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30화
식방각주.
요식업계의 대종사이자 황실의 연회를 책임지는 총괄주방장. 살아 있는 전설과도 같은 요리사를 향해 사례 태감이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모든 사람이 그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다.
제국 제일의 요리사. 그 맞수로 뽑아 든 대적자가 다름 아닌 약관조차 넘지 못한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몸조차 온전하지 못한 반편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승부를 사례 태감은 어째서 성사시킨 걸까. 모두가 그의 음흉한 흉계를 의심했지만, 태감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기묘한 승부에 경사의 지하 도박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뇌에 상식이라는 단어가 탑재되어있는 이라면 식방각주에게 돈을 거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개중에는 호기롭게도 인생 한방을 외치며 소년에게 돈을 거는 이들도 있었다.
딸 것인가 잃을 것인가. 곤두박질칠 것인가 날아오를 것인가. 행운을 거머쥔 승자가 될 것인가, 비참하게 찌그러진 패배자가 될 것인가.
그런 세인들의 관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연좌궁의 주방에서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칼이야 늘 쓰는 거잖니.”
“단도 같은 건 많이 쓰지만 식칼은 처음이에요. 생각보다 꽤 무겁네요.”
긴장된 표정으로 식칼을 드는 이삼에게 소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조언했다.
“자, 배를 가를 때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단다. 잘못해서 쓸개가 터지거나 하면 생선을 버리게 되거든. 그래, 조심스럽게. 단면이 뭉개지지 않도록.”
“으…… 이렇게요?”
“옳지.”
생선 내장의 촉감이 이상한지 이삼은 표정을 찡그렸다.
뭉클거리며 차갑고, 미끄덩거리는 감촉.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그 이상야릇한 감촉은 참 익숙해지기 힘든 것이었다.
내장을 다 빼낸 후에는 이제 탕을 끓일 시간이었다.
“잉어탕을 끓이는 방식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단다. 약탕은 찬물에서 약효가 우러나오도록 푹 끓여야 하고, 식사용 탕은 뜨거운 육수에서 적당히 끓여야 제맛이 나지.”
오늘은 보양을 위해 먹는 탕이니 찬물에서 푸욱 끓여 내야겠지? 소년은 비린내를 잡기 위한 생강 한쪽만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잉어탕은 보통 잉어를 삶아 우려낸 다음 그 국물에 약재를 우려내서 만든단다. 잉어와 약재를 함께 끓이면 달이는 시간이 길어져 약재의 성분이 과하게 용출되거나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 약재로는 보통 약성이 무난한 당귀를 많이 쓰고, 백출, 백작약, 적봉령 등을 쓰기도 한단다.”
소년은 약재에 관해 설명하며 장소와 이삼에게 약재의 위험성 또한 단단히 각인시켰다.
“약효가 강한 약재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의원에게 상담을 받아야 한단다. 일반인이 멋모르고 만든 약은 독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네.”
꼬르륵.
이삼의 대답과 함께 장소의 뱃소리가 뒤이어 울렸다. 소년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장소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지? 배가 고팠겠어.”
“히잉…….”
“오늘은 장소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볼까?”
장소와 이삼이 그날의 점심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벌이는 동안 소년은 아궁이 옆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아웅다웅하며 웃고 떠드는 둘의 모습이 언제부터 이리도 익숙해진 걸까.
언젠가 둘을 떠나보낼 날 가슴속에 남을 상실의 아픔을 생각하며 소년은 노쇠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 손주 재롱 보는 노인네 같은 미소를 짓고 있어?”
“태감님 오셨습니까?”
“머리를 썼더니 배가 고파서 왔다.”
“늘 배가 고프시지 않습니까.”
소년의 싸늘한 눈초리에 태감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그 고얀 놈을 보는 듯한 표정은. 내가 너의 상관이라는 사실을 잊은 게냐?”
“기억은 합니다. 기억은.”
“그럼 날 더 아끼고 존중해야지.”
얼씨구. 지랄 염병을 하네. 소년의 표정은 절묘하게 태감의 심기를 건드렸다.
실제 연세가 자신의 아버지뻘이니 함부로 쥐어박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얄밉고. 태감은 떨리는 주먹을 소매 속으로 감추며 투정을 부렸다.
“너무하구나. 요즘 젊은것들을 꿰차더니 나한테는 관심도 없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뾰로통하게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은 아찔할 정도로 귀여웠다.
멀리서 점심 메뉴를 상의하던 이삼과 장소마저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소년 만큼은 예외였다.
“……제가 저번에 한 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진짜 뒤진다고.”
오늘 계급장 한번 뗄까? 소년의 야차 같은 으르렁거림에 태감은 주춤하였지만, 오히려 당차게 한 발 나가서며 받아쳤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요즘 나를 너무 업신여기는 것 같구나. 물론 네가 바쁘고 힘들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상관을-”
“예, 일은 많은데 사람은 혼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칼침도 맞고 바쁘게 살지요.”
