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12화
한 번의 실패가 백번의 성공을 잡아먹는 곳. 그렇기에 후궁의 권력자라면 누구나 그 한 번의 실패를 대비해 여러 구멍을 파두는 법이다.
그리고 대개, 그들이 말하는 구멍이란 돈으로 이루어지는 법이었다.
고상한 학자 나으리들이야 심원한 지혜와 자아 성찰, 조상님의 은혜야말로 모든 사건 사고를 해결해 주는 만능의 열쇠라 생각하지만, 이 후궁에서 지혜는 그렇다치더라도 조상신의 은덕을 본 이들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거세한 놈들이 은덕은 무슨 놈의 은덕.
조상신께서 보우하셨더라면 동전서푼에 팔려와 거세할 일은 없어야겠지.
빈곤한 가정에 입 하나 줄여보려 팔려온 환관들에게 집안이란 원망의 대상이었으며 증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가끔, 자기 스스로 몸을 팔아 황궁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아픈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줄줄이 딸린 동생들 입에 풀칠이라도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후로 후궁에 들어온 이들의 끝은 대부분 좋게 끝나는 법이 없었다.
‘착한 자는 이용당하기 마련이지.’
오늘 장 태감은 평소 즐기던 차대신 귀하고 독한 술을 내왔다. 대접을 위한 술이었으며, 고별주 이기도 했다.
“자, 잔 받으시게.”
“감사합니다. 태감 어르신.”
잔을 받은 것은 이제 막 이립쯤되었을까 싶은 청년이었다. 머리를 기름을 발라 깔끔하게 넘겼고 이목구비는 단정했으며 키도 훤칠한, 좋은 사내였다. 거세하고 환관이 되지 않았다면 분명 괜찮은 신랑감으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으리라.
좋은 청년, 그리고 어쩌면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는 환관은 까마득한 위치의 상사가 따라주는 술을 극도의 공경함을 담은 자세로 받았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손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술은 맑고 투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여아홍(女兒紅)일세, 삼십 년쯤 묵은 것이지. 마셔본 적 있나?”
“아뇨, 처음입니다.”
“조심하게나. 부드럽고 달지만 상당히 독하거든.”
한 손으로 병을 쥐고 잔에 넘치도록 술을 부어주며 장 태감은 젊은 환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영문을 몰라 얼떨떨한 그의 눈동자는 혹시나 자신이 기회를 잡은 건 아닌지, 출세의 발판이 다가온 것은 아닌지 기대하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독한 술은 목구멍으로 넘기며 장태감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시는 젊은 환관에게 물었다.
“이보게 예담, 자네가 내 밑에서 일은 한지 몇 년쯤 되었지?”
“예? 예. 이제 햇수로 오 년이 좀넘었습니다.”
“오 년. 오 년이라.”
오 년 전 그를 뽑은 것이 바로 장태감이었다. 거세한 놈치고는 눈빛에 독기가 없고 순해 특이하다 싶어 뽑아두었더니, 어떻게 꾸역꾸역 밀고 올라와 제법 그럴듯한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내관감, 후궁에서 가장 큰돈이 움직이는 조직의 중추까지 말이다. 내관감의 중간까지 올라왔다면 여아홍 정도야 마실 수 있지. 그런데도 그가 지금까지 여아홍을 마셔보지 못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주머니에서 돈이 줄줄 새는 이유가.
장 태감은 흘리듯 젊은 환관에게 물었다.
“돈은 좀 벌었나?”
“커흑! 예…… 예?!”
예상치 못한 추궁에 독한 여아홍이 목에 걸렸는지 젊은 환관은 거세게 기침을 했다.
기회의 자리가 순식간에 처형대로 변해 놀랐을 것이다. 장 태감은 친히 입가를 닦을 수건을 건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추궁하는 것 아닐세.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래도 내관감 아니겠는가.”
토목과 건축, 그리고 궁 납품을 관리하는 내관감은 뒷돈을 받기에 좋은 자리였다.
한 번 수주하면 돈은 물론 황실에 납품한다는 명예까지 얻을 수 있으니 내관감의 환관들에게 줄 한번 대보려는 상인들이 매번 금이며 은이며 온갖 귀한 보물들을 싸 들고 줄을 섰다.
하지만 그 자리도 그리 녹록한 자리는 아니었다.
“큰 재미는 못 왔지? 하긴, 자네도 위에 기름칠을 좀 해야 상사들에게 비벼볼 것 아닌가.”
“예…….”
후궁의 요직인 만큼 내관감에서 자리를 유지하려면 뇌물이 필수였다.
버는 족족 상사들의 주머니에 찔러줘야 하니 떨어지는 돈은 넉넉하지 않고, 그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집에 꼬박꼬박 가져다줘야 하니 젊은 환관 예담은 늘 빈곤했다.
“자네 어머니는 좀 어떠신가.”
“그…… 좋지는 않으십니다.”
