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104화
후궁의 상호 오운. 그에 대한 소문은 이미 후궁을 넘어 외궁에까지 번지고 있었다. 식방각 주 외궁 총괄조리장의 자리를 위협하는 천의무봉의 솜씨.
절름발이에 허리가 굽은 불편한 신체임에도 후궁 최고 권력자 사례 태감의 심복이라는 자리에 앉은 수완.
일설에 의하면 식방각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칠성제의 둘째 날 황제폐하께서 직접 그의 요리를 청하셨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 실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제외궁 관인(官人)들의 최대 관심사는 사례 태감이 언제쯤 그의 요리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가였다.
과연 용의 혀를 감동하게한 요리는 어떤 맛일까! 평소 사례 태감과 거래가 많았던 이들은 언제쯤 그 귀하다는 요리를 대접해 주실지 기다렸으나 사례 태감께서는 늘 가면 아래로 모호한 웃음만을 보여주시며 답을 주지 않으셨다.
사례 태감께서 상호를 너무 아껴품 안에서 놔주지 않는 거라는 말, 실제로는 마약성 식품을 이용한 거라는 말, 그 음식을 한번 먹으면 미쳐버릴 만큼 맛있어 폐하께서 그의 손목을 자른 거라는 말.
온갖 근거 없는 낭설이 퍼지는 가운데 외궁의 관인 최초로 그의 요리를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된 자가 있었으니.
“커흠…… 누추한 집이나, 들어오시오.”
그가 바로 금마단주였다. 경사 외곽의 소박한 장원은 특별히 꾸민 흔적은 없으나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언제는 땀 흘릴 수 있는 작은 연무장이 있어 무관이 집이라는 티가 났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을 소년은 실감했다.
“이야……. 고풍스러운 집이군요.”
“그저 오래된 것뿐이라오.”
고즈넉한 마당에는 마중을 나온 금마단주의 아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매가 살짝 처지고 키가 작은 여인은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큰 금마단주와 붙어있으면 꼭 미녀와 야수처럼 보였다.
“어머, 오셨어요?”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저런 여인과 여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할 법한 소박한 여인이었다.
담담히 미소 짓는 아내에게 평소처럼 다가와 안으려 했던 금마단주는 태감과 그 호위 겸 짐꾼으로 온 장소의 눈치를 보고 헛기침을 했다.
“커흠, 손님분들을 세워두고 실례…….”
“평소대로 하시죠. 저흰 잠시 저기, 정원을 좀 걷고 오겠습니다.”
신혼 같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려. 소년의 뜨뜻미지근한 얼굴에 금마단주의 헛기침은 멈출 줄을 몰랐다.
소년과 금마단주가 시선을 교환하는 동안 연무장에 남아 있는 수행의 흔적을 살펴보던 장소는 조심스럽게 소년의 귀에 속삭였다.
“저…… 그럼 전…….”
“아. 그랬지, 그랬지. 고생했다.”
“바쁠 텐데 오래 잡아 미안하구나.”
“에이, 아니에요.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양비 파벌과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태감과 그의 측근들은 그야말로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준 장소와 그것을 허락해준 태감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전하며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후궁의 상호, 오운이라고 합니다.”
“오늘 오상호께서 저녁을 대접해주신다고 하는구려.”
“어머나, 양화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뒤이어 나이든 유모가 아이를 안고 나왔다. 볼이 통통하고 발그레 한것이 척 보기에도 건강한 우량아였다.
“이야, 이거 장군감이군요. 단주님의 피를 물려받았으면 자제분도 분명…….”
“허허, 그저 바르게만 자라주길 바랄 뿐이오. 내 뒤를 이어 무관의 길을 걸어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면 기쁠것 같소.”
금마단주의 뜨거운 부성애는 소년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옛말에 결혼 안 하면 평생 철이 안든다더니, 그 산증인이 된 소년으로서는 한없이 참된 인간인 금마단주가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커흠, 그럼 저녁을 준비할 테니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주방은 이쪽이오. 여보님 어흠, 크흠. 당신은 가서 좀 쉬시구려.”
“후훗, 네.”
단둘이 계실 때는 여보님이라고 하시는군요? 거 참…….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부부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와 이 나이에 부러울 것이야 있겠느냐마는, 소년은 공연이 위장 한구석이 쓰려오는것을 느꼈다.
젊은 날엔 뭔 객기로 그리 설치고 살았는지. 그냥 마음 맞는 사람 하나 만나서 알콩달콩 살아볼걸.
“그……. 주방으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근데 부인께선 출신이 어느 쪽이신지요?”
“아내라면 광동 사람이오만…….”
“광동!”
소년의 격정적인 반응에 단주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섰다. 온몸의 솜털이 오소소 일어나고 횡경막을 조여오는 강렬한 기세는 아군임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을 더듬게 만들었다.
