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100화 (100/314)

환관의 요리사 100화

야식을 먹는다면 무엇을 먹겠는가.

철학자와 수학자, 문예가와 이 세상 모든 노동자, 학생. 직업과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는 이 난제는 유사이래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늘 손에 쥐지 못한 떡이 더 커 보이는 종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비록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그에 근접한 답을 알고 있었다. 답은…….

“치킨이지”

“예?”

“아…… 작계(炸鷄) 말이다. 작계.”

옆에서 아궁이에 장작을 넣는 이삼에게 불을 더 키우라고 말하며 소년은 토막친 닭에 밀가루 옷을 입혔다.

밀가루 옷에는 후추 등의 향신료가 듬뿍 버무려져 있었다.

작계(炸鷄).

중국어로 직역해서 부르기는 참 난감한 그 이름.

소년은 기름 솥에 닭을 넣을 준비를 하며 아궁이 불을 찌고 있는 태감을 돌아보았다.

“한여름에 뭔 궁상입니까?”

“좀 내버려 둬라, 피곤하다.”

“피곤하면 주무시지요.”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는구나.”

하여간 핑계는 좋아.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기름 솥에 닭을 풍덩 빠뜨렸다.

단백질이 변성되며 오그라드는 듯 한 경쾌한 소리와 향신료가 타들어가는 자극적인 향기, 뜨거운 기름속에선 한밤중의 닭튀김을 먹는다는 죄책감마저 함께 튀겨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오밤중에 콜라나 맥주도 없이 치킨을 무슨 맛으로 먹는다?’

목구멍을 따갑게 하는 골이 얼어버릴 만큼 차가운 탄산 한 모금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 어떤 천상의 미주로도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을 느끼며 소년은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사이다나 한잔 마셨으면 좋겠군. 그 어떤 욕망보다도 간절한 소원을 중얼거리며 소년은 태감에게 물어봐야만 하는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밥 먹고 말해주면 안 되겠니?”

“밥 먹기 전에 하시는 게 속 편하실 텐데요.”

“그것도 그렇구나.”

향기와 소리에 취해 있던 태감은 마지못해 죽간을 꺼내 들었다. 아마메모지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 죽간은 몹시 조잡한 것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그 시녀의 이름은 아누슈카로산 파르마 부흐. 명망 높은 파르마 가문의 장녀로 파르마 가문은 대대로 우림지역에 큰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영주 가문이지.”

“호오, 우림이라. 전 틀림없이 사막지대에 있는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요.”

태감은 소년에게 찬드라 왕국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찬드라 왕국의 국토는 우림과 사막에 절반씩 걸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늘 사막의 부족과 우림의 부족이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던 땅이지. 당시 달의 여신을 모시던 제사장을 배출해 왔던 찬드라 왕가가 신의 이름으로 나라를 하나로 묶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년은 듣기만 해도 순탄치 않을 뒷사정이 느껴졌다. 신의 이름으로 묶는다 한들 개개인의 반목은 신앙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찬드라 왕국은 사막 출신 부족이 강세인 모양이군요.”

“정답. 하지만, 이유는?”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일을 벌일 이유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렇게 정보가 추적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지요.”

“개성은 없지만, 누구나 추리할 만한 보편타당한 답이군. 오십 점 주지.”

나머지 오십 점은 닭으로 메우도록 해. 으스대는 태감에게 손질하고 남은 닭 내장을 던져볼까 고민하던 소년은 태감이 부연설명을 시작하자 잠시 그 생물학적 테러를 유보하기로 했다.

“찬드라 왕국은 대대로 서방과 동방 간 교역의 중간거점으로 성장한 도시다. 교역을 주도한 것은 사막부족이었고 상대적으로 우림 지역부족은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지. 하지만 찬드라 왕가는 권세가 약한 가문이야. 종교 지도자로서의 권위는 있지만, 힘 있는 가문을 통제할 만한 발언권은 없.지.”

소년은 곰곰이 시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강직한 군인과 같은 무표정한 얼굴 속으로 얼마나 많은 계산을 했을지, 순진한 제 주인을 속이기 위해 어떤 말을 떠올렸을지는 고민했다.

“파르마 가문은 최근 세가 크게 기운 모양이군요?”

“돌파구가 없다면 가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영지가 반 토막 날만큼.”

“다행히 똑똑하고 가문을 중히 생각하는 아가씨가 있었나 보군요.”

가문의 특산품을 팔기 위해 모시는 위험천만한 도박수를 던질 만큼 똑똑한 아가씨가. 소년의 눈동자 속에 음험한 광기가 스치고 지나가나 태감을 일어서 소년의 어깨를 양손으로 감쌌다.

분명, 태감 역시 소년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리라.

“그래, 덕분에 우린 재미를 볼 수 있게 되었지.”

“쌍방에 이득이니 깜찍한 장난은 그냥 넘어가 줄까요?”

