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81화 (81/314)

환관의 요리사 81화

부여비. 영광스러운 다섯 황후 후보 중 한 명이자 도찰원 우도어사의 딸이런 먹물 몇 방울의 짤막한 설명으로 그녀를 정의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본명은 예가인. 두 살에 천자문을 떼고 다섯 살에 이미 논어를 비롯해 문인이라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칠서(七書) 완벽하게 암기했으며 열 살에는 이미 당대의 내로라하는 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는 안휘성 제일의 기재.

그녀의 유일한 불행은 세상 대다수의 남자가 자신보다 똑똑한 여자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사의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부담스러울 만한 그녀의 학식과 그 재주를 뽐낼 수 없는 시대.

재능 있는 자라면 누구나 절망할만한 상황이었으나 그녀는 빠르게 세상과 타협했다.

가진 재주를 살려 세상에 보일 수 없으니 지금껏 갈고 닦은 것은 모두 무가치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뭇 남성들이 원하는 현모양처의 표상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 또한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었다.

그녀는 책을 사랑했고 새로운 지식을 갈망했다. 이제 와 번듯한 남자를 만나 무료한 나날을 보내느니, 차라리 나라 제일의 남자를 만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

설령 그 끝이 요절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황제의 여인이 되어 그녀가 하사받은 궁을 책으로 가득 채웠다.

보람찬 나날이었으리라.

배정받은 동각궁에 칩거한 채 책과 차에 둘러싸인 나날들. 그녀를 새장속의 새라 부르는 이들을 비웃으며 안휘성 제일의 재녀는 자신의 취미에 몰두했다.

새장 속의 새 신세를 부끄러워할것인가? 슬퍼할 것인가? 바깥세상의 자유를 동경할 것인가?

그런 허송세월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자신과 타협하여 안온한 나날을 누리는 것이 차라리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도 더 나은 일아니겠는가.

그녀는 과연 현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규중처녀들이 가지는 자유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걸치는 의복, 시녀들의 시중, 음식. 그리고 책. 범부라면 구할 수 없는 것들. 규중의 여인들은 그것을 너무 당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온실 속 화초들의 자유에 대한 낭만에는 당연히 뒤따라야 할 고된 노동과 세상에 만연한 폭력성과 냉혹함에 대한 공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달콤함만큼이나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 또한 함께하는 법이다.

오늘도 한가롭게 침상에 누워 기행문을 읽던 그녀를 시녀가 조용히 깨웠다.

한창 재미있던 구절을 되새기며 행복한 시간을 누리던 그녀는 시녀의 초조함이 서린 목소리에 반쯤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부여비 님, 오늘 오후에 면회를 부탁하신 연좌궁의 상호 오운 님께서 오셨습니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구절에 푹 빠져있었기에 그녀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태감의 새카만 반가면이었다.

며칠 전, 사례태감에게서 면회를 요청받은 기억은 떠올랐지만 오운이라는 이름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운? 오운은 누구였지?

부여비는 좋아하는 책 이름은 몰라도 사람 얼굴을 외우는 것은 그리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시녀가 내온 차가 식을 때까지 궁리한 끝에 간신히 소년을, 정확히는 소년이 가져왔던 간식을 떠올렸다.

빙화계단봉황구(氷花鷄鳳凰球). 생강엿을 발라 달콤하고 아삭아삭했던 과자를 떠올리자 부여비는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끼고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맛이 기억에 선명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 그럼 뭔가…… 달콤한 것과 잘 어울릴 만한 차를 준비하거라.”

부여비는 오랜 시간 잊어왔던 식욕이라는 욕구가 다시 동하는 것이 기껍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상호가 직접 차를 준비해 왔다는 말은 그녀가 긴 시간 갈구해온 미지에 대한 기대감을 느끼게 했다.

시녀가 갑작스러운 장난기를, 그것도 목숨을 건 위험한 장난에 눈뜬것이 아니라면 오운 이라는 이름의 상호는 터무니없는 허풍쟁이거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자일 것이다.

오운이 시녀를 통해 그녀에게 전한 말은 남들이라면 어처구니없어할 만큼 광오해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허풍이라 생각할 만한 것이었다.

마침 무료했던 부여비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자극적인 장난이 되겠지만.

“그래, 다시 한번 말해주렴? 그 상호가 뭐라고 했다고?”

주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빨갛게 물들인 시녀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시녀는 다시 한번 소년이 부여비에게 전한 전언을 읊었다.

