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56화
우아한 촛대 위로 불꽃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불꽃의 춤을 멍하니 응시하던 루클루스 대사는 시선을 위로 돌려 불꽃과 함께 춤추는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불꽃을 따라 그림자가 춤을 춘다. 어두운 벽면을 타고 기어올라, 천장 위에서 부풀어 오른 그림자는 마치 짐승과 같았다.
수십 개로 갈라진 혀와 가늠할 수 없는 턱. 그림자는 마치 사려 깊은 짐승인 양 먹잇감이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조용히, 꿈결같이 다가와 집어삼켰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우어 대사의 눈동자는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흔들리는 그림자에 자신의 일그러진 망상을 투영하는 것을 그만둔 그는 답답하게 조여오는 예복의 목 단추를 두어 개 풀었다.
품위와 예절을 대신해 선택한 자유는 서늘하고도 달콤했다.
그림자가 춤을 춘다. 짐승의 춤이었다. 그림자를 쫓으며 루클루스 대사는 자신의 상태를 판단했다.
루클루스, 지금 당신은 정상입니까?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에게 답했다.
미쳤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반쯤 미쳤고, 앞으로 완전히 돌아버릴 예정입니다.
그러하여 본 법정에서는 루클루스가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심신상실의 상태, 금치산자임을 선언합니다.
사유는 오늘 만찬이 지나칠 만큼 맛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뛰어난 법관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에게 금치산자 판정을 내린 것에 지극히 만족한 대사는 고개를 들어 식탁 위의 군상들을 흘겨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돼지처럼 꽥꽥 되는 이.
황홀경에 취해 신을 찬미하는 이.
요리를 표현할 단어를 찾아 헤맨 끝에 자신의 언어능력에 절망한 이.
별의별 군상이 웃고 떠들고 울고 짖으며 만찬장을 혼돈의 밑바닥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신 루클루스 대사는 의식을 나누어 별개의 존재로 탄생시켰다.
자신이나 자신이 아닌, 객관성을 띤 자신. 그것이 의식의 바닥으로 침잠했다. 관념과 기억이라는 형태의 정보들이 가라앉아 있는 바다.
모든 것을 수렴하는 그 밑바닥에서 루클루스 대사는 처음, 주방장이 입실할 시점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볼품없는 주방장이었지. 다리는 절고, 허리는 굽어 있었어. 얼굴은 까마귀처럼 비열하고 불길했지. 모두가 그에게 불신의 시선을 보냈어. 아니, 단장님은 마치 그를 아는 듯했어.’
하지만 그 어린 주방장은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의 수완을 증명해 보였다.
의무감에 만찬장에 참석해 우울한 얼굴로 앉아만 있던 하룬 알 라시드 대사에게 신의 축복을 선물한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도대체 어떻게 안달루스 정교의 사제를 초청한 걸까? 그것도 축복을 내일 수 있는 아홉 가문 출신의 신관을. 루클루스는 그 순간 소년이 지은 웃음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뛸 듯이 기뻐하는 하룬 대사에게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만찬을 담당하는 주방장으로서, 당연히 다해야 할 도리였습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 겸손하고 담담한 반응에 대사들은 소년의 수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어리고, 몸은 불편하지만. 눈앞의 어린아이는 황실이 선택한 주방장이 될 자격이 있었다. 그토록 치밀하고 배려심 넘치는 선물을 준비했을 줄이야.
‘그다음에, 식전 기도가 끝나고 식전주와 가벼운 전채요리가 나왔지.’
맑고 투명한, 매실이라는 과일로 담근 과일주. 맑은 갈색의 고상한 빛깔에 향기는 상큼하고 맛은 달았다.
그 맛을 떠올린 순간 루클루스는 반사적으로 침샘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 상큼한 식전주로 입맛을 당기고 나자 검은 접시에 흰 사과꽃으로 장식한 우아한 전채요리가 나왔다.
꿀을 발라 구운 광동식 돼지고기구이. 찻잎과 함께 쪄 차게 식힌 닭고기 냉채. 산초나무로 훈연한 사슴고기 햄과 소금에 절인 오리 알의 노른자. 사품의 전채요리. 그 요리를 떠올린 순간 루클루스는 머릿속을 불 싸지르는 통증과도 같은 환희를 느꼈다.
농후한 꿀의 향기, 차갑고 쫀득한 닭고기의 차진 식감, 그을린 훈연향, 노른자의 농후한 맛.
네 가지 맛이 교차하며 혀를 희롱하는 동안 두 번째 요리가 나왔다.
통통한 닭을 살짝 튀겨낸 다음 밤과 함께 조려낸 요리. 그 푸근하고 온화한, 부담 없는 맛은 짜릿한 감칠맛에 긴장한 대사들의 혀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그래, 오늘 만찬의 요리는 이 정도 수준이구나. 정말 훌륭해, 젊은 나이에 대단한 솜씨야.
대사들이 아낌없는 칭찬을 바치는 동안 주방장은 그들의 혀를 공격할 다음 요리를 준비했다.
