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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84화 (84/314)

환관의 요리사 84화

여기까지 온 이상 나머지는 소년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분란을 심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할 것인가.

원망과 원한이 싹트는 것을 보며 소년은 주도면밀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궁리했다.

자, 어떻게 할까.

눈앞에서 황홀경에 빠져 있는 선임나인. 반금련을 보며 소년은 그녀가 살아왔을 시간을, 그녀가 쌓아온 공든 탑을 짐작했다.

단정한 외모와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모양새, 그녀는 분명 능력 있는 사회인일 것이다.

분명 좋은 선배, 좋은 상사겠지.

그녀의 말을 듣는 나인들의 태도를 보면 평소 그녀의 인망이 보였다.

하지만 인간 관계라는 건, 정말 이상할 만큼 쉽게 깨진단 말이지.

그녀를 바라보는 나인들의 원한 섞인 눈동자를 보며 그 비극의 쓴맛을 음미하던 소년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빛나는 은빛 국자가 첨벙거리며 육수의 수면을 휘젓자 감미로운 향기가 폭발적으로 확산하였다.

귀한 제비집 양은 조금 적게, 대신 육수는 모두가 한입씩 맛볼 수 있도록 넉넉하게 떠낸 소년은 반금련의 손에 그릇을 들려주며 등 뒤의 나인들이 있는 곳으로 손짓했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손에 넣은 반금련을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금 선임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하는 동안 소년 역시 요리의 마무리를 끝냈다.

“다 드셨으면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예? 아, 예! 애들아. 식탁을 차릴 준비를 해야지.”

반금련의 말에 연와탕을 탐닉하던 나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년이 지금까지 봐온 나인중 가장 프로다운 자세였다.

전생에 근무했던 칠성급 호텔의 프로 호텔리어들이 부럽지 않은 절도 있는 동작과 빠른 손놀림은 감탄사가 나올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소년을 감동하게 한 것은 업무동선이었다. 서로가 일하며 동선이 겹쳐 소비되는 시간이 조금도 없었다. 마치 자로 잰 것처럼 일정하게 움직이며 분배된 자기 일에 매진하는 모습은 완벽한 오케스트라 합주와도 비견할 만했다.

은실로 봉황을 수놓은 화사한 장밋빛 식탁보가 깔렸고 식탁 위에는 소년이 주문한 키 작은 여름꽃들이 올라왔다.

옥으로 만든 수저받침에 음식을 덜은으로 만든 집게와 사기 숟가락이 깔렸고 부여비가 사용하는 고상한 젓가락 또한 준비되었다.

삼나무에 붉은 칠을 하고 끝에는 금테를 두르고 진주를 박은 것이었다.

식사가 차려지자 시녀들이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우려낸 차는 안휘성의 명산 경정산에서 채취한 경정녹설차(敬亭綠雪茶)였다.

안휘성 출신인 부여비를 배려한 시녀들의 선택에 소년은 또 한 번 동각궁 나인들의 솜씨에 감탄했다.

궁의 나인 들은 곳 부여비의 얼굴인 법. 그녀들의 품격이 곧 부여비의 품격인 것이다.

소년이 시킨 일은 그가 두 번 말할 필요 없이 완벽하게 진행되었고 소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조심스럽게 지적해 오는 시녀들은 소년이 바라던 이상적인 직원이었다.

전생에 말 안 듣는 부하들과 씨름했던 나날이 떠올라 무심코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것을 숨기며 소년은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반금련이 대표로 소년의 칭찬을 받았다.

겸양을 표하는 그녀에게 부족한 어휘력으로 최선을 다해 칭찬을 퍼붓던 소년은 모든 준비가 끝나자 언제그랬냐는 듯이 헛기침을 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부여비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부여비 님을 모실까요?”

“예. 그리하지요. 제가 모셔오겠습니다.”

부여비를 모시러 떠나는 반금련의 등을 보며 소년은 구겨진 옷을 다듬고 얼굴에 힘을 줘 표정을 정돈했다.

귀한 분을 모시는 자리이니 그만큼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과연 난 올바른 선택을 한 걸까?

자신을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었던 부여비의 시선을 소년은 떠올렸다. 자신의 발악이 과연 통할까?

