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26화
배금성. 식방각의 각주이며 외궁의 총괄조리장.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성과 경력의 소유자인 그는 명실상부 요리계의 태산북두였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제국 최고의 요리사였다.
수십 년간 황실의 연회를 책임져 온 황실 요리의 달인. 수많은 고관대작의 혀를 매료시켜 온 전설의 요리사.
그리고 뛰어난 명 요리사들을 수도 없이 배출한 업계의 큰 스승.
사람들은 식방각주의 모습을 상상할 때 고집스러운 장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후배들을 가르치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도 될 텐데도 여전히 불 앞을 떠날 줄 모르는 강직한 요리사의 모습.
그것은 사람들이 명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들에게 기대하는 환상에 불과했다.
외궁의 식방각. 일 년 사철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제국 요리의 총본산에서 그런 열정 넘치는 늙은 요리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손끝을 따라 수백 명의 젊은 도제들이 칼을 쥐고 도마 앞에 선다.
그의 눈빛이 불을 향하면 수십 명의 정예 요리사가 손질된 재료를 요리하고, 그가 친히 가르친 수제자들이 요리의 맛을 점검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요리가 완성되면 그의 수제자들은 정중한 태도로 요리를 받쳐 들고 그의 앞으로 온다.
긴장과 불안함에 흔들리는 동공. 요리를 굽어보던 배금성은 검지로 양념을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짭조름함과 단맛. 기름기. 오향분으로 향을 내고 숨은 맛으로 넣은 것은 말린 새우의 알. 혀끝으로 맛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간이 부족하군. 다시.”
“예!”
충성스러운 그의 제자는 두말없이 공들인 요리를 폐기 처분하고 자신의 부하들을 독려하며 다음 요리를 준비한다.
이 정도 위치에 올랐다면 더 이상 자신이 직접 땀 흘려 식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서 허덕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철저한 분업화로 이루어진 합리성의 결정체. 이것이 뭇 사람들이 선망하는 식방각주 배금성의 요리였다.
제자들의 요리를 점검하던 배금성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청결을 위해 흰옷을 입은 무리 사이에서 유독 이질적인 새카만 복장. 금화 상단이 배금성에게 붙인 연락책이었다.
“각주님.”
“그래. 소식은 들었다.”
풍채 좋고 선량한 노인의 얼굴에 냉혈한 사업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식방각주 배금성이 아닌 금화 상단의 요식업 총괄관리자 배금성. 이것이 그의 본질이었다.
“홍일문. 놈에게 제법 많은 투자를 했는데……. 과욕을 부려 제 신세를 망쳤군.”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른자위 땅과 건물을 통째로 남에게 넘겨주게 생겼군.
퉁명스럽게 혀를 찬 그는 바로 전에까지 음식의 맛을 감별하던 검지를 들어 목을 가리켰다.
까딱. 까딱.
목 주변에 선을 긋는 그 동작.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확실히 처리하거라.”
“조속히 처리하겠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제자의 척살을 명령하며 배금성은 홍일문의 이름을 혀끝에 담고 한동안 우물거렸다. 못내 아쉬운 듯이. 홍일문의 이름은 뜨거운 한숨이 되어 흘러나왔다.
“멍청한 놈.”
하지만 그것은 불민한 제자에게 보내는 애틋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공들여 키운 상품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처분하게 되었다는 아쉬움의 한탄일 뿐.
인간 홍일문에게 보내는 연민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수제자였던 홍일문은 그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은, 아니, 그는 그런 사람이오.”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이군.”
“좋게 평가한다면 그렇겠지.”
바닥에 번진 얼룩 속에서 홍일문은 그의 젊은 시절을 보았다. 열정과 패기가 있었던, 그 과도한 열정 때문에 눈앞의 찬란한 영광에 매몰되었던 어리숙한 시절의 자신을.
찬란한 빛은 그 찬란함 만큼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는 것을.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태양은 사실 아득히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평범한 인간인 자신은, 결코 태양을 향해 날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젊은 날에는 몰랐다. 아니, 몰랐던 것이 아니다.
“알고 있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
그 말에 자리에 모인 모두가 씁쓰름한 기분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가 후회로 점철되었다 할 만큼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회한이 번진 공기 속에서 소년은 과거의 슬픔보다도 차갑고 두려운 현실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글쎄. 잘 모르겠군. 가게는 당신들에게 넘어갔고. 아니, 생각해 보니 가게를 빼앗긴 주제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웃기는 일이군.”
홍일문은 무거운 입꼬리를 힘겹게 올렸다. 삶의 모든 의욕이 사라진 그는 분노와 억울함마저 빼앗긴 것처럼 보였다.
