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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51화 (151/314)

환관의 요리사 151화

야외 만찬장에 모인 대사들을 둘러본 젊은 백작은 식전 기도를 주관해야 하는 자신의 숙명을 비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각 모시는 신도, 배운 교리도 다른 열두 명의 종교인들 앞에서 기도를 주관한다는 것은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아아, 위대한 태양, 빛나는 아버지시여. 고작 사제 서품을 받은 저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옵니다.”

종교가 다르다고는 하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백작보다 위계가 낮은 성직자는 없었다.

태양정교로 치면 추기경과 같은 위계인 대학사 자리에 오른 안달루스 정교의 하룬 알 라시드 대사. 주교의 자리에 있는 날개십자회의 바우어 대사. 개중에는 수도원의 원장 자리를 역임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쟁쟁한 종교인들 앞에서 고작 사제에 불과한 백작이 식전 기도를 주관해야 한다니!

믿음도, 신학적 지식도 미숙한 백작은 매 순간 위장이 뒤집히는 긴장감을 참아야만 했다.

혹시 내가 말실수를 하면 어쩌지? 멋모르고 태양정교식 기도문을 읊었다 대사님들이 불편해하시면? 서로 교리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으면 대형 사곤데.

밤마다 고통과 불안 속에서 손톱을 물어뜯었던 젊은 백작의 선택은, 각자의 주관에 맡기자는 단순한 해답이었다.

“그럼, 식전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백작이 품에서 황금 아뮬렛을 꺼내 손에 쥐자 대사들 또한 각자의 종교를 상징하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백작은 기도의 시작을 알렸다.

“만신전에서 저희를 굽어살피는 제신들이시여, 저희의 앞날에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짧은 인사말을 끝으로 백작이 자리에 앉자 대사들은 각자의 기도문을 외우며 식전 기도를 올렸다.

대사들의 안색을 살핀 백작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태양, 빛나는 우리의 아버지시여. 내려주신 은총과 따스한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오늘도 당신의 은총 아래에 여문 곡식들로 배를 채우고, 당신의 은혜로 내린 단비로 목을 축입니다.’

엄숙하고 조용한 기도가 끝나자 비로소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온화하고 악의 없는 농담이 오가는 동안 급사들은 큰 나무 도마에 치즈와 짭짤한 생햄, 소시지 등을 가득 담아 상에 올렸다.

“호오, 이건 오를리앙 지방의 생햄이군요. 단장께서 가져오신 건가요?”

지방은 노르스름하면서 윤기가 흐르고, 고기 부분은 최상품 석류석처럼 붉은빛으로 빛나는 생햄은 우아한 자태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에 치즈는 루클루스 대사께서 준비하신 오레이우스 치즈입니다. 오오, 이 달큰한 견과류 향기, 황홀하군요.”

“역시 미식가로 유명하신 단장님다우십니다. 이렇게 좋은 안줏거리가 있는데, 술은 조금 아쉽군요.”

물에 희석한 증류주를 보며 루클루스 대사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백작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급사에게 손짓했다.

“사실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본국에서 포도주를 한 병 가져왔습니다.”

“호오, 법국의 포도주는 참으로 일품이지요.”

“미식가로 유명하신 단장님이 고르셨으니,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법국의 포도주는 피처럼 붉고 맑으며 향은 달고 맛은 묵직한 것이 특징이었다. 거기에 백작이 가져온 포도주는 축복받은 해에 만들어진, 그야말로 극상의 물건이었다.

“호오, 축복받은 06년도의 포도주, 그것도 샤를마뉴 지방의 것이라면.”

“참으로 대단하군요. 그런 포도주를 여행길에 맛볼 수 있을 줄이야!”

기대감이 병에 쏠리는 것을 느끼며 백작은 천천히 병을 열어 디켄더에 포도주를 따랐다.

감미롭게 병을 따라 흐르는 자줏빛 액체. 그 고아한 한 모금의 희열이 최상의 맛이 나도록 신중하게 다룬 백작은 코끝으로 살짝 향을 느꼈다.

