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95화 (95/314)

환관의 요리사 95화

고수방(烤酥方)이란 무엇인가.

송하회가 마무리되고 그 이튿날.

그 뒤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태감과 위정을 내버려 둔 채 송하회 사건의 일등공신인 이삼과 장소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연좌궁의 담벼락에 기대앉은 채 나른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장정 열 명과 싸울 수 있는 호위무사라 할지라도 사람인지라, 강렬했던 전날의 여파는 삭신에 스며든 피로가 되어 통통 튀는 청춘들을 죽을 날 잡아놓은 노인네처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고수방, 혹은 고방(烤方)이란 요리는 양주삼차(揚州三叉)의 으뜸으로 치는 요리인 새끼돼지 통구이. 차소유저(叉燒乳猪)에 원시적인 구이요리인 편고방육(片烤方肉)을 접목한 요리입니다.”

“양주삼차란 뭔가요?”

적절할 때에 아주 기특한 질문이 들어왔다. 소년은 질문한 장소를 칭찬하고는 지금껏 말 못한 한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열정적으로 설명에 들어갔다.

“양주삼차란 양주의 돈 많다는 이들의 잔치상에는 반드시 세 가지 갈고리에 꿰어 구운(叉燒) 요리가 올라왔는데 통 오리 구이인 차소압자(叉燒鴨子)와 쏘가리 구이 차소궤어(叉燒鳜魚), 그리고 방금 말한 차소유저(叉燒乳猪). 이 세 가지를 통틀어 양주삼차라고 부르지요.”

거기에 편고방육은 무려 기원전 전국시대에 그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역사가 깊은 요리였다.

“보통 고수방은 적은 양을 만들 때는 돼지 삼겹살을 네모나게 씰어 쓰고 크게 만들 때는 껍질과 늑골이 붙은 돼지 갈빗살 6~7kg 정도를 쓰죠. 오늘은 갈비를 쓸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년은 주방에서 두툼한 고깃덩어리를 가져왔다.

뼈가 붙은 두툼한 돼지고기는 거의 돼지 반 마리에서 추릴 수 있는 갈비와 등갈비 전부, 그것도 삼겹살등을 추려내지 않은 통갈비였다.

“무게는 거의 열여섯 근(대략 10kg)…… 아니다, 뼈 무게가 있으니까좀 더 나갈 거예요. 살밥이 두툼한 암돼지라.”

방금까진 병든 병아리처럼 비실대던 소년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일어났다. 피로보다도 고기가 당기는 나이. 소년은 둘에게 할 일을 알려주었다.

“화덕이요?”

“예, 어차피 만들고 허물 거니까 벽돌을 쌓기만 하면 돼요. 가로는 사람 키 정도, 세로는 그 반 정도?”

“그 사람은 남성인가요? 여성인가요?”

“성인 남성 기준이요.”

신이 나서 벽돌을 날라 쌓는 둘을 보며 소년은 오늘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병기를 가져왔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긴 쇠꼬챙이였는데 길이가 소년의 키 보다도 두 뼘이나 컸다.

“와! 이지창!”

“고기를 구울 때 쓰는 꼬챙이에요. 예전에는 소나무 가지에 꿰어 배나무 불에 구웠다는데, 번거로우니까 요즘은 이 쇠꼬챙이게 숯으로 굽지요.”

이삼들이 열심히 화로를 만드는 동안 소년은 바깥에 만들어둔 간이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조리대 위에 고기를 올렸다.

우선은 돼지 껍질에 남은 털을 깨끗하게 제거한 다음 뒤집어 늑골 사이를 대나무 꼬치로 찔러 구멍을 뚫는다. 여기에 소금과 산초가루를 뿌려 골고루 문질러두고 고기에 간이 배면 껍질을 위로 가게 해 핏물이 떨어지도록 하며 두 시간을 재운다.

“물론 오늘은 시간관계상 미리 재워둔 고기를 쓸 거지만.”

혼잣말을 낄낄대며 소년은 꼬챙이들 들어 올렸다.

꼬챙이는 늑골과 껍질 사이에 찔러넣고 짚불을 태운 아궁이에 껍질이 위로 오도록 갖다 댄다. 껍질의 수 분이 방울져 떨어질 정도가 되면 껍질을 밑으로 돌린다.

