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50화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방법은 오직 한가지, 네 기량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보다 악조건인 너는, 그야말로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야 할 테지. 그럴 각오가 있느냐. 소년의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위정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너에게 맞는 무술이 있다.”
“제 몸에 맞는 무술이 있습니까?”
소년은 자신의 비루한 몸을 내려다보며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십여 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의 몸은 단 한 번도 만족스럽게 움직여준 적이 없었다.
뼈마디가 굳어버려 질질 끌어야 하는 왼 다리와 굽은 척추는 그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조차 힘겹게 했다.
그 기나긴 고난의 역사를 떠올린 소년은 쓰디쓴 숨을 내쉬었다.
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리를 전다는 것은 무인으로서 치명적인 일이지.”
하지만, 그 장애를 넘어설 수 있다면. 그것은 장애가 아닌 무기가 된다. 위정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때때로 무술의 세계엔 그런 무인들이 출몰하곤 한다. 팔이나 다리를 잃어버렸음에도, 피나는 수련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들. 자신의 불편함을 오히려 무기로 활용하는 법을 익힌 이들.”
그런 이들은 하나같이 무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 말을 끝내며 위정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오른발에 체중이 쏠린 자세는 당장에라도 적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흉포한 결의가 엿보였다.
자세를 낮추고, 양손은 늘어뜨린다. 갈고리처럼 구부러뜨린 손. 그 순간 위정이 가상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그야말로 괴상망측한 것이었다. 절뚝거리면서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특유의 보법은 예측이 불가능할 만큼 난잡하고 역동적이었으며 이어지는 공격은 번지는 들불처럼 격렬했다.
허공을 할퀴고, 차고, 때리는 그 난폭하고 사나운 동작에 소년은 시선을 빼앗겼다.
한차례의 연무를 끝낸 위정은 이마 위에 맺힌 땀을 훔치며 말했다.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왼 다리를 잃은 무인이 만들어낸 무술이었다. 망막에 새겨진 위정의 동작을 되새기며 소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위정의 움직임에는 어딘가 어색함이 있었다.
멀쩡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 외다리의 무술을 모방하는 데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어색함. 하지만.
“그래. 너라면 조금 더 잘할 수 있겠지.”
소년의 왼 다리를 내려다보던 위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배울 무술은, 백 년 전 독각투신(獨脚鬪神)이라 불린 남자의 무술이다.”
“따로 이름은 없습니까?”
“없다. 독각투신은 평생 독신이었고, 죽을 때도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자 했지. 어찌 연이 되어 황실에 그 무술은 남았으나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독각투(獨脚鬪)라 해야겠지. 그 말을 끝으로 위정은 메마른 입을 축이기 위해 술잔을 들어 올렸다.
한 잔, 두 잔,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지만, 갈증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갈증은, 내면에서 솟아 나온 그의 망설임이었다. 위정은 소년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과연, 이 무술을 전수하는 것은 올바른 일인가. 만약 무술을 배워 힘을 손에 넣는다면, 소년이 할 일은 자명했다.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려 하겠지.
자신의 목숨으로.
위정은 소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죽음에서 의미를 찾게 된 이들의, 그것밖에 남지 않은 이들의 광기. 자신의 흉금 깊숙한 곳에 파고든 것과 같은 것이 소년에게도 있었다.
다른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 이들의 마지막 염원. 세상살이에 지쳐버린 이들의 한. 이루지 못한 숙원을 다른 이에게 남기고 떠나려는 몰염치함.
그것은 틀림없이 남은 사람에게 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위정은 소년에게 선뜻 그만두라 말할 수 없었다.
자신 또한 같은 짐을 태감님께 맡겨버렸으니까. 그에게는 소년을 말릴 명분도,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위정은, 소년이 망설여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굳이, 안양비 님께 직접 대적하려는 이유가 있느냐?”
“예?”
“넌 재능이 있다. 어쩌면, 피나는 수련과 엄청난 행운이 있다면. 안양비 님께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쩌면, 독이 묻은 칼로 그분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시도할 가치가 있는 일이냐?
위정의 말은 소년의 가슴에 옅은 상처를 남겼다.
누가 그것을 모르겠는가.
누가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쓰고 싶겠는가.
위정의 무신경한 발언에 순간 분노를 느꼈지만, 소년은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위정은 그의 사정을 몰랐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태감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소년의 이유를. 그의 조급함을 몰랐으니까.
소년은 그를 이해했다.
낮게 코웃음 친 소년은 백주 병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목울대가 움직일 때마다 독한 취기가 목구멍을 찢을 듯이 자극했다.
병을 비운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도 제 목숨 아까운 줄은 압니다. 그리고 솔직히, 안양비 님께 제 얼치기 무술이 먹힐 리도 없고요.”