긴장감을 풀어버린 혀를 공격하는 폭력적인 감칠맛의 요리가 연속적으로 쏟아졌다.
불도장이라는 이름의 그윽한 수프. 큰 농어찜과 진하게 조려낸 전복과 거위 발 요리.
한 가지, 두 가지. 접시가 쌓일수록 이성은 희미해졌고 혀는 요리에 취했다. 아득해지는 기억의 흐름 속에서 현실로 돌아온 루클루스는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준비된 것인지, 그의 앞에는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는 큼직한 굴 튀김이 준비되어 있었다. 접시를 들여다본 루클루스는 소년을 향해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신선한 굴을 전분 옷을 입혀 바싹하게 튀겨낸 요리입니다. 소스는 과실주를 진하게 조려낸 것이니, 기호에 맞게 찍어 드시면 됩니다.”
자, 식기 전에 드시죠. 소년의 말에 루클루스는 홀린 듯이 포크를 들어 올렸다.
바싹하게 튀겨진 표면을 깨물면 튀김옷 속에서 뜨겁고 향긋한 굴의 즙이 쏟아졌다.
그 짭조름함, 말캉하게 씹히는 식감. 그 속에서 은은하게 스며든 향신료의 향기. 그 맛에 빠져들수록 머릿속을 올리던 통증은 둔감해지고 황홀한 기쁨만이 남았다.
맛있었다. 너무나도. 지나칠 정도로. 그것이 원인이었고, 그것이 문제였다. 점점 밀도를 더해가는 만찬장의 광기를 보며 루클루스는 고개를 돌렸다.
낙원의 땅을 밟은 것처럼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횡설수설하는 대사들의 시중을 들며 소년이 웃고 있었다.
“아아, 굴이여. 바다의 젖이여. 그대는 어찌 이리도 달콤한가, 나를 살찌우고 강건하게 하는 어머니의 은혜여!”
“하하, 굴은 영양가도 많지요. 더 드시겠습니까?”
겸손한 자세. 은은하고 기품있는 웃음. 짓궂지만 천박하진 않은 농담. 풍부한 상식과 섬세한 배려. 소년은 참으로 훌륭한 요리사였다.
발작적으로 시를 읊는 빌헬름 후작에게 맞장구를 치는 소년의 입을 루클루스는 말없이 응시했다.
매부리코 아래로 가늘고 길게 찢어진 미소. 얇은 입술과 가지런한 치아. 새빨간 혀. 그는 우리를 타락시키기 위해 내려온 악마일까. 아니면 우릴 미식의 천국으로 구원하기 위해 온 천사일까.
그는 포크를 들어 접시 위의 마지막 굴튀김을 찍었다. 포크를 타고 전해지는 탱글탱글한 굴의 감촉. 곧 어금니를 희롱할 그 탄력에 손끝을 떤 그는 조심스럽게 준비된 소스에 튀김을 찍었다.
튀김옷이 눅눅해지지는 않게, 하지만 맛이 충분히 배도록 적절히.
달콤한 과실주를 졸여 만든 상큼한 소스는 굴의 농후한 감칠맛 사이에 스며들어 감미로운 조화로 입안을 채웠다.
“아아, 맛있구나. 정말로 맛있어.”
행복감이 골수에 차오르는 순간, 루클루스가 떠올린 것은 그가 평생을 탐독해온 경전의 한 구절이었다.
악마는 천사의 얼굴로 찾아와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으로 인간을 타락시킨다.
그것은 늪과도 같아 발을 담그면 빠져나올 수 없으니. 지혜로운 이라면 처음부터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이시여, 그렇다면 그는 악마란 말입니까. 저는 그의 요리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 황홀함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그가 내미는 달콤한 타락에 취하고야 말았습니다. 신이시여. 아아.
불길한 까마귀와도 같은 소년의 눈동자가 가늘게 휘어진다. 악마의 만족스러움인지, 천사의 동정심인지 모를 기묘한 감정이 담긴 눈동자.
그 눈동자가 루클루스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사님, 다음 요리가 준비되었습니다.”
메추라기는 좋아하시나요? 소년의 질문에 루클루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만찬장에선 죄악과 환희가 끓어 올랐다. 그토록 고결하고 품격있었던 대사들이 쾌락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만찬장의 어느 곳을 둘러 보아도 처음의 품위 있었던 그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아편굴의 한 귀퉁이를 가져다 놓은 것만 같은. 퇴폐와 향락이 퇴적되어 부패하는 공간.
그 한가운데에서 소년은 자신의 업보를 굽어보았다. 추락한 천사와도 같은 얼굴로 신이 아닌 음식을 찬미하는 백작.
기나긴 굶주림 끝에 찾아온 천국의 맛에 환각을 보기 시작한 하룬 대사. 신에게 용서를 구하기 시작한 루클루스 대사.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본 소년은 폐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네.
이야. X 됐네, 이거.
