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38화
숨 가쁘게 살아왔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앞으로. 앞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육십 평생. 배금성은 어느 순간 나아갈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더는 올라갈 자리가 없다. 목표로 삼을 것이 없다. 자신은 길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모든 요리사가 선망하는 자리. 황실의 주방을 총괄하는 위치.
그는 자신이 도전하는 자리가 아닌 지켜야 하는 자리에 올랐음을 실감했다.
높은 자리에 오르니 삶에 여유가 생겼다. 그는 치열하게 살아온 젊은 날에 대한 보상을 마음껏 누렸다.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상단을 위해서.
후회할 것 없는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점 미련도 없으리라.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자부심이 있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아낌없이 지원을 받았고, 칼 한 자루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긴 시간 부귀영화를 누렸다.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안타까울까.
하지만. 마침내 다가온 쓰디쓴 패배와 몰락 앞에서 배금성은 자신의 자부심을 의심했다.
나의 인생은 과연, 후회 한 점 없이 훌륭한 것이었을까?
“불도장이옵니다.”
소년의 선언과 함께 탕관의 뚜껑이 열린다. 자신의 패배였다. 뚜껑이 열린 순간 배금성의 본능은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그의 이성은 발버둥 치며 패배를 외면했지만, 수십 년을 쌓아온 요리사의 본능은 그것이 넘을 수 없는 산임을 인정했다.
그것은 불가해한 요리였다. 인간의 영역으로는 닿을 수 없는 어딘가.
“신선이 끓여낸 것만 같아…….”
황제의 앞에서. 황제의 기미 환관은 자신의 본분마저 잊고 영혼에서 우러나온 감탄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지금 당장 목이 잘려도 후회는 없을 테지. 지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천상의 맛을 느꼈으니.
황제가 자신의 패배를 들었다. 접시도 쓰지 않고. 숟가락도 쓰지 않고. 황제가 탕관을 통째로 들어 올린다.
내가 끓인 불도장은 고작 한 숟갈을 뜨신 분이. 존귀하신 황제 폐하께서.
배금성은 자신이 끓였던 불도장을 돌아보았다. 주인 없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그의 탕은 훌륭한 것이었다.
자신의 경력. 자신의 지위. 상단의 미래까지. 모든 것을 걸고 끓여낸 불도장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한계 내에서 완성된 훌륭함이었다.
배금성은 눈을 감았다. 뇌는 분노와 체념으로 달아올랐고, 심장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았지만. 그의 코는 오상호가 끓여낸 불도장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코끝이 녹아내릴 만큼 진하고 그윽한 향기. 공들여 키워낸 오골계와 화퇴. 달콤하고 기름진 향기는 소의 사태에서 뽑아낸 육수겠지. 짭짤한 바다의 감칠맛은 말린 건전복과 해삼. 민어와 석반어의 부레. 가리비의 패주. 상어의 연골. 끈적하게 녹아드는 듯한 향기는 사슴의 목 힘줄과 말의 정강이뼈에서 우려낸 것.
“그리고 버섯은……. 곰보버섯(羊肚菌)에 백화고(白花膏)…….”
코끝이 알려주는 재료들을 손에 꼽아보며 배금성은 짙은 한숨을 토해냈다.
과연 같은 재료를 가져다준다면, 같은 맛을 뽑아낼 수 있을까.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겠지.
배금성은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정했다. 황제의 입에서 결과가 떨어질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패배였다.
집념과 집착을 잊고,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추잡하게 지분거리는 감정들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배금성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나. 둘. 셋.
세 호흡에 자신에게 남아 있던 많은 것들을 털어버린 배금성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소년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신기하게도 그래.”
“많은 것을 빼앗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
“정말 이상한 일이지.”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저것이 패배자의 모습인가. 저것이 다가올 몰락 앞에서 절망하는 자의 얼굴인가. 소년은 칼을 뽑아 들었다.
“이 칼을 알아보겠나?”
짙은 회색의 빛나는 칼날. 타협하지 않은 장인의 집념이 빚어낸 역작. 그것은 자신의 칼날과 같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찬란함에 시선을 빼앗긴 배금성은 이내 싱긋 미소 지었다.
“그렇군. 백윤 그 친구. 살아 있었군.”
“그래. 네놈의 목덜미를 찌르기 위해 살아있었지.”
“근데 자네, 어째서 그런 표정인가?”
소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자신이 이겼음에도. 모든 것을 차지했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석연치 못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마치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좀 더 비참하게 패배했어야 했어.”
소년은 이를 갈았다. 그에게서 받아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울분에 가득 차 중얼거렸다.
“추하고 역겹게 악을 쓰면서. 바닥을 기면서 만천하에 손가락질받으며 비참하게 몰락했어야 했어. 그래야만 보상이 될 테니까.”
“백윤에 대한.”
“그래.”
