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63화
서늘한 공기를 데우는 화로 안에선 자줏빛 껍질의 감자가 재 위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부지깽이로 화로를 뒤적이며 감자를 굽고 있는 것은 태감이었다. 화롯불에 언 몸을 녹이며 감자를 굽고 있는 처량한 태감의 모습에 소년은 혀를 찼다.
“아니, 지금부터 상다리 부러지게 드실 양반이 지금 청승맞게 감자는 왜 구우십니까?”
태감이 말없이 부지깽이로 재투성이 감자를 한 알 꺼내자 소년은 속이 탄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아니, 돼지 통구이에 사슴 힘줄이며 곰 발바닥이며 비둘기에 메추라기에 석반어 준치 민어 부레 전복 해삼 겨울 굴 제비집까지. 먹어야 할 음식이 지천으로 널려있는데 지금 감자가 입에 들어옵니까?”
“아직은 없지 않으냐.”
“이제부터 만들어야지요. 재료는 준비해 뒀으니.”
한 반나절쯤 걸립니다. 소년의 말에 태감은 검댕이 묻은 입가를 닦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그때까지 주린 배를 참고 있으란 말이냐?”
“왜,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시장이 반찬 되길 기다리다가 굶어 죽겠다.”
거기에 난 이제부터 외궁에서 벌어지는 입동절 행사에 참석해야 한단 말이다.
차가운 의자에 앉아 궁둥이가 저리도록 지루한 행사를 관람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에 태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공직자의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겠지.
“아무 의미도 없는 행사에 참여해서 멍하니 시간을 낭비해야만 하며 추위에 떨어야 하는 그 무의미한 고통을 네가 아느냐?”
“그럼 때려치우시던가요.”
나랏돈 타 먹기 어디 쉽나. 소년의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태감은 퀭한 눈으로 입에 감자를 넣었다.
소금도 없이 잿불에 구운 감자를 씹고 있는 후궁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참으로 진기한 것이었다. 돈 주고도 못 볼 광경을 구경하던 소년은 그 궁상스러움에 결국 패배하고야 말았다.
“하아, 진짜 상관이 아니고 진상이야 진상.”
“진상이라니, 쉬는 시간에도 부하직원과 소통하려 하는 모범적인 상관 아니냐.”
“쉬는 시간에도 간섭하는 꼰대 상관이시겠죠.”
소금도 없이 감자만 먹지 말고, 이거라도 좀 얹어서 드쇼.
소년이 내민 것은 유백색의 신선한 가염버터였다. 마치 보물이라도 받는 것처럼 떨리는 손으로 버터를 받아든 태감은 촉촉한 눈동자로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자, 이렇게 껍질을 벗긴 다음에 십자로 칼집을 넣고. 응? 여기에 버터를 한 숟갈 올리면.”
“버터가…….”
황금빛 감자 위로 버터가 녹아내린다. 코를 찌르는 고소한 유지방의 향기. 그 향긋함은 가장 원초적인 욕망에 불을 지폈다.
지금 먹을까? 아니면 조금 더 녹을 때까지 기다릴까? 버터가 감자에 충분히 스며들 때까지?
긴장으로 떨리는 태감의 손에 소년은 숟가락을 쥐어 주였다.
“버터가 완전히 녹기 전에 드십쇼.”
버터 덩어리가 아직 남아있을 때. 소년의 조언에 태감은 지체 없이 숟가락을 들어 잿가루 묻은 껍질 속에서 뜨거운 감자를 떠 올렸다. 따끈따끈한 황금빛 감자 위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유백색 버터.
그것은 상아와 황금을 조각해 만든 극상의 예술품과도 같았다. 그 어떤 보석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찰나의 예술품.
열기 속에서 녹아드는 버터를 보며 태감은 시간을 잡아둘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필멸성을 느꼈다. 형태 있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진다. 그러나, 그 순간의 감동은 혀끝에서 영원히 기억될 테니.
감자를 입에 문 태감은 구워진 감자의 뜨거움과 버터의 차가움이 혀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을 느꼈다.
