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14화
다관 막심(漢心).
경사에 처음으로 가배라는 신문물을 전파한 유행의 진원지인 막심은 이후 가배의 유통이 원활해지고 제조법이 퍼진 이후에도 업계 1위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품질과 맛, 그리고 판매하는 간식의 질이 여타 다관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할 뿐만 아니라 제조법을 널리 가르쳐 가배의 유행을 선도하겠다는 표대인의 담대한 인품 때문이었다.
어느 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하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바보짓이라 매도 했던 일을 실행하고, 더 큰 이익과 명성을 얻은 표자승의 업적에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경사 곳곳에 분점을 내었는데도 여전히 본점은 뭇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장소였다.
분점을 내며 본점의 가배를 고급화한 전략으로 돈 많은 유생과 사업상담을 나누려는 사업가들에게 품격있는 대화의 장소로 자리매김한 막심은 연일 방을 예약하려는 명가의 하인들로 북적거렸다.
처음 추레한 소년이 다리를 절며 다관 안으로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동냥질하러 온 것은 아닌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보다 못한 유생은 다관의 품격이 떨어진다며 직원을 불러 소년을 내쫓으라 말할 정도였다.
“예? 하지만 복장이 좋은 것으로 보아 거지로 보이지는…….”
“복장이야 어디서 훔쳐 입고 온 것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가게의 정문에서 잡힐 테니 어디서 말끔한 옷을 주워 입은 거 아니겠소! 저런 절를 발이가 드나드는 것을 보니 막심의 품격도 예전 같지 않군!”
유생이 볼살을 푸들거리며 역정을 내자 직원은 하는 수 없이 소년에게 다가섰다.
“손님? 실례지만…….”
“음? 아. 이거 기별도 없이 미안하네. 표자승은 자리에 있나?”
“사…… 상호 어르신?”
다관의 주인인 표자승이 신처럼 떠받드는 ‘스승님’의 등장에 직원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허리를 숙였다.
왕후장상이 와도 정해진 접객 예절 이상의 과대 인사는 하지 않는다는 막심의 직원이 직각으로 허리를 꺾는 모습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표자승이는 외근 나갔나?”
“예? 예 잠시…….”
“그래? 인사나 하고 가려 했더니…… 여 방 하나 있나?”
“상호 어르신께서 찾으시면 없는 방도 만들어야지요! 지금 올라가시렵니까? 특실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려. 고생 많다.”
아 그리고. 저 새낀 뭐 하는 새낀지 아나? 소년에게 지목당한 유생은 마치 염라대왕에게 지목당한 망자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 순간, 유생과 눈이 마주친 직원은 이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대로 진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명문 방 가의 둘째 아들이십니다.”
“허어, 진사라?”
진사가 무엇인가. 그 어렵다는 과거시험의 최종합격자를 부르는 말이 진사가 아니었던가. 향시의 합격자인 거인(擧人)만 되어도 뭇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사는데, 그 거인을 거르고 걸러 뽑은 진사라면…….
‘호부 아래 견자인 건지…… 아니면 호랑이 탈을 쓴 개가 개를 낳은건지.’
소년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옆에서 있던 장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뜻이 무슨 뜻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 기묘한 손동작에 점원과 포교, 그리고 명문 방가의 둘째 아드님은 목줄을 옥죄는 섬찟함을 느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말아먹었다는 사실을 느끼며 하얗게 탈색된 명가의 자제를 지나쳐 객실에 들어간 소년은 가배가 나오기까지 침묵을 유지했다. 마치 지금이라도 다 털어놓으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듯이.
“저…… 가배 나왔습니다…….”
도둑이 제발 저리듯이, 짚이는 부분이 너무 많은 나머지 포교는 그만 시간제한을 놓치고 말았다.
후루룩 소리가 나게 가배를 들이킨 소년이 잔을 내려놓은 순간, 소년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포교라는 지위가 나름 재미가 쏠쏠한가 봅니다.”
“예? 그 무슨…”
“지급 받은 관복이 있을 텐데 굳이 안휘산 최고급 비단으로 관복을 지어 입은 것하며.”
“그…… 그것은 제가 민감성 피부라…….”
“아아! 그러실 수 있지! 공사다망하신 포교 나으리께서 피부가 민감하시다는데! 싸구려 비단 때문에 피부가 짓무르면 안 되지!”
근데, 그 상아로 만든 장신구에 금가락지 옥가락지도 업무에 필요하신것인가 봅니다? 소년의 혀는 칼처럼 날카롭게 포교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피둥피둥 살이 오른 볼에서 식은 땀을 짜낼수록 포교의 고개를 아래로 내려갔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이 겸손을 배워 고개를 숙인 것일까.
‘그럴 인간이었으면 애초에 이럴 일이 없있겠지.’
