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31화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백윤은 벌겋게 달아오른 철판을 끄집어냈다. 소년이 집게로 철판을 집자 백윤은 날정을 철판에 대고 망치로 정을 내려쳤다.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열기와 불빛은 옹졸한 노인네의 얼굴에 신성한 사명감을 드리웠다.
앙상한 팔뚝에 근육이 솟아오르고 가열로는 불꽃의 숨결을 토해낸다.
가열로에서 춤추는 불빛은 밤의 어둠을 사르는 유성의 빛무리와도 같았다. 새카만 융단 위에 뜨겁게 번뜩이는 찰나의 족적을 남기는. 불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가열로를 들여다보던 소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식방각주와 악연이 있다고 하지 않았수?”
“그래. 그랬지.”
날정에 맞아 홈이 생긴 철판을 구부려 꺾으며 백윤은 대답했다. 철판은 비틀리고 꺾이며 마침내 두 조각이 났다. 백윤은 잘린 철판을 다시 가열로에 집어넣었다.
“난 일생에 단 두 번 식칼을 만들었다.”
“두 번. 그렇다면 첫 번째는.”
“그래. 식방각주였지.”
소년은 그의 눈동자에 스치는 감정이 단순히 분노와 경멸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가슴속에 썩어 문드러진 원한, 그것은 배신감이라는 감정이었다.
응어리진 감정을 곱씹던 백윤은 결국 입 밖으로 쓰디쓴 과거를 내뱉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해야만 했다.
불꽃을 보는 자. 불꽃 속에서 쇠를 치는 자. 오욕과 칠정을 끓으라. 철왕이라 불렸던 스승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백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잊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한때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잊을 수 있겠어.”
소년은 백윤이 왼쪽 가슴 아래를 어루만지는 것을 보았다. 심장이 있을 위치. 소년은 그 동작으로 식방각주와 백윤 사이에 있었던 일을 파악할 수 있었다.
너절한 감정은 불꽃의 순정을 흐린다. 불꽃 앞에서, 불꽃과 마주한 자는 순수해야 한다. 잡념이 섞이면 불꽃은 탁해지고 망치는 흔들린다.
백윤은 풍로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식방각주와의 악연을, 울혈과도 같은 분노를 모조리 소각하는 것처럼 가열로에 불을 지폈다.
불꽃 속에서 잡철은 불순물이 빠지고 순철이 된다. 흐르는 세월의 사토 속에서 초라한 노인이 되어버린 대장장이는 불꽃 속에서 스스로를 태웠다.
불사조가 자신을 태우기 위해 향나무 가지로 제단을 쌓아 올리듯이, 풍로를 쥔 백윤은 고개를 돌려 소년을 보았다.
“좀 더 도와야겠다.”
“어차피 내 물건 만드는 건데. 말만 하쇼.”
그들이 만드는 것은 경합 당일 쓸 새로운 칼이었다. 철판이 달아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단조과정에서 쓸 쇠메와 벼림 망치를 가져온 후에야 백윤은 소년에게 이유를 물었다.
귀하디귀한 오철로 천하에 둘도 없는 칼을 만들어 줬건만, 뭐가 아쉬워 새로운 칼을 만드는지. 소년은 품 안에서 새카만 날의 오철 칼을 꺼내 들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 경합의 심사를 보시는 분이 황제 폐하신데, 그 앞에 오철 칼 들고 나가면 어찌 되겠수. 난리가 날 거 아니우.”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만, 그래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소년의 말에 백윤은 맞장구를 쳤다.
“그래. 시늉이라도 해야 매를 덜 맞지.”
오철은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운 무관에게 황제가 하사하는 총애의 증표였다. 그런 물건을 경합에 들고나온다는 것은 대놓고 황제의 편애를 받는다고 광고를 하는 꼴이었다.
제아무리 낯짝 두꺼운 소년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황제 폐하 면전에 대고 부정 심사라고 할 간 큰 놈은 없겠지만.”
“오히려 그러는 놈 있으면 상을 줘야지. 그 정도 기개라면.”
낄낄거리며 달아오른 철을 모루 위에 올린 백윤은 눈짓으로 쇠메를 가리켰다. 쇠메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이 경련할 만큼 무거웠다.
“쳐!”
그의 신호에 따라 소년이 쇠메를 내리쳤다. 쇠와 쇠가 부딪히며 자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온몸을 짜르르 울리는 충격. 귀를 찢는 철의 비명.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는 가열로의 열기. 그 모든 것들은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소년은 혀를 지그시 깨물며 다시 쇠메를 들어 올렸다.
쇠메를 친다. 소년이 쇠메를 내려친다. 철판이 쇠메를 맞는다. 승모근과 광배근. 등 근육이 경련할 때마다 소년의 눈동자엔 오기를 초월한 광기의 섬광이 번뜩였다.
“쳐! 더 세게!”
쇠를 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고통, 시간. 많은 것들을 내놓아야만 대장간의 신은 간신히 하나를 보여준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재능. 백윤은 소년에게서 그 재능을 보았다.
