와 삼이에게 맛있는 걸 해주려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단다. 소년의 말에 이삼과 장소는 심장을 옥죄어 오는 전율을 느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오래, 가까이서 소년을 보아온 이들이었다. 그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가 진심을 발휘한 요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껴왔기에.
둘은 기대감에 앞서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에 표정이 일그러지기 전, 장소는 가까스로 입꼬리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와! 정말요?”
“그럼 그럼. 오늘은 맛있는 걸 먹고, 다 먹으면 잠깐 이야기도 좀 하자꾸나.”
이젠 장소와 삼이 에게도 이야기해 줘야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소년은 의자를 끌어와 장소와 이삼을 앉혔다.
“오늘은 한국식 중화요리를 할 거란다.”
“한국식이요? 들어본 적 없는 지방인데…….”
“허허, 그건 조금 나중에 이야기해 주마.”
나중에. 소년은 손주들에게 점심을 내어주는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손에 쥐었다. 마디가 굵고 억센 손가락이 칼자루를 쥐는 순간 그의 눈동자에선 소름 끼치는 광기의 빛이 흘러넘쳤다. 얄팍한 입술이 길게 찢어진다. 귀밑까지 찢어지는 흉소. 아수라의 웃음을 지으며 소년이 도마 앞에 섰다.
“즐거운 일이야. 요리란.”
아무 걱정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껏 요리할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정치적 이유 없이 순수한 감정으로 요리한다는 것은 소년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가슴 속에서 고양감이 뭉클거리며 솟아오르고 뇌리에선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샘솟는다. 기이하게도 소년이 느끼는 행복감은 전투의 흥분과도 닮아 있었다.
소년의 칼끝이 거칠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싱싱한 새우. 엄지손가락 굵기의 통통한 새우는 껍질을 벗겨 칼날의 넓적한 옆면으로 으깼다.
탕! 탕!
소리가 울리며 으깨진 새우 반죽에 녹말가루와 백후추, 계란 흰자. 그리고 돼지기름 한 숟갈이 들어갔다.
“이렇게 만든 새우 반죽은 어디에 넣어도 맛있단다. 숟가락으로 뚝 뚝 떠서 그대로 국물에 넣어 완자탕으로 먹어도 좋고, 국수에 고명으로 올려줘도 좋고. 밀가루 반죽에 싸서 춘권이나 군만두로 만들어도 좋고. 아니면 전분 가루를 살짝 입혀 그대로 튀겨도 좋지.”
하지만 오늘은 멘보샤(面包虾)를 만들 거란다. 소년이 가져온 것은 밀가루 피도, 전분 가루도 아니었다. 소년이 준비한 것은 예쁘게 정사각형으로 썬 식빵이었다.
식빵 사이에 도톰하게 새우 반죽을 끼운 소년은 살짝 미지근한 온도로 기름을 달구어 멘보샤를 튀겨내기 시작했다.
멘보샤의 핵심은 바로 기름 온도였다. 살짝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온도를 올리며 튀겨야 식빵이 기름을 먹지 않는다.
만약 온도 조절에 실패한다면 식빵이 기름을 흠뻑 빨아들여 느글느글한 멘보샤가 되기에 십상이었다.
하지만, 성공한 맨보샤는.
“자, 하나씩 먹어보렴.”
그야말로 천상의 음식이었다. 노릇하게 튀겨진 멘보샤를 그릇에 가득 담아 식탁에 올리자 아이들은 홀린 듯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젓가락으로 집어 들 때 울리는 바삭! 소리가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떨리는 입술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앞니가 멘보샤를 베어 문다. 소리가 울린다.
마치 솜털 구름을 베어 문다면 이런 기분일까. 한없이 가볍고 바삭한 겉 부분 안쪽으로는 기름이 배어들지 않은 식빵의 폭신함이 느껴졌다.
기분을 한없이 들뜨게 만드는 감촉. 장소는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천천히 앞니를 밀어 넣었다.
입자가 살아 있도록 거칠게 으깨진 새우의 탱글탱글한. 앞니를 튕겨내는 그 관능적인 감촉이 치아를 타고 파고들었다.
한계까지 응축되었다가 탁 풀리는 순간 터지는, 탄력 넘치는 새우의 식감.
“하아…….”
장소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이삼과 마주 보았다. 이삼 또한 자신처럼 한숨을 내쉰 것을 보고,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아직 어리니까 튀김 음식 하나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지?”
