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89화 (89/314)

환관의 요리사 89화

오늘은 즐거운 소풍날. 최소한 장소는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껏 들뜬 얼굴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옷도 다려입고 궁을 떠나는 내내 기분 좋아 보이는 장소의 모습에 소년도 모처럼 평화로운 일상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뭉게구름 뜬 기분 좋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에 북적거리는 시장가. 그저 서서 사람 구경만 해도 좋은 날이었다.

소년은 장소에게 빙당호로 하나를 들려주고는 자신도 하나를 입에 물었다.

시큼하고 평은 산자나무 열매와 바삭바삭한 설탕 옷의 달콤함. 썩 맛있지는 않았지만 날이 좋으니 그럭저럭 중화되었다.

“오, 이거 맛있어 보이는데.”

바다거북에 천산갑, 산양에 노란색의 기름져 보이는 민물 게, 먼바다에서 온 물개와 눈을 번득이는 살아있는 악어와 뱀.

메추라기와 꿩에 공작 등등. 경사의 시장은 이곳이 식재료를 사고파는 시장이라기보다는 동물원에 가까워 보였다.

한편으로는 전날 장소를 질겁하게 만들었던 개구리가 광주리에 가득 담겨있었고 닭장에는 희고 검고 누런 닭들과 집에서 기른 집토끼, 산에서 잡은 멧토끼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어? 두루미도 있다.”

장소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돌려그 우아한 날짐승을 보았다. 곱게 뻗은 목과 가는 다리에 기묘한 색조합을 가진 두루미는 땅에 발이 묶이고도 아직 본연의 고상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한때 광활한 평야와 산등성이를 스치듯 날아다녔을 날짐승은 이제 차가운 금전의 가격표를 매단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애완용으로 잡은 것이었다면 날개의 칼깃을 잘라 날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무참하게 대하는 것은 아마도…….

“식용인가.”

사실 두루미 같은 대형 섭금류는 그리 맛이 없었다. 누린내도 나는데다 고기가 원체 질기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호 동물이니 잡을 이유도 없고 잡아서도 안 되는 동물이었지만 소년은 몇 번 두루미 고기를 다뤄본 적이 있었다.

중국은 부패한 나라였고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특이한 식재료, 불법적인 식재료를 원하는 돈 많은 이들은 끝없이 많았다.

일명, 어둠의 업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업계에서 소년은 꽤나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실력 좋고, 무엇보다도 입이 무겁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 소년 역시 잘만 하면 한번 할 때마다 일 년치 연봉이 한 번에 들어오는 업계의 일을 마다할 만큼 성인군자는 아니었다.

‘분명히, 자식이 뭔 고시에 합격할 수 있도록 경사스러운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두루미 고기를 주문했었지?’

질긴 고기를 맛있게 조리하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나 소년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열심히 번 돈 쓰지도 못하고 죽었으니…….

“이만 갑시…….”

소년은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 옮기려 했지만 두루미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장소의 시선에 걸음을 멈추었다.

발이 묶인 채 좁은 우리에 갇힌 두루미를 내려다보는 장소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소년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는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연애 한번해본 적 없이 평생을 홀로 살았다.

하지만 저 나잇대의 아이들이 얼마나 섬세한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다른 평범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란 아이가 아닌 살벌하고 늘긴장을 늦출 수 없는 후궁에 메인 몸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사야겠군.

사소한 위안, 잠깐의 만족이 삶을 나아지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장소를 고향으로 돌려 보내줄 수도, 그럴 주제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최소한의 성의는 다하자.

직장 동료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그것이 아무리 작은 마음의 위안일지라도 돈으로 지불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낼 수 있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이 전낭으로 손을 가져가는 사이, 장소가 불숙 물어왔다.

“두루미는 맛있나요?”

“……냄새가 나고 질기다고 들었습니다.”

“에이, 가요.”

장소는 실망한 듯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 경쾌한 행동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던 소년도 어쩔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 후로도 소년들의 길거리 간식탐방은 한동안 이어졌다. 꼬치구이, 포자 만두, 귀리묵 무침 등등. 문화의 도시 경사라는 이름답게 시대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이었기에 소년은 크게 감탄했다.

‘좀 더 변변치 않을 줄 알았는데, 그럭저럭 먹을 만한데?’

물론 대단찮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시대에 큰 기대가 없었던 소년에겐 나름 의외라 할 만한 수확이었다.

나름대로 만족한 소년과는 달리 장소는 실망한 듯 꼬치 두어 점을 빼먹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지난날 소년의 음식에 혀가 길든 탓에 입맛의 기대치가 너무 올라간 탓이었다. 꼭 풀죽은 고양이 같은 꼴이었기에 소년은 장소의 볼을 콕 찌르며 말했다.

“이만 갑시다. 노인네 점심거리나 사서.”

여름이 넘어가는 가을의 과도기에 들어선 날씨 탓인지 나온 식재료가 하나같이 윤기가 돌고 질이 좋았다.

싱싱한 채소도 좋고 펄떡펄떡 뛰는 생선도 좋지만, 소년은 그중에도 살집이 두툼하게 붙은 돼지갈비를 샀다.

