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37화
“말씀하신 군만두(煎饺)입니다.”
상을 가득 채운 황금빛 군만두의 벌판. 아직도 타닥타닥 기름방울이 튀어 오르는 뜨거운 만두를 내려다보며 태감은 지평선까지 펼쳐진 밀밭을 떠올렸다.
그 목가적인 감상과 함께 태감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 또한 함께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 고개 숙인 황금빛 밀들. 바람이 밀을 쓸어 만지면 들리는 귓가를 간질거리는 파도 소리. 바람의 방향에 따라 고개를 숙이는 밀들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말에 타 흥분했던 어린 날의 자신과 노심초사하시며 고삐를 잡아주셨던…….
“태감님?”
“아니, 아니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행복한 추억은 때때로 사람을 감성적이고 나약하게 만든다. 그 틈새로 떠올리지 말아야 할 기억이 떠오르자 태감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잊지 못하였구나. 아직도.
태감은 의식적으로 기억을 가라앉히며 젓가락을 들었다. 옛 기억에 정신이 팔려 군만두를 내버려 두다니.
“잘 먹으마.”
소년에게 감사를 표하며 태감은 군만두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첫입. 첫입을 먹은 순간 태감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기억이 일제히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태감이 베어 문 부분은 만두의 주름진 끄트머리였다. 도톰하고 바싹하게 익은 부분을 베어 물면 기름지면서도 고소했다.
태감은 참지 못하고 만두를 통째로 입으로 가져갔다. 화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에 소년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괜찮습니까? 물 드릴까요?”
소년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태감은 대답해주지 못했다. 입안을 가득 채운 황홀경은 그에게 맛보는 것 이외의 행위를 허락하지 않았다.
만두피는 뒤집지 않고 한쪽 면만을 익혔기 때문에 바삭바삭한 부분과 쫀득한 부분이 함께 공존했다.
관능적인 촉감이 잇몸과 혀를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태감은 조심스럽게 만두를 씹었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만두 안에 가득 들어찼던 증기가 빠져나오며 진한 육즙이 혀 위를 적셨다. 그 순간 태감은 단말마와도 같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입자가 굵은 돼지고기의 고소함과 양배추의 달콤함. 넉넉하게 들어간 생강과 마늘의 톡 쏘는 향기. 씹을수록 샘솟는 육즙은 감로수처럼 달고 향기로웠다.
그 순간 태감은 오랜 시간 결핍되었던 무언가가 충족되는 것을 느꼈다.
“이 얇은 만두피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 이것은 우주다. 맛의 소우주야!”
“호들갑도 그 정도면 우주급이십니다.”
소년의 핀잔을 흘려들으며 태감은 정신없이 두 번째 만두로 젓가락을 옮겼다. 만두는 먹기 딱 좋은 온도였다.
입안 가득 들어찬 만두를 씹는 것은 어째서 이리도 행복하고 즐거운 걸까. 어찌 보면 평범하고 당연한 행위가 오늘따라 특별하게만 느껴졌다.
입안을 채워주는 따뜻함. 그 순간 태감은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것, 정말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래…… 이거야. 나에겐 이게 필요했어.”
“군만두요?”
“……이 온기 말이다.”
외로움에 지친 자신의 심장을 뜨겁게 위로해 주는 온기. 따스함. 대가 없는 선의. 소년의 군만두에는 그것이 있었다.
양 볼이 미어지도록 군만두를 밀어 넣으며 태감은 자신의 지친 영혼에 평온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란 이리도 얄팍하고 가벼운 존재인 것이다. 맛있는 음식 앞에 불안과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정신없이 만두를 흡입하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작은 종지를 내밀었다.
“간장이라도 좀 찍어 드십쇼.”
“아, 간장! 그래. 간장을 찍어야지.”
군만두 하면 또 간장이지. 태감은 팔을 걷어붙이며 소년이 제시한 양념들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우선은 모든 양념의 기본이 될 간장.
“신맛이 있으면 느끼함이 싹 사라지지. 식초도 적당히 넣어야겠어.”
“고추기름도 좀 넣으시겠습니까?”
“고추기름! 매콤함이 더해지면 또 맛이 살지.”
식초 약간에 고추기름 듬뿍. 간장 위로 둥둥 떠오른 고추기름을 보며 태감은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자신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많은, 집단 지성의 힘이 필요했다.
“군만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양념은 무엇일까?”
“흠, 저라면 고춧가루를 한 숟갈 넣을 것 같군요.”
“아, 저희 지방에선 간장에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요.”
“전 다른 것 없이 고추기름만…….”
똑똑.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에 태감이 반사적으로 가면을 찾아 썼다.
야심한 시각에 찾아온 예정에 없던 손님. 그것도 의도를 알 수 없는 손님의 방문에 집무실 안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암살자라면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 또한 기만책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의심하는 것이 저희의 일이지요.”
