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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41화 (141/314)

환관의 요리사 141화

장소는 단 다섯 걸음 만에 천둥과 벼락을 품은 폭풍이 되어 옥린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옥린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소년을 지목하기 전에. 그의 허리춤에서 뛰쳐나간 벼락이 그 참혹한 기계장치를 내려찍었다.

콰지직 소리를 내며 원통은 손쉽게 망가졌다. 수백 발의 철침과 용수철.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섬세한 죽음은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로 돌아갔다.

더 이상 누군가의 목숨을 탐낼 수 없으리라. 하지만 소년의 위험에서 촉발된 장소의 분노는 옥린비의 목을 찢어발기기를 원하고 있었다.

호위무사의 긍지와 전사의 야성. 여물지 않은 소년의 분노에 이끌려 갈고리 같은 단검을 겨눈 장소는 옥린비를 본 순간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명백한 항복의 표시. 옥린비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을 달싹였다. 소년과 이삼은 볼 수 없었지만, 장소의 눈에는 그녀가 전하는 의미가 똑똑히 보였다.

고마워.

무엇이? 장소가 의문과 혼란 속에서 멈춰서 있자 소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밀어냈다.

얼이 빠진 듯한 장소를 이삼에게 맡기며 소년은 탁자 위에 널브러진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이었나. 이게 나의 징조였나. 수백 발의 철침과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그것의 사용 방법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하지만 소년은 오늘 아침의 징조가 의미한 것이 이 물건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옥린비는, 정말로 날 죽이려 한 것일까.

소년은 천천히 그녀의 앞에 앉았다. 한참을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있던 소년은 결국 암살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독특한 물건이군요.”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지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찌 쓰는 물건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간단하답니다. 여기. 아래쪽의 방아쇠를 당기면 통 안에서 수백 발의 철침이 일제히 발사되지요. 구조는 다르지만 사용 방법 자체는 연노(連弩)와 같습니다.”

옥린비의 설명에 소년은 깊은 호기심을 느꼈다. 둘은 암살자와 암살 대상의 대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친근한 태도로 담소를 나누었다.

“호신용으로도 아주 적절해 보이는군요. 부피도 작고.”

“어머. 남는 게 있으면 하나 드리고 싶은데, 아쉽게도 가진 것이 이거 하나뿐이네요.”

“저런. 이런 귀한 것을 망가뜨렸으니, 어떻게 변상해 드릴까요?”

“괜찮아요. 어차피 일회용이었으니. 어차피 망가질 물건이었어요.”

옥린비는 철침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 뼘이 조금 안 되는 길이의 날카롭게 세공된 침은 오직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그 유려한 선은 기능미마저 느껴졌다.

장소의 단검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발사된 수백 발의 철침은 소년의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것이다.

수백 개의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겠지.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가늘고 묵직한 죽음의 무게를 느끼며 옥린비는 소년에게 미소 지었다.

“이 병기의 이름은, 봉뢰침(封雷針)이라고 해요.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극형을 선고받는 위험한 물건이지요. 그것이 설령 후궁의 비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 선고를 내리며 옥린비는 소년에게 손짓했다.

“후궁에는 금형부의 사람이 올 수 없으니, 대신 동창에서 사람을 불러다 주겠어요?”

“실례되지 않는다면 한마디, 여쭙고 싶습니다.”

굳이 이런 일을 꾸미신 이유가 뭡니까? 무례하기까지 한 소년의 질문을 들은 옥린비는 잠시 짓궂은 장난이 생각난 듯 대답을 유보했다. 만약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그녀의 대답을 궁금해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니까. 옥린비는 따스한 차를 입안에 머금었다. 입안을 채우는 온기 속에서 그녀의 혀는 대답을 준비했다.

“궁에 억류되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굳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말입니까?”

“그래야만 사람들이, 제 소식을 듣고 떠들겠지요?”

옥린비가 궁에 유폐되었다. 옥린비가 미쳤다. 옥린비가 몰락했다. 그런 이야기는 후궁의 단골 소재잖아요?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입술 속에서 소년은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소문이 퍼지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래야만 절 찾아올 사람이 있거든요.”

정작 찾을 때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시는. 매정한 분이.

그 사람은. 소년은 침묵하며 탁자 위의 잔해를 뒤적거렸다. 수백 발의 철침. 태엽. 소년은 뜨끔거리던 목덜미가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꼈다.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지만 소년은 그녀의 입에서 확답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를 죽이러 온 게 아니셨군요?”