과연 자신의 요리는 부여비에게 어디까지 통할 것인가. 상념 속에서 절망과 극기를 반복하며 소년은 지금부터 만감이 교차할 장소를 되돌아보았다.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결과는 하늘에 달려 있구나.

소년은 자신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가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요리라는 한정된 분야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뒤엉키는 정치라는 세계에서 자신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는 보잘것없었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조금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사람은 자신의 두 손을 뻗어닿을 수 있는 범위만큼의 일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시시해지는 법이다.

문득 저 멀리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장소의 얼굴이 보였다. 배시시 웃고 있는 장소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소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협동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지.

낯부끄러운 말을 주워섬기고 나니 마음속에서 아득하게 느껴졌던 부여비가 조금은 가깝게 보였다.

오늘 그의 요리가 그녀의 바닥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평정심이 조금은 흐트러지기를, 그녀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신뢰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였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그녀의 웃음은 신뢰할 수 없다.

무결점의 부여비가 아닌, 조금은 푼수 같고 새로운 지식 앞에 열광적이었던 예가인을 소년은 보고자 했다.

신뢰할 수 있는가. 없는가. 소년의 그늘진 눈이 멀리서 오는 부여비를 보았다.

* * *

어째서 저녁 식사였을까. 읽던 기행문도 팽개쳐둔 채 부여비는 고민을 거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년의 우발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나의 무엇을 보기 위해 저녁을 대접하겠다 한 걸까?

후궁에서 소년은 기이하게 돌출된 존재였다. 부여비는 소년에 관련된 소문을 찬찬히 되짚어 보며 그의 생각을 유추해 보려 했다.

오랜 시간을 후궁의 밑바닥을 기며 살다가 갑작스럽게 태감에 의해 등용된 인물.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를 천의무봉의 요리 솜씨를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재담가이기도 하다. 후궁의 실세인 사례태감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홍엽비의 심병(心病)을 고친 공로로 황제 폐하께 포상을 받은 거로 유명하다.

이것이 후궁에 퍼져 있는 소년에 대한 평가였다. 부여비는 그 소문속에서 소년을 판단한 자료들을 추려 냈다.

오랜 시간 자의로 그런 것이든 타의로 그런 것이든 능력을 감추고 살았으니 인내심은 보통이 아닐 것이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활약상은 그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외모가 볼품없고 몸이 온전치 못하니 그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을 것이고 이는 그의 사상이나 행동에 결정적인 지표가 될 것이다.

거기에 갑작스럽게 주체할 수 없는 권력을 얻었으니 제아무리 성인군자라도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는 견딜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성격은 오만 하고 폭급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부여비는 그런데도 소년이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독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쉬운 이유였지만 부여비는 그것을 배제했다.

지금 자신을 독살한다고 해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배경이니 자신의 환심을 산다면 모를까 당장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왜 식사였을까. 차라리 아까처럼 이야기나 더 들려주었으면 좋았을걸.

“재밌었지.”

호의는 사람을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객관성을 흐리게 만든다. 부여비는 소년이 들려준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들려주겠다 약속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마음속에 사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경계했다.

그가 들려준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는 탑극랍마간(塔克拉瑪干) 사막의 하늘은 어떨까.

눈이 푸르고 피부가 흰 색목인들의 나라는. 저 먼 남쪽의 녹옥빛 바다와 화려하게 생긴 열대어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높은 첨탑과 투박한 성벽의 도시.

뾰족한 지붕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여비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슴속에 매장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신분인 그녀에게 공상은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해온 우애 깊은 친구는 때때로 그녀에게 이룰 수 없는 꿈을 되살려 그녀를 잠 못 이루게하곤 했다.

그런 고약한 친구에게 붙들려 한때의 달콤한 망상에 빠져 있던 그녀를 시녀들이 불렀을 때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의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일어섰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을 테지만, 그만큼 그녀가 소년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는 증거였다.

그녀가 동각궁의 식당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녀의 시큰둥한 태도는 유지되었다.

그래도 손님 앞에서까지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기에 애써 표정을 풀어준 그녀를 맞이한 것은 강렬하고 매혹적인 향기였다.

무절제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진한 향기는 오랜 시간 음식에 대한 호감을 잃어버렸던 그녀의 가슴 속에 작은 불씨를 싹 틔웠다.

“어서 오십시오.”