“예, 대륙 차 문화의 판도를 바꿀만한 차를 준비해 왔다…… 고 하십니다.”

“차? 차라? 분명히 차라고 했단 말이지?”

부여비는 자신이 손에 쥔 미지근한 차를 바라보았다. 예로부터 차는 학자의 친구였으며 다도는 품격 있는 취미로 인정받았다.

좋은 찻잎, 좋은 다기는 현물로서 높은 가치가 있었으며 뇌물로도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그만큼 차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두텁고 새로운 유행의 배척받는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차를 우릴 때 사용하는 물의 온도만으로도 정통과 이단이 갈리는 다도의 세계에서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녀 또 한 명문가의 자녀답게 다도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조예가 있었다. 물 한 모금으로 그 물의 수원지를 연상해내는 명인들과 견줄 바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예법상 어긋남은 없을 정도였다.

나름 세상의 이름난 차는 다 마셔보았다고 자부하건만, 자신이 모르는 찻잎이 또 있을까.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허세일지, 아니면 일세를 풍미한 광인(狂人)일지는 두고 볼 일이구나.”

읽던 책의 책갈피도 끼우지 않은 채 일어난 부여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화장기 없는 자신의 볼을 쓰다듬던 그녀는 옆에 선 시녀에게 화장할 준비를 하라 일렀다.

“모처럼 오신 재밌는 손님이니 허투루 맞이할 수는 없지. 손님께는 가장 좋은 차와 과자를 내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양해를 구하렴. 금방 갈 터이니.”

세상을 비웃으며 후궁에 들어온 수 년 동안 그녀를 이토록 두근거리게 만든 사내는 처음이었다.

과연 얼마나 훌륭하게 미쳐 버린 건지, 그 후안무치할 정도로 당당하게 판도를 바꾸겠노라 말하는 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부여비는 계속 화장 솜을 두드리는 시녀를 재촉했다.

* * *

소년이 동각궁으로 향하기 전. 경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자리한 표가 상단의 접대실에서 소년과 표자승은 앞으로의 사업을 논의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표자승이 내민 것은 제국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손잡이가 달린 찻잔이었다. 금속성분이 섞인 유약을 사용해 잔은 연한 붉은색을 띠었고 잔의 중심에는 보통의 붓 필기체와는 다른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앞으로 열다관의 상호가 그려져 있었다.

막심(漠沁)

표자승은 상호에 스며든 그윽한 풍취에 거듭 감탄하며 잔을 돌려보았다. 잔의 바닥에도 똑같은 상호가 그려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사막을 넘어온 가배(咖啡)의 향기와 가배를 들여오기 위해 사막을 건너온 상인들의 노고가 전해지는 듯하군요.”

“그래, 잘 팔리겠지?”

“물론입니다. 현재 이것 말고도 크기와 색, 모양이 다른 다기들을 생산 중입니다. 장인들도 열의를 가지고 일하고 있고요. 다관의 위치도 경사에서 가장 좋은 노른자위 땅에 골랐고 대목장도 이미 계약해 두었습니다. 남은 것은 사람인데…….”

표자승이 슬그머니 의견을 구하자 소년은 확고한 답을 내놓았다.

“점원은 무조건 미남, 미녀로만 구성해라. 웃돈을 얹어 줘서라도.”

“예?”

“그뿐만 아니라 보기 좋은 제복을 단체로 맞춰 의상을 통일하도록 하고 교육도 철저하게 해야겠지.”

“아니, 잠시만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다관에서 웃음을 팔 것도 아닌데…….”

여인의 웃음을 살 거라면 청루(靑樓)로 족하다. 다관에서 유곽의 역할까지 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표자 승의 설명이었다. 소년은 코웃음 쳤다.

“누가 웃음과 기예를 판대냐? 고객에게 제공할 것은 철저하고 지극한 봉사와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양질의 가배(咖啡)뿐이다. 이 또한 다른 다관과의 차별화를 위해서지.”

“맞춤 제복 또한 말입니까?”

“그래. 정갈하고 통일성 있는 제복과 선남선녀로 구성된 절도 있는 직원들, 고객으로 하여금 서푼짜리 가배 한잔을 마시면서도 수십 관의 황금과 같은 대접을 받는 느낌을 주는거다. 고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정말로 가치 있고 중요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하는 거다. 말하자면 ‘품격’을 파는 것이지.”