열기와 냉기는 춤을 추며 점차 부드럽고 푸근한 따뜻함으로 누그러졌다. 그 다정한 온도가 입안을 채우는 동안 콧속 깊숙한 곳에선 감자에 배어든 숯 향과 유지방의 고소한 향기가 패권을 다투었다.
콧속을 맴도는 향기에 집중했던 태감은 어느새 녹아든 버터가 감자와 완전히 뒤섞인 것을 느꼈다.
포슬포슬한 감자를 촉촉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버터. 극도로 농축된 유지방의 고소함이 감자를 감싸 안으며 입안에 소박한 전원의 기쁨을 선사했다.
은은하게 발끝부터 스며드는 작은 감동. 그것은 사소하기에 더욱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끄러미 태감을 보고 있던 소년은 부지깽이를 집어 화로를 쑤셨다. 잿가루가 피어오르며 불똥이 튀어 오르자 내면의 황홀감에 귀를 기울이던 태감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허기는 때우셨으면 이제 일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안양비의 식사를 차리겠다고 한 일 말이냐.”
“예. 솔직히 제가 억지로 잡은 약속이니, 탐탁지 않으시면 없던 일로 하지요.”
감자를 우물거리며 잠시 말을 멈추었던 태감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내가 알려준 정보로만 안양비를 접했을 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지. 이번 기회에 보고 오거라.”
적과 싸우려면 우선은 적을 알아야 하는 법. 네 눈으로 직접 보고 오거라.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배신할 거란 가능성은 조금도 계산하지 않은 태감의 담담한 허락에 소년은 농담하듯이 말했다.
“그러다가 안양비 님의 매력에 빠져서 배신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소년의 말에 태감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조롱의 미소를 지었다. 검댕이 묻은 그 조소마저도 마치 먹으로 그린 한 폭의 미인도와 같아 소년은 깊은 불쾌감을 느꼈다.
“글쎄……. 안양비에게 매력으로 질 것 같지는 않구나.”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소년이 부들거리며 패배감을 느끼는 동안 감자로 시선을 돌리던 태감은 저 멀리서 긴 봉에 돼지를 매달아 짊어지고 오는 장소와 이삼을 발견했다.
“돼지가 왔구나.”
“음? 아아, 벌써 왔나.”
주방으로 들어온 이삼과 장소가 바닥에 돼지를 내려놓자 육중한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작고 귀여운 새끼돼지가 아니었다. 제법 살집이 튼실하게 붙고 지방이 두툼한 다 큰 돼지였다. 태감이 감격에 찬 시선으로 돼지를 보자 소년은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한 200근(120㎏) 정도 될 겁니다.”
“200근이라. 대단하구나.”
“다녀오실 때쯤이면 딱 좋게 익어있을 겁니다.”
한번 불에 그슬러 털을 제거하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 돼지는 우선 굽기 전 칼집을 넣고 밑간을 해야 했다.
혈옥비수를 꺼내든 소년이 배 쪽 살이 두꺼운 부분과 갈비뼈 쪽에 길게 칼집을 넣자 태감은 흥미롭다는 듯이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호오, 등 쪽에는 칼집을 넣지 않느냐?”
“등 쪽은 어느 정도 고기가 익은 다음에 칼집을 넣습니다. 그래야 껍질 안쪽에 고여 있는 기름이 껍질을 튀겨서 바삭바삭해지거든요. 그다음에 칼집을 넣어서 기름을 빼내고 다시 굽지요.”
칼집을 다 넣으면 양념을 만든다. 파 흰 부분과 생강을 다지고 거기에 소금과 산초가루, 회향 가루, 초과 가루에 간장. 요리 술을 섞은 다음 잘 개어 칼집을 넣은 부분에 잘 스며들도록 골고루 발라준다.
“자, 이제 사십 분 정도 양념이 배게 재워두고, 그동안 마당에 숯불을 피워 놓자꾸나.”
장소와 이삼이 숯불을 피우러 간 동안 소년은 고기를 끼울 꼬챙이를 가져왔다.