소년이 칼침 맞은 장소를 쿡쿡 찌르며 말하자 태감은 대번에 대답이 궁색해졌다. 눈알을 굴리며 답을 모색하던 태감은 작전을 변경하였는지 다시 한번 고개를 팩 돌렸다.
“흥! 나-”
“잠깐 저쪽 가서 얘기 좀 합시다. 애들 안 보는 데서.”
둘의 대화는 밀폐된 창고에서 이루어졌기에 장소와 이삼은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태감을 끌고 들어가는 소년의 기세가 실로 지옥 밑바닥의 수라와 같았다는 것이다.
잠시 후 돌아온 소년은 화덕에 철과를 올리고 요리를 시작했다.
“장소야, 골랐니?”
“네? 아…… 아직이요.”
“그럼 미안한데, 점심은 저 양반 먹고 싶다는 걸 먹어야겠다. 대신 네가 먹고 싶은 건 저녁에 만들어 줄게.”
소년의 후련한 미소에 장소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점심은…….”
“청초육사(青椒肉丝). 흰 쌀밥 욱여넣기에 이것만 한 게 또 없지.”
청초육사. 혹은 고추 잡채. 흔히 중국집 주방장의 실력을 판단하는 메뉴로도 유명한 청초육사는 밥반찬으로도 잘 어울리고 술안주로도 훌륭한 중화 요리사의 히든카드였다.
“옛날 식당에서는 요리사 진급 시험을 볼 때 이 청초육사를 만들었단다. 간단하지만 요리사의 솜씨를 볼 때 이것만 한 게 또 없거든.”
왜 그럴까?
소년의 질문에 골똘히 생각하던 장소와 이삼은 각자의 대답을 내놓았다.
“재료를 얼마나 ‘균일하고 깔끔하게 써는지’가 관건이니, 요리사의 칼 솜씨를 볼 수 있어서?”
“재료를 어중간하게 볶으면 물이 생겨서 볶음이 질척해지니까, 불을 다루는 솜씨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고, 어쩜 둘이서 반반씩 답을 맞힐 수 있지? 키득거리며 장소와 이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소년은 멍하니 아궁이의 온기를 쬐던 태감을 올려다보았다.
“태감님도 한 말씀 하시렵니까?”
“됐다. 그보다 밥이나 다오.”
“예이.”
돼지고기, 청 피망과 홍 피망, 풋고추, 죽순, 표고버섯을 늘어놓은 도마 위에서 칼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물 많은 피망과 풋고추가 채 썰릴 때면 귓가에 상큼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단단한 죽순을 썰 때면 말발굽 소리처럼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소년이 자아내는 음률에 이삼이 자연스럽게 콧노래로 응답하자 주방 안은 작은 공연장이 되었다.
“이런 여유를 즐긴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의 한순간 속에서 태감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아주 잠시만 어깨의 무거운 짐을 덜어낸 그는 그 나이 때의 청년에게 어울리는 싱그러운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태감이 젓가락을 들고 탁자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자 장소는 입술을 말아 휘파람을 불었다.
박자는 빠르고, 경쾌하게. 가사도 없고 의미도 없는 즉흥적인 합주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젊은이란 그런 것 아닌가. 창틀에 앉은 새도 노래하고 아궁이에서 넘실거리는 불꽃이 불똥을 튀기며 화음을 넣는다.
생기발랄한 소리의 향연에 물든 주방 한가운데에서 소년이 철과에 기름을 두르기 시작했다.
기름의 양은 넉넉하게. 처음 볶기 시작하는 것은 돼지고기. 보통은 밑간을 한 채 그대로 볶지만, 소년은 밑간한 돼지고기에 녹말가루를 입혀 한번 튀겨내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렇게 하면 더 바삭하고 양념이 잘 배어든단다.”
노르스름한 색으로 잘 익으면 고기를 건져낸 다음 철과의 기름을 따라낸다. 아주 소량의 새 기름을 두르고, 죽순부터 피망, 고추, 버섯 순서대로 재빠르게 볶아낸다.
중화요리의 상징과도 같은 불꽃이 치솟자 소년은 불구덩이 속에서 날아오르는 채소들을 향해 소량의 닭 육수를 끼얹었다. 닭 육수는 졸아들며 구수한 감칠맛을 남기고 증발하였다.
채소가 어느 정도 익자 소년은 불을 살짝 줄이고 귀퉁이로 간장을 살짝 흘려 넣었다.
간장이 타들어 가는 그 향기! 뇌척수에 직접적으로 꽂히는 듯한 자극적인 향기에 태감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간장 다음에는 굴소스를 적당히. 고추기름 넉넉히. 그리고 두반장 조금. 감칠맛의 폭탄과도 같은 향기는 주방의 열기 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코점막에 스며드는 매콤짭짤한 향기. 배고픈 청춘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향기를 피워올리며 소년은 천천히, 느릿하게 밥을 퍼 올렸다.
하얗고 고슬고슬한 쌀밥 위에 청초육사를 듬뿍.