“그렇다면.”
“그래도, 보험 정도는 들어놔야 제 마음이 놓이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정말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그렇게라도 발버둥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년의 담담한 결의를 들으며 위정은 혀끝에 감도는 말을 삼켜야 했다. 그 말은 너무나 비겁하고, 모욕적이었으니까.
네가 죽으면, 태감님께서 슬퍼하실 거다.
소년은 위정이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그리고 그 말을 끝까지 내뱉지 않은 그의 배려심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물론, 슬퍼하시겠지. 슬퍼하시겠지만. 어차피 슬퍼하실 거라면. 입술을 깨문 소년은 이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뭐, 사실 안양비 님을 노린다는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요즘 가뜩이나 노려지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한 번 칼침도 맞았고요. 저도 언제까지 애들에게 기대고 있을 수는 없지요. 소년의 억지스러운 농담에 위정은 맞장구쳤다.
“그래. 후궁에서 살아남으려면 호신술 정도는 익혀야지. 그러고 보니, 유성락은 얼마쯤 익혔느냐?”
“요즘은 꽤 손에 익었습니다. 손에 굳은살 박인 거 보이시죠?”
“허허, 그래. 아주 열심히 수련했구나. 이 정도 열의라면 무술도 금방 배우겠어.”
용건이 끝난 둘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던 둘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태감님이시군요.”
“그래, 그렇구나.”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벌컥 주방 문을 연 태감은 어색하게 서 있는 둘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둘이서 농땡이 중이었나?”
“나으리랑 술 한잔하고 있었습니다.”
“하여간, 팔자 좋구나. 상관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보를 모으는 동안.”
이런 매정한 것들을 보았다. 날름 다가와 식은 고기 튀김을 집어 먹은 태감은 기름이 묻은 손가락으로 서류를 몇 장 꺼내 소년에게 건넸다.
“자, 여기 사절단의 명부다. 이름과 국적 외에 좋아하는 식재료나 먹을 수 없는 식재료 등도 표시되어 있으니, 한 번 읽어 보거라.”
가는 세필로 적힌 명부를 읽어가던 소년은 어느 한 대목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이 특별 주의대상이라고 적힌 양반은, 뭐 하는 분입니까?”
소년의 질문에 난처한 듯 인상을 찌푸린 태감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종교적인 사정으로 식사를 거부하신 분이시다.”
“예?”
태감의 대답에 소년은 다시금 서류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 * *
제국의 심장. 경사로 이어지는 기나긴 서방대로는 오랜만에 찾아온 서방의 손님들을 맞아 북적거렸다.
화려한 국기로 장식한 사절단의 마차와 근엄한 표정을 짓는 호위기사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교역단에 참가한 상단의 마차들.
오랜만에 찾아온 서방의 방문자들은 긴 여행길의 목적지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인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라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평소였다면 주의를 시키었을 기사들도 오늘만큼 그들의 활기를 용인했다.
개중에는 후위로 말머리를 돌려 상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사도 있을 정도였다.
덜컹거리는 마차의 창을 열고 금발의 미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화려한 금발 아래로는 사파이어와 같은 푸른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으며 이어지는 콧대는 높은 설산과도 같이 우아했고 입술은 발그레한 장밋빛이었다.
가벼운 드레스 셔츠와 면바지를 입었지만 그런 간편한 복장으로도 사내의 품격은 숨길 수 없었다.
마치 천사와 같은 용모의 사내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가벼운 경무장을 한 호위기사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백작님.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무 일 아니오. 그저 바람결이 청명한 것을 보니 제국의 수도가 가까워졌음을 느꼈을 뿐. 그보다, 여기서부터는 백작이 아닌 단장이라 불러주지 않겠소?”
“실례했습니다. 단장님.”
젊은 백작은 호위기사의 사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평소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작은 실수였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선 이상 작은 실수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의 위신이 실추된다는 것은 곧 나라의 위신이. 위대한 엘 마라 법국의 위신이 실추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사절단의 젊은 단장. 아르농의 백작이자 태양정교회에서 서품을 받은 사제. 샤를 에두아르 아르농 백작은 경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에 위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무섭다 무서워.”
젊은 백작이 너스레를 떨 듯 무섭다는 말을 연발하자 그와 마주 보고 있던 그의 보좌관은 또 시작됐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그만 익숙해지시지요. 모두가 소망하는 영광스러운 자리 아닙니까.”
“영광스러운 자리라 더 그런 거야. 너무 영광스러운 자리라서.”
서방의 십이 개국이 참여한 사절단의 단장 자리는 젊은 백작에게는 지나칠 만큼 무거운 자리였다. 긴 시간 동안 서방 종교의 종주 자리를 차지해온 법국의 대사가 사절단의 단장 자리를 맡는다는 관례가 아니었더라면 젊은 백작이 단장 자리에 오를 일은 없었으리라.