악마적이었다. 실로 악마적인 상술이었다. 그야말로 사람의 돈주머니를 갈취하는, 쥐어짜는 듯한 무시무시할 계략에 표자승은 식은 땀을 흘리며 경청했다. 하지만 소년의 말은 이제부터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관의 한 공간은 유생들이 일정 시간 동안 대여하여 토론하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자연스럽게 유생이 몰릴 수 있도록. 사람들로 하여금 명가 의자제들이 모이는 다관이라는 입소문을 탈 수 있도록. 그럼 유생들뿐만 아니라 부잣집 도련님을 보고 싶어 하는 여인들도 몰릴 거다.”

“그래도 방 하나를 대실해 준다면 회전율이 낮아지지 않겠습니까?”

“회전율에선 조금 손해를 보겠지만 그 대신 고상한 유생 나리들이 앞다투어 찾는 명승지가 되겠지. 특히 이 공부방을 담당하는 직원은 가장예쁜 미녀로만 구성하도록. 먹물 냄새나는 어리숙한 놈들의 방심을 휘어잡을 수 있게.”

“아니, 웃음은 팔지 않는다고 하셨잖습니까?”

표자승의 말에 소년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누가 몸을 팔자고 했냐? 그냥 미녀 점원을 쓰자고 했지. 특별히 뭘더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동정 샌님들은 여자가 친절하기만 하면 호주머니를 탈탈 턴다고! 왜 이렇게 순진하냐 이 친구야, 너 상인 맞냐?”

소년의 한탄에 표자승은 땀으로 수염을 축축하게 적시며 간신히 변명했다.

소년으로 하여금 한숨과 탄식을 토해내게 할 만한 변명이었다.

“아니, 스승님……. 상인에게도 상도덕이란 거 있지 않습니까? 도리와 윤리가…….”

“뭔 개소리를 하고 있어! 상인에게 상도덕은 돈이다! 돈이 도덕이고 윤리야 이놈아! 자기 마누라와 붙어먹는 후레자식도 돈만 주면 고객으로 모실 각오가 있어야 상인이지!”

수십 년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온갖 꼴을 다 봐온 그도 보지 못한 상인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소년에게 표자승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돈을 버는 감각이 그야말로 마귀와 다름없는 자였기에 스승으로 모실가치가 있었다.

“그다음, 우리의 주력 상품인 소취파피(酥脆派皮)다. 줄여서 소피(酥皮)라고 하지.”

소년이 가져온 꾸러미를 열자 먹음직스러운 황갈색 과자들이 드러났다.

둥근 것, 네모난 것, 별 모양 등등모양도 가지각색이었고 올린 것도 다양했다. 흰 설탕만을 뿌린 간결한 것부터 속에 팥소를 넣어 구운 것, 달콤하게 조린 과일을 올린 것 등등.

소년이 가져온 꾸러미는 여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작은 보석함같았다.

“호오…… 구층피병(九層被餠)와 비슷해 보이지만…… 구운 건가요?”

구층피병이란 색소로 색을 낸 쌀가루 물을 얇게 펴 쪄내 그 위로 계속 반죽을 얇게 펴가며 찌는 떡이었다.

이름답게 아홉 겹의 얇은 결이 살아 있는 떡인데 만들기 번거로워 경사에서는 보통 큰 잔칫날에 만드는 음식이었다.

소년은 고작 그런 소박한 떡과 비교하는 표자승의 안목에 코웃음 치며 직접 페이스트리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 바삭, 와사삭!

듣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경쾌한 소리에 표자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도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정사각형으로 썰어 위에 하얀 설탕 옷을 뿌린 것이었다.

바삭, 아삭, 와삭!

고소한 기름기가 입안에 침범하여 홍수처럼 범람했다. 씹을수록 두드러지는 바삭한 식감과 농후한 향기, 얇게 입힌 설탕 옷의 아련한 단맛은 짧지만 확실하게 혀에 각인되었다.

한번 맛본 이상 다시는 외면할 수 없을 거라는 행복한 예감. 동시에 표자승은 이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음식인지, 소년이 이 음식에 숨긴 세상을 불태울 것만 같은 숨 막히는 악의를 느꼈다.

“돼지기름…… 이군요?”

소년은 그의 예리한 미각에 감탄했다. 첫입 만에 그것을 알아차릴 줄이야.

“그래. 돼지기름을 속에 넣은 밀가루 반죽을 켜켜이 접어 화덕에 구운 음식이지. 맛있지? 맛있을 거야. 맛있을 수밖에 없거든.”