하얗게 탈색된 것처럼 힘없이 중얼거리던 그는 소년을 보며 대답했다.
“아마 죽겠지.”
“금화 상단에게?”
“그럴 테지.”
딱히 상관없어. 오히려 후련한 심정이야. 실실 웃기 시작한 그는 거리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에겐 아직 책임이 남아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에게 소년은 결코 풀 수 없는 족쇄를 매어주었다.
“가족은.”
“가족. 아아. 아아. 그렇지. 그랬었지. 안 돼. 가족은……!”
그 무거운 책임은 그를 현실의 죄수로 끌어내렸다. 포기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으며. 방관할 수 없는. 그 이름. 그 한마디.
“그들이 네 목 하나로 만족할 것 같나?
“아니. 아닐 거요. 스승님은 지독한 사람이지. 아내와 아들은…… 아아. 딸. 내 딸은 이제 고작 열일곱 살인데……!”
“열일곱이라. 돈 많은 놈들이 군침을 삼키겠군.”
흉금에 파고드는 소년의 무신경한 말에 눈에 핏줄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옷깃을 잡아채며 분노와 욕설을 토해내려는 홍일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소년은 엄지로 그의 빗장뼈를 내리눌렀다.
“억……!”
“진정해.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안 그런가?”
우린 널 도와주려는 거야. 무미건조한 소년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홍일문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내기를 없던 일로 해도 네 목이 온전할 리는 없겠지.”
“이미 상단의 명성에 금이 같으니. 틀림없이 본보기를 보이려 할거요. 틀림없이.”
“그럼 도망쳐야겠군.”
“어떻게? 상대는 사대 상단의 일원인 금화 상단이란 말이오. 세상에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디 있다고?”
소년은 코웃음 치며 뒤를 향해 곁눈질했다. 뒤에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새초롬하게 차를 마시던 태감이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군.”
“금화 상단이 대단하기는 하지. 하지만……. 뒷배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아.”
절망의 구렁텅이 끝에서 발견한 구원의 동아줄에 홍일문은 모든 체면을 내던지고 태감 앞에 오체투지 했다. 피 끓는 목소리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그가 부탁한 것은 가족의 안전이었다.
“도와주십시오. 무디고 어리석은 놈이지만 기술 만큼은 쓸 만하다고 자부합니다. 도와주시면 이 홍일문. 견마지로를 다하여 사례 태감을 섬기겠습니다.”
태감은 홍일문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뒤의, 간사한 웃음을 감추고 있는 소년에게 눈짓했을 뿐. 소년은 엎드린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가족의 안전은 보장하지. 사례 태감의 이름을 걸고.”
하지만 그러려면. 뭔가 성의 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어? 소년은 검지로 톡 톡 머리를 두드렸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홍일문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거라면 전부 털어놓겠소.”
“그럼 이제부턴 한배를 타게 된 사이군.”
소년의 창문을 열었다. 내려앉은 석양 그 너머를.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빛을 온몸으로 받는 소년의 모습에선 신성함 마저 느껴졌다. 그 광경에 경도된 홍일문에게 소년은 장대한 목표를 보여주었다.
“우린 금화 상단을 무너뜨릴 것이다.”
석양의 빛을 온몸으로 받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태양을 끌어 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실의 무게가 실리고. 역광으로 쏟아진 빛이 소년의 표정을 가리는 순간. 소년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홍일문의 심장을 사로잡았다.
“금화 상단이 멸망한 날. 당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을 품에 안겨주지.”
소년의 말에 홍일문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절박함만이 깃들어 있었던 그의 눈동자에 단단한 각오가 서리자 소년은 그의 손을 힘있게 쥐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홍일문. 넌 뭘 할 수 있지? 소년의 물음에 홍일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 짜냈다.
“나…… 나도 반쯤은 금화 상단의 사람이야. 비밀스러운 정보도 알고 있고. 현 상단의 체재에 불만을 품은 자들도…….”
“설득할 수 있겠나?”
“아마도……. 아니, 설득할 수 있어. 있고말고.”
“훌륭하군. 활약을 기대하지.”
자. 어서 집으로 돌아가. 금방 사람들을 보내지. 홍일문의 등을 떠밀어 그를 보내고 난 후. 소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를 위해 차를 따라주며 태감이 웃음 지었다.
“설득하는 솜씨가 퍽 인상적이더구나.”
“두 번은 안 하렵니다.”
“그래? 의외로 설득 솜씨 하나는 나보다 나은 것 같던데. 아예 이쪽으로 전향할 생각은 없나?”
“밥 얻어먹기 싫으신가 봅니다?”
