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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06화 (106/314)

환관의 요리사 106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한 금마단주의 얼굴은 불그죽죽한 색이었다. 열꽃이 핀 그의 얼굴은 점차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단주님?”

“상호…… 자리를…… 피하시오.”

“……단주님?”

무적일 것만 같았던 그의 거구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묵직한 낙하음과 함께 밤거리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소년은 그제야 단주의 허벅지에 박힌 얇은 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주님, 침이…….”

“뽑지 마시오…… 상호도…… 중독될 수…….”

“지금 그게 문젭니까?”

소년은 자신의 옷 일부를 잘라 손을 감싸고 침을 뽑아냈다. 그 독이 어찌나 지독한지 소년의 손을 감싼 옷자락이 시커떻게 물들 정도였다.

그 독만큼이나 단주의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도 새카만 색이었다.

소년은 독이 위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옷을 찢어 단주의 상처 위쪽을 졸라맸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제가 금방 의원으로 모시겠습니다.”

“후…… 상호에게는 힘들 거요……괜찮소. 일어날 수…….”

금마단주는 당장에라도 마지막 숨을 토해낼 것처럼 위중해 보였다.

하지만 그를 들어 옮기기엔 소년의 근육은 너무나도 빈약했다.

만약 전생이었다면 당장에 둘러업고 뛰었을 텐데. 자신의 신체에 저주를 퍼부을 시간조차 소년에겐 없었다.

단주의 숨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상호…….”

“제기랄, 나한테 유언 남기려고 하지 마쇼. 제발!”

그는 장군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줄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곳에서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단주의 얼굴이 점점 타들어가는 것처럼 변하고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순간, 그 순간 기적처럼 소년의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어? 오운 님?”

“삼아!”

“그리고 누워계신 분은 금마단주시죠? 어쩐지, 태감께서 감이 안 좋다고하시더니…….”

그를 마중 나온 이삼은 쓰러진 암살자들을 보며 그들에게 기복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후 품에서 기묘한 구슬을 꺼내 단주의 입에 물렸다.

“피독주에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독기를 조금은 진정시켜 줄 거에요.”

“이 근처에 실력 좋은 의원이 았을까’?”

“……잠시만요.”

이삼이 꺼낸 것은 기묘한 피리였다. 갈대처럼 가늘고 구멍이 총 세개가 뚫린 피리를 독특한 파지법으로 쥔 이삼은 있는 힘껏 피리를 불었다.

처음엔 삐이익 소리가 울리는 듯하더니 이내 소리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이삼이 피리를 부는 것을 멈춘것이 아니었다.

소년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숨을 불어넣는 이삼을 보며 소리가 인간의 가청영역을 넘어섰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건?”

“동창 요원들에게 연락하는 피리에요.”

“동창 요원?”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낙네, 폐점을 준비하던 점소이와 요리사.

시장 한쪽에서 만두를 팔던 노인.

도저히 냉철한 요원의 모습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이 나서서 이삼의 앞에 부복하였을 때 소년은 그들이 요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말씀하십시오.”

대표로 나선 것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였다. 허름한 옷에 손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마당의 텃밭이라도 일구고 있었던걸까. 손자들 재롱 보는 것이 남은 삶의 유일한 낙일 노인의 눈은 지독하리만치 차갑고 무감정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그 눈동자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익숙해진 이들의 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위장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평소에는 다들 평범한 사람들인 거겠지. 물건을 팔고,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미동도 없는 요원들의 눈동자를 보며 소년은 암살자에게 둘러싸였을 때보다 더한 한기를 느꼈다.

“현장의 시체들을 부검조로 넘기고, 힘 좋은 사람 둘을 빌려주세요.”

“3호, 12호. 도와드려라.”

““예!!””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둘이 들것을 가져와 기절한 단주를 드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익숙하게 시체를 정리하고 핏물을 씻어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소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이삼이 재촉했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어디로 가는 건데?”

“주윤 아저씨한테요!”

“주윤? 그 양반 분명 추나 시술하던…….”

의문은 일이 끝나고 나서 해결해도 늦지 않았다. 이삼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하자 두 명의 사내들은 앞뒤로 들것을 쥐고 가마를 옮기듯이 능숙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데도 소년은 천천히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서히 수상쩍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경사의 뒷골목에서 자칫 잘못해 혼자 남겨졌다가는 어떤 꼴을 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이한 행색의 군중들을 해치고 장사를 접은 듯 발을 치우고 문을 걸어 잠근 주윤의 가게에 도착했다.

“아저씨! 저예요!”

