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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05화 (105/314)

환관의 요리사 105화

무인의 미덕은 절제와 자기 수양이 아니던가. 늘 검소한 식사만을 차려왔던 장원의 주방에선 기름지고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무심코 담장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아니, 뭐 잔치라도 열라고 그러나? 냄새 좋네그려.”

“거 금마단주 나리가 이번에 득남을 했잔여, 아마 그래서 그런 거 같은데?”

“하이고 거 냄새 한번 좋다. 도대체 얼마나 으리으리하게 상을 차리길래?”

“애처가로 유명하신 양반이니 산모상은 얼마나 떡 벌어지게 잘 차리시겠나. 어이구 침 나와서 못 살겠네. 가세나.”

고욕인 것인 행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정숙하기로 소문난 아내는 물론 이거니와 정신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은 금마단주 조차 시시때때로 산책하는 척하며 주방문을 힐끔거릴 정도였다.

보다 못한 소년이 남모르게 그를 불렀다.

“저 간 좀 봐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구려. 실례하겠소.”

소년이 내민 것은 그 유명한 전설의 완자 우육환(牛肉九)이었다. 그 명성이 어찌나 높은지 광동에서는 완자의 왕이라 하여 환중왕(九中王)이라 부르며 심지어 주성치의 영화 식신에 까지 등장하는 요리였다.

식신에서는 완자의 탄력이 너무나도 뛰어나 완자로 탁구를 치는데 이는 과장이 아니었다.

현지에서도 일반 완자와 완자의 왕을 구분하고 싶다면 바닥에 던져 탄력을 확인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그 탄력 있는 식감은 천하일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탁구공만 한 크기의 완자는 뜨끈한 소고기 육수에 담겨 있었는데 맑은 기름이 뜬 육수의 감칠맛과 어금니를 밀어낼 정도로 탄력 넘치는 완자의 풍미는 장부의 굳센 마음을 봄날의 훈풍처럼 녹여버렸다.

간만 좀 본다는 것이 두 알, 세 알이 되고 한 접시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음.”

“간은 잘 맞는 모양이군요.”

“훌륭하오.”

“이제 슬슬 요리 준비도 다 끝난것 같으니 상을 차릴까요?”

“하인들에게 일러두겠소.”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단주가 주방을 나서자 소년은 요리의 마무리를 준비했다.

그을린 티 하나 없이 완전무결한 황금빛으로 구워낸 새끼돼지 통구이 고유저(烤乳猪). 껍질은 설탕물을 발라가며 구워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달콤하고 기름진 향기가 코를 찔렀다.

“역시, 통돼지의 장식은 사과지.”

눈에는 빠알간 앵두를 꽂아주고 입에는 사과를 물려 줘야 통구이의 멋이 산다. 정성스럽게 돼지의 입에 사과를 물려준 소년은 마지막으로 경사스러운 붉은 천을 돼지에 덮었다.

“나으리, 요리를 옮길까요?”

“아, 부탁 좀 합시다.”

힘 좋은 하인들이 식탁 위로 요리를 나르는 동안 소년 역시 식사 시중을 들 채비를 했다. 대모갑 허리띠에 수사슴 가죽신, 남색 비단으로 만든 환관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소년은 허리춤에 오철 식칼을 찼다.

그득하게 차려진 상을 눈앞에 두고도 젓가락을 들지 못한 채 금마단주와 그의 아내는 애타게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리가 식기 전에 한 첨이라도 더 입에 넣고 싶건만, 소년은 아슬아슬할 때 새끼돼지 통구이와 함께 입장했다.

붉은 천에 덮인 새끼돼지가 별도의 작은 상에 오르고 하인들이 퇴장하자 소년이 품위 있는 자세로 인사를 올렸다.

“오늘 고유저(烤乳猪)를 손질해 드릴 후궁의 상호 오운이라고 합니다.”

