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36화
풍로가 숨을 불어넣자 가열로 안에서 불꽃이 몸을 일으킨다. 사천의 비단향목과 운남의 철목, 조개껍데기와 옥가루를 태운 불꽃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기묘한 비취색으로 타올랐다.
“신기하구만.”
“상고시대 때 신선이 검을 벼리기 위해 피웠다는 취염(翠炎)이다. 제국 제일의 야장, 철왕 당백의 비전이지.”
판타지 하구만. 불꽃 근처로 손을 가져다 대며 소년은 중얼거렸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도 불꽃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화끈한 열기가 아닌 손끝이 시릴 만큼 차가운 냉기였다.
마치 주변의 열기를 빼앗으며 몸집을 불리는 것처럼. 서리가 내린 것처럼 얼어붙은 손가락을 감싸 쥐며 소년이 물었다.
“이거 진짜 불 맞나? 차가운데?”
“손가락 한번 넣어봐라. 삼 초면 숯덩이가 될 테니까.”
낄낄거리던 백윤은 칼의 형태로 모양을 잡아둔 운철을 꺼내왔다. 칼의 모양은 잡혔으나 아직 칼은 아닌,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한 것. 백윤은 집게로 쇠를 집어 들었다.
“담금질은 곧 쇠를 도구로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생명을 불어넣는 거야.”
칼이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나와도 부끄럽지 않도록. 백윤은 불빛에 매료된 듯 탁한 눈동자로 불꽃을 들여다보았다.
“슬슬 넣어야겠군.”
창백한 불꽃 속으로 쇳덩어리가 파고든다. 소년이 풍로를 쥐고 힘껏 누르자 불꽃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냉혹한 불꽃 속에서 칼날이 달아오른다.
하늘에서 떨어진 쇠가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며 백윤은 커다란 통에 기름을 쏟아 넣었다.
“그건 뭐요?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고래의 내장 기름이다. 거기에 이것저것 섞은 거지. 알려주랴?”
“내가 알아서 어디다 쓰라고?”
불꽃이 타오르며 칼날 위로 엉겨 붙었다. 달아오른 칼날의 표면이 마치 태양처럼 백열 하는 순간. 백윤이 칼날을 기름통으로 집어넣었다.
기름이 끓어오르며 매캐한 연기와 악취가 피어올랐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칼날이 빠져나왔다.
“칼이군.”
“그래. 비로소 칼이 되었다.”
그것은 칼이었다. 그저 직사각형의 쇳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 칼이 되었다. 짙은 회색빛 칼날은 빛나고 있었고 날을 갈지 않았는데도 예기가 흘렀다.
아직 뜨거운 칼날의 슴베를 쥐고 휘두르며 소년은 번뜩이는 전율을 느꼈다.
칼날에 자신의 신경이 연결된 듯했다. 뜨거운 칼날은 자신의 심장과 같은 울림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온몸으로 퍼지는 고동을 느끼며 소년은 한 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벅차오른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반백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런 일로 눈물을 흘리다니, 주책이라고 자책하면서도 소년은 칼을 놓지 않았다.
“마음은 알겠지만 그만 놔라. 뜨임질을 해야 하니까.”
“뜨임?”
“담금질만 하면 칼날이 너무 단단해져서 쉽게 깨지거든. 그러니까 다시 한번 달궜다가 천천히 식히면서 부드러움과 질김을 칼에 심어주는 거지.”
아름다웠던 비취색의 불꽃은 이미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듯 사그라들어 있었다. 이번에 사용하는 것은 평범한 석탄이었다. 시꺼먼 무더기를 가열로 안으로 밀어 넣는 백윤을 보며 소년이 물었다.
“도대체 뭐요? 저 불은.”
“말하지 않았느냐. 신선의 불이라고.”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직접 눈으로 봤으니.”
석탄 무더기를 뒤적이며 불꽃이 삐져나올 틈을 만들어준 백윤은 손때묻은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세월의 사토 속에서 마모된 탁한 눈동자로 칼날을 보던 그의 주름진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잘 나왔다. 정말 잘 나온 칼이야. 그때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좋아.”