“음…… 어? 어라?”

“허허,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백작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을 본 빌헬름 후작은 무례를 사과하며 디켄더를 받아들었다.

극상의 황홀함을 약속할 그윽한 향기 속에선 희미하게 떨떠름한 곰팡이 향기가 났다.

“이런, 역시. 아무리 축복받은 해의 힘 있는 포도주라도 긴 여행길은 힘들었나 봅니다.”

여행길 동안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해 코르크 끝부분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그 향기가 그대로 포도주까지 배어든 것이다.

울상을 짓는 젊은 백작의 표정을 본 빌헬름 후작은 이내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각자의 잔에 포도주를 한 모금씩 따랐다.

“그렇다 해도 축복받은 해의 포도주를 그냥 놓칠 수는 없지요.”

“이런 여행길에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지요.”

“사실 전 포도주면 방금 만든 것부터 식초가 되기 직전의 시큼한 것까지 가리질 않습니다.”

백작의 기분이 상할까 너스레를 떠는 대사들의 잔에 포도주를 부어준 빌헬름 후작은 마지막으로 하룬 대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대사께서는…….”

“교리에 술은 금지된 음료인지라.”

“예, 안달루시아 정교는 술을 금지했었지요. 대신 맑은 물은 어떠신지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모두의 잔에 음료가 채워지자 본격적으로 요리사 상에 올랐다. 곰팡내 나는 퀴퀴하고 딱딱한 건빵이 아닌 밀가루를 새알과 샘물로 반죽해 뜨거운 번철에 구워낸 보드라운 팬케이크.

소금에 절인 양배추와 오이. 겨자와 향신료 가루 약간. 숯불에 구워 기름을 뺀 훈제육 듬뿍. 그리고 솜씨 좋은 이들이 숲에서 잡아 온 사슴 꼬치구이와 야생조류 스튜.

“이야, 정말 호사스러운 연회군요.”

“조금 아쉽습니다. 제대로 숙성시켰다면 더욱 부드럽고 감칠맛이 났을 텐데.”

사슴의 가슴살을 받은 백작이 질깃질깃한 고기를 씹으며 말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허허, 그럼 몇 마리는 마차 지붕에 매달아 둘까요?”

“오오,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제국의 시민분들께 안 좋은 인상이 박힐 것 같으니.”

뜨거운 기름과 고기가 넘쳐흐르는 연회의 한구석에서 하룬 대사는 조용히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탄 수수께끼의 곡식 가루. 말라비틀어진 육포 두 조각. 그리고 본국에서 준비해 온 얇고 버석거리는 종잇장 같은 빵 몇 장. 조용히 손을 모은 대사는 경건한 모습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아무리 교리라지만…….”

젊은 백작의 감탄에 고개를 돌린 하룬 대사는 빙그레 웃었다.

“어쩔 수 없지요. 이미 삶의 일부분이고, 모든 것이 되어 버렸으니.”

“그런데 하룬 대사께서도 안달루스 정교의 성직자 신분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이 음식에 축복을 내리신다면……. 젊은 백작의 질문에 대사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축복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짐승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덕을 쌓아주는 행위는 오직 선택받은 신관만 할 수 있는 엄숙한 행위지요.”

본국에서는 선택받은 혈통의 가문이 대를 물려가며 제를 주관하지요. 저에게는 권한이 없습니다. 신께서 하락하지 않으셨지요.

대사의 정중한 거절에 백작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억지로 강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후궁에서는 같은 주제로 태감과 소년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안달루스 정교의 골치 아픈 점이다. 신관 중에서도 특별한 자격이 있는 신관만이 도축할 수 있기에 함부로 고기를 도축하지도, 먹지도 못하지. 아니, 고기뿐만이 아니라 생선, 달걀도.

“거기다 그, 라샤드 국인가? 거기 국교라면서요. 거 참 골치 아픈 동네일세.”