“이러면 껍질 표면이 지글거리면서 얇은 표면이 그을려 벗겨지는데 이막이 완전히 벗겨질 때까지 구운 다음 불에서 빼준다.”

흥이 오른 소년은 마치 요리강의를 하는 것처럼 레시피를 중얼거렸다.

젊은 시절 후배들에게 레시피를 전달하지 못한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까.

진지하게 꼬챙이를 돌리는 소년의 눈동자에는 은근한 회한의 빛이 감돌았다.

‘멍청한 놈, 야박하게 굴지 말걸.’

피막이 다 벗겨지면 고기를 불에서 내려 꼬챙이를 빼고, 소금과 약간의 소흥주를 발라준다.

“어디, 화덕은 다 됐어요?”

“네, 다 쌓았어요.”

“그럼 여기에 달군 숯을 넣어주고 고기를 다시 꼬챙이에 꿰고, 화덕위에 걸쳐 천천히 돌려가며 굽는다.

“이게 또 요령이 필요해요.”

껍질 쪽은 빠르게 회전시켜 기름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표면에 기름이 균등하게 퍼지게 해야 껍질이 바삭바삭하고 균일하게 구워진다.

뜨거운 숯불 앞에서, 10kg이 넘는 고깃덩어리를 굽는 것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니었다.

소년의 말라붙은 고목 같은 팔뚝에 근육과 실핏줄이 솟아오르고 창백한 피부위로 구슬땀이 떨어졌다.

“저…… 힘드시면 교대할까요?”

“에이, 이것도 기술이 필요한 거라…… 앉아서 좀 쉬어요.”

“그래도…….”

“어허, 이런 건 초보자가 쉬이 나설만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어정쩡하게 나서봤자 애꿎은 고기나 태우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요, 날 믿고…… 태감님?”

지금쯤이면 서류의 틈바구니에서 씨름하고 있어야 할 인간이 왜 여기에?

태감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장소와 이상의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비단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않고 가면마저 어디 두고 왔는지 미끈한 민얼굴로 그늘에 몸을 기댄 그는 평소의 퇴폐미마저 느껴지는 나른함 대신 발랄한 기대감과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총평하자면, 묘하게 귀여웠다. 다 큰 성인 남성에게 가질 만한 감정이 아니었기에 소년은 화들짝 놀랐다.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는 보편타당한 아름다움, 바람도 걸음을 멈추고 내리찍는 찬란한 태양조차 눈길을 돌릴 만한 미의 극점.

익숙하게 접해온 장소와 이삼마저 무심코 한숨을 내쉴만한 모습이었다.

“아 거 참, 거 아랫것들 회식에 꼭껴야겠습니까? 불편하게 시리.”

“뭐야, 설마 말로만 듣던 직장 내 따돌림인가? 그러지 말고 좀 껴다오. 하루 종일 먹물 자국만 보느라 죽겠다.”

태감은 피로함을 토로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턱 끝에 손가락을 대고 골몰했다. 저 양반이 저런 표정을 할 때면 뭔가 잘 풀린 적이 없는데……

소년의 불안은 금세 사실로 들어왔다. 이제껏 지어 보인 적 없는 상큼발랄 깜찍한 표정을 지은 태감은 양주먹을 턱밑에 가져다 댄다는, 성인남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자세를 취했다.

“내가 상사라며 불편한 거라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의 후배가 되어주마. 아잉 오운 선배~”

“……이 X바꺼 진짜.”

지옥염마의 분노로 소년은 고기를 꿴 꼬챙이를 들어 태감에게 겨누었다.

무심코 장소와 이삼이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표정이었다.

“진짜 뒤집니다. 한 번만 더 애교부리면.”

“미안하다. 내가 정신을 잠시 놓은것 같구나.”

“웃으면서 할 때 단디 합시다.”

투덜대면서도 다시 고기에 집중하는 소년의 굽은 등을 보며 태감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투박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소년 나름의 허락의 표시였다.

아슬아슬한 정치판의 간계를 넘나들며 세월의 더께와 함께 쌓인 신뢰는 둘 사이에 말없이도 통하는 익숙함을 만들어 주었다.

