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135화 (135/314)

환관의 요리사 135화

땅거미가 내려앉은 하늘은 어슴푸레했고 사람들은 고단한 일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했다.

장사를 끝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 상인, 장터에서 가져온 채소를 전부 팔아 기분이 좋은 농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위장을 유혹하기 위한 야시장의 노점상들.

어딜 가나 떠들썩한 분위기가 감도는 주점 골목 사이를 우울한 얼굴의 노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이 배어든 표정은 허망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웃고 떠들며 마시는 사람 중 우울한 노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값싼 분주가 몇 순배 돌고 뜨끈한 국물과 돼지 내장이 가득 담긴 탕이 상에 오르자 술꾼들은 자연스레 이야깃거리를 찾았다.

“자네, 직접 가서 봤다면서?”

“아암. 봤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다고.”

사내가 거드름을 피우며 텅 빈 잔을 까딱거리자 옆의 동료들이 앞다투어 술과 음식을 주문했다. 돼지고기 꼬치구이에 족발 찜. 술 한 동이. 향기 좋은 백주를 잔에 채운 사내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굉장했지. 설마 천하의 식방각주를 꺾은 요리사가 그런 볼품없는 아이일 줄이야.”

불콰하게 취해 흐느적거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노인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노인의 수상쩍은 거동에도 이미 흥분에 빠진 사내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잔을 들어 올렸다.

“도대체 어떤 꼴이었길래?”

“이야…… 왼 다리를 저는 데다가 허리까지 굽었더군. 근데 그런 몸으로 만드는 요리가 크으!”

“맛있어 보였나?”

“말에 무엇하나. 그 향기만 맡아도 그냥!”

정말 대단했지. 그 향기가 어찌나 그윽한지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향기에 취해서 침을 흘리더라고! 나?

커흠, 나도 좀 흘렸지. 아주 조금. 호탕한 웃음으로 부끄러움을 얼버무린 사내는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그건 그렇고 정말 꼴사나운 일이지. 어떻게 자기 손자뻘의 애한테 그렇게…….”

“내 말이. 나 같으면 쪽팔려서 접싯물에 코 박고 죽었어.”

“심지어 무릎 꿇고 빌었다며? 세상에 그런 철면피가 어디 있어? 어지간히 해 먹었으면 내려올 줄도 알아야지.”

식방각주에 관련된 질펀한 농담을 나누며 사내들은 웃고 떠들었다. 그들을 물끄러미 보던 노인은 이내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거나하게 구토한 취객을 지나 골목길을 들어가서, 음산한 꼴을 한 군중들을 헤치고 노인은 어느 간판도 제대로 달려 있지 않은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 안엔 상표가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술 항아리가 그득했다. 누가 보기에도 밀주 양조장인 가게 앞에서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깊게 눌러 쓴 모자를 벗었다.

노인은 다름 아닌 배금성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배금성은 가게의 문턱 앞에 발을 걸쳤다. 기나긴 시간 동안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지고 패인 문턱을 넘어서며 배금성은 혀를 지그시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이 입안에 퍼지자 정신이 또렷하게 서는 듯했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제국의 상계를 사 등분 한 사대 상단의 일원. 금화 상단의 시작이 이 음침한 양조장이었다는 사실을. 밀주업을 자금줄로 세를 불려 상계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이곳이 바로 금화 상단의 본점이었으며, 금화 상단의 상단주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가게 안에는 허름한 가게에 어울리는 허름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옷에 들러붙은 이를 잡고 있었다.

“형님.”

“아아. 왔느냐?”

노인은 지나칠 만큼 평범했다. 이목구비도, 듬성듬성하게 빠진 허연 머리카락도. 기운 흔적이 있는 허름한 옷도. 무엇 하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허름한 가게에서 술이나 담그며 소일하는 노인.

그가 바로 제국에서 부유한 네 명의 상인 중 한 명. 금화 상단주 배금철이었다. 배금성이 자리에 앉자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술잔과 술병을 내왔다.

“작년 여름에 담근 매실주인데, 제법 맛이 난다.”

“예. 잘 먹겠습니다.”

공손히 잔을 받은 배금성은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셨다. 달콤한 매실 향기가 코로 훅 치고 들어왔다.

“잘 묵었군요. 군내도 없고. 적당히 달콤하고.”

“그래. 네 혀는 늘 정확했지. 그래서 너를 밀어줬고.”

하지만 이번엔 그냥 눈감아주기 힘들구나. 건조한 상단주의 말에 배금성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고개를 숙였다.

동생의 머리를 내려다보는 상단주의 눈빛에는 일말의 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피붙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이.

“형님.”