환관은 고개를 떨구었다. 몸을 팔아 후궁에 들어오고, 양심을 팔아 뇌물을 받아 가면서도 아득바득 어머니를 봉양해 왔건만. 하늘은 그의 노력을 비웃는 듯했다.
다음 봄을 보지 못할 고목처럼 말라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아들의 심정은 참담한 것이었다.
장 태감의 눈동자에 측은함이 깃들었다. 그것이 꾸며낸 것인지, 진심인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젊은 환관에겐 그 모습이 대단히 인자하고 다정하게만 느껴졌다.
“자네 상약(祥藥)이라고 들어봤나?”
“예? 상약이라면 태의전의 태의(太醫)께서…….”
“그래. 천 가지 병을 낫게 한다는 그 상약 말일세.”
온갖 진귀한 약재를 황금 가마에서 달여 석청으로 빚어냈다는 상약은 오직 황제 폐하의 주치의인 태의(太醫)만이 만들 수 있다는 황실의 비약이었다.
먹으면 천 가지 질병에 효험을 보이고 기력이 말라붙어 죽을 날 만을 잡아둔 노인마저 일어나게 한다는, 그야말로 전설 속 신선의 비약과 비견되는 약.
그것은 아무리 눈여겨본 부하라고 할지라도 맘대로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관감의 태감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젊은 환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미안하네. 자네 어머니와 동생들은 내 반드시 책임지도록 하지.”
“어머니를…… 잘 부탁드립니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목구멍 너머로 넘어오려 하늘 눈물을 참으며 환관은 고개를 숙였다.
환관의 잔에 다시 한번 여아홍을 넘치도록 따라주며 장 태감은 확답을 받아냈다.
내일 아침, 그 환관은 자신이 건네 준 비수로 자결할 것이다. 죄를 고백하는 유서와 함께.
술기운을 깨기 위해 밤공기를 들이 마신 장 태감은 이내 일의 보고를 위해 북림궁으로 향했다.
늦은 밤까지 잠들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안양비가 말없이 차를 따라주었다. 분명, 쓰디쓴 그의 표정이 일의 성과를 말해주었기 때문이리라.
“그 친구에게는 무엇을 약속했나?”
“병든 어미와 동생들을 책임져주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런가.”
이번 일은 결코 개인의 자살로 끝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정오품의 무관을 암살하려 한 죄. 그리고 그 암살 도구를 전달한 죄. 적어도 삼 대에게는 그 죄가 물어질 것이다.
환관이 부탁한 병든 어머니도. 줄줄이 딸린 그의 동생들도. 장 태감은 눈을 감았다.
지킬 수 없는 약조를 한 그에게 안양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를 살고 있었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당장의 목숨을 보전해야 하는 곳. 그리해서 살아남아 보는 경치는 어떠할것인가.
그 자리에선 무엇이 보일까.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아서, 원하는 자리까지 기어올라 보는 경치는 어떨까. 만족스러울까. 아니면.
값싼 동정과 자기혐오는 여기까지였다. 장 태감과 안양비는 자신들이 가진 비수를 가다듬으며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겠지.”
“이번 일로 파벌 비들의 결속 또한 흐트러지겠지요.”
“흐트러지기만 하면 다행이지. 이번 일로 군부에 큰 개혁이 있을 것이야. 폐하께서 칼을 단단히 빼드셨으니.”
“군부 출신 비들께선 자리가 위태로우시겠군요.”
지원할까요? 장 태감의 말에 안양비는 고개를 내저었다. 파벌의 수장으로서 살이 깎이는 것에 대한 아픔과 인간적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은 납작 엎드려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할 때였다.
“어설프게 지원하려 했다간 오히려 전복될 위험이 크지. 이번 기회에 잔가지를 쳐내고 내부의 결속을 높이는 것이 옳다.”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에 젖고, 누군가는 다가올 폭풍에 몸을 추스르며. 누군가는 다가올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밤.
여전히 별은 어느 것 하나 떨어질 기미 없이 밝게 빛나고만 있었다.
* * *
그것이 누구라도, 아무리 천인공노할 악인이라도. 죽고 난 후에는 한 명쯤 그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다.
하지만 추로(麤鹵)는 도저히 그를 위해 울어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쌓인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꼴 좋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구제할 길이 없는 살인마에게 너무 편한 죽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 시체를 묻어주기 위해 들쳐메고 온 것은 추로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생전 빛 진 것도 없고, 진심으로 따를 만한 인간도 아니었으며, 죽는다면 지옥 가장 밑바닥에 떨어져야 마땅한 인간을 위해 난 어째서 그런 위험을 무릅썼는가.
“댁은, 진짜 개 X 같은 놈이요. 나도 X 같은 놈이지만, 댁은 진짜 개자식이야.”
혁문수의 죄는 무거운 것이었다.
제국의 법은 죽은 자에게도 죄를 묻는다.
그의 시체는 갈기갈기 찢어져 들판에 버려지고 목은 장대에 걸려 구더기가 필 때까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어째선지 추로는 그 꼴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이 큰 죄임을 알면서도 상관의 시체를 훔쳐, 경사 인근의 야산으로 도망쳤다. 그를 묻어주기 위해서. 사람 다운 마무리를 지어주기 위해서.
