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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65화 (165/314)

환관의 요리사 165화

모든 이에게 이별의 순간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불행한 사고로 일찍 떠나버린 사람들. 친구, 동료. 매어둘 수 없는 야속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 스승님. 그리고 부모님. 소년은 자신이 이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이별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늘 떠나보내는 사람이었다. 친구도, 스승님도. 부모님도. 늘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에 가슴 아파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떠나보내는 사람이 아닌, 떠나가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떠나야만 하는.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 태감을 바라보며 소년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주윤의 말을 떠올렸다.

‘너의 다리와 척추는 뼈가 부러지는 과정에서 비틀린 것이 아니다. 혈도를 점하고 혈맥을 막아서, 신체를 강제로 뒤틀어 버린 것이야.’

본래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기와 피를 강제로 막았으니. 당장 막힌 맥이 터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그 말을 꺼내며 주윤은 자신의 성급함과 아둔함에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나이 어린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알려줘 버렸다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그를 재촉해 소년은 답을 듣고야 말았다.

‘운이 좋다면 십 년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이 나쁘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당장 내일이라도. 그 단정적인 말은 소년의 가슴 속에 조급증을 싹트게 했다. 죽기 전에, 허무하게 스러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많이 남기고 싶었다.

태감이 그를 추억할 수 있도록. 이 머나먼 타향에 홀로 표류하던 그를, 김승조라는 사람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내던진다 한들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살 만큼 살아온 노인인 그에게 죽음은 그리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태감에게 이별을 이야기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자 소년은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꼈다.

지금껏 쌓아 올린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자신의 빈자리가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슬픔으로 다가올지를 알았기에, 소년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이 훗날 더 큰 슬픔으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갑작스럽게 입을 닫은 소년을 보며 의아함을 느낀 태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예? 아아, 좀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하긴, 그렇겠구나. 벌써 새벽이 다 되었으니.”

어느새 하늘에는 번뜩이는 서광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며 새벽을 알리고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맴돌던 공기에서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고 달과 별이 저문 자리에는 어느새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쓸쓸함이 감도는 연회장을 돌아보며 태감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연회가 끝났구나.”

“예. 잘 드셨습니까?”

소년의 의례적인 말에 태감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잘 먹었지. 정말로 잘 먹었다.”

다른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며 태감은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것은 단순히 성대한 연회를 벌여준 것에 대한 감사만은 아니었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소년을 내려다보던 태감은 갑작스럽게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그러십니까?”

“잠깐 손 좀 보여다오.”

멀뚱히 태감의 손을 보던 소년이 퉁명스럽게 이유를 묻자 태감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손을 달라 재촉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태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 손을 가만히 굽어보며 태감은 소년의 손을 쓸어 만졌다. 자신의 보드라운 손과는 달리, 그의 손은 고된 노동으로 투박하게 뒤틀려 있었다.

단단하게 박인 굳은살. 화상과 흉터로 얼룩져 있는 손은 그를 부끄럽게 했다. 자신을 위해 이토록 노력한 손에게, 자신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었을까. 태감은 고개를 저었다.

“많은 일이 있었구나.”

너를 받아들이고, 참 많은 일이 있었어.

꼭 마무리를 짓는 듯한 태감의 말에 소년은 그를 묘하다는 듯이 보며 대꾸했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만.”

“그래. 그렇지. 이런 말은 모든 일을 다 끝낸 다음에, 그때 해야 어울리지.”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올바른 황후가 황제 폐하의 곁에 서고. 나라가 안정을 되찾게 되면.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지난날을 떠올리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으리라.

아직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미래의 일을 꿈꾸며 태감은 무릎을 굽혀 소년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 그 날이 오면, 넌 뭘 하고 싶으냐.”

“예?”

은퇴하면 말입니까?

태감의 말에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그에겐 은퇴 후를 고려할 만큼의 희망도,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답을 기다리는 태감을 위해 소년은 그럴듯하게 꾸며낸 답을 말해주었다.

“그야 뻔하지요.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호오, 그거 좋지. 돈도 있겠다, 시간도 넘치겠다.”

“예, 그동안 못해본 것 다 하면서 살아야지요.”

“삼처사첩도 끼고?”

글쎄요. 생각해 보니 아내는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소년의 현실적인 대답에 태감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래. 그렇지. 아내는 마음 맞는 한 명이면 족하지.”

“그리고 애완동물도 좀 길러보고 싶군요. 고양이도 좋고, 큰 개도 두세 마리 길러볼 생각입니다.”

“애완동물은 지금도 기를 수 있다만?”

원한다면 몇 마리 기르게 해주마.

태감의 관대한 제안에 소년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애완동물 뒤치다꺼리까지 할 시간은 없다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한참 동안 장황하게 자신의 은퇴 계획을 늘어놓은 소년은 이번엔 태감의 은퇴 계획을 물었다.

“태감님은 은퇴하시면 뭘 하고 싶으십니까?”

“나 말이냐?”

“예. 태감님도 언젠간 그만두셔야지요.”

“그래. 그래야지. 나도 언제까지 폐하의 그림자 노릇을 할 수는 없으니까.”