위정은 품에서 무기를 꺼내 들며 태감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 번의 방심. 한 번의 실수로 목이 떨어지는 것이 후궁이었고 정치였다. 호위무사들의 준비가 끝나자 태감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실을 허가했다.
“들어오게.”
“시…… 실례합니다.”
쭈뼛거리며 들어온 것은 황제의 기미 환관. 송반이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그가 들어오자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았던 집무실의 긴장감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김이 샜다는 듯 몸을 늘어트린 태감은 한껏 떨떠름한 티가 나는 목소리로 송반을 불렀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예. 황제 폐하께서…….”
“송반. 그보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네.”
태감이 대놓고 불편하다는 티를 내자 젊고 미숙한 환관은 바싹 얼어붙어 버렸다.
조금 전의 긴장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듯 태감은 능글맞은 태도로 종지를 들어 올렸다.
“내가 군만두를 먹는데, 이에 어울리는 양념이 없어 걱정이라네. 좀 도와주겠나?”
“그…… 그것이…….”
“어허. 요즘 후궁 좋아졌어, 나 때는 말이야. 어? 상관이 뭐 하라고 하면!”
태감은 정치판에서 다져진 말솜씨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멀쩡한 사람도 신경성 복통, 탈모, 수전증이 생길 만한 태감의 솜씨에 소년은 혀를 내둘렀다.
“젊은 양반이 벌써 꼰대 끼가…….”
말꼬리를 흐리며 소년은 슬쩍 위정에게 눈치를 주었다. 저거, 안 말립니까? 소년의 시선에 위정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혹시 화나셨습니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시겠지요.”
바위같이 냉철하고 과묵했던 그에게서 느껴지는 인간미에 소년은 남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도 결국 사람이었다. 힘들 땐 힘들고, 짜증 날 땐 짜증 나는. 그의 사람다움을 느끼며 소년은 그의 어깨에 실린 책임의 무게 또한 실감할 수 있었다.
황제의 심복이며 후궁의 최고 권력자. 그의 목숨을 책임진다는 일이 얼마나 무겁고 막중한 일인지. 소년은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 만지며 위정에게 물었다.
“늘 이렇게 사십니까.”
“늘 그렇지.”
“항상 긴장하고, 의심하면서?”
“그래야만 하니까.”
위정을 올려다보며 소년은 현기증을 느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걸까.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얼음판을 걷듯이. 그것이 그의 충심이니까.
‘충성심이라.’
목덜미를 긁적거리며 소년은 두서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가을은 술 마시기 좋은 계절이지요.”
“너무 과하게 즐기지는 말거라.”
“그래야지요.”
봄에 담가둔 목련주가 향이 그럴듯하게 들었더군요. 소년의 말에 위정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마른 침을 삼키면서도 위정은 흥미 없다는 듯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목련으로도 술을 담그나?”
“담그지요. 두통과 축농증에 좋습니다.”
“그렇군.”
“숙성이 잘 되면 색은 은은한 호박색이 돌고, 입에 머금으면 목련 향기가 들숨 날숨에 섞이면서 온 방 안이 향긋해지지요. 특히 이번 술은 담글 때 목련꿀을 함께 넣어서 그 향기가 더욱 특별하더군요.”
주당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꿀꺽.
그의 입은 침묵했지만, 목울대는 솔직했다. 난처한 듯 고개를 돌린 위정을 보며 소년은 넌지시 술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술 창고 세 번째 선반에 보면 목련주가 있는데, 매화 무늬가 그려진 백자병…….”
“커흠.”
“하도 많이 담갔더니 처치 곤란이라 누가 좀 가져가 줬으면……. 크흠. 나으리 들으시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밤 술 창고에 밤손님이 오겠군.
오늘 밤은 창고 문단속을 깜빡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슬며시 위정의 얼굴을 보았다. 침묵과 근엄함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언젠가 당신과도 술 한잔 기울일 날이 오겠지.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 걱정 없이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을 그 날이 오면.
‘그날은 과연 언제일까.’
부디 눈감기 오기 전 그날이 오기를. 창밖으로 떠오른 별을 보던 소년은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선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작작 좀 갈궈요. 거 참.”
“어허. 다 이렇게 배우는 거란다.”
“적당히 하고 만두나 잡숴요, 다 식겠네.”
소년의 핀잔에 태감은 언짢아하면서도 얌전히 젓가락을 들었다. 이 순간에도 군만두는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아,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태감이 군만두에게 참회를 속삭이는 동안 소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송반에게 닦을 것을 건네었다.
“뭐 일이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네? 황제 폐하께서 오상호 님께 볼일이 있으시다고…….”
“나? 아니, 저 말입니까?”
그 양반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고?
* * *
환하게 뜬 보름달 아래. 창백한 달빛이 쏟아지는 반룡궁의 내원에서 제국의 지배자가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에서도 가장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꾸며진 내원은 단둘이서 얼굴을 맞이하기에 좋을 넓이였다.