실제로 페이스트리의 바삭한 식감을 만드는데 가장 좋은 것은 버터가 아니라 돼지기름, 라드였다.

실제로 제과에서 아무리 인식이 안 좋다 해도 라드를 흉내 낸 경화유 쇼트닝을 쓰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아무리 버터가 맛있다 한들 그 깃털처럼 가벼운 바삭함은 라드의 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표자승은 전율했다. 소년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타오르고 있는 전율적인 광기,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악의 앞에서 한없이 작은 자신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해 저항했다.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도망칠수 없었다. 한없이 작은 자신은 결국 돈에 영혼을 팔아버린 상인이었다.

팔릴까? 팔리지. 팔릴 수밖에 없어. 이건…… 팔린다. 엄청나게!

“보이나? 소피와 가배를 손에 들고 있는 고객들이.”

“보입니다. 보여요. 모두 행복해 보이는군요.”

“그럴 테지. 맛있을 테니.”

가장 달콤한 독을 세상에 내놓은 소년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다.

괄목하라. 나의 페이스트리가 세상을 중독시키는 것을. 나는 죽더라도 나의 악의와 증오는 남을 것이다.

페이스트리를 씹으며 각오를 다진 소년은 그다음으로 다관의 주력 상품인 커피를 내밀었다.

“이것은?”

“가배다. 하지만 네가 지금까지 알던 거름식은 아니지.”

소년이 가져온 커다란 단지에는 새카만 검은 물이 찰랑거렸다. 전부 커피였다. 커피를 좋아하는 표자승은 기꺼워하며 작은 은 국자로 한 컵 떠냈다.

“흐음, 향이 아주 좋군요. 맛은……음?”

표자승은 숯검뎅이로 그린 것 같은 짙은 눈썹을 일그러트린 채 커피의 짙은 향취 속으로 빠져들었다.

“향이 진하고 그윽하지만, 쓴맛은 의외로 적군요. 저번에 마신 거름방식 가배보다도.”

“거름 방식 가배는 맛과 향이 좋으나 아쉽게도 빨리 낼 수가 없지. 회전율을 증시해야 하는 다관에는 치명적인 방식이야. 이것은 그것을 보완한 침출식 가배다.”

소년이 제시한 것은 바로 콜드 브루 커피였다. 복잡한 기구를 사용해야 하는 점접식과는 달리 침출식의 가장 큰 장점은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고 대량으로 준비할 수 있으니 다관에서는 미리 준비한 것을 따뜻하게 데우기만 하면 된다.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큰 항아리에 원두를 분쇄해 넣은 뒤, 거기에 물을 붓고 반나절 이상 실온 숙성시킨 뒤에 찌꺼기를 걸러내면 된다.”

“그렇게 쉽습니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잘 우러난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기분 좋은 쌉싸름함과 그윽한 향기, 살짝 고개를 드는 신맛.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하는 서늘함.

좋은 커피였다.

“침출식의 단점은 오랜 시간 동안 원두와 물이 계속 접하고 있기 때문에 원두의 유분 및 미분이 많이 용출된다는 거다. 미세한 가루 성분과 지방 성분은 오히려 가배를 텁텁하게 하고 선명한 향기를 흐리게 한다. 이 침출식 커피의 관건은 얼마나 커피를 잘 걸러냈느냐.”

소년의 설명을 들으며 표자승은 소년이 그리는 미래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즉, 보통의 손님께는 이 침출식 가배를, 돈 많으신 나리들께는 사람이 일일이 손을 써야 하는 거름식 가배를 판매한다는 전략이군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이왕 따라주는 거 미인 점원이 따라주면 좋다 이거지. 미녀 싫어하는 남자 없고 미남 싫어하는 여자도 없다. 외모지상주의?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야.”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뚜렷하게 피부로 느끼며 자란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잠깐 동안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하여 불평을 나눴다.

둘 다 외모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살아서인지 나눌 만한 소재는 많았다.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누며 사담을 나누면 둘은 가져온 동이가 동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리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다짐하는 표자승에게 소년은 오늘 들어온 가배중 가장 좋은 것을 받아 챙겼다.

“어디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윗분들 접대에 쓰려고 그런다. 입소문 좀 타라고.”

자고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니, 소문을 퍼뜨리기에는 황궁이 제격이었다.

소년은 오늘은 또 어떻게 머리를 굴려야 할지 고민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부여비를 만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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