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42화
옥린비의 손목에서 뼈마디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손목 관절이 통째로 뭉개지는 듯한 통증에 옥린비가 비명을 지르며 경련하는 동안, 안양비는 느긋하게 그녀의 품으로 손을 가져갔다.
“너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이라면 고칠 수 있으니. 하지만 움직이다가 뼛조각이 어긋나면 장담할 수 없어.”
천천히 품속을 더듬은 그녀는 옥린비의 품속에서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쇠 구슬을 찾아냈다. 윤기가 흐르는 새카만 표면에는 톱니바퀴가 달려 있었다. 후궁에서. 존귀하신 황제 폐하께서 거하시는 곳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화약 병기.
“진천뢰(震天雷)라. 아니, 군에서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른가?”
조금 더 작고, 불을 붙일 심지가 없군. 그래. 안에 부싯돌을 내장한 건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옥린비의 입에서 대답을 끌어내기 위해 안양비는 손아귀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안양비는 그녀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반항하고, 체념할 때까지. 그녀의 손목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양탄자 위에 붉은 얼룩을 그리는 것을 보며 안양비는 다시 한번 질문했다.
“직접 개량한 건가?”
“모릅니다. 전 그저 전달받은 것뿐…….”
옥린비는 고통에 전율하며 숨을 헐떡였다. 쪼개진 손목뼈는 숨을 몰아쉬는 것만으로도 뇌리를 인두로 지지는 듯한 격통을 선사했다.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옥린비는 안양비에게 애원하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는 눈동자 속의 증오를 숨기지 않았다.
퉁퉁 부어오른 손목을 놓아주며 안양비는 폭탄을 들어 올렸다.
“나와 함께 죽을 생각이었나?”
옥린비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스며든 불꽃은 수천 마디의 말보다도 장절한 분노를 안양비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뜨거움을 받으며 안양비는 심장이 저릿해지는 감동을 느꼈다.
입으로 죽음을 부르짖는 자는 무수히 많다. 하나 그들 중 진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을 성사시키려 하는 자는 몇이나 되는가.
자신을 군자라 칭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옥린비의 독기에 안양비는 가슴 시린 안타까움을 느꼈다.
조금만 더 빨리 그 진가를 드러내 줬더라면. 아니, 그 진가를 조금만 더 빨리 알 수 있었더라면. 인재가 재능을 발하지 못한 것은 그를 부리는 주인의 잘못이니.
그녀가 빛나지 못한 것은 안양비 자신의 부덕이었다.
손목을 부여잡고 쓰러진 옥린비의 앞에서, 안양비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다시 손을 잡을 생각. 있나?”
“하……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제 와서?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옥린비는 순간 고통마저 잊고 안양비에게 되물었다.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옥린비는 순간 그녀가 고약한 농담으로 자신을 희롱하려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했다.
하지만 안양비는 더없이 진지했고, 그녀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와 수용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그대의 가치를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사과하고 싶네. 그대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끌어주지 못했기에 그대는 빛을 보지 못하고 스러지고야 말았지. 미안하네.”
부디, 한 번 더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는가?
그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더없이 안양비 다운 제안을 들으며 옥린비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소매로 훔친 그녀는 잠시 후 더없이 상쾌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안양비 님의 신의는 참으로 가볍군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니, 어느 누가 안양비 님께 진정으로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가볍고 나약해 좋았던 기억은 금세 온데간데없이 흐트러지지요. 하지만 쓰라린 기억은 흉터로 남아 영원히 가는 법입니다.
“한번 어긋난 신뢰는, 돌이킬 수 없지요.”
폐부를 찌르는 옥린비의 비아냥에 안양비는 불편한 헛기침 대신 만족스러운 갈채를 보냈다.
그것은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던 말이었다. 통렬하고 쓰디쓴, 그렇기에 더욱 가치 있는 옳은 말. 그것은 백 마디의 달콤한 감언이설보다도 그녀를 즐겁게 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아깝구나.”
안양비는 탄복하며 입가에서 웃음을 지웠다. 그녀는 더 이상 옥린비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이상의 제안은 옥린비에게 모욕이 될 거라는 것 또한. 안양비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녀에게 다정한 그늘을 드리웠다.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군.”
옥린비의 창백한 목에 가만히 오른손을 얹으며 안양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옥린비가 최후의 유언을 정리할 때까지. 안양비를 올려다보며 그녀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를 눈치챈 옥린비는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웃었다.
“부디 안양비 님께서도. 저와 같은 지옥에 떨어지시기를.”
“그래, 먼저 가 기다리시게.”
안양비는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손가락 끝으로 단단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과 함께 옥린비는 입으로 피거품을 게워내며 경련했다.