소년이 아직 한국에서 중식을 배울 때. 월요일의 점심 특선 메뉴로 직장인들의 지갑을 사로잡았던 고추 잡채 덮밥의 재림이었다.
“잘 먹으마!”
배고픈 젊은이들에겐 잘 먹겠다는 인사를 나눌 시간마저 부족했다. 내뱉은 말을 중간에 끊어먹으며 태감은 입안 가득 덮밥을 쓸어 넣었다.
아삭아삭. 피망은 씹으면 씹을수록 경쾌한 식감으로 어금니와 귀를 즐겁게 했다. 넉넉하게 사용한 고추기름과 두반장의 알싸한 풍미, 굴소스의 감칠맛과 태운 간장의 구수함.
그 모든 것을 탄탄하게 밑받침하는 새하얀 쌀밥. 짭조름한 볶음과 함께 흰 쌀밥을 입안 가득 욱여넣는 쾌감은 오직 경험한 자들만이 알 수 있다.
짭짤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차는 순간 볼이 미어지도록 고슬고슬한 쌀밥을 씹는 그 기분. 반드시 고슬고슬한 쌀밥이어야 했다.
“진밥은 안 돼. 오직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밥만이 이런 쾌감을 선물하지.”
소년의 주장을 경청하던 태감은 하얀 쌀밥의 달콤함에 취해 몽롱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만약 질 거나 떡이 된 밥이었다면 이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거야. 씹을 때마다 입안의 침을 메마르게 하는 고슬고슬한 쌀밥. 이거야말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아니, 그 정도까진…….”
만족스러운 식사와 잠깐의 농담. 그들에게 허락된 여유는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각자의 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차가운 가면을 품에서 꺼내 쓴 태감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회는 백성들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만백성 앞에서 망신을 주란 말씀이시군요.”
소년의 말에 태감은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방각주가 무릎을 꿇는 그 날. 사대상단의 일각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판이 깨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은 누가 될 것인가.
“주제는 찜. 볶음. 탕의 삼품이고, 각각의 주제로 세 번 겨뤄 두 번 먼저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한다.”
태감의 말을 곰곰이 듣던 소년은 검댕이가 묻은 얼굴을 대충 문질러 씻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갈 채비를 하는 그에게 태감이 이유를 묻자 소년은 귀찮음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짜고 치는 판이라도 어느 정도 그럴듯해야 사람들이 믿을 것 아닙니까. 철방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 * *
백윤은 여전히 옹졸하고 추레한 모습이었다. 곰방대를 문 채 군데군데 그을린 수염을 쓰다듬고 있던 그는 소년을 보자마자 정답게 안부를 물어왔다.
“좀 씻고 다니지 그러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노인네나 좀 씻고 다니쇼.”
“비루먹을 똥개 같은 새끼.”
“똥통에 빠져 뒈질 영감탱이.”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한 둘의 혀는 시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한 호흡에 세 마디 욕설을 쏟아내는 정통 경사 방언의 달인 백윤과 욕의 나라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프로 X발 놈 소년의 불꽃 튀는 접전이 이어졌다.
치열한 설전이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자 백윤은 그제야 소년에게 경합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식방각주랑 한 판 붙는다며?”
“그렇게 됐수다.”
소년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백윤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쇳가루가 묻어 거무튀튀해진 장인의 손에 소년이 자신의 칼을 맡겼다.
손톱이 닳아 빠진 엄지손가락이 칼날을 어루만졌다. 머리카락을 떨어트리면 베일 만큼 날카로운 칼날을 쓸어 만진 백윤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를 잘했군. 칼날이 휘지도 않았고.”
“참나. 오철 칼을 누가 휘게 한다는 거요? 그거 누군지는 몰라도 재주 용한 놈일세.”
“하여간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싹퉁바가지가 없어.”
저놈 주둥아리를 꿰매줘야 한다고 씨근덕거리던 백윤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길 자신은 있냐?”
그 투박한 걱정이 단긴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을지, 소년은 노인네의 쑥스러움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소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돈 있수?”
“처먹고 뒈질 만큼은 있다.”
“그럼 그거 다 나한테 거쇼.”
소년의 호언장담에 백윤은 헛웃음을 지으며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고, 내 쉬는 숨에 토해지는 연기와 함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이 호랑 말코 같은 놈이 노인네 쌈짓돈까지 까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상식적으로 대가리에 뭐가 든 놈 같으면 너한테 걸겠냐? 식방각주한테 걸지?”
“저승길 노잣돈이나 좀 두둑하게 안겨 주려고 했더니, 아 꼬우면 말던가!”
격렬한 욕설은 이내 노인네와 어린놈의 실없는 웃음소리로 변했다. 못생긴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했던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한참을 낄낄거린 둘은 이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식방각주. 그 개자식은 나랑도 좀 인연이 있지.”
“그 양반 이번에 작살을 내줄 생각인데, 좀 도와주쇼.”
도와주지. 그 새끼 엿 먹이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백윤의 눈동자에는 소년과 같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