“그것 참 공교롭군요.”
희번덕거리는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살의인가, 아니면 환희인가. 단주는 그것을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본능은 당장에라도 적을 치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성은 본능의 손목을 내리눌렀다.
우선은 그 의도를 묻고 난 후에 행동해도 늦지 않는다. 단주는 소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이 말이오?”
“마침 제가 광동요리를 전문으로 수학한 요리사라 그렇습니다.”
이리도 기쁠 수가. 사전에 조사하고 온 주제에 소년은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사소한 립서비스와 연출이 식사의 만족도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단골에는 우연히 좋은 재료가 들어왔다며 서비스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리 하면 요리사는 손님이 기분 좋게 드셔주시니 좋고, 손님은 우연히 굴러들어온 행운에 기뻐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요리사란 요리 한 가지만을 잘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어쩐지 서글픈 생각을 하며 소년은 주방에 가져온 짐을 끌러놓았다.
닭이며 오리, 돼지고기에 소고기, 큰 생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은 우윳빛 새끼돼지였다.
그 깜찍한 선물의 등장에 강직한 군인의 입가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니, 이건 새끼돼지가 아니오?”
“광동에서 경사스러운 요리 하면 새끼돼지 통구이가 아니겠습니까.”
“새끼돼지는 나도, 아내도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오. 물론 귀하고 값비싼 음식이니 자주 먹을 수는 없지만…… 정말 감사하오.”
“이 돼지는 다른 새끼돼지와는 다른 맛일 겁니다. 특별히 기른 돼지거든요.”
소년이 자랑스럽게 새끼돼지에 관해 설명하자 단주는 익지도 않은 새끼돼지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얼굴을 했다.
“이놈은 다른 여물을 먹이지 않고 땅콩과 도토리 같은 견과류만을 먹여 살찌운 놈입니다. 그래서 고기를 드셔보시면 은근한 견과류 향기가 나지요. 그리고 다른 고기보다 껍질은 얇고 바삭하며 그 아래의 지방은 비단결 같고 고기는 솜털처럼 가볍고 부드럽지요. 산모에게 이보다 좋은 고기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산모가 아닌 나도 군침이 당기는구려. 이거라면 가산을 탕진하더라도 불만 없겠군.”
“하하, 태감께서 이번에 목장을 하나 사셨으니 언제든지 대접해 드리지요.”
사례 태감 양단. 그는 자신의 식욕을 위해 돼지 목장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저 개인의 만족을 위해 차린 목장이, 훗날 최고급 돼지고기로 명성을 얻어 그들의 새로운 자금줄이 된다는 것을.
소년은 그 외에도 사슴의 힘줄에 곰 발바닥, 상어 지느러미와 말린 전복에 해삼 같은 평범하게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식재료를 줄줄이 꺼내놓았다.
“이거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뿐이구려. 나 같은 범부에게 어울리는 식재료가 아닌데…….”
“다들 보양에 좋은 식재료인지라 태감께서 특별히 보내신 것들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지 않습니까? 금군의 대들보이신 단주께서 평안하셔야 저희 같은 겁쟁이들도 마음 편히 살지요.”
소년의 말에 단주는 고개를 숙인채 한동안 침묵했다.
그것이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가슴을 울리는 감동 때문이었는지 소년은 묻지 않았다. 한참 후에 단주는 진솔한 말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사례 태감께는 정말로……. 고개를 들 수가 없구려. 이 악 아무개를 위해 이리 정성을 보여주시니. 이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어찌 장부라 할 수 있겠소.”
참으로 달콤한 말이었다. 소년은 빙그레 웃으며 단주가 보여준 신뢰는 반드시 같은 양의 신뢰로 답하겠다는 말로 태감의 말을 대신했다.
“그럼 이제, 요리를 시작하겠습니다.”
* * *
교양있는 경사의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다관 막심이야말로 모임을 가지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편안한 분위기에 그윽한 가배 향기, 상냥하고 우아한 점원들과 안락한 공간. 친목을 위한 모임부터 사업적인 이야기까지.
막심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요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도 남아 있었다.
사업 이야기는 역시 금을 물 쓰듯써야 하는 기루에서 해야 제맛 아니겠는가.
졸부는 들어갈 수도 없다는 지상의 천국. 개점 이래 제국 제일의 기루라는 이름을 빼앗겨 본 적 없다는 선화루(選花樓)의 특실에 한 남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이한 사내였다. 뭇 사내라면 간쓸개를 내줘도 내준 줄 모를 만한 미인들이 시중을 드는데도 사내의 시선은 미동이 없었다.
왼쪽 입술부터 오른쪽 눈썹 끝까지. 얼굴을 사선으로 가른 흉터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눈매.