소년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젓자 태감은 공감한다는 듯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다. 안달루스 정교는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창시된 종교야. 네가 먹는 가축이 먼저 죽은 너의 아비, 친구일 수 있는데 어찌 무참하게 도살하여 그 살점을 취할 수 있겠느냐?. 이런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율법이니 어기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신관이 도축하면 괜찮답니까?”

“괜찮다더구나.”

정확히 설명하자면 안달루스 정교에 대한 배경 지식을 설명해야 해서 귀찮은데…….

태감이 목이 까끌거린다는 듯 헛기침을 하자 소년은 주방에서 달달한 주전부리를 가져왔다. 달콤한 떡과 과자를 입에 넣은 태감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달루스 정교는 최초에 신에게 선택받은 구원자와 아홉 제자로부터 창시된 종교다. 정교의 경전 또한 구원자가 아홉 제자를 깨우치게 하기 위한 가르침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지.”

그 말을 들은 소년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어딘가 익숙한데…….

“뭐, 종교인이 될 것은 아니니 자세한 내용은 넘겨두고.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아홉 제자의 혈통을 내려받은 가문의 신관만이 짐승의 도축과 제사를 주관할 자격이 있다. 이 말이다.”

그들에게 도축은 단순히 고기를 먹기 위해서 죽이는 행위가 아니다. 축생의 삶을 끊어주고, 영혼의 덕을 쌓아 더 좋은 내세로 보내주는 구원인 셈이지. 그쪽 사람들은 그 행위를 신께 허락을 구하는 일이라고 표현하더구나.

“그러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아홉 성인의 피를 이은 성스럽고 고결한 신관만이 가축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태감의 말이 끝나자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돌겠네! 진짜. 아니, 제국 한복판에서 그 허가받은 신관 나으리를 어디서 구한답니까?”

“꼭 준비할 필요는 없다. 그쪽도 사정이 그렇다 보니 융숭한 대접을 기대하지는 않을 거야. 그냥 시원한 물 한 잔만 준비해 주면 만족할 거다.”

그 말에 소년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기껏 오신 손님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간다고? 이는 요리사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다.

오만한 자존심으로 타오르는 소년의 눈동자를 보며 태감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래. 너라면 그럴 반응을 보일 줄 알았지.”

“사람 놀리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방법이 있으시죠?”

“물론. 있고말고.”

사람이 없으면, 사람을 구하면 되는 일 아니겠냐? 태감의 자신만만한 말에 소년은 입꼬리를 길게 끌어올렸다.

* * *

오랜만에 찾은 라하비의 궁 앞에서 소년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의 껄끄러운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웃으며 궁을 방문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서성거리며 시간을 끈 소년은 이를 악물고 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라하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잠시 앉아 숨돌릴 시간도 없이 라하비가 있는 응접실로 안내받은 소년은 발랄한 웃음을 짓고 있는 라하비의 얼굴에 느슨하게 풀린 표정으로 인사를 올렸다.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안녕하세요!”

“오! 완벽한 발음이십니다.”

“연습. 어. 마니? 많이? 했어요!”

“훌륭하십니다.”

변변치는 않지만 달콤한 과자를 조금 가져왔는데, 드셔보시지요. 꾸밈없는 순박한 미소를 띠며 소년이 가져온 함을 상에 올리자 라하비는 천진한 기대감으로 눈동자를 반짝이며 손수 함의 뚜껑을 열었다.

“와!”

“곶감과 치즈 크림으로 맛을 낸 롤케이크입니다.”

고소하고 진한 크림치즈로 만든 크림과 달콤하고 향긋한 곶감. 그 매력적인 조합은 생소하지만 한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절묘한 것이었다.

“자, 드셔보시죠.”

소년이 큼지막한 조각으로 한 조각 썰어 접시에 담자 라하비는 곧바로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유백색 크림에 점점이 박힌 주황색 감 조각들. 마치 호박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움에 눈길을 빼앗긴 라하비는 이내 각오를 굳히고 입을 크게 벌렸다.

