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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33화 (133/314)

환관의 요리사 133화

중국에는 출세를 상징하는 음식이 있다. 한국에서 그런 말을 꺼내면 대부분은 먹은 사람이 출세할 수 있다는 길(吉)한 음식을 떠올리곤 한다.

도미나 잉어 같은 출세와 관련된 속담이나 전설이 있는 음식. 재치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음식의 신분이 올라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며 예전엔 천대했다가 요즘 들어 귀한 대접을 받게 된 음식을 꼽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소년이 그 속뜻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대부분 황당함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출세를 상징하는 음식. 그 뜻은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출세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만큼 값비싼 요리를 말하는 거지.’

중국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웅장(熊掌). 곰 발바닥 요리가 그러한 요리다.

곰이 보호종으로 지정되며 곰사냥이 불법이 된 지 오래인데도 중국의 부자들은 온갖 불법적인 루트로 곰 발바닥을 수입해 먹었다.

식방각주. 배금성이 요리한 상어지느러미 또한 그러했다. 남획과 윤리 문제는 물론, 심각한 수은 농축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의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진짜’ 상어지느러미를 먹기 위해 지갑을 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의 맛을 즐기는 것을 넘어 그 요리를 먹었다는 사실을 과시할 수 있는, 부의 척도를 보여주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이 생각하길, 진정한 출세의 상징은 곰 발바닥도, 상어지느러미도 아니었다.

건전복(乾全鰒).

바다에서 나는 황금. 혀로 즐기는 사치품의 정점.

최상품의 경우 개당 가격이 한화로 삼백만 원을 호가하는 건전복이야말로 소년이 꼽은 최고의 출세 요리였다.

자신에게, 자신의 요리에 집중되는 관객들의 시선을 느끼며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피어오르는 강렬한 향기에 취한 사람들의 시선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그 무언의 재촉을 받으며 소년은 입술을 열었다.

“호황길품포어(蠔皇吉品鮑魚)라 하옵니다.”

굴소스 풍미로 조리한 최상품 전복. 홍콩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쉐프. 일명 전복 대왕이라 불렸던 요리사 양관일(楊貫一)의 레시피를 독자적으로 개량한 소년의 일품요리였다.

순백색의 백자 그릇에는 황금보다도 값진 전복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크기는 어른 주먹보다도 컸고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한 표면은 통통하고 탄력 있어 보였다.

진한 갈색 소스에 적셔져 있는 전복이 가까이 다가오자 송반은 일순간 정신이 혼미해져 현기증을 느꼈다.

아찔할 만큼 관능적인 향기였다. 짭조름하고,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조개 육수를 수백 수천 배 농축시킨 것만 같은 향기.

가까이 다가올수록 향기는 관능적으로 자신의 비밀을 풀어헤쳤다.

다시마 같은 해조류의 향기.

육수에 들어간 닭고기의 진득한 구수함.

음식이 앞으로 다가올수록 송반은 그 향의 깊이에 빠져들었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전에 침을 삼키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

송반은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요리를 먹고 나면, 앞으로 다른 요리를 먹을 수 있을까. 맛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만족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인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가 처음 경험하는 형태의 공포였다. 억누르고 침범해 오는 형태가 아닌, 안쪽에 스며들어 잠식하는 독과도 같은 공포. 극도의 행복을 맛보고 나면, 앞으로 경험하는 모든 일이 시시하고 무료해질 거라는 불길한 예감.

그의 낙천성조차 도와줄 수 없는 막연한 공포 속에서 송반은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 공포 속에서도 그의 위장은 미친 듯이 울어대고 있었다. 마치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공복감에 송반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놈의 위장은 하여간…….

그는 기미 환관이었다. 먹고 싶은 것과 먹기 싫은 것을 가릴 수 없는 처지. 어차피 먹어야 한다면,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최고의 음식을 먹고 죽자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송반은 기세 좋게 전복을 통째로 들어 올렸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 과연 이거 하나를 살려면 몇 년을 일해야 할까.

오 년? 십 년? 그걸, 이 한입에 꿀꺽한다면? 송반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전복을 통째로.

입에 넣는다.

“……!”

송반의 입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절규였으며, 동시에 탄성이기도 했다. 입안에 꽉 들어차는 황금과도 같은 무게감.

전복을 적시고 있는 촉촉하고 걸쭉한 육수의 감칠맛. 송반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혀끝에 아로새겨진 맛을 흉금 깊숙한 곳에 각인시켰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혀가 녹아내릴 것 같은 맛의 홍수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만약 씹는다면. 씹어버린다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으리라.

절벽 끝에서 마지막 도약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그는 턱에 힘을 주었다.