꼭 이지창처럼 두 개로 갈라진 모양의 꼬챙이는 두 개를 준비하는데, 이는 한쪽으로만 꽂아 돌리기엔 고기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앞다리 쪽과 뒷다리 쪽. 양방향으로 꼬챙이를 끼워 고정한 다음 고기가 오그라들지 않도록 가로 방향으로 가는 쇠꼬챙이를 여러 개 찔러 넣는다.
자기 몸무게의 두 배가 훌쩍 넘는 고깃덩어리를 가지고 씨름한 소년은 축축하게 흘러내린 땀을 훔치며 허리를 폈다.
“이제 이걸 통째로 굽는단 말이지…….”
“예, 직접 불이 닿지 않도록 걸어서 천천히 구운 다음, 기름을 빼고 다시 한번 굽지요. 다 구워지면 그럴듯할 겁니다.”
그러니까 후딱 다녀오십쇼. 소년의 말에 태감은 결연한 의지를 다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최대한 빨리 다녀오마. 어떻게 해서든!”
* * *
때때로, 인간에겐 그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돌아가야만 할 때가 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례 태감님. 제가 좋은 곳을 알아두었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미안하오. 초 장군. 내 급한 볼일이 있어서.”
정치적 우군이 은밀한 자리에 초청할지라도.
“흘흘흘, 오랜만에 뵙는군요. 태감님. 오늘은 좋은 날이니, 과거의 은원은 잠시 잊고…….”
“미안하오. 사례 태감. 내가 뺄 수 없는 약속이 있어서!”
정적이 잠시나마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라도.
“커흠, 양 태감. 긴히 할 말이 있네.”
“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오늘 제사가 있어서!”
“뭐?”
설령 황제의 부름이 있을지라도.
오늘만큼은 포기해야 했다. 오늘만큼은, 돌아가야 했다.
그의 궁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그는 돌아가야 했다. 체면도 잊고 달음박질친 태감은 숨을 헐떡이며 연좌궁의 대문을 밀었다.
경첩이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 너머에서 진한 고기 향이 훅 풍겨왔다.
“오셨습니까? 마침 고기를 내리고 있던 참인데.”
소년의 인사에 대답하는 것도 잊고 태감은 말없이 돼지 통구이를 내려다보았다.
그에 맞는 접시나 쟁반을 찾을 수 없어 식탁 위에 넓은 나뭇잎을 깔고 그대로 올린 통구이는 감격스러울 만큼 웅장했다.
칼집이 들어간 껍질은 중후한 갈색으로 빛났고 끓어오른 피하지방에 튀겨져 부풀어 있었다. 칼집 안쪽으로 엿보이는 실팍한 살점. 식탁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그 압도적인 존재감. 돼지 통구이를 눈앞에 두고 태감은 천천히 시선을 소년에게 돌렸다.
“이 정도 돼지면, 보통 몇 인분 정도가 나오지?”
“글쎄요. 한 서른 명?”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은?”
태감과 소년. 장소와 이삼에 위정. 고작 다섯 명뿐이었다.
다섯 명이 돼지 통구이를 먹어치운다. 저 바삭해 보이는 껍질과 기름진 고기를. 오직 다섯이서 독점하는 것이다.
광기가 끓어오르는 듯한 태감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소년은 코웃음 쳤다.
“뭔가 잊으신 것 같은데.”
명절에, 고작 통구이 하나는 너무 소박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태감은 천천히, 벅차오르는 감정에 심장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식탁을 빈틈없이 채운 산해진미. 소년이 준비한 만찬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먹을 사람은, 고작 다섯이었다.
“처음이다. 음식을 보며,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음식을 보며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옆에 선 소년이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시작할까요.
고개를 숙인 태감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래, 시작하자꾸나.
소년이 칼을 뽑아 들자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운석을 벼려 만든 칼이 번뜩이며 껍질을 건드리자 낙엽을 밟는 듯한 바스락 소리가 울렸다.
“역시, 첫 시작은 껍질이지요.”
빠자작, 빠작.