극진한 인사에 단주와 아내 양화가 엉거주춤 일어서려 하는 것을 만류하며 소년은 칼을 뽑아 들고 천을 벗겨 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새끼돼지라니!”

근사한 새끼돼지는 금세 해체되어 상 위에 올랐다. 소년은 함께 싸 먹을 전병이나 파채, 첨면장 없이 순수한 고기만을 접시에 담아 올렸다.

“간은 충분히 되어 있으니 그대로 드셔 보시죠.”

소년의 말에 금마단주는 그에게 어울리는 투박한 젓가락을 들어올려 깨끗하게 지방을 발라낸 껍질을 집었다.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직사각형의 껍질은 먹기엔 너무 안타까웠고 먹지 않기엔 욕망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젓가락이 향한 곳은 군침이 고인 자신의 입이 아니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자신의 굶주림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굶주림이 더 애달프게 느껴지고, 최초의 한입을 기꺼이 양보하게 만드는.

금마단주의 젓가락은 아내의 입술앞으로 향했다.

“고생해준 건 당신인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첫술을 뜨겠소.”

“여보…….”

제발 염장질은 사람 없는 곳에서 합시다. 소년의 뜨거운 눈총에도 둘사이의 애틋한 시선 교류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아, 난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고통스러워해야 하는가.

소년이 대여섯 번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껍질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삭.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로 느껴지는 전율, 잇몸을 저릿하게 울리는 소리는 귓바퀴에 감겨 오랫동안 맴돌았다. 그 어떠한 장도, 그 어떠한 첨가물도 필요 없었다.

“어떠신지요.”

“너…… 너무 맛있어서…… 표현을 못하겠어요.”

“고기도 한 첨 드셔보시지요.”

소년이 권한 것은 돼지의 뒤 허벅지 쪽 살이었다. 살이 가장 실팍하게 붙은 곳.

기름이 적절하게 붙어 있어 메마르지 않은 고기는 황금빛 껍질에 둘러싸인 그대로 양화의 접시 위에 올랐다.

“저 이건…….”

“당신이 드시오.”

“하하, 고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단주의 재촉에 양화는 조심스럽게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삭아삭한 껍질이 깨지고 그 안쪽으로 육즙을 담뿍 담고 있는 고기와 얇고 보드라운 지방층이 씹혔다.

“견과류 향기가 나…….”

“예, 견과류를 먹여 키운 돼지는 지방층에 그 향기가 배지요.”

입천장에 대고 문지르기만 해도 부스러질 것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고기와 껍질.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향기는 코안 쪽을 가득 채웠다. 아내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핀 것을 확인한 금마단주는 그제야 자신도 젓가락을 들었다.

“정말 맛있구려, 상호. 내 생전 이렇게 맛있는 새끼돼지는 처음이오.”

“새끼돼지도 좋지만 다른 요리도 드셔보시지요. 여기, 상어 지느러미는 좋아하십니까?”

“싫어할 리가 있겠소?”

식탁에 오른 접시 하나둘 비워지고 얼굴에는 만복감이 떠오를 때쯤, 소년은 마지막 요리를 상에 올렸다.

커다란 탕관에 술 한 병.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요리였다.

“어성초계탕(魚腥鷄燙) 입니다.”

“어성초? 어성초라…….”

단주는 조금 탐탁지 않다는 듯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 이름답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오묘한 비린내가 나는 어성초는 약재라면 모를까 식탁에서 마주 보기는 조금 괴로운 식재료였다.

젊은 날 수련을 하며 몸에 좋다고 억지로 어성초즙을 마셨던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자 단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성초. 정말 맛있겠어요.”

“당신?”

단주는 질겁을 했지만, 양화는 오히려 기대된다는 듯이 사기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소년 역시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탕관의 뚜껑을 봉한 종이를 자르고 뚜껑을 열었다.

“광동에서는 산모를 위해 다양한 탕 요리를 끓이지요. 붕어와 모과로 끓인 탕은 젖을 돌게 하고 오리와 버섯으로 끓인 탕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잉어탕은 산모의 피로를 달래줍니다.”