대사들의 시선을 피해 잠시 주방으로 도피한 소년은 자신이 밤새도록 준비한 요리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오늘의 만찬이 성공적일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메뉴는 그가 홍콩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요리사로 일하던 시절, 청와대의 특별 요청으로 한중 정상회담의 만찬을 준비했을 당시의 메뉴로 구성하였고 소품은 전부 주문제작 한 것들이었다.
옥으로 만든 쇼 플레이트는 안휘성의 명장에게서. 포크과 나이프 등의 은제 커틀러리는 백윤에게 직접 부탁한 것들.
접시들은 다관 막심 소속 도공들의 도움을 빌려 준비한 것들이었다. 서방에서 오신 손님들이 편안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먼 길 오신 손님들이 만족하실 수 있도록.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특별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추억하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준비했건만.
“너무, 너무 열심히 해버린 건가.”
너무 열심히 준비해 버린 것이다. 오랜만에 순수하게 요리에만 열중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워서. 정치도, 권력도, 간사한 손익의 계산도 없이. 남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행복해서. 유쾌해서. 기뻐서. 신나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과하게 정성을 다해버린 것이다.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좋은 요리,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일념에만 열중하여 손님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주의함에 자책하던 소년은 문득 치밀어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태감님이었다면.”
태감님이라면 괜찮았을 텐데. 순간 그런 생각이 치밀어 오르자 소년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못났구나. 김승조. 정말로 못났어. 너의 부족함 때문에 손님이 화를 당하셨건만, 누구를 탓하느냐.”
태감이라면 소년의 전력을 버텼을 것이다. 긴 시간 소년의 요리를 먹고 즐기며 그에게 익숙해진 태감이라면. 견고하게 다져진 그의 이성은 소년의 요리를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모신 손님은 태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응당 그들을 배려했어야 할 것 아닌가.
멍청한 놈. 나잇값도 못 하는 놈. 멍청한 새끼.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나아진 점이 없어.
허망한 듯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도마 위에 꽂아둔 칼을 뽑아 들었다.
더는 자책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아직 만찬은 끝나지 않았고, 그의 요리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손님들을 대접해야 할 책임이 있는 요리사였다.
“요리로 생긴 매듭은 요리로 풀어야 하는 법.”
요리에 취해 광기에 젖었다면, 그 광기를 해소하는 것 또한 요리여야 할 것이다.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요리를 검토한 소년은 그들의 광기를 누그러뜨릴 만한 요리를 한가지 떠올렸다.
화려하고 강렬한 요리의 자극을 누그러뜨릴, 소박하고 부드러운 요리를.
“그래, 오랜만에 영혼을 위한 치킨 수프를 끓여볼까?”
중국식이지만 말이지.
아궁이에 철과를 올린 소년은 물을 펄펄 끓여 내장을 제거한 닭과 돼지 사태 살, 생강과 대파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뼛속에 고여있던 피와 불순물이 빠져나와 거품에 엉기기 시작한다.
누린내와 잡맛의 원인이 되는 거품들을 걷으며 소년은 국물이 맑아진 순간 아궁이에서 불을 빼고 고기를 건져냈다.
건져낸 고기는 찬물에 깨끗하게 씻어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다시 냄비에 넣어 은근한 불에서 끓인다.
확 끓어오르면 국물이 탁해지기 때문에 불 조절에 유의하며 천천히, 끈기 있게 국물이 우러나기를 기다린다.
말갛게 우러나온 국물은 연하게 소금 간을 한 다음 파를 조금 띄운다. 그것으로 끝. 더 이상 더할 것도, 장식할 것도 없었다. 그럴듯한 건더기도 없이 파를 흩뿌리기만 한 간소한 탕.
이것이 소년이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만찬의 마지막 마무리였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국자로 탕을 떠 입술로 가져갔다.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 속으로 탕이 흘러 들어간다. 결코, 완벽한 탕은 아니었다.
입술이 쩍 들러붙을 만큼 진한 것도 아니었고 혀가 아릴 만큼 농후한 감칠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 탕은 편안했다.
부담스럽지 않고, 강렬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았다. 익숙하고 무난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가슴을 풀어지게 만드는 맛.
말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은 소년은 주방 문을 발로 걷어차고 만찬장으로 향했다.
일렁이는 그림자와 함께 음식의 여운에 잠겨 늘어져 있던 대사들이 소년을 발견하고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탁하게 물든 눈동자 속에 열망을 가득 품고서.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소년에게 다가온 백작이 그의 좁은 어깨를 움켜쥐었다.
한때 찬란한 별빛과도 같이 빛나던 그의 푸른 눈동자는 더 이상 광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오, 선생님, 주방장님. 우리의 신이시여! 이번엔 저희를 어떤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겁니까!”
그의 입에서는 달콤한 술 냄새가 풍겼다. 나른한 듯 자신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기대오는 백작에게 소년은 근엄한 표정으로 엄숙히 선언했다.
“잔치 끝났습니다. 해장국이나 드시고 정신 차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