청렴을 최고의 덕목으로 요구받는 포도청의 관리가 뇌물과 접대를 받고 저잣거리 왈패들의 뒤를 봐준다는 것은 단순히 파직으로는 끝나지 않을 중죄였다. 하지만, 그 죄를 들추고 요절을 내기에는 때가 좋지 않았다.
바깥에서는 황제 폐하께서 폭풍처럼 대소신료들을 갈아엎으시는 동안, 후궁에서는 조용히 태감의 흉계가 스며들고 있었다.
폐하께도, 태감께도. 당장 움직일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다. 그럴 때 상대적으로 개혁의 후 순위인 포도청에 손을 뻗기에는 남는 손이 부족했다.
하지만 민생과 가장 밀접한 포도청을 손대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는바. 소년은 굴러들어온 기회를 놔버릴 만큼 무욕하지는 않았다.
당장 손을 쓸 필요는 없지만, 살생부는 작성해야겠지. 소년의 눈동자가 포교를 들여다보자 포교는 납작 엎드려 죄를 청해야 했다.
“상호 어르신……!”
“하필 건드려도 높으신 분이 마음을 쓰는 아이의 가게를……에잉 쯧쯧.”
“윗분이라 하시면?”
“이 자리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높으신 분 말입니다.”
그것은 은유적인 사형선고였다. 포교의 안색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후궁에 물들어 버렸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이러지 않았다. 이렇게 이것저것 재고, 계산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늘 단순하고 명쾌했다. 아니다 싶은 일이 있으면 아니었고, 화가 나면 구차한 말보다 백번 더 옳은 주먹이 먼저 튀어나갔다.
전생의 자신이었다면 분명 저 부푼 찐빵 같은 놈의 얼굴을 늘씬하게 두들겨 두 번 다시 고기를 씹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날 정치적 파장 따윈 신경 쓰지도 않았겠지.
물들었구나. 이제는 완전히 후궁의 괴물이로구나. 그의 심장은 자조적인 조롱을 보내왔지만, 혀는 여전히 독사였다.
소년은 이미 궁지에 몰린 포교에게 교묘하게 활로를 열어주며 목줄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윗분께서는 일을 그리 크게 키우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당분간은 말이지요.”
“다…… ‘당분간은’입니까?”
“아시다시피 요즘 좀……. 어지럽지 않습니까?”
기름칠한 동아줄을 내려주며 소년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포교께서, 혼자서 이 일을 하시지는 않으셨겠지요. 위로 상납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호 어르신! 그것만은……! 그사실이 들통나면 이놈은 죽습니다요!”
거듭된 압박에 뇌가 녹아내린 것인지 포교는 해서는 안 될 말을 술술 토해 냈다.
그렇게 말하면 자신의 뒤에 누가 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아차릴텐데도. 아니, 어쩌면 그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부러 연기를 하는 것일까?
소년이 침묵으로 심장을 찌르자 포교는 마치 밟힌 두꺼비처럼 비명을 질렀다.
“어르신, 제 뒤에 계신 분도 아주 무서운 분들이십니다! 높은 분들이십니다! 그러니……!”
“언제까지 그 높으신 분들이 버틸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소년의 말은 완전히 하대로 바뀌었다. 가식적인 친절마저 벗어던진 소년은 푸줏간에서 돼지를 고르는 백정과도 같았다.
그 앞에서 자신의 차례가 아니기만을 기도 하는 돼지 새끼를 지목하며 백정은 돼지에게 차가운 현실을 들이밀었다.
“그깟 포도청 윗대가리가 언제까지 버틸 거라고 생각하지? 포도청이 잠잠한 이유가 두렵고 손대기 껄끄러운 상대라 그런 줄 아나? 틀렸어. 나중에, 맨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난 후에 처리해도 늦지 않을 만큼 잔챙이라서 놔두고 있는거다.”
소년의 말이 쌓여갈수록 포교는 자신이 평생을 걸고 올라왔던 모든 것들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한 줌의 모래처럼 느껴졌다.
그 후에 남은 것은 허망함과 공포뿐이었다.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얼굴로 꿇어앉은 포교에게 소년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살고 싶나?”
“살고 싶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너 같은 비루한 놈을 살려주려면, 그에 걸맞은 명분이 있어야겠지.”
“제가 아는 것을 전부 불겠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도, 문서로 기록된 것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더 올라가지는 못해도, 최소한 자리는 보전할 수 있지 않겠어? 간신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포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소년은 다시금 가식적인 미소를 입에 띄웠다.
“포교 나으리. 잘합시다.”
아직 웃으면서 할 때.
* * *
악의란 온전히 적을 위해서만 준비하는 것이었다. 지인 앞에서 소년은 양처럼 순하고 신사적이었으며 그나이에 어울리는 온화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당황한 이삼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기새 같은 이삼의 동생들에게 다정하게 인사하며 소년은 오랜만에 자신에게서 너무 일찍 떠나버린 가족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한없이 그리운 그 이름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미소를 짓는 이삼을 보며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주방에서 불을 지피고 아궁이에 철과를 걸며 소년은 잠시 집안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다른 가정집과 별다를 게 없는 집이었지만 군데군데 독특한 모양새의 악기가 장식되어 있었다. 긴 도피생활 동안 마지막까지 지켜온 금익족의 상징이리라.