“어머. 그 이야기는 조금 껄끄러운데. 귀여운 호위분들 좀 물려주시겠어요?”

옥린비의 말에 이삼과 장소는 필사적으로 소년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다. 하지만 소년은 완고하게 아이들의 머리를 밀어내며 방 밖으로 나가 있을 것을 명령했다.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두 아이가 자리를 비키자 소년은 옥린비에게만 자신의 모든 주의를 할애했다.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 중, 소년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을 입 밖에 냈다.

“만약 일 초 만 더 빨리 손가락을 움직였다면, 당신께서는 절 무참히 살해하실 수 있으셨겠지요. 하지만 그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머뭇거리셨지요. 어째서입니까?”

옥린비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요?”

“죄송하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그저 감이라고밖에는…….”

“감. 후후, 의외로 미신적이셨군요?”

옥린비는 월병을 집어 그것을 반으로 갈랐다. 저녁 무렵의 하늘처럼 온화한 주황색 호박 소와 그 한가운데에 박힌 노오란 오리알의 노른자. 촉촉한 호박 소를 씹으면 호박의 뭉근한 단맛이 입안에 사르르 녹아들었다.

“처음에는 죽이려고 했어요. 당신 때문에 숙부께서 패배하셨고, 저 또한 몰락했으니. 그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었죠. 어차피 당신을 죽이던, 죽이지 않던.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소년은 서서히 뒷덜미가 서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결코 심장을 옥죄는 불안감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 되었다는 듯이, 혈관을 흐르는 열기를 식혀주는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상호께서 숙부님의 마지막을 모욕하지 않고, 존중해 주셨으니. 저도 그에 따른 보답을 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무표정으로 굳어있는 소년을 보며 옥림비는 서서히 소년을 향해있던 날 선 증오를 흘려보냈다.

이제 그녀의 증오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사용해야 했다. 자신의 품속에서 잠들어있는 아버지의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옥린비는 가식적인 웃음을 띄웠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싫어하실 테니까.”

“춘부장께서?”

“아버지께서 부탁하셨거든요. 오상호를 암살해 달라고.”

“허어. 저런. 태감님이라면 모를까, 보잘것없는 저를 굳이 암살하려 하시다니.”

소년의 너스레에 옥린비는 고개를 저었다.

“상호께선 아직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시는군요.”

“이 천한 놈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후후, 만약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신다면. 앞으론 조금 조심하셔야겠어요.”

금화 상단의 상단주가 당신을 지목했다는 사실을. 사례 태감 이상으로 당신을 위험하다고 판단했단 사실을 잊지 마세요. 소년은 그녀에게 조언을 들었다는 사실에 얼떨떨해하면서도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의 인사를 받으며 그녀는 허리를 쭈욱 폈다. 뼈마디가 부드럽게 이완되며 전신에 탈력감이 번지자 그녀는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그 권태로운 표정 속에서 소년은 그녀가 무언가를 단념했음을 깨달았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가지는 최후의 희망. 소년은 그녀가 삶에 대한 집착을 버렸음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소년은 비로소 옥린비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죄를 저지르면서까지 후궁에 소문을 퍼뜨려야 하는 이유를.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루려 하는 목적을. 섬찟한 한기를 느끼며 소년은 다급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옥린비 님께선 누구를…….”

“그건 대답해 드릴 수 없는 질문이군요. 하지만, 태감께도 해가 될 일은 아닐 거예요. 그건 약속드리지요.”

그녀의 다짐에 소년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더는 묻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굳게 닫았다.

그 배려 깊은 침묵에 옥린비는 깊이 감명받은 듯했다. 옅은 웃음을 지은 그녀는 갑작스럽게 일어섰다.

“옥린비 님?”

“상호께, 그리고 사례 태감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고개 숙이며 부탁해 오는 옥린비의 앞에서. 소년은 당혹감에 한참 동안을 얼어붙어 있었다.

* * *

마침내 다가온 최후 앞에서 인간이 보여야 할 자세 중 가장 마땅한 것을 찾으라면 그 정답은 겸허함일 것이다.

자신의 생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이라면 집착도 미련도 없이 평온하게 최후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옥린비. 그녀는 자신이 그럴 수 없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독선적이고 아집에 가득 차 있는, 추악하고 이기적인 존재. 죽는 그 순간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아둔한 자. 그것이 바로 자신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가는 그 순간까지, 구원이 아닌 복수를 바라는 거야.”