은근한 숯불에 고기가 익으며 그윽한 향이 물씬 피어올랐다. 지글거리는 기름이 껍질 위로 퍼지며 껍질은 마치 튀겨지듯이 노릇하게 익어갔다.

육중한 고깃덩어리를 돌릴 때마다 소년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건장한 성인이 해도 힘든 일을 어린아이의, 그것도 허리가 굽고 다리를 저는 반편이 몸으로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걱정과 염려가 담긴 장소의 말에 태감은 말없이 장소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무리 보기 안쓰럽더라도 저것은 건드려서는 안되는 영역이었다.

요리는, 그의 자존심이니까.

불편한 신체와. 그리고 세상과 타협한 소년의 마지막 자존심은 요리였다. 피로와 고통이, 불편한 신체가 요리의 맛이 떨어지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무력감을 실감하고 싶지 않은 노인의 마지막 고집이었다.

고집스럽게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노려보던 소년이 마침내 꼬챙이를 들어 올렸다.

전체적으로 노릇노릇한 색이 돌았고 칼을 가져다 대면 바삭바삭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잘 구워졌군.”

소년은 마지막으로 겉에 참기름을 살짝 발라 구이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껍질을 위로 가게 해 접시에 담고, 미리 구워둔 지마소병(芝麻燒餠, 참깨빵)에 채 썬 파와첨면장(甛麵醬)을 곁들여 낸다.

간소한 탁자에 사람들이 모였다.

소년은 우선은 껍질을 먼저 벗겨낸 다음 껍질 안쪽의 지방을 도려냈다.

“고수방도 경사고압이랑 먹는 법이 똑같아요. 전병이나 지마소병에 껍질을 끼우고, 파랑 첨면장을 조금 넣어서 먹죠.”

예리한 오철 칼날이 서슬 퍼런 소리를 내며 껍질을 가르고 보기 좋은 껍질이 접시에 늘어서자 참지 못한 태감이 빵을 집어 들었다.

참깨가 듬뿍 뿌려진 빵에 껍질을 끼우고 흰 파채 약간과 달콤 짭짤한 첨면장을 약간.

폭신한 빵의 사이로, 단단한 껍질에 이빨이 닿는 순간 귓가에는 어금니를 타고 울리는 폭죽 소리가 메아리쳤다. 배어나오는 달콤한 기름, 알싸한 파 향기와 달콤한 첨면장.

폭신한 빵. 태감은 뇌가 녹아내릴것만 같은 황홀경 속에서 영원토록이어질 것만 같은 식감의 대비에 취했다.

“맛있지요? 숯불에 오래 구워 바삭해진 껍질은.”

“……맛있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구나.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제국의 언어에는 이 감촉을 표현할 단어가 너무 부족해.”

구워진 빵과 깨의 구수함, 돼지기름의 달큰함과 고소함, 배어든 숯불의 향, 파의 아릿함과 첨면짱의 짭짤함. 복합적인 향과 맛만으로도 인간의 뇌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 촉감, 이빨과 혀, 입의 점막으로 느껴지는 이 감촉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빵의 폭신함, 파의 수분기 있는 아삭함. 그리고 돼지 껍질. 그 껍질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조곤조곤 씹을 때마다 뼈마디 골수안쪽으로 차오르는 그 행복함. 그 충족감을 혼자서만 알고 있는 것은 죄가 아닌가.

소년은 조용히 부정했다.

“굳이 나누어서 뭐합니까. 책에 적어 전하시겠습니까, 민담으로 남기시겠습니까. 그냥 오늘 먹고, 잘 먹었으면 그만이지.”

“모든 학자가 너처럼 생각했다면 그 깨달음이 어찌 후세에 남았겠느냐. 오늘의 경험이 훗날 어찌 쓰일지는 후인들이 판단할 것이다.”

“가뜩이나 배울 것도 많을 후인들에게 그런 이상한 거 남겨서 뭐합니까. 그보다 다 드셨으면 고기 썹니다?”

마치 하루에 두 번 떠오른 태감처럼, 껍질을 벗은 채 그 속살을 드러낸 돼지갈비의 웅장한 자태는 껍질이 가져다준 관능의 바다에 빠진 태감의 정신을 강제로 떠오르게 했다.