소년의 메마른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태감은 독을 풀 듯이 답했다.

“글세, 그건 그때 상황과…… 기분에 따라서.”

태감의 짓궂은 농담을 들으며 소년은 기름 속에서 닭을 건져냈다. 노릇노릇한 갈색으로 익은 표면은 바삭해 보였고 기름이 빠지며 진한 향신료 향기를 퍼뜨렸다.

정치판을 주름잡는 모사꾼과 일당백의 호위무사를 굶주린 남자아이로 만드는 마성의 야식은 그렇게 식탁 위에 올랐다.

“간은 되어 있지만 조금 싱겁다 싶으시면 산초 소금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먹기 좋게 토막이 쳐져 있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면 젓가락을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손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젓가락의 나라 제국. 국물 있는 음식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젓가락으로 먹는 나라의 심장부에서 태감은 거침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태감이 소년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였다.

평생을 지켜온 예절보다도 소년의 요리를 우선시하겠다는 태감의 결의. 조심스럽게, 굳은살 없는 하얀손이 데지 않도록 신중하게 태감은 다리를 집어 들었다.

“그럼, 먹어보자.”

장소와 이삼 역시 맨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를 집어들었다. 장소는 가슴살, 이삼은 특이하게도 목을 집어 들었다.

“예? 아…… 이건 옛날 습관 때문에…… 가끔 사냥으로 새를 잡은 적이 있는데 그럼 동생들에게 고기를 주느라…….”

“이렇게 기특할 수가.”

손에 기름이 묻어 이삼을 쓰다듬어줄 수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소년은 입가심용으로 단식초에 절인무와 오이를 내오며 식기 전에 먹으라는 잔소리를 했다.

“치킨…… 아니, 작계는 식어도 나름 맛있지만 역시 별미는 갓 튀겼을때죠.”

“안다, 혀가 델까 봐 잠시 기다린 것뿐이야.”

눈을 감고 코에 집중하면 매콤하면서도 대지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향기가 코끝에서 춤을 춘다.

그 향기는 마치 이국의 땅에서 모닥불을 둘러싼 채 벌어지는 작은 축제와도 같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그 뜨거움은 어떠한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강렬한 열기는 마치 이 두손으로 태양을 붙잡은 것 같지 않은가.

먹지 않고 배길 소냐.

바삭, 와사삭!

기름에 튀겨지며 생긴 얇은 막이 부스러졌다. 마치 얇고 단단한 도자기 판을 망치로 내려찍은 것처럼, 송곳니가 닿은 부분부터 튀김옷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입안을 가득 채우고 반고리관을 빠져나갔다.

“맛있죠?”

소년의 말은 공허하게 허공에 스러졌다. 다들 감탄사를 터뜨릴 여유도 없이 닭에 손을 뻗었다. 소년 역시 머쓱한 표정으로 살점을 뜯었다.

아, 뼈 그릇을 가져다 둘걸.

달이 중천에 떠오를 때쯤에 그릇에는 작은 뼈 무덤이 생겼다. 살뜰하게 발라먹은 뼈에서는 광택이 돌 정도였다. 배를 두드리며 졸음에 눈을 꿈뻑 거리던 태감은 소년에게 말했다.

“내일 그 시녀를 보고 오거라.”

“좋게 말할까요, 아니면 적당히 윽박지르고 올까요?”

“같이 일할 사이이니 굳이 그럴 것까지야. 그냥 간만 보고 오거라.”

간만 보라, 어려운 주문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태감의 말뜻에서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의뭉스러운 웃음으로 답했다.

“예, 간만 보고 오지요.”

* * *

이튿날, 소년은 달콤한 과자를 지참하고 월향궁으로 향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걷는 후궁의 돌담길은 소년에게 빛바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돌담길은 운치가 있지요?”

“후궁은 쓸데없이 잘 꾸며놔서 더 기분이 나빠.”

“에이, 보기라도 좋아야죠.”

이삼은 웃으며 괜히 부루퉁하게 구는 소년을 달랬다.

잘 꾸며진 후궁은 어딜 가나 한 폭의 풍경화였고 시선이 스치는 모든 곳에는 정원사들의 숨결이 스며 있었다.

바삐 지나는 사람 중에 누구하나그 손길에 감탄하는 이 없거늘, 작은 화분 하나에까지 스며든 그들의 정성에 소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마음의 찬사를 보내었다.

“후궁만 아니었다면 좀 더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후궁이니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거죠.”

“그것도 그렇구나. 요 긍정적인 녀석.”

운향궁은 연좌궁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도 십분 정도였기에 여유를 부려도 시간은 충분했다.

“어서 오십시오. 라하비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과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시녀에게 소년은 은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아누슈카로산 파르마 부흐양. 파르마양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소년은 갑작스럽게 시녀의 본명을 부르며 과장된 태도로 인사했다. 틀림없이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한 마디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녀는 당황하기는 커녕 입꼬리에 옅은 미소를 걸고 답했다.