모든 일이 끝나고. 황제의 그림자라는 굴레마저 벗어던지고 나면. 그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며 태감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천천히 그의 소원을 꺼내놓았다.

“만약 그날이 오면, 난 여행을 떠나고 싶구나.”

“여행, 좋지요.”

평생 궁에 감금되어 살아온 그에게 어울리는 소원이었다.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던 소년은 문득 태감의 다음 말이 어떤 것일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면,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

그것은 소년이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자신은 결코, 그에게 긍정적인 답을 들려줄 수 없었으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충동질하는 심장을 무시한 채, 소년은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즐거울 거다. 그때는 상사와 부하가 아닌, 친구로서 가는 거니까.”

“예. 분명 즐겁겠지요.”

분명히, 즐겁겠지요.

* * *

어슴푸레하게 어둠을 밝히던 등도 내려가고 부산스럽게 오가던 나인들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 그 늦은 시간까지도 황제는 호롱불을 켜둔 채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에 의지해 보고서를 읽어내려가던 이내 눈에 손을 얹고는 피로감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저런, 그러다 눈 버리십니다.”

그 목소리에 황제는 그의 사적인 공간에 침입한 무도한 침입자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내렸다, 황제의 앞에 서서 얄미운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심복. 사례 태감 양단이었다.

마치 위문품이라도 된다는 듯이 찻잔과 다관을 들고 온 그를 보며 황제는 코웃음 쳤다.

“아니, 이게 누구야. 짐의 충성스러운 신하, 사례 태감이 아닌가.”

“예, 폐하. 사례 태감 양단이옵니다.”

“허허, 제는 잘 지냈는가?”

얼마나 급한 제사가 있으면 짐의 부름도 무시하고 그리 급히 갔을꼬. 황제의 빈정거림에도 태감은 흔들림 없는 미소로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예. 폐하께서 성은을 베풀어주신 덕분에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 그것참 다행이로군.”

그런데 듣기로는, 그날 그대의 궁에선 고기 굽는 연기가 끊이질 않고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들렸다 하는데, 이는 어찌 된 일인가? 황제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태감은 능청스럽게 답했다.

“예,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자연스레 음식 연기가 피어올랐겠지요. 그리고 여럿이서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지루함을 잊기 위해 담소를 나누기 마련이지요. 그 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울렸나 봅니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다니, 제가 돌아가 주의를 주겠습니다. 태감의 뻔뻔한 대응에 황제는 이를 갈며 그를 흘겨보았다.

황제는 태감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온갖 것을 들먹였다.

“허허, 짐은 자네가 그리 급하게 달려가길래, 궁에 맛있는 거라도 숨겨두고 혼자 먹으러 가는 줄 알았네.”

“하하, 세상에 모시는 임금을 두고 자신의 식욕을 우선시하는 신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자네는 그럴 사람이 아니지.”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태감의 말재간에 황제의 목에는 서서히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황제의 말투가 바뀌기 시작하자 태감은 재빨리 넙죽 엎드렸다.

“단아. 적당히 하자.”

“예. 폐하.”

끓어오르는 화를 참는다는 듯 이를 악문 황제는 굽신거리는 척하는 태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가서 뭘 먹었느냐?”

“괜찮으시겠습니까? 밤이 늦었습니다.”

지금 들으시면 분명, 밤에 잠이 안 오실 텐데. 태감의 얄미운 말에 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배에 손을 얹었다.

저녁 식사로 식탁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를 먹고 밤중 야식으로 튀긴 닭과 오리구이에 물만두 세 접시, 돼지갈비 탕에 전복과 사슴 힘줄 찜과 대추 소가 들어간 찹쌀떡을 을 비우고 난 후였는데도 그의 위장은 여전히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듣지 말아야 할까. 고민하던 황제는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괜찮으니 해 보거라.”

“그러시다면…….”

침중하게 고개를 떨군 태감은 그날의 감동을 되살리듯 몽롱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단연 통돼지 구이였지요.”

“통돼지!”

“예. 이백 근이 넘는 돼지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지요. 오상호가 전부 저의 것이라 하는 순간 전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물어뜯을 수 있다니. 세상에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태감의 말에 황제는 격한 공감을 표했다.

“그래, 두툼한 돼지고기만큼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건 없지.”

“오상호가 저에게 가장 먼저 권한 것은 잘 익은 돼지의 껍질이었습니다. 불그스름한 색이 섞인 밝은 갈색으로 익은 껍질은 튀겨진 것처럼 부풀어 있었고 설탕 과자처럼 빛났지요.”

그것을 씹는 순간 귓가에 울리는 그 짜릿한 전율은!

태감이 말을 멈추고 달콤한 한숨을 토해내자 황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재촉했다.

“그래서 어땠는가!”

“천상의 맛이었지요. 바삭바삭한 껍질에는 매콤한 향신료가 배어있었고 씹으면 달콤한 기름기가 배어 나왔습니다. 입안 전체에 황홀한 감동이 스며들었지요.”

그 순간, 그가 칼을 꺼내 들고 고기를 썰었습니다. 그 고기는 마치 대리석처럼 하얗고 우아하게 빛났지요.