“갈비!”

“살밥이 두둑한 게 뜯기 좋겠지요? 이걸로 무석배골(無錫排骨)을 만들 겁니다. 강소지방의 명물이죠.”

무석배골 하면 또 그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소년은 목청을 퇴우고 장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한데 의하면 강소지방 무석(無銳)이라는 동네에 다 떨어진 파초잎부채를 손에 든 한 스님이 객잔에 들어가 고기를 달라고 했다더군요.

그 집 주인이 평소 인심이 좋은 사람이었는지 남루한 스님에게도 고기 한 덩이를 턱 내었다 합니다. 주인이 팔려던 고기를 주니 스님은 게눈 감추듯 먹어버리고는 자꾸만 더 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고기를 다 먹어치우니 주인이 우는 소리를 했다는군요.”

소년이 표정을 찡그리고 징징거리자 장소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집 고기를 스님께서 다 드시면 내일 우리는 무엇으로 장사하오리까. 그러자 스님은 고기가 없으면 뼈를 팔게나 하고는 부채에서 줄기를 몇 가지 빼서 자신이 먹고 남은 갈비뼈와 함께 주인에게 주면서 줄기와 뼈를 함께 끓이면 내가 먹은 고기의 몇 배를 돌려받을 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소년의 이야기는 어느새 주변 상인들에게까지 퍼져 그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였다. 사람들의 관심에 소년은 흥이 올랐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가게 주인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스님의 말대로 파초잎 줄기와 갈비뼈를 넣고 끓였다는군요. 그런데 웬걸 가마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서 열어보니 푹 익은 갈비가 솥이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는 겁니다. 주인이 서둘러 맛을 보니 고기는 부드럽고 짭짤하며 달콤하게 간이 밴 것이 천하 일미라. 그때부터 무석의 명물 갈비 요리가 탄생했다 이 말입니다.”

소년의 이야기에 군침을 흘리던 어느 사람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그럼 도대체 그 무석 갈비는 어떻게 만드는 거요?”

행인의 말에 소년은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받아쳤다.

“아니, 남의 밥벌이 재주를 공으로 배우려고 하시나?”

“젠장, 못 참겠구만! 내 저기 푸줏간 주인인데 돼지고기 한 근 내겠소.”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이리 오슈.”

소년은 사악한 미소를 돌담의 그림자에 숨기며 행인을 끌어와 귓속에 무석배골의 요리법을 일러주었다.

들어가는 양념의 양, 조리하는 시간, 갈비의 손질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자 행인은 소년에게 크게 감사인사를 하며 당장 돼지고기를 가져오겠다 뛰쳐나갔다.

그 모습에 애간장이 탄 구경꾼들이 하나둘 지갑을 열었다.

“돌겠구만! 잉어 한 마리 내겠소!”

“그럼 난 오리 한 마리!”

“난 뭐 고기 같은 건 없고?”

“…우리 밭에서 캔 신선한 무인데 이것도 되는가?”

몰려드는 사람들이 주는 것을 장소에게 대신 안기며 소년은 자신의 재주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역시 뭐든 배워두면 써먹을 구석이 있다더니, 이렇게 밥벌이에 도움이 될 줄이야.

* * *

소년과 자소가 백윤의 철방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짐은 처음의 다섯배쯤 불어나 있었다. 싱싱한 잉어에 오리에 돼지고기, 온갖 채소들에 오래 묵은 술 한 동이 등등.

작은 잔치를 벌일 만한 짐을 이고 들어오자 곰방대를 물고 시간을 보내던 백윤이 깜짝 놀라 다가왔다.

“이 미친놈아! 오늘 뭔 잔치라도 하는 거냐?”

“잔치는 무슨 잔치, 휴,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죽을 뻔했네.”

짐을 한쪽에 내려놓은 소년에게 찬물 한 바가지를 가져다주며 백윤은 괜한 타박을 늘어놓았다.

“아니, 노인네 혼자 사는데 먹을 걸 이리 많이 가져오면 어쩌라는 거냐?”

“거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잔소.”

“이 쌍놈 새끼가?”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며 늙은 대장장이는 자신의 옹졸한 수염을 쓸었다.

이 나이를 먹고 솔직하게 환호하기는 부끄러워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할 기회가 싫을 리가 없었다.

세상에 고기가 너무 ‘많아서’ 화를 내는 얼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많은 고기와 많은 술.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지나치게 원초적인 욕구였지만 평생을 불 앞에서 살아온 노인은 고상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나 풍류를 즐기는 등의 품격있는 행위에 만족을 느끼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일단 일 이야기부터 합시다. 벌써부터 술 푸지 말고.”

“융통성 없는 녀석.”

백윤은 헛기침을 하며 술 동이에서 바가지를 건졌다. 헛기침하며 술 동이에서 관심을 밀어낸 그는 이내 노련한 장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뭘 만들려고?”

“밀반죽을 찍어낼 틀을 만들려고 하는데, 손바닥 반만 한 크기에…….”

“찍어낼 틀? 그럼 얇은 철판이어야겠군.”