“파르마는 가문의 이름입니다. 부흐는 신께서 내려주신 신명, 아누슈카는 공적인 자리에서 부르는 이름이지요. 상호께서는 부디 친애를 담아 로산이라고 불러주시길.”

“…… 좋은 이름입니다. 로산 양.”

소년은 일그러지는 표정을 억지로 잡아 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혀 위에서 그녀의 이름을 굴렀다.

로산.

예상 밖으로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이쯤은 이미 예상했던 걸까?

“오늘 이렇게 방문해 주신 것은, 저희가 좋은 답변을 기대해도 좋다는 뜻이겠지요?”

“물론입니다. 저의 주인께서도, 표가 상단의 상단주도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줬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소년은 말하면서도 로산의 표정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바라마지않던 답이었을 텐데도 로산의 표정은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미세하게, 표정 변화에 신경을 집중한 소년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왼쪽 눈씹이 꿈틀거렸다.

분명 그것이 그녀가 심리적인 충격이 있었을 때 표정으로 나타나는 버릇이리라. 소년은 로산이 시선을 돌렸을 때 이삼에게 속삭였다.

호위무사로 온갖 암투를 경험했을 이삼이라면 소년보다 더 면밀하게 그녀를 관찰할 것이다.

“안뇽하세요!”

“저번보다 발음이 더 나아지신 것 같습니다.”

“연습 마…… 마니 해써요!”

라하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만큼 순수한 미소로 소년을 맞이했다.

“과자를 조금 가져왔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과자! 저 과자 조아해여!”

“어떤 차를 준비할까요?”

“가배도 좋지만…… 부드러운 녹차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로산이 차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 라하비는 직접 상자의 포장을 벗기고 그 속을 확인했다.

“예쁘다…….”

“용수당(龍鬚糖)이라는 과자입니다. 엿당으로 만든 반죽을 면을 뽑듯이 늘려 가는 실타래로 만들고 달콤한 소로 싼 음식인데…… 백 마디말보다는 한 번의 시식이 낫겠지요?”

용수당. 그 유명한 인사동의 명물 꿀타래의 화사한 자태에 라하비는 넋을 잃은 채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용수당은 전통한과로 알려졌지만 실은 그 원조는 터키이며 그것을 중국에서 현지화한 과자를 다시 한국으로 수입해 온 복잡한 역사를 가진 과자였다.

본래대로 라면 굳이 만들 일 없는 과자지만 우연히 놀러 갔던 인사동에서 값비싼 꿀타래에 분노한 전생의 소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날밤을 사며 연습해 판매하는 것보다 더 맛있는 용수당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과연, 배워서 쓸모없는 기술은 없는 거야.’

그야말로 죽음을 넘어선 집념의 승리였다.

“어머나, 재미있는 과자군요.”

“한번 드셔보시지요.”

라하비가 먹기 전 로산이 우선 기미를 보았다.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한 자세로 용수당을 들어 올렸다.

검지와 엄지로 살짝 잡아들고 입으로 가져가기까지, 로산은 일부러 시간을 끌며 라하비의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달콤해라.”

또 다시, 그녀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정말 달콤한 과자네요. 가늘고 부드러운 실타래는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고, 그 안쪽에 든 소는…… 땅콩과 야자 열매군요? 아삭아삭한 식감이 부드러운 실타래와 대비가 되네요.”

로산은 잠시 말을 멈추고 궁리하다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비슷한 과자를 찾아냈다.

“소안 팝디! 소안 팝디(Soan papdi)와 비슷하군요.”

“소안 팝디는 어떤 과자인가요?”

“녹인 설탕 반죽을 버터에 볶은 밀가루를 입혀 실타래처럼 만든 과자 인데 이 과자보다는 조금 더 투박하게 만들죠.”

로산이 기미를 보고 난 후에 라하비는 과자를 집어 들었다. 자유분방한 자세였지만 그녀의 풋풋한 싱그러움은 그런 자유분방함을 방약무인(傍苦無人)이 아닌 아이 특유의 순진함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달콤하고, 사르르 녹으며. 혀 위로 단물이 흘러넘칠 때면 그 안의 아삭한 소가 드러나는 사랑스러운 과자의 매력에 라하비는 동그란 눈동자를 빛내며 푹 빠져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소년도 손녀를 아끼는 노인과 같은 순수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다.

‘잘 먹는 아이는 귀엽지.’

하지만 꿍꿍이가 있는 아이는 귀엽지 않아. 소년은 새침하게 차를 따르는 로산을 지그시 응시하며 탁자 아래로 이삼의 무릎을 톡톡 건드렸다.

“아야야…… 갑자기 배가…….”

“저런…… 세수간(洗手間)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봐라!”

이삼이 시녀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서는 동안 소년은 둘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실은 제가 찬드라 왕국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괜찮으시다면 말씀 좀 들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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