“잘됐군. 그 새끼 면상에 칼을 들이밀어 줘야지. 니 칼보다 더 좋은 칼이라고.”
“상상만 해도 짜릿하군. 그 녀석이 가장 무서워한 것이 바로 그거였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칼을 가진 이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는 것. 그 녀석에게는 최고의 악몽이 될 거야.”
시뻘건 불꽃 속에서 칼날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멍하니 칼을 들여다보던 소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그 불꽃은 도대체 뭐요?”
“아 거! 신선의 불이라니까! 귀먹었냐 쌍놈아!”
“그거 말고 뭐 하는 불이냐고! 어지간하면 좀 알아먹어야지 노친네가 눈치도 없어!”
한참을 씨근덕거리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한 둘은 각자의 손에 든 연장을 내려놓으며 휴전은 선언했다.
어휴, 저 어린놈(늙은이) 이겨서 뭐할 거야. 내가 참아야지. 한참을 구시렁대던 백윤은 한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대장장이가 자신의 마음을 녹여내는 불꽃이다.”
그 순간 백윤의 표정에 떠오른 회한의 감정에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식방각주의 칼을 만들어주며, 순진했던 시절의 그는 어떤 감정을 담았을까.
어떤 마음을 칼에 녹여냈을까. 소년은 그의 곰방대를 찾아다 손에 쥐여주었다.
백윤은 떨리는 손으로 곰방대에 담뱃잎을 채우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후회스럽고 원망스러워 죽고만 싶었다. 그딴 놈을 위해서 스승님이 남겨주신 운철을 써버리다니. 돌아가신 스승님께 죄를 지은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지.”
스승님의 묘 앞에서 울면서 빌었다. 하염없이 울었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죄를 고백하는 늙은 대장장이의 눈에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하고 원통해서 울었다. 그놈이 승승장구하여 황실의 주방장 자리를 차지했으니, 난 제국의 모든 요리사에게 죄를 지은 거야.”
그놈을 친구라고 믿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 스스로가 밉고 또 미워 그저 죽고 싶었다. 죽어서 스승님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 싶었어. 아니, 어쩌면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백윤의 손에서 곰방대가 떨어졌다. 떨어진 곰방대에서 피어오르는 희멀건 연기를 올려다보며 백윤은 쇠집게를 집었다.
“하지만 죽을 수도 없었어. 난 내가 저지른 실수를 책임져야만 했다.”
집게가 달아오른 칼날을 꺼냈다. 달아오른 쇠를 천천히 식으며 질기고 튼튼해지도록. 칼날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훔친 백윤은 소년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내게 기회를 줘서.”
내 젊은 날의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줘서. 네 덕분에 죽어서도 스승님 앞에서 면목이 서겠구나.
늙은 대장장이의 손을 마주 잡으며 소년은 입안에서 혀를 굴렸다.
무언가 그럴듯한 위로 한마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지만 생각나는 거라고는 투박한 욕설 섞인 농담 같은 것들뿐이었다.
이러니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실속이 없다고 욕을 먹지. 나이만 처먹었지, 대가리는 여전히 깡통이야.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쉰 소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사람이 이 모양이라 위로는 못 해주겠는데, 하나는 약속 하겠수다.”
그 개자식. 반드시 개 박살을 내주겠다고.
* * *
우아하게 빛나는 회색빛 칼날. 완벽하게 잡힌 무게중심. 운철 칼을 손에 쥔 위정은 칼날에 스며든 장인의 고집에 찬사를 바쳤다.
“과연 철왕의 제자 다운 솜씨다. 소름 돋을 만큼 훌륭하군.”
“좋은 칼을 두 자루나 쥐게 되었으니, 분에 넘치는 영광이지요.”
“운철이라……. 운철로 만든 칼이란 말이지.”
