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19화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나며 소년은 전신을 찌르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가위눌렸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온몸이 식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고 팔다리가 뻣뻣한 상태로 깨어날 때의 그 불쾌감. 뒷목이 저리고 식은 땀으로 이불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지독하리만치 불길한 아침의 시작이었다. 그 어떠한 연유도, 징조도 없었기 때문에 소년은 그 막연한 불쾌함이 무언가 자신에게 전해진 불길한 미래의 징조가 아닌지를 고민했다.
어젯밤 술을 진탕 마셨는가? 아니다.
어젯밤 집단 구타를 당하였는가?
아니다.
어젯밤 슬픔에 지쳐 흐느끼며 잠들었는가? 그 또한 아니다.
어젯밤은 좋은 날이었다. 장소, 이삼과 함께 경사의 야시장을 구경하고 즐기며 웃고 떠들었고 야시장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으며 사자탈춤, 연등 축제와 뱃놀이 등을 관람하며 오랜만에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었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서는 궁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씻고 기분 좋게 잠들었을 터.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찌뿌드드함, 손끝이 떨릴 만큼 저린 이유는 뭘까. 속옷까지 푹 젖어버릴 만큼 식은 땀을 흘린 이유는.
소년은 고민 끝에 자신에게 일어난 이 기현상을 태감에게 물어보았다.
소년이 준비한 조반을 한술 뜨며 태감은 소년의 말을 경청했다.
“그야말로 기이한 일이로구나. 그냥 넘길 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군.”
“단순히 우연 아닐까요?”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 법이다. 특히, 이 후궁에서는. 그리고 특별한 혈통을 타고난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태감의 말에 소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떤 이유에서 멸문지화를 당한 것인지 모를 자신의 혈통을 소년은 늘 궁금해했지만 나라 제일의 첩보기관인 동창에서조차 소년의 비밀을 캐내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포기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 묻어두려 했건만.
만약 오늘 일어난 일이 혈통을 타고 내려온 예지력과 같은 것이라면.
소년의 눈동자에 태감은 식사를 멈추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정도로 이 사안은 중대한 것이었다.
“불길한 사태를 예견하는 신통력은 제법 많은 혈족이 보인 공통적인 특성이다. 금룡 진가의 경우에도 용의 아들에게 불길한 일이 닥칠 때는 늘 금룡께서 징조를 보내시어 미래를 알려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장소의 혈족인 묘족에도 특별한 징조를 보아 재난을 피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지.”
“그것만으로는 판단하기가 어렵군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미래 예지의 신통력을 보인 혈족 중 멸족한 가문만을 찾으면 되는 일이니.”
“하하, 사실은 황실의 숨겨진 혈통을 타고난 것 아닙니까?”
“어허, 불경한 소리를.”
낄낄거리며 가벼운 농담을 나눈 둘은 이내 눈빛을 무겁게 바꾸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했다.
“오늘 외출 일정이 있었지. 반드시 나가야 하는 일인가?”
“금마단주와 철기단주를의 승진 축하입니다. 며칠 전부터 일정을 조율해온 터라…….”
“이유 없이 빼기는 어렵겠군…….”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차기 금군 별장인 비룡대의 대주 자리를 꿰찬 악진평과의 약속은 쉬이 깰 수 없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태감은 그의 호위로 장소와 이삼 둘을 전부 붙여주겠노라 약속했다.
“어떠한 위험이라도 장소와 이삼둘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거다.”
“든든하군요.”
아직 잠이 채 깨지 않았는지 창틀에 기대 고로롱 코를 골던 장소의 허리를 이삼이 쿡 찔렀다.
그 모습을 보며 소년이 피식 웃음을 흘리자 태감은 난감하다는 듯이 이마를 쓸어넘겼다.
“사실은 사람을 좀 더 붙여주면 좋겠지만, 지금 남는 인력이 없어서 문제구나.”
“충분합니다. 뭐, 여차하면 저도 한 팔 거들지요.”
소년이 근육이 살짝 돋아난 팔을 걷어붙이자 태감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칫한 태감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늘 생각하지만 내뱉기는 쏙스러운 그 말을 소년에게 전했다.
“늘 고맙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멍하니 태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미의 화신과도 같던 남자가.