경련은 잠시였다. 바르르 떨리던 손발에 떨림이 멈추었고 고통에 허덕였던 눈동자에 평온이 찾아왔다. 비록 그것이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았으나 안양비는 잠시 그녀를 위해 명복을 빌었다.
“사람의 끝이란, 이토록 보잘것없는 것이지. 아무리 찬란하게 빛나던 사람도, 결국 죽어버리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아.”
소리 지르고, 움직이고, 탐욕스럽게 원하며 삶을 구가하는 이들은 알까. 그들의 최후가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는 옥린비의 이마를 쓸어 만진 안양비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곳에는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장 태감이 있었다. 성큼 걸어들어온 그는 옥린비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두 손을 모았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사는 것이지요. 후회가 남지 않도록.”
과연 후회 없는 삶이란 존재하는가. 안양비는 굳이 철학적인 질문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장 태감을 손짓으로 부른 그녀는 묵직한 쇳덩어리를 그의 품에 넘긴 다음 옥린비의 시체를 안아 들었다.
“호오, 이것은?”
“금화 상단의 상단주가 전해줬다는군.”
가만히 그 무게감을 느끼던 장 태감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비정함으로 누구를 탓한 이는 아니나, 혈육의 목숨을 값싸게 팔아버리는 상단주의 잔혹함은 그조차도 질리게 했다.
“짐승도 제 자식은 아끼는 법이거늘, 어찌 사람이 이토록…….”
“사람이기에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 법이지.”
옥린비의 눈을 감겨주며 안양비는 조용히 명령했다.
“상단주의 목을 가져오게.”
목은 가져와 장대 위에 효수해서 저잣거리에 걸어두고, 사지는 찢어 들판에 버려두게. 들개가 뜯어 먹을 수 있도록.
그것이 그에게 어울리는 최후일 것이야.
* * *
소년이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옥린비의 사망 소식과 금화 상단 상단주의 처형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발표되었다.
안양비가 그녀를 변호하였기에 옥린비의 시신은 정중하게 장례를 치른 후 황실의 묘지에 묻힐 예정이다. 그 대신 안양비의 암살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상단주의 머리는 저잣거리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안양비는.
“일주일 근신이라는구나.”
태감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안양비의 소식을 전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녀의 처벌은 가벼운 것이었다.
“흐음…… 그렇습니까?”
작은 나무망치로 호두를 까며 태감의 말을 듣던 소년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톡. 톡.
호두를 깨 그 알갱이를 장소와 이삼에게 쥐여준 소년은 거나한 하품을 했다.
“상단주가 죽었다니, 좋은 일이군요.”
“그래. 우리로서는 나쁠 것 없는 일이지. 상단주뿐만이 아니라 배씨 가문의 삼대가 멸족당했으니. 금화 상단은 공중분해 된 셈이다.”
표자승이 일하기 쉬워졌겠군요. 소년의 말에 태감은 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쯤 집어삼켰다더냐?”
“찬드라 왕국의 이권은 거의 다 집어삼켰다는군요. 경사 쪽은 사대 상단의 등쌀에 밀려 큰 재미는 보지 못했지만, 알짜배기는 많이 챙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으니, 머지않아 그 친구도 사대 상단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거야.”
그 전에 결혼부터 해야겠지만. 아무리 세를 크게 일구어도 대를 물려 이어나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태감의 말에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희로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군요.”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넌 멀쩡하게 달려 있지 않으냐.”
“요즘 피곤해서 그런지 이쪽이 영…… 신경성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좀 부실하더군요.”
“허어…… 그…… 약이라도 알아봐 주마.”
태감의 쓸데없는 배려에 소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결혼할 것 같았으면 죽기 전에 진즉 했지.
그는 스스로가 혼자 살 팔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태감에게 호두 몇 알을 건넨 소년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난화비 님 쪽 상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아. 그쪽도 이번에 제법 큰 이익을 봤다는구나. 마침 그 일로 난화비께서 시간을 내달라 하셨다.”
그렇습니까?
소년은 께느른하게 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머리가 복잡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언가 탁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편함. 찜찜함. 장고 끝에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씨 기분도 찝찝하고 꿀꿀한데, 뭐 좀 먹고 합시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감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소년은 창고에서 돼지 갈비짝을 통째로 가져왔다.
유작배골(油炸排骨).
돼지갈비는 살이 두툼하게 붙어 있고 너무 질기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근막을 벗겨낸 다음 뼈 사이를 갈라 나눈다.
“그다음에는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쳐 줘야지.”
토막 친 갈비는 잘게 칼집을 넣어줘야 양념이 잘 배어들고 익혔을 때 고기가 뒤틀리지 않았다.
칼집을 다 넣은 소년은 넓은 그릇에 간장과 소흥주, 설탕, 생강과 파를 섞은 양념장에 고기를 재웠다.
“갈비는 오랜만이구나.”
“먹기 귀찮아서 자주 올리지 않았죠?”