폭신한 케이크와 매끄럽고 서늘한 크림의 감촉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내릴 때쯤, 자기주장 강한 곶감 조각이 아작아작 씹히기 시작했다.

유질감 풍부한 크림의 새큼하면서도 고소한 풍미와 그 속을 파고드는 가을 햇살 같은 곶감의 단맛. 입안 가득 차오르는 행복감 속에서 라하비는 아릿하고 고혹적인 향기를 맡았다.

“어?”

아낌없이 사용한 치즈와 버터의 고소한 향기, 곶감의 푸근한 단 향기와는 조금 다른. 아릿하고 강렬한. 어른의 향기.

그것은 마른 곶감을 불리기 위해 사용한 증류주의 향기였다. 알딸딸하게 올라오는 취기에 라하비의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자 소년은 이마를 치며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이렇게 술이 약하질 줄이야.”

“예. 에? 네? 녜? 후헤?”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하비 님. 좀 쉬시지요.”

“마시써서…… 조금 더 먹고 시푼데.”

“하하, 아직 라하비 님께는 조금 이른 간식인 것 같습니다.”

몽롱한 눈으로 달아오른 숨을 내쉬는 라하비를 보며 소년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시녀들이 고양이처럼 늘어진 라하비를 안고 퇴실하자 시녀들을 통솔하던 시녀장이 소년의 앞에 서서 인사를 올렸다.

아누슈카 로샨 파르마 부흐였다.

“오랜만입니다. 로산 양.”

그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힐 뻔했던, 그의 계약자이자 거래 상대. 그리고 오늘의 목적.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소년 앞에 선 그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깊게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상호 님.”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기쁘군요.”

마치 비아냥처럼 들리는 소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린 로샨은 입술을 깨물며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다하지 못한 사죄와 감사를 어찌 전해야 할지. 자신의 머리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무엇을 원하든 받아들이겠다는 그녀의 제한 없는 수용의 자세에 소년은 신음을 흘렸다. 고민은 잠시였다.

“오늘은 과거의 사과를 원해 온 것이 아닙니다.”

자리에 앉아주시겠습니까? 소년의 말에 로샨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소년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적인 것은 조금 여쭙고 싶군요.”

“말씀하세요.”

“로샨 양의 자당께서. 라샤드국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소년의 질문에 로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머니께서는 라샤드국 출신이십니다. 파르마 가문으로 시집오셨지요.”

“호오, 그렇군요. 그리고 로샨 양께서는 찬드라 왕국의 국교가 아닌, 라샤드국의 국교인 안달루스 정교를 믿으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소년의 두 번째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로샨은 이내 수긍했다.

“예. 라샤드국과의 교역을 위해서. 부끄럽지만 저와 어머니는 안달루스 정교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교인에게는 관세에 혜택이 있어서.”

마치 돈을 위해 신앙을 판 것은 아니냐는 듯한 소년의 질문에 로샨은 고개를 숙였다.

소년은 비난의 의도로 질문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을 로샨에게 이해시킨 다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자당께서는, 라샤드국에서 신관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셨다 들었습니다만.”

소년의 계속되는 질문에서 로샨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입술을 굳게 닫은 로샨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예. 어머니께서는 아홉 제자의 혈통을 이어받으신 명가의 방계 출신이시고, 짐승의 도축과 음식물의 축복을 허가받으신 정식 신관이십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안달루스 정교에서 신관의 서품을 받았습니다. 로샨의 말에 소년은 길게 찢어지는 미소를 그렸다.

“그렇다면 로샨 양.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소년의 부탁에 로샨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는 소년을 올려다보며 로샨은 마치 맹세하듯 말했다.

“이렇게 찾아온 보은의 기회를 내친다면 신께서도 저를 돌아보지 않으시겠지요. 상호 님. 부디 원하시는 대로 저를 부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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