껍질을 자르는 소리는 마치 살얼음을 깨는 것처럼 경쾌했다.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길게 가른 소년은 칼집을 넣은 선을 따라 껍질을 떠냈다.
“자, 드셔보시죠. 제일 맛있는 ‘첫입’입니다.”
칼날 위에 늘어선 껍질을 검지와 엄지로 집어 든 태감은 경건한 태도로 그 첫입을 맞이했다.
앞니 사이에서 껍질이 부서지는 순간 태감은 그 소리가 이빨을 타고 몸 전체에 울리는 것을 느꼈다.
“어쩜 이리도 바삭할 수가.”
윗니와 아랫니의 사이에서 부서지는 순간 그의 입속에선 천상의 합주가 울려 퍼졌다. 기름이 배어 나오고, 껍질 위에 뿌려진 매운 향신료가 달콤한 기름기에 녹아들어 혀를 적셨다. 맵고, 자극적이었으며. 황홀했다.
그 강렬한 여운에 태감이 전율하는 동안 소년은 칼을 깊숙하게 넣어 살점을 썰어냈다.
긴 시간 간접 열로 촉촉하게 익은 고기는 마치 순결한 대리석처럼 하얀 우윳빛이었다.
씹는다면 분명 보드랍겠지. 촉촉하고, 육즙도 아주 많을 거야. 태감의 목울대가 움찔한 순간 소년이 두툼한 고기 조각을 태감에게 건네었다.
“항정살이라고 목이랑 어깨 쪽에 붙은 특수부위인데, 드셔보시죠.”
“호오, 아주 탄력 있어 보이는구나.”
태감은 굳이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 엄지와 검지. 기름이 번들거리는 두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고기를 집어 든 그는 목을 뒤로 젖히고 한입에 고기를 밀어 넣었다.
송곳니가 물어뜯고, 앞니가 뜯었으며. 어금니가 짓이겼다. 흥건하게 배어 나온 육즙이 목구멍으로 흘러내린다. 자신이 지금 고기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듯한 맛. 그 순간 태감은 젓가락이라는 도구의 존재를 잊었다.
이곳에 격식과 예절을 중시하는 문명인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 자리에 선 이들은 오직 고기를 물어뜯는다는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은 이들이었다. 소년이 고기를 썰어냈고, 모두가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그들의 연회는 석양이 지고 별이 뜨는 시간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장소와 이삼이 먼저 자러 들어가고, 위정 또한 취기가 올랐다는 핑계를 대며 들어가자 남은 것은 태감과 소년, 단둘뿐이었다.
자리를 뜨는 위정의 등을 보며 술잔을 기울인 소년에게 태감이 술병을 들이밀었다.
“자, 술 받거라.”
“예.”
태감의 술을 받아마신 소년이 태감의 잔에 술을 따르고, 태감이 다시 소년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렇게 몇 순배가 도는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소년의 차례가 돌아오고, 태감이 병을 집어 들자 소년이 잔에 손을 얹었다.
“마시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우선 이유부터 좀 들읍시다.”
“이유? 마시는 이유?”
“위정 나으리께 자리를 피해달라 하신 이유 말입니다. 나으리께서 들으셔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소년의 말에 태감은 섭섭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냥 너와는 한 번도 단둘이서 술을 마신 적이 없으니, 위정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한 것뿐이다.”
“생각해 보니 태감님과 술을 마신 적은 거의 없군요.”
“기억하느냐.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나와 함께 술 대작하기로 한 거.”
서운하다는 듯이 묻는 태감의 말에 소년은 쓴웃음을 받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태감이 가득 따라준 벌주를 단숨에 들이킨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지요. 정치판을 떠나 은퇴하는 날, 함께 술을 마시자고 약속한 것.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날 서로 숨겨두었던 비밀을 말해주기로 한 것도. 기억하느냐.”
“기억하고 말고요.”
그런데 너는 이미 비밀을 말해줘 버렸지. 나는 네 비밀을 알고 있는데, 너는 모르고 있지 않으냐.
태감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볼을 발갛게 상기시킨 태감은 후련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건 불공평하지, 그러니까.”
나도 알려주마. 내 비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