“대장장이가 되었다면 대성했을 텐데.”
흘리듯이 백윤이 중얼거리자 쇠메를 잠시 내리며 소년이 피식 웃었다.
“이미 요리사로 대성 했수다.”
“그래. 그랬지.”
소년 또한 그와 다를 것이 없었다. 불에 매료되고, 평생을 불과 싸워온 끝에 신에게 간신히 하나를 보답 받은 이. 그 또한 그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수없이 많은 것을 희생했으리라. 백윤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인정했다.
철판이 펴지자 백윤은 다시 날정과 망치를 들었다. 이제 칼의 모양을 잡을 시간이었다. 소년이 집게를 잡고 철판을 들자 백윤은 망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 치는 쇠는 사천에서 온 홍철(紅鐵)이다. 오철만큼은 아니지만, 가볍고 단단한 좋은 철이다.”
어느새 칼의 형상이 된 철을 들여다보던 백윤은 철을 다시 가열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쇠를 달아오르게 하는 불꽃.
잡념과 아집을 모조리 태워버린 불꽃 속에서 백윤은 유일하게 태우지 못한 한가지 미련을 발견했다.
그것은 칼이었다.
“운철(隕鐵)을 아나?”
두서없이 던져진 질문에 웃옷을 벗어 땀을 짜던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운철? 운석에서 나온 철?”
“그래. 그 운철 말이다. 날을 세우면 기세가 죽지 않고 물이 묻어도 녹슬지 않는다는 그 운철.”
대장장이에겐 꿈의 재료지. 그리고 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텁텁한 옛이야기를 하는 백윤의 눈은 아직 떨쳐내지 못한 회한이 깃들어 있었다.
“검을 만든다면 천하에 이름난 명검이 되었을 것을. 난 하나뿐인 친구를 위해 운철로 식칼을 만들었다. 그 칼로 그 녀석이 날아오르길 원했어. 그래. 날아오르긴 날아올랐군.”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 어림이 쿡쿡 쑤시는 듯했다. 소년은 조용히 그의 옆에 걸터앉았다. 가열로의 불빛을 보며 소년은 중얼거렸다.
“그 자식, 정말 상종 못 할 자식이군.”
“배금성. 그 자식은 정말 개만도 못한 놈이지.”
소년과 백윤은 거리낌 없이 악의에 가득 찬 농담을 나누었다. 그것이 저주인지 욕설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말들을 한참 동안 늘어놓은 후. 백윤은 메마른 입술을 움직여 소년에게 부탁했다.
“그 칼을 찾아다오.”
“찾아다 주면?”
“녹여 버려야지. 그 개자식의 손에 더러워진 칼을 어디에 쓰겠어.”
“에이, 그래도 운철인데. 아깝지도 않수?”
백윤은 말없이 일어서 창고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주먹보다 조금 큰 돌덩어리였다.
거무튀튀하고, 별 볼 일 없는. 하지만 그 단면은 틀림없이 금속성 빛을 띠고 있었다.
“쓰고 남은 운철의 반쪽이다. 칼 한 자루를 만들기엔 충분한 양이지.”
모든 인연이 정리되는 그 날. 너에게 칼을 선물하마. 백윤의 시선을 마주한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른 아침.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일어선 배금성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고 일어난 침상이 어질러져 있는 것도. 시중을 든 하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높은 것도. 하인이 신겨준 비단신이 미묘하게 불편한 것도. 심지어 아침 식사마저도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쯧, 아침부터 마음에 안 드는군.”
“죄송합니다, 나으리. 다음 요리를…….”
“됐다. 물려라.”
아침 식사로 나온 죽은 오늘따라 묽었고 죽 위에 올린 피단은 비릿했다. 죽을 뒤적이던 배금성은 결국 한 술도 뜨지 않고 아침상을 물렸다.
그의 말 한마디에 쏘가리 튀김. 인삼을 넣은 닭고기 탕. 꿀을 끼얹은 돼지고기 찜과 오리구이는 상에 차려지기도 전에 도로 주방으로 돌아갔다. 남은 요리는 하인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아침부터 포식하겠군.
배금성은 그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돼지 먹이로나 줘라.”
“예? 아…… 알겠습니다.”
공연히 심술을 부렸지만 배금성의 마음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였고 이유 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뭣 때문에 이리도 좌불안석인 걸까.
“……긴장이라도 한 건가?”
그는 스스로 뱉은 말에 놀라 헛웃음을 터뜨렸다. 긴장했다고? 황실의 총괄조리장이? 식방각의 각주가?
“내 손자뻘인 아이와 솜씨를 겨루러 가면서, 긴장했다고?”
아무리 상단의 명운이 걸려 있다 해도. 어린아이를 상대로, 천하의 식방각주가. 긴장을 했다고?
배금성은 치밀어오르는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팔을 휘둘렀다. 용이 그려진 청자 화병, 청옥을 깎아 만든 벼루, 자단목 문진 따위가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그딴! 애송이한테!”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그는 한참 동안 파괴 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멋들어진 병풍이 부욱 찢어졌고 역사 깊은 도자기가 와장창 소리를 나며 산산조각이 났다.
