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134화 (134/314)

환관의 요리사 134화

새로운 것은 늘 무서운 법이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세계, 그리고 새로운 음식.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취해있다면 결코 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 그 한 걸음을 떼기를 주저하며 송반은 마른 침을 삼켰다.

송반의 얼굴을 본 황제가 소년에게 물었다.

“이 요리는 어떤 요리인가.”

“예 폐하.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한껏 양분을 축적한 야생 기러기의 간을 요리하였습니다.”

“기러기의 간이라?”

“예, 겨울의 대이동을 준비하기 위해 가을의 풍요로움으로 몸을 살찌운 기러기의 간은 기름으로 가득 차올라 비대하게 부풀어 오르지요.”

그 간은 비단결보다도 부드러워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내리고 그 맛은 사치스러울 만큼 기름지고 달콤하답니다.

“가을의 결실이 모두 이 간에 녹아들어 있으니, 세상 다시없는 진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폐하. 부디 식기 전에 드시지요. 소년의 말투는 발치를 기어오르는 뱀처럼 사근사근하고 사랑의 묘악을 권하는 악마처럼 친근했다.

마치 꿀에 절인 사과처럼 달콤한 제안을 입에 담으며 소년은 젊은 기미 환관과 시선을 마주했다.

식기 전에 즐기게나.

소년의 시선을 받으며 송반은 마치 뜨거운 전류가 자신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것만 같은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영혼을 중독시키는 황홀한 죄책감이었다.

한없이 깊은 소년의 눈동자를 본 순간 송반의 영혼은 그를 의심했음을 실토하고야 말았다.

아아, 나는 어째서 의심하는가. 어째서 믿음을 갖지 못하는가.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눈을 가려, 눈앞의 등불을 보지 못하였구나.

“먹겠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젓가락을 들어 올린 송반이 두툼한 간을 입으로 가져갔다. 코를 파고드는 매콤한 고추와 산초의 향기를 두른 기러기 간이 그의 혀 위에 떨어진 순간.

그는 각막 너머에서 점멸하는 오색 찬란한 빛무리를 보았다. 순결한 황금이 혈관을 타고 몸 말단부로 퍼져나가는 듯한 환희. 한도 끝도 없이 둥실거리며 떠오르는 기쁨.

존귀하신 황제 폐하의 앞에서 엄숙한 태도를 유지해야 함에도 황홀경에 젖은 입꼬리는 주인의 의사를 배반하고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

“하아…….”

그 어떠한 찬사도 바칠 수 없었기에 송반의 입에선 달콤한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상의 한입은 그의 영혼을 천상의 영역으로 올려보냈다.

바삭한 겉 부분을 깨물면 흘러내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뭉개지는 비단결 같은 속. 혓바닥 위로 미끄러지는 달콤한 기름기와 짐승이 가진 진한 육향. 그 고소함, 그야말로 기름진 황홀경이었다.

그 간을 감싸 안은 고추와 산초의 매콤하고 아찔한 풍미. 영원할 수 없는, 그렇기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 시간을 붙잡고 싶은 찰나의 천국 속에서 송반은 이 요리가 모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모독적이었다. 황실의 전통 요리를 향한 원색적인 모욕. 소년의 요리는 황실의 요리가 추구해 온 모든 가치를 철저하게 짓밟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깨끗하고 담백하며 자극적이지 않은. 고상하고 기품 있는 요리야말로 황실의 미덕. 소년의 요리는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황실의 전통에 먹칠을 해버렸다. 그 달콤한 타락 속에서 송반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차라리 독이 들어 있었다면.’

이 요리를 독차지할 수 있었을까. 황제를 향한 충성과 본연의 욕망 속에서 갈등하던 송반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독은, 없습니다.”

욕망과 충성 속에서 충성심을 선택하였지만 송반은 그 선택을 후회했다. 요리를 떠나보내며 심장에 박힌 아릿한 상실감은 앞으로 평생 지워지지 않으리라. 송반의 우울한 한숨을 지켜보며 태감은 시선을 돌렸다.

“폐하.”

“알고 있다.”

황제는 들은 체 만 체하며 음식에만 자신의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태감은 다시 한번 힘있게 황제를 불렀다.

“폐하.”

“……그래.”

두 번째 경합의 승리는 식방각주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태감의 눈에 비치는 황제는 당장에라도 소년의 승리를 외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폐하, 이번엔 식방각주의 승리를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저희의 승리가 더욱 값지고 정당한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태감의 재촉에 황제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황실에 봉사한 식방각주를 위해 배려 차원에서 승리를 양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년과 식방각주의 경합이 그만큼 치열했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것을 통해 소년의 승리가 공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소년의 요리를 한 번 더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모두가 손해 보지 않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이제 황제의 입에서 그 한마디만 떨어지면 된다.