그렇게 웃으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가면 안 된단 말이다. 소년은 당장에라도 그에게 주먹을 날릴 듯 손을 떨었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증오와 원념을 보며 배금성은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더 높은 곳을 밟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져온 인생. 그에게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놈이 한 명 있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었고, 자신에게 배신당한.
‘친구’였던.
소년은 사나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물었다.
“후회하나.”
그를 배신한 것을. 그의 선의를 악의로 돌려준 것을. 앞날 창창했던 장인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을. 배금성은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한다면, 그것은 백윤에 대한 기만이 되겠지.”
그의 마음속에서, 부디 개자식으로 남길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배금성은. 식방각주는 자신의 칼을 뽑았다. 백윤이 벼려준 칼.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칼. 그 칼날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 본 식방각주는 자신의 오른팔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뜨겁고 묵직한 살점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피가 뿜어졌다. 수많은 관객의 시선을 몸으로 받으며 식방각주는 황제의 앞에 무릎 꿇었다.
뇌리를 달구는 통증과 공포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노인에게 남은,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 최후의 순간까지 내어주지 않은 것. 그것을 알았기에 관객들은 침묵으로 식방각주의 뜻을 존중했다.
“만백성의 아버지. 대제국의 지배자. 위대하신 용의 아들이시여.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오늘날까지 분에 넘치는 영광을 누렸나이다. 하나, 오늘 경합으로 더 이상 이 노구에 남은 쓰임이 없음을 알게 되었으니. 오늘을 끝으로 물러나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합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십 년을 황실에서 일해온 늙은 요리사의 마지막. 피 흘리면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그에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허한다. 그간 황실에 다한 충성. 잊지 않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남은 한쪽 팔을 짚고 일어선 배금성은 소년에게 칼을 내밀었다.
이제는 그의 것이 아니게 된 칼. 한평생을 지탱해 준 칼. 그것마저 소년에게 내어준 그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전해주게.”
“넌 정말 개자식이야.”
“그래. 난 정말 개자식이지.”
껄껄 웃으며 떠나는 배금성의 등을 노려보던 소년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모든 것을 빼앗고자 했다. 그의 지위, 그의 재산, 그의 모든 것을.
하지만 단 한 가지. 그의 자존심만큼은 뺏지 못하였다. 그의 칼과 그의 오른팔을 집어 들며 소년은 말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겼으나, 패배하였구나.
그 사실은 오랜 시간 빗장뼈 안쪽에 박힌 채 사라지지 않으리라. 소년은 그 찝찝한 예감 속에서 괴로워했다.
* * *
“졌구나.”
상단주의 말에 배금성은 후련하게 대답했다.
“예, 졌습니다.”
“팔도 잃어버렸고.”
“칼 주는 김에 함께 떼줬습니다.”
“멍청한 놈.”
상단주가 건네주는 잔을 왼손으로 받으며 배금성은 그 어색한 감촉에 웃음 지었다. 오른팔 없이 걷는 것. 문고리를 쥐는 것. 잔을 받는 것까지도 어색하고 새로웠다.
동생의 얼굴에 떠오른 순박한 미소를 보며 상단주도 더는 그를 타박하지 않았다.
조용히 매실주를 꺼내온 상단주는 그의 잔에 넘치도록 술을 부어주었다.
“상단은 접기로 했다.”
“금화 상단을 말입니까?”
상단주의 파격적인 결단에 배금성은 화들짝 놀랐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 금화 상단의 명맥을, 이리도 쉽게 끊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형님.”
“안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이라 믿는다.”
상단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스스로 결정한 것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듯이.
매실주를 한입에 넘긴 그는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두 번째 잔을 채웠다.
“이대로는 말라죽을 뿐이다. 더는 미래가 없다. 나아진다는 희망이 없어. 지금 당장은 보유한 자금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상단주의 담담한 사망 선고에 배금성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냉혹하고 비정했으나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버틴다면, 어떻게든 물고 늘어진다면.”
“뜯어먹히겠지. 다른 사대 상단과 중소 상단에. 이권을 쥔 자들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기겠지.”
이것이 최선이다. 상단주는 거듭 강조했다.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듯이.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거래처. 상품. 이권을 전부 팔아넘긴다면 막대한 현금을 쥘 수 있지.”
“그렇다면…….”
“제국을 떠난다.”
찬드라 왕국으로. 왕국에 낸 분점을 발판삼아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그것은 대담했으나 가능성 또한 충분한 청사진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했겠지. 가진 것을 손에서 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턱밑까지 칼이 들어와도 가진 것을 놓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직 그만이 가능한 결정이리라. 오싹할 만큼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는 상단주를 보며 배금성은 전율을 느꼈다.
“찬드라 왕국으로 본점을 이전하신 다음에는,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더는 제국에서 활동할 수 없을 테지. 주 무대를 서역으로 옮긴다.”
“고향을 버려야만 하겠군요.”