정중하게 그녀를 맞이하는 소년을 보며 부여비는 꼭 자신이 남의 궁에 초대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그녀를 맞이하는 소년은 그 추레한 모습마저 가릴만한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다.

초대받은 손님답게 부여비는 우아한 태도로 소년의 시중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차로는 경정녹설차를 준비했지만, 가끔은 색다를 별미를 드셔보시는건 어떨까요? 옥미차(玉米茶, 옥수수차)입니다.”

“옥미? 옥수수 말인가요?”

소년의 말에 그녀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에서 옥수수는 빈민들이나 먹는 천한 음식이라는 풍조가 강했으니 상류층 가문의 여식인 그녀라면 한 번도 입에 댄 적 없을 것이다. 소년은 그것을 노렸다.

“예. 제국에서 옥수수(玉米)는 천한 음식으로 분류되어 어지간한 사람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오직 이 용황국 내에서의 상식일 뿐입니다. 혹시 저 먼바다 건너, 사철 무더운 태양이 내리쬐는 땅을 알고 계십니까? 그곳의 사람들은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고 심지어 그들의 신 또한 옥수수의 신일 정도로 옥수수를 숭배한다 하더군요.”

소년은 부여비에게 아즈텍 신화의 태양신 이야기와 북아메리카 원주민중 파란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호피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신화에 따르면 세계를 창조한 분(Spider Grandmother) 이 여러 옥수수를 놓고 각 부족 사람들에게 골라가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피족 사람들은 굼떠서, 남들이 골라가고 남아 있는 파란 옥수수를 갖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파란 옥수수는 그냥 먹기에는 무척 거칠어 보통 가공해서 먹는데 호피족 사람들은 이 파란 옥수숫가루를 물에 개어 얇은 전병을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 전병 이름이 바로 피키(piiki)이지요. 잘 만든 피키는 파란색이 선명하게 나야 하는데 피키를 잘 만드는 여자일수록 인기 있었다 합니다.”

“그렇군요. 나라가 바뀌면 사람들의 상식도 바뀌는 법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천대하는 식재료라도 다른 곳에서는 귀하게 여길 수 있겠지요.”

소년의 말을 들은 부여비는 미혹을 떨쳐낸 얼굴로 잔을 들었다. 달콤한 옥수수 향이 나는 차를 조심스럽게 머금은 그녀는 이내 구수한 맛과 부담스럽지 않은 달콤한 향기가 무척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에 놀랐다.

“생각만큼…… 이상하지는 않네요. 아뇨, 사실 무척 좋아요. 구수한 향기와 입안을 끈적거리게 하지 않은 연한 달콤함이 혀끝을 부드럽게 적셔주네요.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의 정든 추억처럼.”

“어휘력이 풍부하시군요. 슬슬 요리를 내올까요?”

능청을 떨며 소년이 내온 요리는 커다란 여름굴을 통째로 튀겨낸 요리였다.

“소작생호(酥炸生蠔)입니다. 포하강에서 막 들어온 신선한 여름굴을 튀겨 보았습니다.”

아이 주먹만 한 통통한 굴을 대담하게 통째로 튀겨낸 요리에 부여비는 놀라워하면서도 쉽게 젓가락을 가져가지 못했다.

굴튀김은 젓가락으로 들어 입으로 가져가기 힘들 정도로 크고 묵직해보였다. 그런 그녀를 위해 소년은 부여비가 먹기 좋은 크기로 굴을 토막 쳤다.

“자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보통 굴보다는 크군요. 역시 포하강의 명물이라는 여름굴답네요, 식기 전에 먹는 게 좋겠죠?”

부여비는 과연 굴의 껍데기는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며 튀김을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바삭한 튀김옷이 부스러지며 그 안에선 말캉한 굴이 뭉그러졌다.

씹을 때마다 샘솟는 굴의 진액은 혀뿌리에 스며들었고 신선한 굴 향기는 인후에 스며들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짙은 굴 향기를 떠오르게 했다.

폭풍우가 치기 전날 밤, 고요한 물가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처럼. 부여비는 성큼 다가온 전율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음식에 집중하고, 열중하고, 그다음 요리를 열망할 수록.

그녀의 근심과 더께 쌓인 슬픔은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녀를 둘러싼 시녀들의 표정이 점점 멀게 느껴졌고 머지않아 시녀들의 시선은 길가의 돌멩이만큼이나 무가치하게 변했다.