식방각주의 승리를 인정하는 한 마디. 그 한마디만 있다면 막힘없이 흘러갈 계획에 제동이 걸리자 태감은 다급한 얼굴로 다시 한번 황제를 재촉했다.

“폐하!”

용의 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먹고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의 혀를 배신하는 것이다. 황제의 손아귀에서 젓가락이 바스러졌다.

그의 손아귀에서 용의 보혈(寶血)이 흘러나오자 태감이 화들짝 놀라 비단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폐하, 손을-”

“되었다. 호들갑 떨지 말아라.”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황제는 눈을 감았다. 탁자 위로 떨어지는 얼룩은 그의 마음에 퍼지는 파문과 같았다.

사람의 지배자. 만백성의 군주인 그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황실의 안정을 위해서.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 백성들의 기쁨을 위해서 그는 얼마든지 거짓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제국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황제의 모든 것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오욕을 끌어안을 수 있는 존재. 그것이 황제임을 듣고, 배우며 자랐다.

그런데도 황실이 명예를 중시하는 것은 명예로운 지배자라는 호칭이 백성의 자부심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황제는 불가침의 존재여야 한다. 살아있는 용의 화신. 그래야만 백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딱딱하고 엄격한 가면을 쓴 것은 황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누구보다도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억압되어있는 존재. 그것이 군주의 의무임을 알았기에 황제는 자신의 짐을 기꺼이 짊어졌다.

“승자는…… 승자는……!”

식방각주. 그 네 글자를 입에 담지 못하고 황제는 한참 동안을 망설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황제의 본능은 이성의 결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승자는 오운. 후궁의 상호 오운이다. 그것이 용의 혀가 선택한 진정한 승자였다.

사례 태감이 주운 아이. 그의 전속 요리사. 발칙하고 재미있는 아이. 재기발랄하고, 솜씨가 뛰어나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용의 눈에 소년이 담겼다. 허리가 굽고 다리를 저는 볼품없는 몰골을. 여물기도 전에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문드러진 아이를. 소년을 본 순간 황제는 자신의 목덜미가 참을 수 없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승자는! 후궁의 상호. 오운이다!”

번복할 수 없는 황제의 선언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인생역전에 성공한 도박사의 환희. 거인을 쓰러뜨린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열광하는 호사가들의 함성.

새로운 역사의 탄생을 지켜본 역사가들의 흥분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폐하.”

“속일 수가 없더구나. 도저히.”

“어쩔 수 없군요.”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황제의 말에 태감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하겠는가. 남은 것은 실무진들의 일이다.

끓어오르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가 무릎을 꿇었다. 한평생을 황실에서 일해왔던 늙은 요리사. 비참한 패배자의 입에서 마지막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폐하! 존귀하신 만백성의 아버지시여!”

“식방각주 배금성. 결과에 불복하는가?”

황제의 말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차갑고, 오싹했다. 이미 내려진 황제의 선언은 절대적이었다. 그에 반한다는 것은 곧 황제의 의지에 반한다는 것이며, 이 제국의 뜻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내뱉어진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역모죄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식방각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폐하. 분하고 또 분하여 이리 죄를 범하옵니다! 오늘 젊고 재주 많은 자와 겨루어 이 늙은이가 쓸모를 다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장강의 앞 물결이 뒷물결에 밀려나듯이 이 노구로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그만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가 되었음을 압니다. 하지만 이 우둔한 놈이 이리도 분한 것은.”

수십 년을 황실에 몸 바쳐온 제가 황제 폐하의 입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노인이 마지막 생명을 불태워 토해내는 듯한 처절한 절규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피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목이 터지라 외치며 식방각주는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한번. 두 번. 피가 터지는데도 식방각주는 절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이 노인네가 마지막 쓰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한 번만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세상은 강자의 몰락 만큼이나 약자의 역전을 좋아한다. 그 순간 식방각주는 황실의 권력자라는 강자의 위치에서 힘없는 노인이라는 약자의 위치까지 추락했다.

늙고 힘없는 노인이 토해낸 통한의 외침은 사람들의 여론을 뒤집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감은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고쳐 썼다.

“이것을 늙은 뱀의 교활함이라 할지, 아니면 절박한 심정이 빚어낸 기적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확실한 것은 그가 공들여 짜낸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는 것이다. 이 구도를 짜내기 위해 들였던 노력에 정신이 아득해진 태감은 의자 등받이를 부여잡고는 숨을 골랐다.

“어흠……. 결국, 본래 우리가 예상했던 구도 대로 일이 흘러가는구나.”

“예. 그렇지요. 결국, 세 번째 승부를 겨루게 되었으니.”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고른 황제가 단상 앞으로 나섰다.