젊은 백작의 호들갑을 보며 그의 보좌관은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참, 남들은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이라고 춤을 추며 기뻐할 텐데.”
“크으으, 후작 각하께서 하필 이럴 때 지병이 도지실 줄이야.”
사절단의 단장 자리는 본래 젊은 백작이 의도하여 맡게 된 자리가 아니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마침 그에 걸맞은 적임자가 없어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등 떠밀려 앉게 된 자리였다.
하지만 한번 맡은 일은 반드시 책임을 지는 성격인 젊은 백작은 아픈 위를 부여잡고 최선을 다했다.
사절단에 참여한 외교관분들의 편의를 봐 드리고, 후미를 따르는 교역단의 고충을 살피며.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평가를 쑥쑥 높이고 있는 젊은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예, 단장님.”
자신의 말을 기억해준 호위기사에게 감사의 웃음을 전하며 백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제국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무리하여 강행군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어떻겠소. 사절단분들도 피로가 쌓이셨을 테니, 오늘은 조금 일찍 쉬어 체력을 회복하도록 합시다.”
“예,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배려심 깊은 명령을 전한 백작은 다시금 우울한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난 끝이야. 분명 실수하고 말 거야. 법국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관직에서도 내려와야겠지. 차라리 작은 포도밭을 사서 은거하는 게…….”
벌써 반년 가까이 이어진 주인의 지지리 궁상에 보좌관은 진지하게 하극상을 결의했다.
이대로 후려치면 속은 시원하겠지.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경력은 모조리 무너질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빛나는 경력을 돌아보며 인내를 다진 보좌관은 하는 수 없이 주인을 구슬릴 만한 다른 수를 찾아냈다.
“평소 노래를 부르던 제국의 음식을 경험할 기회 아닙니까. 마침, 이번에 사절단을 대접할 요리사가 엄청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보좌관의 은밀한 이야기는 평소 미식가로 소문 자자한 백작의 구미를 당길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대단하대?”
무릎을 끌어안고 징징거리던 백작은 솔깃한 말에 불쑥 고개를 들었다. 장미꽃다발을 안은 천사처럼 화사한 미소에 어두침침한 마차의 내부도 환해지는 듯했다.
“예, 듣기로는 이제 스무 살도 넘지 않은 소년인데, 제국 황실의 주방장을 꺾을 만큼 대단한 요리사라고 하더군요. 단식 수행을 하던 성직자도 수도원을 뛰쳐나올 만한 극상의 수프를 만들었다나?”
“세상에, 그런 천재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니!”
대번에 표정이 밝아진 주인을 보며 보좌관은 피로한 숨을 토했다. 때마침 식사 준비가 끝났는지 호위기사가 마차의 문을 두드렸다.
“단장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아, 고맙네.”
호위기사의 정중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린 백작은 어깨에 코트를 두르고 간이 만찬장으로 향했다.
간이 천막의 형태로 기둥을 세우고 방수천으로 지붕을 세운 만찬장의 아래에는 길에서 따온 소박한 야생화로 장식한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급사들의 센스에 깊은 만족감을 표하며 백작은 자리에 착석했다.
“단장님. 먼저 와 계셨군요.”
“어서 오십시오. 루쿨루스 대사님.”
“이런, 제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빌헬름 후작님.”
차례차례 사절단의 외교관들이 자리에 앉아 백작은 쓰라린 압박감을 맛보았다.
하나하나가 자신의 윗세대의 거물 정치가들로 구성된 사절단은 젊은 백작이 이끌기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백작의 창백한 시선을 목격한 그들은 백작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사담을 나누었다.
“이제 경사를 코앞에 두었으니, 오늘은 좀 신선함 고기를 입에 대었으면 좋겠군요.”
“와인 한 잔이 곁들여지면 더더욱 좋겠지요.”
“식후에 마실 근사한 증류주가 있는데, 다들 괜찮으신지요?”
그 은근한 말에 젊은 백작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행길의 막바지이니 비축했던 물자를 풀어 성대하게 만찬을 즐깁시다. 그……런데…… 하룬 알 라시드 대사님?”
백작의 부름을 들은 이는 구릿빛 피부에 머리를 천으로 둘둘 감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오랜만에 신선한 고기와 술을 입에 댈 기회인데도 남성은 고집스럽게 자신이 가져온 육포와 종잇장처럼 빳빳하고 얇은 빵을 탁자에 올렸다.
“그, 모처럼이니 대사님도…….”
“죄송하지만,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음식을 입에 댈 수는 없소. 양해 바라오.”
보기만 해도 목이 턱 막히는 식사를 시작한 하룬 대사를 보며 탁자 위에는 초상집 같은 침묵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