천상의 선녀조차 질투할 미모의 소유자인 그가, 그 순간만큼은 평범한 그 나이 때의 청년과도 같아 보였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 힘들어하는, 부끄러움 많은 평범한 남자아이처럼. 그 얼굴이 소년은 본래의 나이로 돌아가게 했다.
이런 어리숙한 어린 친구들을 보듬어주고 이끌어주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노인의 모습으로. 분명 지금 자신은 징글징글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그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우스워 소년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거 참, 이제 와서 뭔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가끔은 이런 이야기도 해 둬야지. 안 그럼 박정한 상사라고 뒤에서 욕할 것 아니냐.”
“걱정 안 하셔도 뒷담화는 늘 하고 있습니다.”
“거 참 고맙구나. 앞에서 안 해주니, 이 얼마나 배려심 넘치는 부하인지.”
낄낄거리며 나가는 소년의 등을 보며 손을 흔들어준 태감은 창밖을 보고 있던 위정에게 손짓했다.
“어떻게 생각해?”
“징조를 통해 불길한 미래를 예측하는 신통력을 내려받은 혈족은 많지만, 그것이 신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총 다섯 정도지요.”
“그리고 그 다섯 중, 금룡 진가의 혈통을 제외한 나머지 혈족은 모조리 멸족당했지.”
초원의 왕. 늑대의 자손들이 그러했고, 독의 명수라 불렸던 뱀의 자손들 또한 그러했다.
모두가 지난 대전에서 황실을 위협할 만큼 강대한 세를 일구었던 혈족들이었다. 그 강대했던 일족의 피가 후궁에 스며든 것일까.
“늑대의 자손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늑대의 자손들은 어른부터 아이, 누구하나 도망치지 않았으니까요.”
늑대의 자손들은 배율 평야에서 몰살당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말을 탈 수 있는 이 모두가 전장에 나섰고 마지막 한 명까지 항복하지 않고 멸망의 최후를 맞이했다.
“뱀의 자손들 또한 아니겠지. 그들은 위험한 재능을 타고나니, 선황께서 그들을 살려두셨을 리가 없다. 그분은 위험한 칼은 반드시 부러뜨리시는 분이야. 설령 훗날 쓸 수 있을지라도.”
태감은 혈족의 멸망을 차례차례 열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열거한 혈족 모두 소년의 출생과 연관 짓기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요녕 땅 천마(天馬)의 자손, 묘족은 너무 일찍 멸족했지. 녀석의 나이를 생각하면…….”
“길림의 맹주였던 매의 자손들 또한 소년과 연관성을 찾기에는 어렵군요. 매의 자손들은 대대로 푸른눈을 타고나니…….”
미궁 속에 빠진 끝에 태감은 이 문제를 유보하기로 했다. 자세한 정보도 없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잡고 늘어지는 것은 지루한 소모전일 뿐이다.
동창의 제독은 그런 소모전에 시간을 허비할 만큼 녹록한 자리가 아니었다.
위정이 가져온 서류 더미에 고개를 파묻기 전, 태감은 흘리듯이 중얼거렸다.
“설마, 정말로 황실의 혈통은 아니겠지?”
* * *
무장들과의 연회는 호쾌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고리타분한 축하 인사를 교환하지도 않았고, 어물거리며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축사를 읊는 사람도 없었다.
소년들이 도착하자마자 악진평과 배금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잔을 들어 올렸다.
식탁에는 고기와 술이 넘쳐 흘렀다. 흥을 돋을 악사의 연주와 무희의 춤은 없었지만, 그 빈자리를 걸걸한 사내들의 웃음소리와 무용담이 채웠다.
“캬…… 유성락! 저도 소싯적에 좀 배웠지요. 이야…… 이게 진짜 어려운 건데…….”
소년의 비수를 보며 손때묻은 고련의 흔적을 본 배금성은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유성락.
도끼보다도 무겁고 둔중한 비수가 제 위력을 내려면 인간의 한계점을 넘나드는 고된 수행이 필요했다.
힘들었던 시간도 지나면 추억이 되듯이, 고된 수련으로 자루가 패인 흔적을 보며 배금성은 지난날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정말 어려웠지요. 너무 던지다 보니 손바닥 가죽도 까지고.”