그녀가 읽어낸 수, 예측한 미래.

가치 있는 정보와 변화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우스울 만큼 빠르게 잊혔다.

태생이 지나치게 똑똑해 늘 남의 마음을 읽고 그 반응을 신경 쓰며 살아온 그녀에게 그 망각은 기분 좋은 쾌감이었다.

남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오직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것도 버거운 우자(愚者)의 기쁨.

지나칠 만큼 똑똑해 너무 빨리 현실과 타협해 버린 그녀에게 소년은 보통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한 행복을 알려주었다.

똑똑한 것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것이 반드시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조금 못한 자가, 빨리 잊고 빨리 털어버리는 사람이 더 빨리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소년은 요리로 보여주었다.

대부분 사람은. 일단 배가 부르면 근심도 잊는 법이다.

연달아 다음 요리가 올라왔다. 두번째 요리는 동각궁의 주방 나인들을 분열시켰던 계이회관연(雞栮檜官燕)과 용태자해선교(龍太子海鮮餃).

우아한 옥빛 쌀가루 피에 온갖 해산물 소를 넣은 교자는 그가 오래전 근무했던 마카오의 유명 레스토랑의 명물 요리로 한국의 편수처럼 사각형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녹황색 채소즙으로 은은하게 물들인 쌀가루 피는 투명했고 그 안에는 새우와 가리비 관자, 민어살이 담뿍들어 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감칠맛 나는 음식이 끝나고 부여비가 옥수수 차를 입에 머금어 한숨 돌리는 동안 소년이 오늘의 메인디쉬를 준비해왔다.

그것은 접시마저 웅장했다. 하얀도기 그릇에는 팔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그릇의 사방을 떠받드는 다리는 해태와 기린 등 신령스러운 짐승들이었다.

무와 당근으로 조각한 꽃과 나비사이로 자태를 드러낸 것은 갈색의 거위 통구이였다.

“광동식 거위구이, 과목소아(果木燒鵝)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년의 회심의 한 수였다. 광동요리는 소년의 뿌리이며 근본. 중국 전역의 요리에 통달하였다 자부하는 그가 가장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히든카드였다.

“과일나무로 훈제하여 달콤한 간장을 발라가며 구웠습니다. 곁들인 장은 달콤한 여름 자두로 만든 것이니 찍어 드시지요.”

먹기 좋게 토막 쳐진 거위의 자태에 부여비는 말을 잃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요리인가.

껍질은 마치 튀겨낸 것처럼 바삭하게 부풀어 있었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귓가에 바삭바삭, 아삭아삭씹히는 소리가 맴도는 듯해 먹기 전부터 그녀의 침샘을 긴장시켰다.

색이 짙은 살점은 오리보다 더 기름지고 살살 녹을 테지.

하지만 부여비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자두를 으깨 만들었다는 갈색의 장이었다.

보통 이런 구이요리에 곁들이는 것은 첨면장이나 해선장이 아니었나?

고민은 잠시였다. 눈앞에 있는 요리를 언제까지 눈으로만 탐구할 것인가? 자고로 요리의 탐구는 혀로 해야 하는 법.

부여비는 거침없이 자두장을 듬뿍찍은 거위구이를 한입에 물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구워지며 흘러나온 기름에 자체적으로 튀겨진 껍질은 입안에서 온갖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다.

껍질이 바스러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촉촉한 속살이었다. 기름지고 살살 녹는 거위고기는 달콤한 소스를 만나 자신의 모든 단점을 잊어버렸다.

지나친 기름기는 질리지 않는 고소함이 되었고 그 향긋한 자두 향기 앞에 거위의 누린내 따위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찬사는 없었다. 더는 미사여구를 덧붙일 영역을 넘어섰다.

그저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미식의 향연속으로 수렴하는 것을 느끼며 부여비는 그 이상 자신에게 남아 있던 자제력, 황후 후보자로서의 체면 따위를 놓아버렸다.

잠시 후, 부여비는 소년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풀어진 모습으로 의자 위에 늘어졌다. 꼭 배부른 고양이 같은 꼴이었다.

고상하고 도도 했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소년으로서는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더 이상 자신 앞에선 체면을 차리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듯이 부여비는 나른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후식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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