“망신은 망신대로 당했지. 상단의 주 수입원인 교역단과의 거래도 성사시키기 어려워졌지.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황제 폐하의 앞에서 함부로 혀를 놀렸다는 거야. 따가운 질책을 뱉으면서도 상단주의 목소리는 평탄하고 평온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소름 끼쳤다. 마치 차가운 피가 흐르는 듯한 상단주의 눈빛을 받으며 배금성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한 번만 더 믿어주십시오.”

“다른 도리가 없으니, 당연히 그리할 거다. 네가 저지른 실책은 네가 만회해야지.”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면. 은퇴하도록 해라. 상단주의 말에 배금성이 잔을 떨어뜨렸다. 그의 인생을 모조리 투자해 이룩한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그는 다급하게 매달렸다.

“혀…… 형님. 그래도 지금까지……!”

“금성아.”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배금성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열변을 토해내고자 했던 입술은 굳어버렸고 핏줄의 정에 의존하고 싶었던 연약한 심장은 냉혹한 바늘에 찔린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상단주는 술병을 들어 올렸다.

“금성아. 내가 은퇴하라고 한 것은, 너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내 마지막 자비란다.”

넌 내 가족이니까. 하나 남은 동생이니까. 마지막으로 한번 기회를 주는 거다. 알고 있겠지?

그 온화한 말에 배금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상단주를 실망시킨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 어떤 모습으로 죽었는지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단주는 눈동자를 갸름하게 뜨며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너무 나쁘게 생각할 것 없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느긋하게 살아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그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그…… 그렇겠지요. 하하, 벌써 기대가 되는군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은퇴는, 네가 모든 일을 잘 마무리 지었을 때의 일이란다. 배금성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상단주는 그의 귓가에 차가운 독을 흘려 넣었다.

그의 심장에 단단히 새겨지도록.

그가 잊지 않도록.

실수하지 않도록.

자신의 손으로 그를 죽이지 않도록.

창백하게 질린 동생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상단주는 난로를 꺼내왔다. 가을 무렵. 밤공기는 손이 떨릴 만큼 차가웠다.

말없이 술잔을 들이키던 상단주는 배금성의 어깨에 떨림이 멎자 질문을 던져왔다.

“진설이. 그 아이는 잘 있더냐?”

“예? 아…… 잘 지내더군요. 후궁에서 자리도 잡았고…….”

“그것은, 전해줬느냐?”

형님. 그것은…….

배금성은 두려움에 찬 눈동자로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상단주를 올려다보았다. 냉혹한 말을 입에 담으면서도 상단주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동자 속에서 질녀의 얼굴을 그린 배금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동생이지만, 그 아이는 당신의 친딸 아닙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형님의 딸 아닙니까.”

“금성아. 마음이 약해졌구나.”

“형님. 진설이는 형님의 친딸입니다.”

“그래. 내 딸이지.”

그러니 그 아이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 아니냐. 상단을 위해서 몸 바칠 기회. 상단주는 처음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웃음이었으나, 도저히 웃음으로는 보이지 않는 기묘한 표정이었다.

“만약 그 아이가 ‘그것’을 써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상단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위기가 닥쳐왔다는 뜻이겠지.”

상단이 더 이상 그 아이를 지원할 수 없고, 그 아이도 더는 상단을 보호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 말은 곧 그 아이의 쓸모를 다했다는 소리 아니겠느냐?.

모든 것이 손해와 이익으로만 나누어진 상인 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말은 아니었다. 인두겁을 뒤집어쓴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의 형을 보던 배금성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서 진설이에게 그것을 준겁니까? 상단의 적을 죽이라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당장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재기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때를 위해서, 상단의 적을 미리미리 줄여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특히, 오상호 같은 전도유망한 걸림돌은 미리미리 치워두어야지.

배금성은 눈을 감았다. 평생을 함께해온 자신의 형제였지만 그는 자신의 형을, 상단주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그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며 배금성은 대답했다.

“예, 전해줬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금성아. 열심히 하거라. 최선을 다해서.

* * *

다관 막심에도 가을은 찾아들었다. 흰색과 푸른색으로 시원함을 강조했던 여름 다기는 붉은색과 짙은 갈색의 가을 다기로 교체되었고 차과자 또한 밤과 사과, 호박과 대추 같은 가을의 풍류가 느껴지는 과자들로 바뀌었다.

정원의 연못에 빨간 단풍잎이 흩뿌려질 때쯤. 추레한 모습의 소년이 다관 막심을 찾아 왔다.

“스…… 스승님 오셨습니까!”

“표자승이 그리 부르라 시키든?”