“손 거죽이 까지면 소독하는 것도 일이었지. 소금으로 했었나?”
“따끔거려서 잠도 안 오지, 물집잡힌 게 터져서 진물은 흐르지. 흐하하하, 그땐 도대체 어떻게 참았는지.”
“뭐, 젊었을 때는 미련한 것도 미련한 줄 모르고 했지요. 끌끌.”
“으하하 상호 말이 맞습니다! 그땐그게 미련한 건지 몰랐지요!”
그 걸쭉한 대화에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녹아들었다. 약관도 넘기지 못한 아이치고는 소년의 입담이 지나치게 늙수그레했지만, 술만 들어가면 만사 행복한 단순한 무장들은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 좋다. 오랜만에 회포 좀 풀었네.”
젊은것들이랑 노는 것도 좋지만, 역시 사람은 나이가 좀 엇비슷해야 말이 통하지. 아니지, 그 친구들도 이제 끽해야 삼사십대였지?
생각해보니 자신의 기준으로는 악진평과 배금성 또한 젊은것들이었다.
“에이, 젊으시잖아요.”
장소의 핀잔에 소년은 좋은 기분이 날아갔다는 듯이 혀를 찼다.
“젊기는 젊지, 아니, 어리지. 근데 젊으면 뭐하겠니, 몸이 개판인데.”
절뚝거리며 걸어야 하는 병든 몸엔 싱그러운 젊음의 활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름칠하지 않은 돌쩌귀처럼 삐그덕거리는 육신은 좋은 기분도 가라앉게 했다.
마음 놓고 좋아할 수도 없구나. 거지 같은 몸뚱이. 소년은 마치 심장이 당기는 쿡쿡 쑤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육두문자를 토해냈다. 이유없이 식은 땀이 배어나오고 손끝이 잘게 떨리는.
온몸이 찌뿌둥하고 심장을 찌르는 듯한, 마치 아침의 이변과도 같은 불쾌함.
소년은 조용히 장소를 불렀다.
“장소야.”
“네.”
조용히 장소가 앞으로 나섰다. 품안에선 새카만 색의 괴(拐)와 날이 굽은 단검을 뽑아든 장소가 파수견처럼 앞을 지키고 섰다.
새와 쥐마저 숨죽이는 시간. 인기척 없는 골목길의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새카만 옷으로 전신을 가린 암살자는 한 뼘 크기의 비수를 든 채 달려들었다.
벽을 박차는 자세로 추진력을 얻은 암살자의 칼날이 장소의 심장을 향해 뻗어진 순간, 장소의 굽은 칼날이 갈고리처럼 암살자의 손목에 걸렸다.
성둥 잘린 손목이 떨어지고 단면에서 뜨거운 김을 피워올리는 진득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암살자는 통렬한 신음 대신 손목이 떨어진 피를 휘둘렀다. 눈을 향해 날아오는 질척한 핏방울, 그 소름끼치는 견제를 장소는 몸을 낮춰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고양이처럼 유연한 몸을 튕겨 올렸다.
“이얏!”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리며, 소년은 어쩐지 장소의 기합 소리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괴를 쥔 장소의 오른손이 휘둘러지며 첫 번째 암살자는 으스러진 턱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암살자의 입에선 신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첫 번째가 쓰러진 순간, 장소의 시선이 쓰러진 암살자의 등에 쏠린 순간 나머지 암살자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거리의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킨 그들은 까마귀처럼 뛰쳐나왔다. 수는 열둘, 던지는 것은 날카롭고 가벼운 비수. 인당 총 열 개씩. 백이 십 개의 흉악한 송곳니가 소년의 전신에 쏟아졌다.
그 순간 뒤에서 적들을 지켜보던 이삼이 소년의 앞을 가로막았다. 품안에서 꺼내 든 것은 넓은 천. 광택이 흐르는 새카만 천은 마치 밤하늘의 일부를 잘라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천 한 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삼의 행동은 단순했다. 소년을 난도질하기 위해 달려드는 백이십자루의 송곳니를 향해 천을 힘껏 휘두른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행위가 백이십 자루의 송곳니를 막아냈다.