어머니와 동생 둘. 그리고 이삼까지 넷. 이것이 금익족의 마지막이었다. 한때 서장에서 융성했던 일족의 마지막은 앞으로 어찌 될까.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작은 인간의 서글픔에 잠기려 하는 소년에게 이삼의 동생들이 다가왔다.
“와! 닭!”
“닭고기 좋아하니?”
“좋아해요!”
“저도 좋아해요!”
“그럼 생선은 좋아하니?”
“생선……도 좋아해요.”
“전 생선이 더 좋아요!”
쌍둥이였지만 둘의 입맛에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꼭 가지 위에 앉아 조잘거리는 참새처럼 소년의 주위를 돌며 웃고 떠드는 형제의 순진한 귀여움은 어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소년의 입꼬리도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그럼 닭고기도 하고, 생선도 하고, 돼지고기도 하자꾸나. 돼지고기는 좋아하니?”
“좋아해요!”
“엄-청 좋아해요!”
“그래그래. 많이 먹어야지. 그래야 쑥쑥 크지.”
닭고기 튀김에 생선찜, 돼지고기볶음. 여기에 소년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누룽지 튀김도 좋아하려나?”
“간식으로 자주 먹어요!”
“그럼 반찬으로도 한번 먹어보자꾸나.”
하인과파(蝦仁鍋巴). 새우 소스를 얹은 누룽지 튀김은 다른 말로는 때아닌 벼락이라는 의미로 평지일성경뢰(平地一聲惊雷)라고도 불렸다.
바삭바삭한 누룽지에 고소한 소스가 배어들었으니 먹기도 좋고, 누룽지에 소스를 뿌릴 때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향기가 귀와 코를 자극하니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로잡기에도 좋은 음식이었다.
“앗, 요 녀석들! 오운 님 도와드리라고 보냈더니 놀고만 있어!”
“괜찮아. 어차피 다 끝나는데 뭐. 거기 접시만 좀 집어주렴.”
평소엔 한없이 순하기만 한 이삼도 집에서는 엄격한 형인 모양이었다.
까르륵 웃으며 도망치는 동생들을 보며 한숨지은 이삼은 소년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애들이 아직 철이 없어서…… 시끄러웠죠?”
“나 같은 늙은이들은 좀 시끄러운 애들이 붙어있는 게 좋아. 활기가 느껴지거든.”
그래, 걱정스럽겠지. 장남이니까.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이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자신의 씁쓸함이 이삼에게 보이지 않도록 머리를 꾹꾹 눌렀다.
“자, 밥 먹으러 가자. 밥 식겠다.”
소년이 상을 가득 채우자 점심장사를 조금 일찍 마감한 이삼의 어머니가 아이들과 장소를 불러왔다.
가게 뒤편에서 장작을 패고 있던 장소는 물독에서 물 한 바가지를 머리에 끼얹고는 꼭 고양이처럼 고개를 부르르 털었다.
평소에는 세 명만 둘러앉는 간소한 상에 세 명이 더 추가되니 북적거림과 소란스러움이 돌아왔다.
오랜 옛 추억이 한 조각이나마 돌아온 것을 느끼며 이삼의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장된 어조로 탄성을 질렀다.
“어머나, 진수성찬이네.”
“오운 님은 후궁에서 사례 태감님의 전속 요리사세요.”
“세상에, 그런 분이…….”
“아이고……. 변변치 않은 솜씹니다. 자, 식기 전에 어서들 드시죠.”
소년은 튀겨낸 누룽지 위로 뜨거운 소스를 끼얹었다. 새우와 잘게 찢은 닭고기, 죽순과 표고버섯 등이 들어간 눅진한 소스가 기름이 탁탁 튀는 누룽지 위로 떨어지자 수증기가 솟아오르며 귓바퀴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식탁 위로 울려 퍼졌다.
식사의 시작을 울리는 전주곡과도 같이, 모두가 그 소리가 사그라지는것을 기다렸다.
가족과의 식사. 소년은 자신이 그 평범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행위에 굶주렸음을 깨달았다. 도대체 얼마만일까. 이렇게 무릎이 닿을 만큼가까운 거리에서 아무 근심 없이 식사를 해보는 건.
단란한 식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소년은 과연 자신이 태감에게 이런 식사를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뛰어난 요리, 진귀한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 고급 요리로는 위장을 채울 수는 있어도 마음을 채울 수는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만복감을 느낀 소년은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다.
“난 뛰어난 요리사가 될 수는 있어도, 좋은 요리사는 될 수 없는 거로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삼아. 오늘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