“고기.”

마치 굶주림 야수의 숨결처럼 짧은 한 마디를 토해낸 태감에게 소년은 가장 두툼한 갈비 한 대를 썰어 내밀었다.

“예. 찔끔찔끔 먹느라 지치셨지요? 마음껏 뜯으시죠.”

두툼하게 살이 붙은 갈비.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그것을 양손으로 받아든 태감이 다음에 할 행동은 명확했다.

* * *

소란스러웠던 점심이 지나고 풍족한 저녁마저 끝난 밤. 낮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밤의 연좌궁에는 평화와 정적이 내려앉았다.

밤 산책을 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호롱불 하나를 든 채 소년은 연좌궁의 정원을 거닐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마 낮에 고기를 과하게 먹어 속이 더부룩해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리라.

정말일까?

소년은 여전히 스스로를 속이는데 서툴렀다. 기이할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식은 땀이 배어나와 도저히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

그저 막연한 불안감에 소년은 결국 잠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품에는 유성락과 혈옥비수를 품은채로. 그것이 직감인지, 아니면 의미없는 망상인지를 골몰하며 그는 달이 뜬 정원을 서성거렸다.

“어이쿠, 아직도 주무시지 않는 분이 계셨을 줄이야.”

“뉘십니까?”

“허허…… 연좌궁의 정원을 관리하는 노인네입니다.”

화들짝 놀란 소년을 진정시키려는 듯 왜소한 노인은 천천히 그늘 밖으로 걸어나왔다. 수염이 가는 것을 보아 은퇴한 환관인 듯했다.

“아니, 이 늦은 시간에…….”

“낮에는 다른 궁의 일이 바빠 시간을 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연좌궁은 작은 궁인지라 따로 사람을 붙이기가 어려워서 말이지요.”

태감의 신변경호를 위해 연좌궁은 극단적일 만큼 적은 수의 인원으로 유지되고는 했다.

그만큼 궁의 규모도 작은 편이다보니 굳이 정규정원사를 고용할 필요는 없었다.

그만큼 수고를 더 해야 하는 노인에게 괜스레 죄송한 마음에 소년이 고개를 숙이자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건 그렇고…….”

“아, 후궁의 상호인 오운입니다.”

“허어… 오상호셨군요.”

소년의 이름에서 잠시 멈칫한 노인은 이내 아무렇지 않게 낫을 놀려 잡초를 베었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그의 굽은 등에 그림자를 드리워 노인의 표정을 감추었다.

“상호께서는 이 늦은 밤에 어쩐 일이십니까?”

그 막연한 불안감을 털어놓지 못해 끙끙대던 소년은 노인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느긋한 웃음이 감도는 노인의 연륜에서 나오는 기묘한 신뢰감은 소년의 잠긴 입술을 옅게 했다.

“그냥 어쩐지…… 묘하게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갑갑하니 잠이 안 오더군요.”

“흘흘흘…… 가끔 그럴 때가 있지요. 특히 이리도 달이 밝은 날은 특히 그렇지 않습니까.”

“확실히, 달이 밝은 날이군요.”

소년은 잠시 노인과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에 관한 이야기, 꽃에 관한 이야기. 가을 에 보기 좋은 관상목에 관한 이야기.

정원의 연못에 사는 물고기 이야기. 무르익은 낙엽의 색. 의미 없이 소모하기에 좋은 이야기들.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고저가 없어 듣다 보면 졸음이 왔다. 천천히, 마치 양 떼를 세듯이 노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소년은 일순간 허리와 왼다리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읍……!”

소년은 마치 얼음 바늘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듯한 섬짓한 통증을 느꼈다. 날카롭고, 차갑기에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통증은 전날, 용의 석상 앞에서 느꼈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차가운 땀을 흘리는 소년이 걱정스러운지 노인이 낫을 놓고 다가왔다.

“어디 아프십니까?”

“아…… 아뇨, 괜찮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저런, 이만 주무셔야겠군요.”

“예, 그래야겠습니다. 어르신.”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왼 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가는 소년을 배웅한 노인은 다시 낫을 움켜쥐었다. 밤은 길었으나 노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년의 등을 바라보던 노인은 이내 베어낸 잡초를 정리하고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일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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