수많은 비수를 튕겨내고도 흠집 하나 없는 천의 위용에 소년이 신음성같은 감탄을 흘리자 이삼이 의기양양하게 천을 펼치며 자랑했다.
“황실의 보물, 천잠보(天蠶寶)예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도 받아낸대요.”
“그래, 유성까진 몰라도 성능은 확실하구나.”
현대 방탄복 뺨치네. 아라미드 섬윤지 뭔지, 소년은 잠시 현대 문물을 뛰어넘는 위엄 넘치는 황실의 보물에 마음 놓고 감탄하고 싶었지만, 암살자들은 그 찰나의 감동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원거리 공격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암살자들은 각자 무기를 꼬나쥐고 달려들었다.
긴 장검을 든 놈이 둘, 철퇴를 든것이 넷. 나머지들은 도대체 뭔지도 모를 해괴한 것을 들고 있어 소년의 정신을 산만하게 했다.
“염병할 놈들, 암살자면 무기 정도는 통일해서 다녀라!”
“요즘은 개성시대잖아요.”
“삼아, 앞이나 보자꾸나!”
소년과 이삼은 품에서 비수를 꺼내들면서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철그럭거리는 수십 자루의 비수를 치켜든 이삼이 위협적으로 비수를 휘두르려 하자 암살자 일부러 방어 자세를 취하기 위해 멈칫했다.
그 찰나를 장소가 파고들었다. 마치 쏘아진 화살과도 같은 속도로 달려든 장소는 위협적인 철퇴를 든 암살자의 옆구리를 향해 괴를 휘둘렀다.
왼쪽 갈비뼈가 바스러지고 뻣조각이 내장을 찌르며 암살자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올라오는 동안 장소는 그 곁을 스쳐 지나가며 갈고리처럼 흰 비수를 으스러진 옆구리에 쑤시고 주욱 그어버렸다.
철푸덕 소리를 내며 복암에 의해 바스러진 갈비뼈와 내장 조각이 튀어나왔다. 장소는 인간 유혈의 잔해가 바닥을 더럽히기도 전에 두 번째 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장소가 야수처럼 날뛰면 그 틈새를 이삼이 던진 비수가 교묘하게 메꿨다. 그 전날 비슷한 수의 암살자를 금마단주와 함께 대치했던 소년은 소름 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그 강대한 사내와 저 둘의 전력이 비등하다는 걸까? 그 악진평과?
그것은 지키며 싸우는 법을 나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였다. 단기 필마로 전설을 헤집는 무장과 호위대상을 지키며 싸우는 호위 무사의 차이.
악진평은 누군가를 지키며 싸워본 경험이 적었기에 소년을 지키며 싸우다 당황하여 암수를 당했지만, 둘은 전공부터가 호위전투였다.
“허 참, 단검 뽑아든 게 민망하네.”
“헤헤, 그래도 저희 전문 호위무산데요.”
“잠시만요, 살아 있는 사람 있나 확인 좀 해볼게요.”
순식간에 싸움판이 정리되자 소년은 긴장한 것이 부끄럽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단검을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직 경험이 없었기에, 그런 형태의 악의에 당해보지 못했기에 소년은 스스럼없이 쓰러진 암살자 사이를 걸어 장소에게 다가섰다.
암살자는 죽는 것 또한 일이라는 사실을, 소년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쓰러졌던 손목이 잘리고 턱이 으스러진 첫 번째 암살자가 일어서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년이 옷자락을 찢으며 비수를 빼들고 이삼이 철침을 던진 순간.
첫 번째 암살자의 가슴팍에서 잿빛의 섬광이 튀어나와 소년의 복부를 헤집었다.
일 초가 영원으로 확장되는 것 같은 감각의 번뜩임 속에서 소년은 쓰러지는 첫 번째 암살자 너머로 쓰러진 시신 사이에 숨은 채 기회를 노렸던 또 다른 암살자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쑤신 칼날이 첫 번째 암살자의 심장에서 튀어나온 것 또한.
어째서 심장이었을까. 가망 없는 동료를 위한 마지막 자비였을까. 소년은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정신의 끝자락부터 타들어가며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기 직전. 소년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희미한 웃음을 띤 채 자신의 목덜미에 단검을 쑤시는 암살자의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