“상인에게 고향은 없다. 상인이 돌아갈 곳은 오직 금은보화가 있는 곳. 그곳뿐이다.”
그 숨 막히는 미래를 그리며 배금성은 술잔을 기울였다. 달콤하고 향긋한 매실 향기. 그들을 기다리는 미래도 이만큼 달콤할까.
“형님, 형님께선 많이 늙으셨습니다.”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상단주는 처음으로 표정에 웃음을 띄웠다.
조롱과 경멸의 조소가 아닌, 순수한 즐거움에서 나온 웃음. 오랜만에 보는 형의 웃음에 배금성 또한 함께 웃었다.
“이 무거운 궁둥이도 슬슬 일어날 때가 되었지.”
“내정해 둔 아이가 있으십니까?”
“후후, 고르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낯설고 험난한 땅이 모래 속에서 보석을 골라주겠지. 상단주의 대답에 배금성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생 좀 하겠군요.”
“고생해야지. 그래야만 상단을 일으켜 세우지.”
“하하. 엄격하시군요.”
“술 한 잔 더 하겠느냐?”
상단주는 창고에서 작은 호리병을 꺼내왔다. 검은색 호리병엔 붉은색으로 천하제일 밀주라 적혀 있었다.
“상산의 봉밀주. 형님께서 아끼시는 거 아닙니까.”
“이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마셔보겠느냐?.”
상단주의 술을 받으며 배금성은 잠시 그 향기에 취했다. 감미롭고 진한 꿀 향기.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기에 어울리는 술이었다.
“새로운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요.”
배금성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를 보는 상단주의 눈에는 잠시 놀라움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그의 하나 남은 동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의젓해졌구나.”
“이제야 철이 좀 들었습니다.”
“너무 늦었어.”
“늦었지요.”
지금이라도 든 게 어딥니까.
그래. 네 말이 옳다. 이제라도 들어서 다행이지.
동생의 잔에 새로운 술을 부어주며 상단주는. 배금철은 씁쓰름한 신음을 흘렸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조금만 더 일찍 눈치챘다면. 그런 허황된 가정을 떠올리며 상단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동생은 이미 그가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멀리, 아주 멀리 훨훨 날아갈 자유로운 존재였다.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삼키며 배금성은 미소 지었다.
“형님. 먼저 갑니다.”
아우의 마지막을 전송하며 배금철은 조용히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나도 머지않아 따라갈 테니. 먼저 가 있거라.
누군가가 쓰디쓴 고별주를 마실 때, 누군가는 석연치 않은 기쁨의 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경사의 구석. 낡아빠진 철 방 안에서 노인과 소년은 말없이 잔을 기울였다.
“웃으면서 갔다니. X같은 일이군.”
“염병할 일이지.”
“그놈이 그렇게 편하게 가면 안 될 놈인데…….”
씨근덕거리며 연신 욕설을 내뱉던 백윤은 쓴 입에 쓴 술을 담았다. 염병할, 오늘따라 술은 왜 이렇게 우라지게 쓴 거야.
“염병할 놈 같으니…….”
평생을 원망해온 놈이, 씹어 죽이고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이 드디어 땅에 떨어졌는데도 어째선지 기쁘지가 않았다.
어딘가 섭섭하고, 어딘가 시원치가 않고, 어딘가 찜찜하다. 그래서인지 술맛도 썼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거 아뇨.”
나이를 먹어서 마음도 약해졌나 보지. 소년의 말에 백윤은 입에 육포를 물며 혀를 찼다.
“염병할, 역시 나이는 처먹을 게 못 돼.”
“그럼 작작 좀 쳐 잡숫지. 뭐 좋다고 주는 대로 받아 처먹었수?”
“이 X부럴 놈아 넌 안 늙을 것 같냐?”
“응, 나 뒤질 때면 댁은 백골이 진토된 지 오래야 영감탱이야.”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쉰 백윤은 소년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거, 줘봐.”
“뭐. 칼?”
“칼 말고.”
쯧, 일단 가져오기는 했는데…….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며 가져온 것을 꺼냈다. 한때는 존엄한 인간의 일부였던. 하지만 지금은 그 존엄함의 티끌도 남아 있지 않은 무가치한 것.
배금성의 오른팔을.
그의 팔을 받아든 백윤은 가열로에 불을 피우고, 팔을 집어넣었다. 매캐한 시체 타는 냄새가 나자 소년은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창문을 열었다.
쇠도 녹이는 가열로의 불꽃에 팔은 금세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불타버렸다. 허연 잿가루만 남은 가열로를 보며 백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나름의 전별이자 추모의 뜻일지, 아니면 원한을 표출하는 한 형태일지. 소년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칼은 어쩔 거요.”
“글쎄.”
일단 좀……. 놔둬 보고. 그 말을 끝으로 백윤은 다시 술을 들이켰다.
이겼는데, 이긴 것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