상상 이상으로, 부드러웠다.

전복이란 것은, 이렇게나 부드러운 것이었나? 질깃질깃한 건어물의 식감을 기대했던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정성스럽게 불리고, 끓이고, 손질한 건전복은 그의 어금니 아래에서 부드럽게 짓이겨졌다. 부드러움과 탄력이 공존하는 식감. 씹으면 씹을수록 전복의 맛이 배어 나온다.

건해산물의 농축된 감칠맛은 어찌 이리도 달콤한 것인지. 그 천연의 짠맛은 어찌 이리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것인지. 그 농후함은 발끝부터 천천히 스며들어 송반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배어들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송반은 문득 시선을 느꼈다.

황제의 시선. 태감의 시선. 소년과 식방각주의 시선.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관객의 시선이 그의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다.

“도…… 독은 없습니다.”

송반이 황급히 젓가락을 내려놓자 황제가 다급한 표정으로 요리를 받아들었다. 그의 옆에 선 태감은 간곡한 목소리로 황제에게 애원했다.

“저도 한 젓갈만…….”

“어허, 넌 궁에 가서 만들어달라 하여라.”

이건 다 내 거야.

황제가 전복을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며 소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식방각주를 향한 조롱의 미소이기도 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황제를 올려다보는 그를 향해 소년은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린 웃음을 보여줬다.

‘네 얄팍한 수는, 고작 그 정도인 거야.’

객관적으로 보아도, 주관적으로 보아도. 식방각주가 준비한 상어지느러미찜은 훌륭한 것이었다. 아주 진하게 졸여낸 농후한 소스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손질한 상어지느러미는 당장 칠성급 호텔 레스토랑의 메인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뿐. 소년은 속으로 식방각주에 대한 평가를 하향 조정하며 혀를 찼다.

‘맛이 진하고 강렬한 음식으로 혀를 선점해서. 내 요리의 맛을 무디게 할 계획이었겠지.’

인간의 혀는 쉽게 피로해진다. 기름지고 강한 맛을 먼저 먹고 나면 담백한 맛을 감지하는 능력이 무뎌진다.

식방각주는 그것을 노리고 어떻게든 먼저 심사받기 위해 서둘렀지만…….

‘그건 내가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를 했을 때의 이야기지.’

소년과 식방각주의 요리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해산물의 감칠맛을 더한 소스. 하지만 식방각주가 준비한 것은 무미한 상어지느러미였고, 소년이 준비한 것은 감칠맛의 보고인 건전복이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종류의 감칠맛이라면, 당연히 맛이 더 진한 쪽이 연한 쪽을 눌러 버리는 법이다.

식방각주의 요리가 전해준 감동은 건전복의 압도적이고 폭력적인 감칠맛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황실의 연회를 총괄했으니, 화려하고 맛이 진한 요리라면 자신 있었을 테지. 강렬한 요리로 내 요리를 완전히 눌러 버릴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겠지?

식은땀을 흘리며 이럴 리가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식방각주를 보며 소년이 코웃음 쳤다.

“미안하지만, 이쪽도 그런 요리가 전공이야.”

소년은 결코 맑고, 깨끗하고, 담백하며 부담 없는 요리를 만드는 좋은 요리사가 아니었다.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강렬하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나쁜 요리를 만드는데 정통한 요리사였다.

정신없이 자신의 요리를 먹어치우는 황제를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소년은 고개를 돌려 식방각주와 시선을 마주했다. 입술을 깨문 식방각주는 가래가 끓는 듯한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운이 좋았구나…….”

“그렇게 말하면 좀 위로가 되나? 그렇다면 다행이군.”

“네놈……. 반드시 네놈의 목을 치고 사지를 토막 내 개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반드시!”

“그래? 나도 당신 팔을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 좀 해봐야겠군.”

좋은 것만 먹고 살아서 토실토실 살이 올랐으니, 아주 기름지겠어. 개먹이로 주기에는 아까울 것 같아. 소년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새카만 저주를 품은 채 타오르고 있었다.

결코, 팔 하나로는 끝내지 않겠다는 섬뜩한 결의에 식방각주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식사를 끝낸 황제가 소년의 승리를 선언하며 첫 번째 승부가 결정되었다. 관객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기지개를 켠 소년은 창백한 얼굴로 조리대를 힐끔거리는 식방각주에게 점잖은 충고를 전했다.

“두 번째는 볶음인가. 열심히 해야겠어?”

이번에 지면 그대로 팔 뎅겅. 알지? 이죽거리는 소년을 쏘아보며 식방각주는 대답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두 번째 경합의 시작이었다.