호들갑을 떠는 직원들을 보며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직원들의 눈동자는 마치 신을 영접하는 광신도처럼 격정적인 감동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극진하기 그지없는 대접에 소년은 등허리를 기어오르는 한기를 느꼈다.

표자승, 이 새끼 평소에 직원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뭔데 시발 애들이 날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떠받드는데?

가마를 빌려오겠다. 위층까지 업어드리겠다. 야단스럽게 구는 직원들을 물리며 소년은 자신의 걱정이 부디 기우로 끝나기를 기도했다.

“스승님!”

“표자승.”

이 미친 새꺄 직원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소년은 표자승을 보자마자 걸쭉한 욕설과 함께 달려들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곰 같은 거구가 정강이를 쥐며 나동그라지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아이고! 스승님!”

“너 평소에 뭐라고 떠들고 다닌 거야?”

“그것이……. 평소 스승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넘쳐 흘러서. 직원들까지 감화가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허허, 감화? 감화돼? 이 미친놈의 새끼야.”

이게 감화냐? 세뇌지? 소년이 주먹을 쥐자 표자승이 손을 내저으며 다급히 내뱉었다.

“스…… 스승님, 일단 특실로 가서 말씀하시지요.”

“하아……. 그래. 네 체면도 있지. 올라가서 보자.”

특실에 들어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달콤한 과자를 내왔다. 달콤하게 조린 사과와 밤, 호박 등을 풍성하게 얹은 페이스트리와 검은깨를 넣고 반죽하여 튀긴 도넛 등. 소년이 개발한 다관 막심의 가을 한정 메뉴였다.

“어떠냐? 매상은?”

“순조롭게 상승 중입니다. 특히 스승님께서 고안하신 다과(茶菓)가 큰 인기입니다.”

“그래? 손님들이 좋아하신다니, 다행이군.”

자신이 만든 과자가 인기 있다는 소식에 분이 좀 풀렸는지 소년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소년의 미소를 보자 표자승은 상계에서 갈고 닦은 아부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그래그래.”

“특히 여성 손님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신 그 안목은……!”

“커 흠. 그래 적당히…….”

“그야말로 과자의 신이십니다!”

“네가 그러니까 직원들이 그 모양인 거 아냐!”

과함은 모자람만 못한 법. 지나친 아부는 오히려 빈정이 상하는 법이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표자승을 두들겨 팬 소년은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가늘게 뱉으며 호흡을 고른 소년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냐. 그쪽은.”

“찬드라 왕국 말씀입니까.”

소년의 목소리에선 장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기 없는 목소리 속에서 표자승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차렸다.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뿌리를 단단히 내렸습니다. 어느 가문이 금화 상단과 연계하고 있는지도 알아냈고, 자금도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늙은 괴물의 숨통을 끊어야지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표자승을 보며 소년 또한 함께 웃었다. 사나운 미소였다.

“오랫동안 참았지.”

“즐거운 기다림이었습니다.”

젊은 날의 모든 것을 걸고 시도했고, 끝내 실패했던 인생의 숙원. 그 끝이 다가왔음을 느끼며 표자승은 흥분으로 떨리는 심장에 손을 얹었다.

살가죽 바깥으로도 전해지는 강렬한 울림.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끼며 표자승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니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심중함을 강조하는 표자승의 얼굴을 보며 소년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이한 각도로 드리운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가렸기에 소년은 꼭 대낮에 나타난 귀신처럼 불길해 보였다.

새빨간 혓바닥이 메마른 입술을 핥자 표자승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왕국으로 사람을 보내라.”

경합은 앞으로 일주일 후. 경사에서 찬드라 왕국까지 가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소년의 성급한 결정에 표자승이 황급히 소년을 막아섰다.

“스승님. 경합이 끝나고 나서 사람을 보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늦는다. 경사와 왕국은 거리가 너무 멀어. 말을 갈아타며 사람을 보내도 몇 달은 걸릴 테지. 한다면 지금이다.”

친다면 상대가 방심하고 있을 때 쳐야지. 식방각주가 패배했을 때 사람을 보내면 이미 그쪽에서도 대비를 단단히 했을 거다. 기회는 지금뿐이야.

소년의 말에 표자승은 반박할 논리를 찾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불안감에 흔들리는 표자승의 눈동자를 보며 소년이 그의 멱살을 쥐고 얼굴을 끌어당겼다.

“믿어라. 표자승. 나의 승리를 의심하지 말고. 나의 패배를 두려워하지 마라.”

난 반드시 이긴다.

어떠한 논리도 근거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표자승은 소년의 다짐을 받으며 빗장뼈 안쪽에 파고든 근심과 불안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예. 스승님. 스승님은 반드시 이기시겠지요.”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