태감의 말에 황제는 자신의 배를 쥐어뜯으며 신음성을 흘렸다. 듣지 말았어야 했다. 이 야밤에, 태감의 말을 듣는 것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하지만 황제는 태감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갈망을 본 태감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손으로 고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손으로, 젓가락을 쓰지 않았단 말인가!”

“예. 오롯이 손가락만으로 고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그 뜨거움과 묵직한 무게감.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고기의 부드러운 탄력과 흘러내리는 육즙. 그것을 입으로 밀어 넣기도 전에 저는 이미 그 고기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황제는 숨을 헐떡이며 손을 내밀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항복의 표시였다. 하지만 태감은 멈추지 않았다.

“통구이도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다음 요리도 참으로 굉장했지요. 통째로 튀겨서 달콤하게 조린 오리고기 하며.”

“흐어억!”

“얇게 썬 소고기를 고추기름에 익힌 수자우육은 참 자극적인 풍미가 있었지요.”

“크으윽, 그만. 그만하게.”

“특히 건전복과 함께 조린 거위발의 감칠맛은-”

결국, 태감의 이야기는 황제가 두 손을 다 들고 나서야 끝이 났다. 숨을 헐떡이며 의자에 늘어진 황제는 야수처럼 울부짖는 자신의 위장에 손을 얹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굶주린 것은 자신만이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꺼낸 태감 또한 똑같이 굶주렸을 터. 황제는 그런 확신을 담아 고개를 들었다.

“자네도 큰일이군. 야밤에 그런 이야기를 쏟아냈으니, 배가 고프겠어.”

“예? 아. 전 괜찮습니다.”

궁에 돌아가면 오상호가 저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오늘 야식은 달콤한 간장 양념에 푹 졸인 족발이라 하더군요.

태감의 화사한 미소를 본 순간 황제는 뇌수를 불태우는 듯한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그를 때려눕히고 연좌궁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을.

“허허. 그래……. 그것참 다행이군. 자네가 주린 배를 부여잡고 긴긴밤을 보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하하,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도 굳이 야식을 챙겨주더군요.”

족발이라. 야밤에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이지요. 말캉하고 쫄깃한 껍질에 부드럽게 결대로 찢어지는 살점. 달콤 짭짤하게 배어든 양념에 너무 과하지 않은 기름기. 달콤한 반주 한잔을 곁들여도 훌륭하겠지만, 야밤에 술까지 마시는 것은 너무 과욕이겠지요?

태감의 말이 이어질수록 황제는 자신의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태감.”

“예, 폐하.”

“사례 태감. 양단.”

“말씀하십시오. 폐하.”

그 말은 태감과 장난을 치고 웃으며 떠들던 친우로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위대한 대제국의 지배자, 백만 금군의 주인. 황제로서 내리는 명령이었다.

어느새 후궁 제일의 권력자이자 그의 그림자로 돌아온 태감에게 황제는 차가운 어명을 내렸다.

“사례 태감 양단. 짐의 명령을 들어라.”

“예. 폐하.”

“그대는 속히 후궁의 상호 오운을 반룡궁의 전속 요리사로 배속시키도록!”

그것만큼은 설령 황제의 어명이라도 불복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황제의 명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감은 무릎을 꿇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에잇, 시끄럽다! 어명이다 어명!”

그렇게 한참을 아옹다옹하며 한참을 다툰 둘은 결국 지루한 소모전을 끝내고 합의점을 찾기로 했다.

“좋다. 그 대신 주에 한번은 오상호를 반룡궁으로 출근시키도록.”

“무리입니다. 폐하. 오상호는 이미 주기적으로 난화비 님, 홍엽비 님, 부여비 님의 궁에 파견을 나가고 있습니다. 이 이상 업무를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름에 한 번은 어떤가.”

“달에 한 번 정도라면 가능할 듯싶습니다만.”

이마저도 크게 양보한 거라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는 태감을 보며 황제는 울분을 삼켜야 했다.

결국, 그 굴욕적인 타협안이 체결한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참 고약한 신하로다.”

“하지만 이만한 충신도 찾기 힘드시겠지요.”

“그래. 그렇지.”

그래서, 오늘 방문한 용무는 뭔가. 황제의 찌르는 듯한 질문에 태감은 웃음을 지웠다. 그의 가라앉은 표정을 보며 황제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폐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듣고 있으니.”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감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온 말은 단 두 마디였다.

“형님.”

그 두 마디 말로 둘의 관계는 완전히 재정립되었다. 군주와 신하가 아닌, 형과 동생의 관계로. 놀랍다는 듯이 그를 보던 황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구나.”

“그동안 말할 기회가 없었지요.”

이유가 없으면, 말하면 안 되는 것이냐. 황제는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삼켰다. 그것은 그의 동생을 지나치게 모욕하는 행위였다.

그 각오가 흔들리지 않도록, 사례 태감이라는 가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하는 동생에게 못난 형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형을 보며 동생은 다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치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형을 보며 동생은, 태감은 말문을 열었다.

“형님.”

그 친구에게 제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시선을 태감의 가슴께로 내렸다.

그러고는 다시 태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혼란에 물든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설마, 여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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