“후궁의 상호이며 오늘 경합의 승리자. 오운은 식방각주의 말에 이견이 있는가.”

황제의 말에 소년이 넙죽 엎드렸다.

“위대한 용의 아들이시여. 사실 저와 식방각주님은 경합 전 비밀스러운 약조를 나누었나이다.”

폐하께서 이 약속의 공증인이 되어주신다면 이 오운. 기꺼이 재대결을 받아들이겠나이다.

소년의 말에 황제는 식방각주에게 말을 돌렸다.

“식방각주 배금성. 오상호의 말에 이견이 있는가.”

소년이 흔쾌히 허락하는 것을 본 배금성은 이마를 찧으며 다시금 간청했다.

“본래 탕이란 긴 시간을 들여야만 제맛이 나는 음식이니, 대결을 일주일 후로 미룰 수 있다면 제가 끓일 수 있는 최상의 탕을 폐하께 진상하겠나이다.”

“저 또한 같은 의견이옵니다. 폐하!”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였으니 마지막 경합은 일주일 후에 열기로 한다.”

““성은의 망극하옵니다!””

황제에게 인사를 올린 후, 배금성은 핏물이 떨어지는 머리를 들어 올리며 소년에게 물었다.

“어째서 내 제안을 수락했지? 이대로 너의 승리로 굳힌다 해도…….”

“그것이 당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 테니까.”

소년은 섬뜩한 광기를 번뜩이며 쏘아붙였다. 소년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승부욕이 발동해서도, 측은지심을 느껴서도 아니었다.

그의 기술, 그의 자존심, 그의 명예를 모조리 짓밟기 위함이었다.

“후회하게 될 거야. 차라리 두 번째 경합에서 끝냈어야 했다고.”

그랬다면 일말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년은 그에게 차가운 한마디를 남겼다.

“칼과 팔은, 그 이후에 찾아가도록 하지.”

원한에 사무친 한마디를 남긴 채 소년은 그에게서 떠나갔다.

* * *

낡은 공방 안에선 술 냄새가 진동했다. 향기롭고 좋은 술은 아니었다. 밑바닥 노동자들에게나 어울릴 싸구려 분주였다.

그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 백윤은 술독에서 분주를 떠 입으로 가져갔다. 반은 입으로 들어가고 반은 흘러내려 옷과 수염을 적시니 그 꼴이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그의 술친구인 소년 또한 술을 입으로 마시는지 옷으로 마시는 모를 꼴을 하고 있었으니까.

낄낄거리며 술을 퍼마신 둘은 거나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엎어졌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백윤이었다. 소년이 튀겨온 닭 조각을 우물거리던 그는 조금 전 식방각주의 꼴사나운 모습이 떠올랐는지 또다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정말 고생 많았다. 그 개잡놈 꼴이 말이 아니더구나.”

닭 뼛조각을 뱉어낸 소년은 한숨을 푸욱 내쉰 후 대답했다.

“미안하우. 칼을 찾아오는 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수.”

“칼이야 찾아오면 어떻고 까짓거 못 찾으면 어떠냐. 그 자식 얼굴에 똥칠한 것만 해도 난 만족한다.”

백윤은 술독으로 잔을 가져가며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욕설을 쏟아내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응어리 져 있던 세월의 묵은 체증을 내려보내듯이 분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잡놈의 새끼. 칼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새끼.”

“그래서 찔렀군? 노인네가 새로운 칼을 만들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까 봐.”

“불알 두 쪽 달고 난 새끼가 간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놈이었지. 후레자식 새끼.”

“그런 새끼는 두 쪽 다 떼서 환관으로 만들어야지.”

“환관 놈이 하니까 설득력이 있는걸?”

낄낄거리던 소년은 술독으로 손을 가져가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그놈 팔 한 짝은 내놓으라고 했지.”

“뭐? 뭘 내놓으라고 해?”

“팔 말이우. 팔. 난 모가지를 걸 테니까 오른팔을 걸라고 했지. 건다더군.”

우리 같은 놈들한테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오른팔이지. 안 그렇수?

소년의 질문에 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배어든 팔이었다. 팔은 곧 목숨이었으며 모든 것이니, 식방각주가 진짜 요리를 목숨처럼 여기는 자였다면 목을 걸지언정 팔은 걸지 않았을 것이다.

닭 다리를 질겅거리면 백윤은 뼈를 뱉어내며 한마디를 던졌다.

“술이 좀 깨고 나면. 칼을 만들어주마.”

“아직 그놈 칼도 못 찾아 왔는데?”

“그거야 나중에 여유 되면 찾아오면 되지, 그보다는.”

내가 만든 칼로 그놈의 인생을 작살 내주고 싶거든. 백윤의 말에 소년이 웃었다.

“그래. 두 번 다시 요리사 행세를 못 하게 만들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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