조금만 세 개 밀어도 쓰러질 것 같은 문짝을 쾅쾅 두드리자 안에서 뚱뚱한 거구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아니, 양이 아니야.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급한 환자가 있어요.”

“환자? 어디, 좀 보자꾸나.”

주윤은 그 거구만큼이나 대단한 용력을 발휘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두 개는 더 크고 근육도 두툼하게 붙은 단주를 번쩍 안아 올린 그는 뜸을 뜨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침상에 그를 늘혔다.

“환부는, 다리인가?”

“아마 독인 것 같습니다.”

“양아, 옥룡침을 다오.”

소년은 그가 황실의 보물이라는 옥통침을 그리 쉽게 요구하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이삼은 당연하다는 듯 이 품에서 침을 꺼내 그에게 건네었다.

“부디 옥룡침으로 검사가 가능한 독이면 좋겠군…….”

침을 꺼낸 그는 조심스럽게 환부에 침을 가져다 대었다. 삽시간에 새카맣게 변한 침 끝을 주의 깊게 살펴보던 주윤은 물 한 바가지를 들고왔다.

그리고 침을 입으로 가져갔다. 놀란 소년이 그의 손목을 잡아채기도 전에 재빠르게 혀끝에 침을 댄 주윤은 물로 입을 행궈내고 세 차례 속을 게워냈다.

“초오다! 초오를 기반으로 초독(草毒)을 농축시킨 거야. 독근(毒芹, 독미나리), 복수초(福壽草), 천남성(天南星), 상륙(商陸) 따위군.”

주윤은 금마단주의 입을 벌려 안에 있는 피독주를 확인하고는 이삼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다, 피독주를 물리고 환부위를 묶어 독기가 위로 퍼지지 않았어. 이 정도면 독기를 빨아내고 해약을 먹이면 금세 기운 차릴 거야.”

주윤은 이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약재를 꺼내 달이기 시작했다.

“아, 독을 입으로 빨아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방법이거든요. 그래서 입안을 보호할 약수를 만드시는 거예요.”

이삼의 말에 소년은 긴장이 풀렸는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고 주저앉았다. 하루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분명 일주일 정도는 앓아누울 것이라는,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좀 아프면 어떤가. 살아남았는데.

소년은 그 사실에 안도하며 손안에 들어찬 감촉을 지우려 했다.

하지만 그 감촉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확정적인 불안감 속에서 소년은 자신이 막연하게 방치해왔던 또 다른 위험을 떠올렸다. 금마단주를 습격한 암살자.

과연 암살자는 금마단주 만을 찾았을까. 소년은 튕기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왜 그러세요?”

“삼아,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단주님의 집으로…….”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양화의 소박한 미소가 떠오르자 속에서 위장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이삼은 그런 소년의 귓가에 속삭이며 그를 진정시켰다.

“괜찮아요, 이미 요원들이 안전가옥으로 피신시켰을 거예요.”

“그…… 그러니? 휴, 다행이구나.”

“히히, 호위무사로서 호위 대상의 가족을 살피는 건 기본이죠.”

이삼의 푸근한 미소에 소년은 이번에야말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이삼의 목소리가 점점 자장가처럼 느릿하고 작게 들리고,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에 저항할 새도 없이 소년의 정신은 무중력의 공간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기절하기 직전, 소년이 떠올린 것은 앞으로 어떻게 복수해야 하는가였다.

* * *

익숙한 천장을 보며 일어났을 때, 소년이 가장 먼저 손을 가져간 것은 품 안의 비수였다. 본래 두 개의 비수가 잡혀야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래, 하나는 던져 버렸지.”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늙었어도 사람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 존재했다. 소년은 아직도 손아귀에 그때의 저릿한 감촉이 맴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걸 찾느냐?”

“이런, 아침도 못 차려드렸군요.”

“됐다. 이럴 때 아침은 무슨”

코웃음을 치며 소년에게 다가온 태감은 그의 손에 둔탁한 비수를 쥐여주었다.

거무튀튀한 잿빛, 전날 밤 사람의 피를 마신 물건은 조금도 그런 기색없이 얌전한 모습으로 그에게 돌아왔다.

차갑고, 무거웠다. 마신 피의 무게 만큼 칼날의 무게가 늘어난 것 아닐까. 소년은 비어 있던 칼집에 비수를 갈무리했다.

“처음이었느냐?”

무신경하고, 피딱지를 헤집어 상처를 드러내는 질문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비수를 매만지던 소년은 태감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

“처음이었지요.”

그리고 가능한 마지막이기를 바랍니다. 소년은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마지막일 수 없을 테니까.