백윤은 경험이 많은 장인답게 소년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온갖 모양의 쿠키 커터에 짤주머니에 끼울 깍지, 섬세한 장식을 올릴 때 필요한 핀셋 등등.

과연 기술적으로 가능할까 싶은 것들도 가능하다며 호언장담하는 모습에 소년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수긍했다.

과연 기계의 도움 없이, 사람이 망치와 집게로 어디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가능한 것이겠지. 성격은 고약하지만, 자부심 있는 장인은 자신의 역량으로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믿고 맡겼다면 그것으로 끝. 이젠 먹고 마실 시간이었다.

“잉어는 생강 간장을 살짝 둘러서 찌고, 오리는 무와 함께 푹 끓여서 탕으로 할까. 닭은 튀기고, 양고기는 볶고, 그리고 돼지 갈비는 조려야지.”

갈비를 조릴 장을 꺼내려 찬장을 뒤지던 소년은 간장은 커녕 소금 한 톨도 없는 청빈한 백윤의 찬장에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집구석은 뭐 있는 게 없어!”

“염병할 놈아, 돈 줄 테니까 가서 사와!”

“내가 양심이 있지 노인네 호주머니나 털어먹을 후레자식으로 보여?”

“그래 이 후레자식아.”

간장을 사러 나가는 소년의 굽은 등을 물끄러미 보던 백윤은 한숨을 쉬며 오도카니 앉아 있던 장소에게 손짓했다.

“따라 나가봐라. 험한 동네라 해코지라도 당할라.”

경사의 뒷골목은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장소였다. 밀수품과 장물이 멀찡한 물건보다 찾기 쉬운 곳, 서푼이면 얼마든지 사람의 목숨을 살 수 있는 장소에서 어린아이의 안전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요 몇 번은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소년은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 험한 곳에서 볼꼴 못 볼꼴을 다 본 백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 그렇네요.”

모처럼 즐거운 휴일에 취한 탓일까, 자신이 먼저 생각했어야 할 사실을 지적받자 장소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잰걸음으로 뛰쳐나갔다.

‘난 호위 실격이야…… !’

장소는 소년을 찾자마자 자신의 불성실함을 고백했다. 듣는 소년으로서는 헛웃음이 나을 만큼 어리숙하고 순진한 자기반성이었다.

태감의 호위무사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리구나. 새삼 장소의 어린 나이를 실감한 소년은 마치 손주를 귀여워해 주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낮부터 납치범이라도 돌아다닐까 봐요?”

“에이, 진짜 모르는 일이에요. 옛날부터 경사의 뒷골목은 마굴로 악명 높았다고요.”

“거 참, 나라님은 뭐 하시나 몰라. 마굴 소리를 들을 정도면 차라리 밀어 버려야…….”

지저분한 농담을 늘어놓던 소년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익숙한 비릿한 향기와 긴장감이 전해지는 공기. 소년의 뒤를 졸졸 쫓아가던 장소가 한 발 앞서 소년을 가로막았다. 마치 그를 지키려는 듯이.

“보세요. 제 말 맞죠?”

“거 참, 못 살 동네네.”

그늘에 감추어진 음산한 골목길의 입구를 가로막은 사내들은 잔돈 몇푼 뺏어보려는 얼간이들은 아닌 듯했다. 악당이라면 으레 주저리주저리 자신들의 목적을 떠들어줘야 제맛이건만 사내들은 조금도 그럴 의사가 없는 듯했다.

그저 익숙한 듯이 어린아이 한둘은 넉넉하게 들어갈 만한 포대 자루와 밧줄, 그리고 상처가 남지 않도록 두꺼운 천으로 둘러싼 몽둥이만을 챙겨 들었을 뿐.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듯한 눈길로 소년들을 훑어본 사내 한 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병신은 빼고, 예쁜 것만 잡아.”

피비린내 나는 사내의 말에 소년은 처음으로 얼굴 덕을 본 것 같다며 웃었다.

“캬, 못생겨서 다행이네.”

“히잉, 이럴 줄 알았으면 덜 잘생기게 태어날 걸.”

히죽거리는 소년들의 농담에도 납치범들은 냉철하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사람 장사 경력이 한두해가 아닌 놈들이었다.

소년은 품을 더듬어 두툼한 날을 가진 비수를 꺼냈다. 재를 묻힌 듯 빛나지 않은 회색빛 도신에 자루가 짧은 비수는 이제는 소년의 손아귀에도 익숙해진 물건이었다.

유성락.

마침내, 실전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묵직하게 차오르는 금속의 무게감과 차가운 감촉은 소년의 심장을 가라앉게 했다.

지금껏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아왔다. 정치라는 세계는, 그가 모시는 주인인 태감이 사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피와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는 세계였으니.

소년은 자신이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실전의 무대가 오니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사람을 죽인다.

소년의 표정에서 각오를 읽은 것일까. 매서운 표정으로 적들을 주시하던 장소가 뒤돌아보더니 씨익 웃었다. 소년의 긴장감마저 풀어질 만큼 천진한 미소를.

“제가 괜히 태감님의 호위무사가 아니란 걸 보여드릴게요.”

그러니까, 오운 님은 아무것도 안하셔도 돼요.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운 장소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