좁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용의 아들과 독대할 수 있다는 영광을 손에 넣은 소년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흠. 잘 지냈느냐?”
“잘 못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뭐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해 보거라.”
“남 다 잘 시간에 이렇게 폐하와 사담을 나눠야 하니 편할 리 있겠습니까.”
“커흠……!”
꼬우면 모가지 자르시던가.
피로에 찌든 소년의 눈초리에 황제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자주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간땡이가 부어서 겁대가리가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은 황제가 이상할 정도로 편하게 느껴졌다. 마치 태감을 대하는 것처럼.
“그래도 황제인데, 체면을 조금 살려줬으면 좋겠구나.”
“공적인 장소에서는 고려하지요.”
황제는 소년의 무뚝뚝한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묘하게 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퉁명스럽고 불친절하지만 적대적이지는 않은, 마치 오래 사귄 친구를 대하는 듯한 소년의 태도는 그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존귀하신 만백성의 아버지. 대제국의 지배자이시며 백만 금군의 군주시여. 이 미천한 환관을 찾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년이 마지못해서 한다는 듯이 인사를 올리자 황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너를 찾은 이유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긴 수염을 쓸어 만지며 눈을 감은 황제는 자신이 꺼낼 말을 음미하듯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용의 아들이 말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손끝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소년은 황제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굳게 닫힌 황제의 입술이 열리고, 그 안에선 소름 돋을 만큼 끔찍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네가 어떤 요리를 할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더구나.”
“하하하.”
“허허허.”
이걸 황제라 들이받을 수도 없고. 아니, 한 번만 해볼까? 수틀려 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소년의 눈동자에 살심이 싹트자 황제는 다급히 변명을 꺼냈다.
“물론 이 밤에 널 초청한 것은 정말 중요한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제안을 꺼내기 전 너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서 농담을 건네어 본 것뿐이다.”
이걸 받아? 말아? 갈등하던 소년은 결국 탄식하며 고개를 위로 꺾었다. 이 야밤에 뭐 하는 건지. 중천에 떠오른 달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불도장을 끓일 생각입니다.”
“호오, 불도장이라. 최종 경합에 어울리는 요리로다.”
“식방각주도 아마 같은 생각이겠지요.”
소년의 담담한 확신에 황제는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어찌 그리 확신하느냐?”
“감입니다. 요리사의.”
“감이라. 그럴듯한 대답이군.”
소년의 대답이 재밌었는지 몇 번을 되뇌며 코웃음 친 황제는 식방각주가 끓인 불도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방각주가 끓이는 불도장은 황실 요리의 정수라고 할 수 있지. 큰 장수도롱뇽과 사슴의 힘줄. 곰 발바닥. 잉어. 낙타의 발굽과 인삼. 원숭이의 입술과 백마의 간. 꿩의 골. 사불상(四不像)의 머리 등이 들어갔던 것 같구나.”
“몸에 좋은 식재료는 다 들어갔군요.”
“그래. 마시면 몸에서 열기가 솟아오를 만큼 약성이 진하지.”
하지만 그것은 황실에서 끓였던 불도장이다. 벼랑 끝에 몰린 식방각주는 어떤 탕을 끓여올까. 얼마나 필사적으로 요리를 할까. 궁금하지 않으냐?
“이길 자신, 있느냐?”
황제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황제의 눈동자 속에 떠오른 흥미와 장난기를 보며 소년은 황제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어차피 짜고 치는 경합 아닙니까. 심사위원이 폐하신데.”
“하하. 그래. 이미 승자는 정해져 있는 경합이지. 하지만 어느 정도 그럴듯해야 백성들이 의심하지 않을 것 아니냐.”
“뭐, 눈치 보이지 않을 만큼은 해야지요.”
황제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웃고 떠들며 소년은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인지. 사소한 일에도 웃고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어째서 황제인가.
그는 어째서 황제여야 하는가. 소년은 그에게 묻고 싶었다.
식방각주의 몰락은 곧 금화 상단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된다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옥린비가 아닌가.
옥린비는 당신의 여인이 아닙니까. 정녕 아무렇지도 않으신 겁니까?
이번 정쟁(政爭)에서 그녀 또한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신 아닙니까.
우린 그녀를 죽일 겁니다. 화근을 제거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멈추라 하신다면 그녀의 목숨만큼은. 소년은 끝까지 그 의문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는 소년의 의문을 알았다.
“고맙다.”
알면서도, 궁금해하면서도 질문하지 않아 줘서. 날 배려해 주었구나.
고맙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그에게서 느껴졌던 인간미가 모조리 사라진 것을 소년은 알 수 있었다. 그는 황제였다.
대제국의 지배자. 용의 화신. 그가 소년에게 제안했다.
“후궁의 상호. 식방각주의 뒤를 잇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