시작이 어려울 뿐, 그 뒤엔 더 쉬울 테니까. 점점 더 쉬워질 테니까.

소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

“태감님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번엔 태감이 침묵할 차례였다.

태감은 소년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그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둘은 한동안 떠오르는 햇살을 받았다.

“없지. 내 손으로 직접 한 적은.”

그러나 혀로, 명령으로 죽음으로 내몬 적은 너무나 많지.

그의 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정적을 실각시키기 위해 악의와 증오로 가득 찬 통계를 꾸미고,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하에게 죽음을 요구해야 하는 자리.

그것을 정의라고 믿어야만 하는 자리.

소년은 태감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자기 자신마저 속여야 하는 이의 가녀린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소년은 그의 가날픈 손을 쥘까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지금은 그 역시 같은 아픔을 끌어안고 있는 처지였다.

지금 그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는 것은 패배한 개가 서로를 핥아주는 꼴에 불과했다. 그것은 패배자의 일이다.

그들은 패배할 수 없었다. 그들의 길이 나라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고, 진정황제 폐하를 위한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그들은 승리해야 했다. 그렇기에 소년은 상처를 핥아주는 일을 거부했다.

상처를 홀로 삭이고, 태감과 소년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심연을 보고 온 이들답게 둘의 눈은 재를 먹인 칼날처럼 새카맣고 날카로웠다.

일을 시작하기에 좋은 눈이다.

소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금마단주는 어떠십니까.”

“독을 이겨냈다. 하지만 몸이 축나 대회에 나가지는 못할 것 같더군.”

“회복시켜 드려야겠군요.”

“할 수 있느냐?”

해야지요.

그것이 소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였다. 누군지 모를 적에게 직접 칼을 휘두를 수 없다면, 그 목적을 방해하는 것.

그의 심장에서 분노가 샘솟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퍼진 분노는 핏줄을 타고 돌아 전신세맥에 퍼진다. 이렇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회복시켜 보이지요.”

그의 선언에서 태감은 무한한 증오를 엿보았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설령 자신의 살점을 베어 먹여서라도 소년은 그를 완치시킬 것이다.

그러니 믿는다.

이번엔 태감이 이야기를 꺼낼 차례였다.

“암살자들은 대충 어느 단체인지 확인했다.”

“어떤 놈들입니까?”

“기이하게 비틀린 기형도를 쓰는 단체는 다섯 정도 있지. 그중에서 성대를 지지고 혀를 잘라서라도 기밀을 유지할 만큼 독한 놈들은 둘. 하지만 둘 다 독을 즐겨 쓰는 암살자는 아니야.”

“암살자인데 독 정도야 어디서든 구하겠지요.”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란다. 태감은 독을 깨끗하게 씻어낸 침을 들어 소년에게 보여줬다.

“이 침에 발라져 있던 독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 넌 모를 것이다. 상대가 금마단주쯤 되는이었기 때문에 그리 오래 버렸던 게야. 너 정도라면 한 호흡 내쉴 시간에 이미 절명했을 거다.”

이런 독은 비싸지. 그렇기에 생각외로 독을 즐겨 쓰는 암살단체는 많지 않아. 그리고-

“독을 즐겨 쓰는 암살단체는 동창에서 모두 주시하고 있거든. 꼬투리라도 잡으면 없애야 하니까.”

날아오는 칼은 막을 수 있어도 음식에 섞인 독 한 방울은 알아차리기 힘든 법이지. 태감은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어진 미소를 지으며 침을 다시 품 안으로 넣었다.

“그렇다면 그 독은 아마 의뢰인이 준비한 것이겠군요.”

“마침 난 독을 즐겨 쓰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그러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분과 같은 분일지 궁금하군요.”

소년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욱신거리는 몸을 풀어주기 위해 팔을 쭉 뻗어 늘렸다.

조잡한 스트레칭이지만 꾸준히 하면 조금쯤은 몸이 유연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담아.

“의뢰인은 누굴까요?”

“금마단주는 적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인망이 있지. 하지만 승진을 건 대회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들은 적지 않지. 누가 뭐래도, 그의 무술 솜씨는 젊은 장수 중에서 첫손에 꼽으니까.”

소년의 눈동자가 갸름해졌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분과 가장 자주 비교되는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겠군요.”

“물증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저희가 생각하는 분과, 그 장수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은?”

“역시 물증은 없지.”

소년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귀밑까지 길게 찢어지는 악랄한 흉소. 소년의 눈동자에 광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증거야,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 일이란 게 그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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