* * *

소년은 요리를 시작하기 전 슬쩍 고개를 돌려 조리에 열중하는 식방각주의 도마를 확인했다.

“굴, 가리비, 새우, 표고. 죽순이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아. 길성오복채(吉星五福菜)인가.”

소년은 한참 동안 기억을 뒤진 후에야 식방각주가 만드는 것이 황실의 전통 요리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오복성(五福星)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재료를 볶아내는 요리. 길성오복채는 품격을 중시하는 황실의 요리답게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특징인 요리였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만들기로 한 건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그를 보며 소년 또한 요리를 시작했다.

육중한 소리가 도마 위에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누런 색의 간. 먹음직스럽다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극기를 요구하는 첫인상에 사람들은 난색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제아무리 세계 3대 진미인 푸아그라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색이 이상한 간덩어리일 뿐이다. 만약 현대였다면 서로 예약하기 위해 난리였을 것을. 아쉬움을 느끼며 탄식하던 소년은 이내 경건한 마음으로 푸아그라에 손을 가져갔다.

“프랑스 본토에서도 이런 걸 먹을 수 있는 건 극소수뿐이지.”

입에 깔때기를 물린 채 억지로 사료를 쑤셔 넣어 만든 푸아그라가 아니었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가을의 풍요로움을 몸 안에 가득 축적한 야생 기러기의 간이었다.

온갖 식자재를 다 만져본 소년도 쉽사리 만져보기 어려운 최고급품. 그 가치를 헤아리며 소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시작해 볼까.

소년은 조심스럽게 피가 고여 있는 혈관을 떼어냈다. 혈관이 남아 있으면 식감이 질겨지고 나쁜 냄새가 간에 배게 된다. 혈관을 꼼꼼하게 제거한 다음에는 엄지손가락 마디 하나쯤 되는 크기로 썰어 전분 가루를 입힌다.

그리고 넉넉한 기름 속에서 아주 살짝 튀겨낸다. 지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조금만 오래 가열하면 간이 녹아내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푸아그라의 밑 준비가 끝나자 소년의 아궁이에서 불기둥이 터져 나왔다. 맹포한 불의 기세에도 밀리지 않고 철과를 휘두르는 소년의 담력에 구경하던 관객들은 탄복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마어마한 불꽃이군.”

“아아. 정말 대단한 불꽃이야…….”

“마치…….”

넘실거리는 불꽃의 혀 위로 소년이 고추와 산초를 던져넣었다. 뜨거운 기름 속에서 고추와 산초의 알싸한 향기가 굶주린 사람들의 위장을 자극했다.

한 차례 건전복의 향기로 고통받았던 위장은 두 번째 자극에 맹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보며 굶주림에 허덕일 것인가. 아니면 당장에라도 달려나가 배를 채울 것인가. 악몽과도 같은 양자택일을 눈앞에 두고 관객들이 갈등하는 동안 소년의 요리는 점점 완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추와 산초 다음으로는 다진 마늘과 생강. 그리고 쪽파. 기름에 충분히 향이 우러나면 양념으로 간을 맞춘다.

들어가는 앙념은 강렬하면서도 진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푸아그라는 보통 포트와인 소스나 과일 콤포트 같은 달콤한 소스를 곁들이지. 기름진 식재료인 만큼 양념도 그만큼 힘이 있어야 해.’

설탕을 아낌없이 넉넉하게. 오래 묵은 소흥주를 넉넉하게 사용하여 맛에 풍미를 더하고, 요리의 완성이 다가왔을 때 미리 튀겨둔 푸아그라를 넣어 재빠르게 양념을 입혀낸다.

사치의 극한. 궁보홍간(宮保鴻肝)의 완성이었다. 완성된 요리를 환관에게 맡긴 소년은 자신을 향해 열렬한 관심을 보내오는 기미 환관. 송반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놈인데 사람을 이렇게 뚫어지게 봐?’

소년의 언짢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타게 그의 요리를 기다리던 송반은 요리를 받아들고는 침음을 흘렸다.

이번에도 선수를 차지한 것은 식방각주였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은젓가락을 들어 올린 송반은 적당히 볶음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죽순과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해산물. 소금간을 최소화하여 재료 본연의 담백함을 잘 살린 훌륭한 요리였다. 젓가락을 놓고 황제에게 독이 없음을 알리며 송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였다면 입에 대는 것만으로도 황송해했을 식방각주의 요리가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았다.

젓가락을 입술로 가져가는 그 순간이 기대되지 않았고 입속에서 요리를 씹는 시간이 황홀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이런 ‘평범한’ 요리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송반은 고개를 숙여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마치 허락을 구하듯이, 간절한 그 시선을 마주한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라. 젊은 친구.’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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