“꼴에 상관이었다고? 시팔, 충견나셨군. 염병할.”
추로는 하나 남은 팔로 삽을 들어땅을 팠다. 그는 하나의 팔로도 보통 사람 셋은 달라붙어야 할 큰 구덩이를 금세 파냈다.
싸 줄 거적도 없고 세워 기려줄묘비도 없으니, 이대로 시체를 끌어다 구덩이에 넣고 묻어주면 끝날 일이다.
시체를 잡아끌기 위해 허리를 숙인 추로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어버린 옛 상관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주제에, 그토록 끔찍한 일을 벌인 주제에.
“어째서 그리 환하게 웃고 있소. 얼마나 만족스러웠길래.”
도저히 악인에게 어울리는 얼굴이 아니었다. 좀 더, 사실은 좀 더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어야 했다.
비굴하게 바닥을 길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쓰레기처럼 죽어야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런 주제에. 그런 인간말종 주제에.
“도대체가, 어찌 이리도 기쁘게 죽은 건지.”
죽은 혁문수의 얼굴은 평온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추로는 자신이 혁문수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이었다. 자신도 그와 같은 인종이었기에, 자신은 결코 그런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기에 자신과 닮은 그의 죽음을 최소한 사람다운 모습으로 보존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어느 누군가가 자신도 이리 묻어주기를 바라며.
혁문수 만큼이나, 자신 또한 구제할 수 없는 개자식이었다. 들판에 버려져야 마땅할 놈이다.
“이런 처지이니 거나한 제사상은 없수다.”
그래도 전송하는 길에 술 한잔이 빠질 수는 없겠지. 봉긋하게 무덤을 만들지도 않고, 그저 흙으로 평평하게 덮어 다진 후 추로는 허리춤에서 술을 꺼내 들었다. 쓰레기에게 어울리는 쿰큼한 탁주다.
이빨로 병마개를 열어 땅에 대충뿌린 후, 그는 남은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끈적하고 들척지근하며 미지근한 액체는 불쾌감만을 자극할뿐이었다. 그래도 술이지. 많이 마시면 취한다.
하지만 둘이서 나눠 마셨기에 술의 양은 부족했다.
그럼 내려갈까.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복귀해 금형부(禁刑部)의 사람을 기다리던, 아니면 남은 돈을 털어 술을 마시던 산에서 내려가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혁문수를 위한 눈물은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눈물이었다. 자기 자신을 위한 동정과 연민, 후회. 그리고 원망이 흘러나왔다.
“칼을 잡지 않았더라면…….”
숲의 그림자 사이로 그의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 말아야 할 죄를 수도 없이 범한 멍청한 놈의 일생이었다.
칼을 쥐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들처럼 번듯한 부모 아래에서 자라지 못했으니까.
살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했으니까.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살아야 했으니까.
그것이 변명이라는 것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소리 없이 한참을 오열했다.
“이젠, 어떻게 하지.”
회한의 눈물이 마르고, 온몸의 진액이 메마른 것처럼 물기 없는 허망한 목소리로 미래를 한탄하던 추로는 순간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후회로 가득한 인생이었으나 그 인생을 걸고 단련해온 검술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사람의 인기척. 그것도 꽤 가까운 것이었다. 그의 감각에 걸려든 것은 오직 단 한 명뿐. 그것을 확인한 순간 추로는 날카롭게 세운 검을 갈무리했다.
“금형부(禁刑部)에서 오셨수?”
“……비응단의 부단주 추로. 맞는가.”
“그렇수다.”
추로는 그대로 금형부의 집행인에게서 등을 돌린 채 주저앉았다. 남길 말도 없고, 구차하게 구걸도 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하지만 집행인은 참수도를 뽑는 대신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음단의 부단주 추로. 현시점을 기준으로 전 단주 혁문수의 죽음이 확인되었다. 비음단의 단주 자리에 오를 생각이 있는가?”
“요즘은 금형부에서 인사도 관리하나?”
“통보는 하네. 죄를 사할 때 겸해서 말이지.”
죄를 사하였다. 그것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땅에 묻힌 혁문수를 말하는 것인가. 추로는 묻지 않았다.
“하겠는가?”
집행인은 거듭 되물었다. 차갑게 굳어진 그 얼굴은 추로 자신과 별다를 바 없었다.
사람의 핏값으로 사는 이들의 얼굴은 다 비슷해지는 것인가. 주로는 고개를 저었다. 진저리가 나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못하겠수. 못하겠수다. 더러워서.”
“그런가.”
집행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다면 남길 말은, 없는가?”
“……없수다.”
집행인이 그의 등 뒤로 향했다. 추로는 본능적으로 그가 칼을 뽑는다는 것을 느꼈다.
두려웠고, 도망치고 싶었으며, 조금은 후련했다. 끝자락에 선 그의 입꼬리가 헤벌쭉 올라갔다.
“우린 정말 개자식들이야.”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