소년의 소름 끼치는 협박에 태감이 질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뜨린 소년은 가기 전 쓰레기를 처분해야겠다며 호사가들이 제발 팔아달라 부탁했던 무 조각상을 가져왔다.
“참 잘 만들어졌구나. 대단한 작품이야.”
“예, 잘 만들어졌지요. 근데, 너무 잘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만든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단 말입니다.
백룡의 머리를 무참히 꺾어 입에 넣으며. 소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직도 그의 손아귀에는 무를 조각할 때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칼날이 자신의 또 다른 감각기관이 된 것만 같은 그 감각을, 소년의 손끝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혼란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소년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토로할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소년을 가만히 보던 위정이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예?”
“사선을 넘어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삶으로 돌아온 이들이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경우 말이다.”
대답과 함께 위정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홉 개의 마디를 고리로 엮은 무기.
구절편(九節鞭).
그 끝 마디는 마치 단검처럼 뾰족하게 벼려져 있었다. 구절편을 손에 쥐고 천천히 돌리며 위정은 방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터에서 병사들 사이에 흔히 전해지는 미신적인 이야기지. 하지만.”
구절편이란 채찍처럼 휘둘러 내려치는 병기가 아니었다. 회전시키며 관절에 걸어 변칙적으로 방향을 바꾸어 적을 공격하는. 의외성에 중점을 둔 병기가 구절편이었다.
하지만 위정의 구절편은 마치 먹이를 물어뜯는 뱀과도 같았다. 날카로운 끝 마디가 독니를 들어낸 뱀처럼 허공을 가르는 것을 보며 소년은 위정이 휘두르는 구절편의 기반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창술……입니까?”
“역시, 눈이 좋아.”
연무를 끝마친 위정의 소매 안쪽으로 구절편이 감겨들었다. 그것을 다시 품 안으로 넣으며 위정은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 역시 그랬다.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 돌아오며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지.”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위정은 다시 바위 같은 침묵으로 돌아갔다. 소년은 한참 후에야 그것이 그 나름의 위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박하고. 알아차리기 힘든.
하지만 뜨거운 성의가 스며든 그의 위로는 천 마디의 사근사근할 말보다도 확실한 안도감을 소년의 심장에 심어주었다.
“위정 나으리의 말씀을 들으니 벌써 손이 근질근질하군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 예. 그럴 줄 알았습니다. 궁으로 돌아가서…….”
“뭣 하러 돌아가느냐?? 식재료는 여기도 넘쳐나는데.”
오늘부턴 우리가 주인 아니냐. 태감의 말에 소년은 악동과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소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활약할 기회가 없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장소와 이삼이 그의 등 뒤로 따라붙었다.
“어떤 요리를 하실 거예요?”
“글쎄. 뭘 할까…….”
뭘 하기는. 중화 요리사가 솜씨를 확인할 때 만들 요리가 하나밖에 더 있을까.
“짜장면이지.”
“작장면(炸醬麵)이요?”
“비슷하긴 한데, 다른 음식이란다.”
작장면(炸醬麵)은 북경의 전통 음식으로 한국식 짜장면의 기원이 되는 음식이었다.
짭짤한 장으로 볶은 다진고기와 오이. 숙주, 콩나물, 당근에 완두 싹 등을 올려 비벼 먹는 작장면은 북경의 여름을 상징하는 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소년이 원하는 것은 촌스럽고 달콤하며 기름진. 한국식 짜장면이었다.
“작장면도 맛있지만. 오늘은 그냥 짜장면을 만들 거란다.”
“그냥 짜장면이요?”
“그래. 그냥 짜장면.”
소년의 모호한 말에 장소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냥 짜장면은 어떤 요리예요?”
“글쎄다…… 그냥. 먹어보면 알아.”
한국인에게 짜장면이란 설명할 수 없는 요리였다.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요리이기도 했다.
한때는 촌스럽다고 여기며 무시했고, 전통이 아니라며 배척했던 요리. 그러나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애증의 요리. 한국의 중화 요리사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만의 짜장면을 품고 있는 법이다.
“뭐, 정확히는 그냥 짜장이 아니라 간짜장이지만.”
웅성거리는 주방 사람들을 밀어내며 도마 앞에 선 소년은 자신이 얼마 만에 짜장면을 만드는 것인지를 가늠했다. 생각해 보니, 이번 생엔 단 한 번도 짜장면을 만들어본 적이 없구나.
“십몇 년 만에 만드는 짜장면이라. 감개무량하군.”
처음으로 짜장면을 만들 때도 이렇게 설렜을까. 이미 세월의 먼지 속에 묻혀 떠오르지 않는 옛 추억을 가슴에 묻으며. 소년은 칼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