황금을 물 쓰듯 쓰며 수집해온 수집품의 잔해 속에서 배금성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 천하의 배금성이…….”
칼. 그 순간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한평생을 함께해온 칼이었다. 수백 명의 부하를 손끝으로 부리는 자리에 오른 후에는 꺼내지 않았던 칼. 친구가. 친구였던 이가 만들어 준 칼.
그의 떨리는 손이 궤짝에 엄중하게 봉해져 있던 함을 꺼내 들었다. 자개와 진주를 박아넣은 함. 그 함 속에 그의 칼이 잠들어 있었다.
운철(隕鐵)로 만들어진, 세상에 하나뿐인 칼. 그 투박한 자루를 쥐자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단 한 번도 그를 배신한 적 없었던 칼날의 무게감을 손아귀로 느끼며 배금성은 마치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은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무심했구나.”
긴 시간을 함에 넣어둔 채 내버려 뒀는데도 칼은 전과 다름없이 서슬 퍼런 예기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칼날에 비친 그의 얼굴은 젊은 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살이 좀 찌긴 했군.”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젊은 시절의 모습과 현재를 비교하며 배금성은 가슴속에 남아 있던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냈다.
칼 한 자루로 살아오고, 칼 한 자루로 모든 것을 이룩한 인생이다. 무엇이 두려울까.
주인의 분노를 피해 숨죽이던 하인들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만 같은 흔적과 그 중앙에 앉아 실실 웃고 있는 주인을 보며 눈빛을 교환한 하인들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저…… 나으리. 그만 가셔야 합니다.”
“그래. 가마를 준비해라.”
배금성은 기분 좋게 가마에 올랐다. 쏟아지는 군중의 시선 속에 섞인 모멸의 감정 또한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실컷 떠들어 둬라.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테니.
배금성은 속없이 떠드는 이들을 비웃으며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오늘 경합이 끝난 후, 그 누구도 그의 이름 석 자를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똑똑히 봐둬라. 황실의 주방을 책임지는 남자의 요리를.
“나으리, 도착했습니다요.”
가마는 경사의 동쪽 끝에 있는 대연무장 앞에서 멈추었다. 본래 무관들이 무예를 선보이기 위해 건설된 원형의 무대는 관객들의 소음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마치 건물 전체가 맥박 뛰는 듯한 광경이었다. 수천 명의 관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요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크고 작은 연회를 수도 없이 거친 그도 이토록 가슴 뛰는 자리는 처음이었다.
자신을 증명하는 자리.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자리.
배금성은 자신의 심장에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떠나는 것을 느꼈다.
시험받는다는 것은 무섭고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자신을 시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보여주기 위한 자리다.
그것이 어째서 무서운가. 오늘은 내일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고 찬란한 영광의 서막이다.
배금성은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연무장의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탁 트인 하늘 아래 그를 기다리는 수천 명의 관중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틀림없이 환호성이리라.
“흐음, 제법 그럴듯하게 준비를 해두었군.”
연무장 한가운데에는 간이 주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싱싱한 생선들이 살아 움직이는 수조와 세 구의 화구가 파인 아궁이가 양쪽에 마련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음식을 차릴 훌륭한 식탁이 놓여 있었다.
철과와 솥, 장작더미.
주방을 점검하던 배금성은 자신이 들어온 입구의 반대쪽에서 걸어들어오는 소년을 발견했다.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그 모습은 초라함을 넘어 비참하기까지 했다. 왜소한 체격에 허리가 굽기까지 해 당장에라도 병석에 누워야 할 것만 같은 어린아이.
배금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상대가 저런 볼품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런 추레한 어린애가…… 나와 솜씨를 겨룬다고.?’
옥린비.
자신의 조카에게 단단히 당부를 들은 배금성은 내심 소년에게서 번뜩이는 천재성이 엿보이는 기린아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자신과 격이 맞지 않겠는가.
하지만 소년에게선 번뜩이는 천재성은커녕 재능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혹감 속에서 배금성은 혹시 조카가 자신을 속인 것은 아닌지를 의심했다.
아니, 틀림없이 그런 것이리라.
“하하. 그래. 혹시 모르는 거니까. 일부러 긴장 좀 하라고 그런 거겠지.”
어릴 때부터 참 속이 깊은 아이였지. 그래도 숙부를 이렇게 놀리다니. 나중에 만나면 따끔하게 한소리 해야겠어. 허탈함에 억지로 웃음을 흘리던 그에게 소년이 다가왔다.
“어쩐 일이냐.”
마주하는 것조차 피곤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 배금성에게 소년이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칼은 가지고 왔나?”
“……칼?”
“그래. 운철로 만든 칼 말이야. 가지고 왔겠지?”
친구를 죽일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칼이니, 가지고 왔겠지. 소년의 냉혹한 조롱이 그의 심장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