“네? 튀김이요?”
“그래. 튀김.”
장소는 도마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마 위에는 하얀 사기그릇이 올라가 있었다. 무엇이 담겨 있을까. 소년은 친히 그릇을 내려 장소와 이삼에게 잘 보이도록 기울여 주었다.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은 전분 반죽에 재워진 돼지고기였다. 장소는 창백한 얼굴로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탕수육, 괜찮겠니?”
익숙한 이름이었다. 장소는 기억 속에서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돼지고기 요리를 기억해냈다.
새콤달콤한 당초(糖醋)로 맛을 낸. 향기로운 튀김 요리를. 혀 밑에 고인 군침을 삼키며 장소와 이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웃었다.
“역시 젊은 게 좋아.”
나이 들기 전에 많이 먹어두렴. 나이 들면 속이 부대껴서 먹고 싶어도 못 먹어요.
소년이 풍로를 밟았다.
불꽃이 부풀어 오르고 솥 안에서 기름이 끓어 오른다. 황금빛 기름 안으로 반죽을 입은 돼지고기가 떨어졌다.
튀김옷 속에서 고기의 육즙이 끓어오르는 소리. 자글거리는 소리가 주방 안을 가득 채운다. 아이들의 시선이 튀김 솥에 고정된 동안 소년은 슬며시 두 번째 화구에 불을 붙였다. 쉬이 달아오르는 얇은 철과에서 자극적인 향기가 피어오른다.
코를 찌르는 시큼하고 단 향기. 당초(糖醋)가 끓어오르는 향기였다.
튀김망 위로 노릇한 튀김들이 올라왔다. 이제 기름을 빼낸 다음 새콤달콤한 소스에 슬쩍 볶아내기만 하면 되는 상황. 하지만 소년은 망설였다.
“그래, 요즘 애들한테는 그, 뭐였지? 찍먹? 그게 유행이었다고 들었는데.”
노인네에게는 너무 어려운 신조어를 중얼거린 소년은 조심스럽게 소스와 고기를 따로 상에 올렸다.
소스와 따로 나온 고기를 보며 장소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향긋한 귤이 넉넉하게 들어간 당초는 은은한 주홍빛이 도는 갈색이었고 전분이 들어가지 않아 살짝 묽은 느낌이 있었다.
튀김을 찍은 장소는 당초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아삭.
기름에서 바로 건져 올린 튀김옷은 얇고, 아삭아삭했으며 씹으면 육즙이 입안을 흥건하게 적실 만큼 담뿍 배어 나왔다. 거기에 어울리는 가볍고 상큼한 당초. 혀를 찌를 만큼 격렬하지는 않았다.
산뜻하고 부드러운 신맛에 딱 기분 좋을 만큼만 달콤한 당초에는 소년의 상냥한 배려심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먹을 요리가 많으니, 혀를 쉬게 해주겠다는 소년의 배려. 그 의도를 알아차린 장소는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았다.
시골집에 온 손주를 맞이하는 할아버지의 푸근함을 담은 채, 소년은 웃고 있었다.
얼마든지 먹게 해주겠다는. 한계의 끝자락까지 먹여주겠다는. 한계를 뛰어넘을 때까지 먹게 해주겠다는. 목구멍 바로 아래쪽까지 채워주겠다는. 무한한 호의. 장소는 가만히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각오를 다진 얼굴이었다. 장소와 이삼의 얼굴에 떠오른 결연한 각오를 보며 소년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식사를 하자꾸나.”
배가 부를 때까지.
* * *
소고기 굴소스 볶음. 양장피에 팔보채, 유산슬. 유린기. 소년의 시그니쳐 메뉴인 깐풍기에 느끼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크림새우와 칠리새우.
고추 잡채, 오룡해삼 등등의 일품요리를 지나 볶음밥과 짜장면 짬뽕 기스면 등으로 식사가 마무리되고.
후식으로는 속이 없는 찐빵을 달콤한 연유에 찍어 먹는 금은만두(金银馒头)가 나왔다.
하얗고 보드라운 흰 찐빵과 기름에 튀겨 황홀한 금빛으로 물든 찐빵. 그 한가운데에 듬뿍 담겨 있는 끈적하고 다디단 연유.
터질 것 같은 배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둘은 결국 떨리는 손을 들어 찐빵을 쥐고야 말았다.