그녀는 구원을 바라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어리석은 영혼을 구해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녀는 악독하고 음험하며 사악한 존재였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 멀고 험한 길, 길동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음습한 미소를 끌어올린 옥린비는 자신의 품속을 더듬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암기가 손에 잡혔다. 자식의 목숨조차 이익과 저울질하는 무정한 아비의 선물. 하지만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했다.

“아버지는 이걸 오상호에게 사용하길 바라셨지. 결국,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드리지 못했으니. 나도 참 불효녀야. 그렇지?”

나지막한 옥린비의 목소리에 옆에 서 있던 봉렴은 허리를 조금 숙여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봉렴의 눈시울은 조금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옥린비 님의 불효보다 자식에게 자진(自盡)을 요구한 상단주님의 잔혹함을 욕할 겁니다.”

“그래? 아버님을 욕되게 했으니, 마음이 좋지 않은걸. ……슬슬 손님이 오시겠구나.”

옥린비가 손짓으로 그녀를 부르자 봉렴은 한쪽 무릎을 굽혀 그녀와 시선을 나란히 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물기는 그녀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주인의 마지막 모습을 똑바로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 보는 친구의 눈물을 보며 옥린비는 미소 지었다.

‘그래도 날 위해 울어줄 사람이 한 명은 있구나.’

“그만 갈 시간이야.”

“옥린비 님.”

“넌 똑똑하고. 능력 있고, 거기다 예쁘잖아? 어디서든 잘 살 수 있을 거야.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도 좋고, 아니면 너만의 일을 찾아보렴.”

부디 이 말이 봉렴에게 용기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며 옥린비는 소매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사례 태감께 너를 부탁해 두었으니, 그분이 도움을 주실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옥린비는 그녀를 밀어내야 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두 팔은 이성을 배신한 채 봉렴을 힘껏 끌어안았다.

온몸을 뜨겁게 채워주는 사람의 온기. 평생을 함께해온 친구에게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나약함을 전했다.

“나를, 기억해 주겠니?”

아무리 악인이라도. 아무리 비정한 자라도. 죽음 앞에선 누군가에게 기억되고자 한다. 그 원초적이고 나약한 욕망을 말하며 옥린비는 조용히 그녀를 떠나보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봉렴이 떠나갔다. 그녀를 배웅한 옥린비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녀의 따뜻했던 부분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원수에게 주어야 하는 차갑고 비정한 것들뿐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에 옥린비는 고개를 들었다. 복도를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왔음을 알아차린 그녀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오셨습니까?”

안양비 님.

그녀를 찾아온 것은 마치 범과도 같은 인상의 여인이었다. 어지간한 사내를 내려다볼 만큼 큰 키에 인상마저 사나운 여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름 끼칠 만큼 아름다웠다. 사납고 야성적인 아름다움.

안양비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방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방약무인한 행동이었지만 옥린비는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아니, 누가 그녀에게 훈계할 수 있을까. 존귀하신 용의 아들께서도 실패하신 일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양비 님.”

“확실히 오랜만이군.”

창백하게 메마른 옥린비의 얼굴을 흘겨보며 안양비는 송곳니를 비죽 드러내었다. 그 담대하고 도발적인 미소는 옥린비를 집어삼킬 듯했다.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질러 주었어.”

“예, 이러지 않으면 안양비 님을 만나 뵙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안양비 님께서 이리 왕림해 주셨군요. 감사 인사를 드릴까요?”

옥린비가 고개를 살짝 비틀며 묻자 안양비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 인사까지야. 몸도 편치 않아 보이는데, 조금이라도 편한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맞지.”

“역시, 배려심이 깊으시군요.”

제가 당신을 찾아갔을 때도 이런 배려심을 보여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옥린비의 말에 안양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이렇게 담대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인 줄을 진작 알았더라면. 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을 것을.”

왜 이리 늦게 빛을 보여주나. 이 사람아. 안양비의 가슴 쓰린 조롱을 들으면서도 옥린비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처음과 같은 온화함으로 일관하며 옥린비는 자신의 가슴께로 손을 옮겼다.

“후후, 그래도 이렇게 안양비 님께서 친히 와주셨으니…….”

대접을 해야지요.

그녀의 손이 자신의 옷 속을 파고드는 순간, 안양비의 우악스러운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읏?”

마치 손목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 속에서 옥린비는 손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안양비의 손은 마치 족쇄와도 같이 그녀의 손목을 옭아맸다.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안양비는 그녀에게 코를 가까이 한 채 중얼거렸다.

“화약 냄새가 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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