“맛이야 일품이다만, 먹을 때마다 손을 더럽혀야 하니.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는 별미란 말이지.”
뼈를 잡고 고기를 잡아 뜯는 것은 어찌 그리도 재미나고 신나는지.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태감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태감의 콧노래 소리에 이삼이 장단을 맞추고 장소가 휘파람을 불 때쯤. 소년은 맛이 골고루 밴 고기를 꺼내 천으로 양념기를 제거했다. 그것을 본 태감은 소년이 어떤 요리를 만드는 것인지를 눈치챘다.
“튀김이구나!”
“튀김이지요. 우울할 땐 튀김만큼 좋은 요리도 없지요.”
뼈가 붙은 고기를 속까지 잘 익히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소년은 우선 기름의 온도가 미지근할 때 고기를 넣어 겉면에 노릇한 기운이 슬쩍 돌 때까지 천천히 튀겨냈다.
“자, 여기서 한번 고기를 건져준 다음, 고온에서 다시 튀겨내면 속까지 잘 익고 겉도 바삭해진단다.”
기름이 고온으로 끓어오르면 고기의 색이 노릇해지고 표면이 오그라들 때쯤 건져내어 기름을 뺀다.
마지막으로 고추를 우려낸 매운 간장과 굵게 간 후추를 슬쩍 뿌려내어 완성한다.
그릇 위에 산처럼 쌓인 갈비는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그 장엄함과 수려함은 오악(五岳)의 명성을 빛바래게 했고 향긋한 향기는 만발한 꽃조차 고개를 숙이게 했다.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 속에서 태감은 조심스럽게 드러난 뼈의 양 끝을 잡았다.
아뜨, 뜨거워라.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뜨거움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는 틀림없이 사랑의 감정이었다. 태감은 그 순간 자신이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이런 늪이라면 빠져 죽어도 좋으리.’
태감은 거침없이 뼈에 붙은 살점을 물어뜯었다. 바삭하게 익은 겉면을 송곳니가 파고들면 혀끝으로 기름진 육즙이 흘러들었다.
졸아든 간장의 향긋함과 구수함, 간장에 우러나온 고추의 매콤한 풍미. 아낌없이 뿌린 후추의 톡 쏘는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태감은 아찔한 황홀경을 느꼈다.
뼈에 붙은 고기를 양손으로 쥐고 우걱우걱 뜯어먹는 것은 문명 생활을 하며 잠들어 있던 인간의 야성을 충족시켜 주었다.
주위의 시선도, 체면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고기를 씹는다는 그 해방감. 그 쾌감. 태감은 어느새 양손으로 갈비를 하나씩 쥐고 뜯고 있었다.
“많이 있고, 부족하면 더 만들어줄 테니까 천천히 좀 드십쇼. 체하겠네.”
“저, 이거 동생들에게도 만들어주고 싶은데…….”
“어이구 우리 삼이는 참 의젓하기도 하지.”
양념이 묻지 않은 왼손으로 이삼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소년은 옆에 있던 장소의 머리도 함께 쓰다듬어주었다.
“흐엥?”
“삼이만 쓰다듬어주면 섭섭해할까 봐.”
애들은 평등하게 사랑해줘야 한다고 누가 그랬던 거든. 아이를 다섯이나 낳아서 허리가 휜다고 하소연했던 동료의 조언을 떠올리며 소년은 장소의 머리도 꾹꾹 쓰다듬어주었다.
갈비가 동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뜨거운 갈비로 가득 차 있었던 그릇에는 새하얀 뼈 무더기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남은 손가락의 양념을 쪽 빨며 태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 먹었다.”
“그럼 다행이군요.”
배부르게 식사를 했는데도 소년의 표정은 여전히 우중충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를 위해 태감은 질문은 던졌다.
“그래. 그래서 좀 후련해졌느냐?”
태감의 질문에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그리 쉽게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지.
태감은 마지막 뼈를 무더기 위에 올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괜스레 생각나고, 잊히지도 않지. 하지만 그렇다고 극렬하게 슬프거나 비통한 것도 아니야.”
아는 사람의 죽음이란 건 그렇지. 그것이 정적 관계였던 사람일지라도.
소년은 멍하니 풀린 눈으로 허연 뼈 무더기를 보았다.
슬픈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할 만큼 깊은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기쁜 것 또한 아니었다.
소년은 한참 동안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그에게 태감은 밀어를 속삭이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익숙해지라고 하지는 않으마. 익숙해질 수 없을 테니.”
지금의 감정을 기억하거라. 차갑고 비정한 후궁에서 네가 괴물이 될 것 같으면. 지금의 그 감정이 도와줄 테니.
소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옥린비께서 말씀하신. 그 시녀.”
그 시녀를 만나봐야겠습니다. 소년의 말에 태감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