모든 무관이 평생에 단 한 번 쥐어보기를 소망하는 그 운철로 식칼을 만들다니. 칼을 소년에게 돌려주며 위정은 애달픈 한숨을 흘렸다.
만약 식칼이 아닌 검을 만들었다면. 어떤 명검이 세상에 나왔을까. 그 값어치를 상상하던 위정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보물은 제 주인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소년은 운철의 주인이 되기에 충분한 실력자였다.
“이런 보물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네가 이 칼을 쥘 만한 인물이었기에 칼이 널 찾아온 것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라.”
“그래야지요.”
“허허. 내로라하는 무관들도 평생 쥐어보지 못하는 것이 운철과 오철이거늘. 그 두 자루를 동시에 쥔 것이 요리사라니.”
눈동자에 떠오른 부러움의 감정을 감추며 위정을 헛기침을 했다.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던 태감이 위정의 신호에 고개를 돌렸다.
세월의 무상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덧없는 인생의 허망함 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깨우친 것만 같은 시선에 소년은 가슴을 찌르는 통증을 느꼈다.
통증의 원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하늘하늘한 걸음으로 소년에게 다가온 태감은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면을 벗었다.
가면에 가려져 있던 선녀의 얼굴에 맺힌 슬픔을 올려다보며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쓸데없이 잘생겨서 지랄이지. 삐딱하게 올려다보는 소년에게 태감은 섬세하게 조각된 서글픈 미소를 드리웠다.
“배고프다.”
“하여간…… 뭐 드시고 싶으신데요.”
“글쎄…… 기름진 거…… 음…… 군만두?”
“군만두? 또 뭔…….”
태감을 가만히 보던 소년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다는데 뭐 어쩌겠나. 해줘야지. 소년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기다리고 있던 장소와 이삼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뭘 준비할까요?”
“일단 밀가루랑 돼지고기. 밀가루는 세 포대 정도. 돼지는……. 일단 한 마리 분량.”
“흐엑, 그렇게 많이요?”
“반은 태감님이 드실걸?”
힐끗 태감을 본 장소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한 마리는 해야겠네요!”
“그렇지?”
“허허 녀석들. 날 너무 잘 알아.”
태감의 흐뭇한 미소에 속으로 쌍욕을 날리며 소년이 주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저녁 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우선은 반죽부터 해야겠다. 거기 대야 두 개 가져오렴. 제일 큰 것.”
물을 뜨겁게 끓여 익반죽을 준비한 다음, 소년은 밀가루를 대야에 쏟고 소금을 솔솔 뿌렸다.
“반죽은 적당히 질지 않게.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천 깔고 발로 밟아서 반죽하는 게 편하다. 손으로 하면 손목 나가.”
뜨거운 물에 손이 데이거나 하지는 않는지 지켜보던 소년은 고개를 돌려 도마 위에 쌓인 고기의 산을 보았다. 어휴, 손목은 내가 나가겠군.
120㎏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살코기(정육)의 경우 60㎏ 정도. 뼈와 내장, 불필요한 지방 등을 전부 제거한 살코기의 양이었다.
60kg. 근으로 따지면 백 근. 백 근의 고기 무더기 앞에서 소년이 칼을 빼 들었다. 왼손에는 새카만 색의 오철. 오른손에는 짙은 회색의 운철. 두 자루의 칼을 빼 든 소년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새 칼의 성능시험에 딱 맞아.”
칼날이 도마 위를 질주했다. 수천 마리 말이 질주하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살점이 튀어 올랐다. 칼날은 마치 두부를 다지는 것처럼 저항감 없이 움직였다.
칼날을 타고 전해지는 육질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소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고양감을 느꼈다.
칼이란 것이 어쩜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어떻게 이토록 부드럽고 예리하게 움직이는 걸까.
칼이란 것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물건이었나. 칼과 칼을 움직이는 자신. 둘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매료된 소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칼날을 타고 전해지는 떨림으로 세계가 보였다. 시력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었던 세계를 보며 소년은 답답한 세계의 족쇄를 끊은 듯한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한 근, 두 근. 어느 순간 소년은 도마가 텅 비었다는 것을 느꼈다. 공허한 허공 속에서 칼을 멈춘 소년은 두 눈을 떠 도마 위를 확인했다.