소년은 숨을 씩씩 몰아쉬면서도 황금빛 튀긴 찐빵을 손에 드는 아이들의 집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찐빵. 그것도 튀긴 찐빵에.”
“연유까지?”
“원래 살찌는 음식이 맛있단다.”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변한적 없는 불변의 진리를 읊으며 소년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앞에 있는 것은 낙원일까, 아니면 나락일까. 장소와 이삼은 기꺼이 연유에 찐빵을 적셨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연유가 빵에 착 감긴다. 조금도 절제하지 않았다는 듯, 연유에서는 폭력적인 단내가 풍겨오고 있었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눈앞에 둔 것처럼. 장소와 이삼은 긴장된 눈동자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이서, 동시에? 장소의 시선에 이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찐빵을 베어 물었다.
아릿한 단맛이 혀에 번진다. 끈적하고 달콤한 연유가 바삭하고 기름진 찐빵에 감기며 최후의 양심과 죄책감을 휘발시킨다.
장소와 이삼은 아직 손에 쥔 찐빵을 다 삼키기도 전에 두 번째 찐빵을 향해 손을 뻗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성의 저항은 간단히 무너졌다.
“흐음,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
아이들의 정신이 만복감에 흐물흐물해진 것을 확인한 소년은 그제야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자신의 본명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죽어 이 세계로 환생했다는 이야기.
충격적이다 못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였지만 지나친 만복감에 이성이 둔화된 장소와 이삼은 무한한 관용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헤에…… 그러셨구나…….”
“그랬단다.”
“겉모습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그런 사정이 있으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김승조. 본명은 김승조라고 한단다. 소년은 자신의 본명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삼이는 본명이 조양이었나?”
“네. 환관 명은 이삼이고, 본명은 조양이에요.”
소년의 시선이 장소를 향하자 장소는 부끄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는 좀 사정이 있어서…….”
“장소는 묘족의 사제 계급 출신이라, 환관의 신분으로는 본명을 밝힐 수가 없어요.”
묘족의 사제는 대대로 신성한 이름을 대물림받는데, 장소는 후궁에 들어오면서 그 이름을 두고 나왔다고 들었어요.
부정한 환관의 신분으로 신성한 이름을 쓸 수는 없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게 맞나? 하기 어려운 말을 대신 이야기한 이삼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장소를 보았다.
장소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다들 복잡한 사정이 있구나. 하긴, 후궁 사람 중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소년은 우울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즐거운 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번에 태감님이 은퇴하시면.”
“네! 저희도 은퇴해요!”
태감이 은퇴하면 장소와 이삼 또한 긴 시간 짊어지고 있었던 책무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살날이 구만리인 아이들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잠시 그들의 내일을 생각하며 소년은 아쉬움을 느꼈다.
“장소는 은퇴하면 어떻게 할 거니?”
“음, 일단 고향으로 돌아가서요. 음…….”
“금고(禁錮)형도 풀렸으니, 벼슬길에 올라본다든가?”
“전 공부는 좀…….”
대신 공부 잘하는 동생이 있어서, 아마 벼슬길은 동생이 오를 것 같아요. 저는 음……. 집안에서 하는 사업체 중 하나를 물려받지 않을까요?
배시시 웃은 장소는 이삼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삼이는 나가면 뭐할래?”
“나? 난…….”
힘겨웠던 지난날을 함께해 온 둘은 달콤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울고 웃었다. 냉엄한 후궁을 떠나 돌아간 가족의 품은 분명 따스할 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며 소년은 아이들의 앞날에 그늘이 없기를 기도했다.
‘이미 평생 분량의 고생은 다 했으니. 앞으로는 순탄하기만 하길 빈다.’
자신이 남겨 줄 것 또한 아이들에게는 깜짝 선물이 되리라. 제법 두둑하게 쌓인 자신의 재산을 떠올리며 소년은 쓰게 웃었다. 결국,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군.
“자, 이만 잘 시간이구나. 내일부터는 또 일해야지.”
“내일은 서난궁에 가시죠?”
“다과회에 참석하실 비 분들의 최종 명단을 받아야 하니, 어쩔 수 없지.”
태감님의 전언도 전해드려야 하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 소년은 아이들을 다독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다가올 내일의 공포를 알지 못한 채.
의식적으로 무시해온 끔찍한 과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소년은 달콤한 잠자리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