여인을 품으러 온 자리에서까지 품에서 놓지 않은 검 한 자루.
사내는 실로 검과도 같은 자였다.
서리 같은 사내의 기세에 산전수전 다 겪었을 기녀들조차 사내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내온 안주도 입에 대지 않고 술잔만을 기울이는 사내에게 옹졸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왔다.
“흘흘흘, 이런 자리에도 검을 들고 왔는가?”
“어르신 오셨습니까?”
“그려. 오래 기다렸는가?”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공사다망한 비응단주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옅은 웃음을 입꼬리에 머금은 채 비응단주 혁문수와 마주 앉은 장 태감은 기녀들에게 손짓했다.
기녀들이 조용히 자리를 피하자 태감은 그제야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요즘은 어찌 지내는가?”
늘 변함없는 근황 이야기. 혁문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련하며 지냅니다. 공무가 있을 때를 빼면 말이지요.”
“그래. 이제 대회가 머지않았군.”
달착지근한 술을 혀 위에서 굴리며 혁문수의 묵직한 표정을 감상하던 태감은 히죽 웃었다.
“노리는 것은 역시 비룡대주 자리인가?”
비룡대주. 차기 금군 별장의 자리를 약속한다는 출세에 가장 가까운 자리. 장 태감은 입속으로 그 뜨겁고 달콤한 무게감을 느끼며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장 태감의 마음을 눈치챘으면서도 혁문수는 단답으로 짧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자네는 재미없는 친구야.”
“그렇습니까?”
김 샜다는 듯 술잔을 비운 장 태감은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이번 출전자들은 하나같이 범상치않은 자들이던데, 자신은 있는가?”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다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군. 그렇지?”
“……예.”
오만한 답이었으나, 그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의 자존심을 증명하는 것은 백 마디 말이 아닌단 한 번의 칼질에 떨어진 적들의 목이었다.
금군의 부대중 가장 피에 익숙한 비응대의 대주. 그의 검은 무수한 피로 담금질 되었다 한들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검에 누가 당할 수 있을까.
장 태감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단 한 명만 없었더라면 자네의 대답은 완벽했을 거야. 하지만 걸림돌하나가 자네의 말을 허세로 만들어버리는군.”
금마단주.
창 다루는 솜씨가 귀신같다는 그는 유일하게 인간 백정이라는 비응단주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자였다.
태감은 느글거리는 목소리로 혁문수의 속을 긁었다.
“금군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을 뽑으라면 항상 둘의 이름이 나란히 내걸린다지? 하나는 창을 다루는 솜씨가 수라와 같고 하나는 검을 뽑으면 야차와 같으니 승부가 날 수가 없다던데.”
“……이젠 아닐 겁니다.”
“그래. 아니겠지.”
대회 이후로 수라창의 이름은 저물터이니. 야차검만이 남아 영광을 꿰차리라. 그의 비틀린 자존심과 독기를 굽어보며 장 태감은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사람은 구해 두었는가?”
“예.”
“입이 무거운 친구들이어야 할걸세.”
“입을 막을 준비 역시 해두었습니다.”
“젊은 친구가 철두철미하군.”
장 태감이 꺼낸 것은 엄중하게 봉해진 작은 호리병이었다. 재를 먹인것처럼 탁한 검회색 병은 붉은 밀랍으로 봉해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심상치 않은 위험도를 예기하는 듯한, 품 안에 넣기도 꺼려지는 물건이었다.
“초오독(草烏毒) 일세.”
“초오라면 음용하여야 하는 독 아닌지요.”
혁문수의 말에 태감은 피식 웃으며 병 입구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그리 궁금하면 손가락이라도 담궈보겠나?”
“……사양하겠습니다.”
“그리하는 게 좋을 거야. 자네처럼 건장한 무관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라면 피어오른 냄새만 맡아도 쓰러질 만큼 독한 놈이거든.”
특별한 놈이라서 말이지. 아주 보통 독이 아니야. 태감의 말은 꼭 자기 자식을 자랑하는 것처럼 은은한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장담컨대 바늘에 찔린 상처만큼만 독이 침투해도 그 친구는 다음날 해를 보지 못할걸세.”
“기대되는군요.”
장 태감의 장담에 그제야 혁문수의 입꼬리도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사금파리로 그어놓은 것처럼 날카로운 미소에 속이 뒤틀린다는 듯 고개를 돌린 장 태감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앞으로 잘해보세. 차기 금군 별장.”
“잘 부탁드립니다. 차기사례 태감 어르신.”
이글거리는 욕망의 술잔을 나누며 그 둘은 굳은 다짐을 서로에게 받았다.
거절할 수 없는 미래를 건 약속.
한 잔 술은 증인 삼아 잔을 나눈둘은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자리를 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