소년의 말을 이어받으며 양화는 사랑스러운 남편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리고 어성초와 닭고기로 끓여낸탕은 피를 샘솟게 하여 산모의 보양에는 최고로 친답니다.”

금방 건강해질 거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여보.

그 말 한마디가 강철과도 같았던 무인의 눈물샘을 무너뜨렸다. 눈시울 붉어진 것을 가리려 고개를 돌린 금마단주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소년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다시금, 감사를 드리고 싶소.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금마단주는 소년이 건네온 뜨거운 탕을 받으며 자신의 모든 근심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힘겨운 출산 끝에 메말라 버린 아내를 보며 금마단주는 자신도 함께 메말라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찌 걱정되지 않을까.

하루에 열 번이라도 아내 생각이 나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이토록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인 줄알았다면 차라리, 몇 번이나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며 내색하지 못하고 쌓아온 모든 것들이 이 한순간에 해소되었다. 맑아진 남편의 눈을 들여다보며 양화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 소년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도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오늘 저녁은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는 소년을 부끄럽게 했다. 그들과는 다르게 소년은 순수한 마음만을 담아 대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어디까지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던 소년에게 그 미소는 너무나도 찬란하여 그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떠오르는 계명성 앞에 밤의 어둠이 물러가듯이, 그 찬란한 감동을 버티지 못한 소년은 결국 도망치듯 화제를 돌렸다.

“어성초가 아무리 몸에 좋아도, 사실 입에 비릿한 맛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그 대신 식후 입가심용으로 달콤한 술을 준비해 왔습니다.”

“어머나, 그때 그 술인가요?”

소년이 마개를 열자 진하디진한 복숭아 향기가 피어올랐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설 만큼 달콤하고 진한 향기에 양화의 눈동자는 몽롱하게 풀렸다.

“산딸기주는 아니지만, 이 선도주(仙桃酒)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아, 한 잔만 드셔야 합니다. 도수가 낮은 술이지만, 산모에겐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소년의 말에 양화는 자신의 남편을 올려다보며 말없이 애원했다. 한잔은 너무하지 않아요? 그녀의 시선을 금마단주는 모른 척하지 않았다.

“난 산모가 아니니 두 잔 마셔도 괜찮겠구려.”

“여보!”

* * *

별들도 잠들고 등근 달 만이 밤하늘을 외로이 밝히는 시간. 서늘한 밤공기로 달궈진 폐를 식히며 금마단주는 잠시 멈춰섰다.

보통 사람보다 보폭이 큰 그는 잠시 한눈을 팔면 보통 사람의 반밖에 되지 않는 소년과 거리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이거 죄송합니다. 다리라도 멀쩡했으면 좀 더 빠릿빠릿했을 텐데.”

“괘념치 마시오. 밤공기도 선선하고 달도 밝으니 산책하기 좋은 날씨아니오.”

빙그레 웃으며 뒤를 쫓아오는 소년을 보던 단주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다. 틀림없이 감사의 인사이리라.

하지만 환한 달빛 아래에서 몇 번을 거듭해도 모자랄 감사 인사를 삼켰다. 말뿐인 감사는 너무나도 많이 해버렸다.

이젠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할 때였다. 단주가 남모를 각오를 다지는 동안 소년은 그의 넓은 등 뒤를 보며 죄책감을 삭이고 있었다. 저열한 자기합리화였다.

‘나이를 먹어도 변한 것이 없구나.’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부덕함은 자신의 것이다. 단주가 소년에게 느끼는 부채감만큼, 소년 역시 동량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솟구쳐 올라 나이를 헛먹은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될 때쯤, 소년은 멈춰선 단주를 앞질러 섰다. 그림자에 가려진 단주의 표정은 차갑게 경직되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미안하오.”

“…….아.”