“이런, 다 다졌군.”
“저희도 반죽 끝났어요!”
고기가 다 다져진 순간 소년에게 남은 것은 일을 끝냈다는 해방감이 아닌 진한 아쉬움이었다.
칼과 함께 숨었던 순간의 충족감. 그 아쉬움을 털어내며 소년은 준비된 고기를 큰 절구에 쏟아 넣었다.
“자, 그럼 고기에 다진 마늘이랑 생강 한 줌, 간장 조금 넣고.”
소년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긴 밀대를 내밀었다. 국수를 필 때 쓰는 밀대로 어린아이 팔뚝만 한 굵기에 소년의 키보다도 긴 것이었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 휘저어주면 된다.”
“한 방향으로만요?”
“안 그러면 물이 도로 빠져나오거든.”
장소가 의문스럽다는 얼굴로 밀대를 쥐자 소년은 따뜻하게 데운 닭 육수를 고기에 부었다. 닭발과 껍질, 뼈를 푹 고아내 콜라겐이 듬뿍 우러난 진한 육수였다.
“이렇게 육수를 먹이면 소가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단다. 씹으면 육즙도 나오고.”
사실 현장에서는 육수 뽑기 귀찮으니까 뜨거운 물에 치킨 스톡 섞어서 쓰지만. 장소가 힘을 쓰는 동안 이삼은 소년의 옆에서 채소를 써는 것을 거들었다.
그동안 바지런히 연습했는지 이삼의 칼질은 퍽 능숙했다.
“제법 그럴듯해졌구나. 이제 고기 손질하는 법도 알려 줘야겠는걸.”
“에헤헤. 만두 만드는 법도 알려주실 거죠?”
“그럼. 알려줘야지.”
후배 녀석들에게도 알려주고 왔으면 좋았을 것을. 마음속에 퍼지는 씁쓸한 파문에 소년은 남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앞서나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가르쳤어야 했는데. 후배들에게 못난 선배였기에 소년은 이삼과 장소가 더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에이, 아니다. 그놈들이 삼이나 장소 반만 닮았어도 진작에 알려줬지.’
소가 충분히 육수를 머금었으면 후추와 굴소스로 간을 해주고 기름기를 더해주기 위해 돼지 등 기름을 넣는다.
돼지기름이 반죽에 충분히 배어들면 마지막으로 소금에 절여 물기를 뺀 양배추와 부추. 곱게 다진 대파를 넣어 만두소를 마무리했다.
“자, 이제 만두피를 만들어볼까?”
“네!”
장소가 만두피를 떼 내면 손재주 좋은 이삼이 밀대로 만두피를 밀고, 그것을 소년이 받아 만두소를 빚었다.
모양은 군만두에 적합한 주름진 반달 모양. 한 판. 두 판. 쌓여만 가는 만두를 보며 소년은 굽은 허리를 두드렸다.
“어이구 허리야. 옛날에 만두 장사 하지 말라는 게 다 이유가 있어.”
손은 많이 가지. 근데 마진은 적지. 소년이 혀를 차자 옆자리에서 장소가 배시시 웃었다.
“그래도 뿌듯하잖아요. 예쁘게 만들어진 거 보면.”
“아이고. 우리 장소는 말하는 것도 이뻐 아주.”
하지만 장소야, 보람이 꼭 수익과 비례하는 건 아니란다. 순진한 아이에게는 들려줄 수 없는 어른의 검은 속을 삼키며 소년은 만두 바구니를 들고 일어섰다.
드디어 군만두의 하이라이트. ‘구울’ 시간이었다.
아궁이에 철과를 걸고 기름을 듬뿍 두르며 소년은 이삼과 장소를 불러들였다.
“일단 하나씩 먹고 하자꾸나.”
군만두는 역시 방금 튀겼을 때가 제일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