황궁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적막했다. 양옆으로 담장이 높았고 길의 폭이 좁아 포위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분명 자신이 습격자라면 이곳에 매복하리라.

“밤손님이 오신 모양이군요.”

“내 손님인 것 같구려.”

일그러진 얼굴로 전방을 주시하던 단주는 허리줌에서 짧은 단봉을 꺼내 쥐었다. 화려한 장식 술이 달리고 문양이 음각된 봉은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지 실사용을 위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나름대로 의지가 되는군. 상호. 가능하면 내가 틈을 만들 테니 도망치시오.”

금마단주는 마치 소년을 자신의 그림자로 가리듯이 앞으로 움직였다.

설령 그 몸을 방패로 삼더라도 소년을 도피시키겠다는 각오.

그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 소년은 절체절명의 위기임에도 믿을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손에 칼이 없어도 그는 무사였고, 백 명의 기마병을 이끄는 장군이였다. 그와 함께한다면 그 어떤 적과 맞서 싸워도 두렵지 않으리라. 소년은 품 안에 잠들어 있던 두 자루의 비수를 손에 쥐었다.

“상호?”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요. 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만…….”

피할 수는 없지요. 소년의 가라앉은 눈동자는 차분한 살의를 품고 있었다. 살인에 대한 부담과 평생을 교육받아온 도덕이라는 가치는 이미 소거된 지 오래였다.

인권, 도덕, 철학, 그 모든 것에는 늘 전제조건이 붙는다는 사실을 소년은 깨달았다.

모든 것은, 일단 내가 살고 나서.

소년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재를 먹인 것처럼 투박한 회색의 비수였다. 비수라고 부르기에는 날이 너무 두껍고 뭉툭해 마치 도끼와 같은 물건이었다.

“유성락?”

“단주, 피하십시오!”

습격자들은 담장을 뛰어넘어 금마단주를 습격했다. 손에 들린 것은 하나같이 기형적으로 비틀린 날을 가진 도검류. 다루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검의 수는 총 여덟. 하지만 금마단주는 몸을 피하는 대신 한 발자국앞으로 나아가며 단봉을 내질렀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뱀처럼 유려한 움직임은 문외한인 소년의 눈에도 창술처럼 보였다.

뿌드드득!

단숨에 세 명의 목젖이 뭉툭한 단봉의 끝에 바스라졌다. 단말마조차 내뱉지 않고 쓰러지는 암살자들의 독기에 소년은 등골이 오싹해지는것을 느꼈다.

“지독한 놈들!”

“고개를 숙이시오. 상호!”

소년이 감탄하는 동안 단주는 쓰러트린 암살자의 시체를 방패 삼으며 암살자들을 공격했다. 단단하고 질긴 인간의 시체는 칼날을 물고 쉬이 놔주지 않는다.

힘 있게 시체를 휘둘러 적의 무기를 낚아챈 금마단주의 오른손에 들린 단봉이 물고기를 낚아채는 참수리처럼 날카롭게 움직였다.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리고 여덟.

침묵의 암살자들이 마침내 쓰러지며 금마단주가 거센 숨을 몰아쉬는 순간, 그 순간이 유일하게 그의 방어가 허술해지는 순간이었다. 교활한 적은 그때를 노렸다.

소년의 비수가 금마단주의 머리 쪽을 향해 쏘아졌다.

투박한 비수가 얼굴 뼈를 바수고 뇌수를 헤집었다. 분명 던져서 맞춘건데도 손에는 묵직한 감촉이 남았다. 살인의 감촉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동료들의 목숨을 제물로 기회를 기다렸던 아홉 번째암살자가 쓰러지자 단주는 피 묻은 단봉을 소년에게 보이지 않도록 찔러넣고 소년의 앞에 섰다. 마치 소년에게 그 끔찍한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듯이.

“덕분에 살았소. 상호.”

“단주님.”

“왜 그러시오?”

“얼굴색이 왜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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