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80화 (80/314)

환관의 요리사 80화

소년과 이삼이 정원의 인공수로에 발을 담그고 전병을 먹을 동안, 난화비와 피와 칼 없는 설전(舌戰)을 벌이며 협약을 맺은 태감은 꼭 소금에 절인 배추 같은 꼴이었다.

한가롭게 전병을 먹으며 풍류를 즐기는 소년과 이삼의 꼴이 퍽 아니꼬웠는지 다짜고짜 다가온 태감은 차마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소년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옆에 있는 이삼의 통통한 볼을 꼬집었다.

“아욱!”

“허허, 요놈 볼 통통한 것 좀 봐라. 상관이 머리 터지게 협상을 하고 왔더니 부하라는 것들은 세월 좋게 풍류를 즐기고 있구나.”

이삼의 통통한 갈색 볼은 찹쌀떡처럼 잘도 늘어났다. 소년은 나중에 한번 꼭 꼬집어봐야겠다고 다짐하여 태감에게 일의 경과를 물었다. 태감은 찜찜한 듯 말꼬리를 끌었다.

“일단은, 표면적인 목표는 달성했다고 봐야겠지. 식사회는 승낙을 받았다.”

“그거 다행이군요.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재료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래. 예산은 따로 편성해 두마.”

피로에 젖은 태감은 차마 아이들처럼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에 발을 담그지는 못하고 그 대신 나무 그늘에 등을 기대고 섰다.

서늘한 그늘에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한숨짓는 모습과 가면 아래로 드러난 투명한 피부, 앵두 같은 입술의 마력에 시녀들을 비명을 질렀다.

과연, 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려도 그 옥면(鈺面)의 위엄은 죽지 않았다. 가면 아래로 턱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에 자지러지는 시녀들의 목소리에 태감은 고개를 돌렸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소년이 히죽거리며 묻자 태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년을 보다가 마지못해 담벼락 사이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내밀고 있는 나인들에게 억지로 웃어주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태감님이 날 보셨어! 아니야, 네가 아니라 날 보신거야! 태감님이 날 선계로 인도하실거야!

지나칠 만큼 우렁찬 환호성과 새벽닭이 부럽지 않은 찢어지는 비명에 귀를 막으며 소년은 살랑거리며 발가락을 간질이는 수로의 물고기들 사이에서 작고 귀여운 민물 게를 발견했다.

먹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크기. 엄지손톱만 한 게가 빨빨거리며 소년의 엄지발가락을 기어올랐다.

“허허, 이거 봐라. 수로에 게도 있었네.”

“게? 게라고?”

“예, 이거 보십쇼.”

“……게라…….”

소년이 게를 손가락으로 들어 태감에게 보였지만 태감은 텅 빈 시선으로 멍하니 그 너머의 것을 보았다.

아득해지는 태감의 눈동자 속에서 소년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싹한 지성의 번뜩임을 보았다.

설마 그 짧은 순간 어떠한 영감을 받은 것일까? 그의 낡고 무뎌진 두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것일까?

태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슬슬 게 철이구나.”

“예? 아……그렇군요. 이제 여름도 끝물이니 대갑해(大闸蟹)의 철이군요.”

대갑해. 다른 말로는 상하이 털게 라고도 하는 그 작고 기름진 민물게는 중국 늦여름부터 가을이 제철이었다.

그 고소하고 기름진 내장은 퇴폐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며 중국에선 게를 먹느라 전 재산을 탕진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올 정도로 중국 사람들이 열광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태감이 뜻하는 바가 정말로 단순한 게였을까? 그의 분위기는 소년으로 하여금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소년은 혹시 그것이 무슨 은유인지, 혹시 태감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선문답을 내놓은 것인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대갑해가 무엇을 의심하는 걸까?

대갑해의 제철은 내장이 그득하게 차는 가을이니 가을에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암시일까?

아니면 혹시 대갑해가 어떤 사람을 뜻하는 건 아닐까?

순간 소년이 고개를 들고 태감을 올려다보았다. 시름에 잠긴 듯 그늘진 태감의 얼굴 속에서 소년은 일말의 확신을 느꼈다.

“양청호……입니까?”

민물 게의 양식으로 유명한 양청호, 태감의 말은 그것을 의미한 것 아니었을까? 태감은 천천히 고개를 당겼다.

“게는, 양청호의 것을 최고로 치지.”

“……그렇지요. 민물 게는. 양청호의 것이 최고지요.”

소년에게 그다음의 말은 필요 없었다. 알 필요도 없으리라.

태감이 말을 꺼낸 이유는 틀림없이 양청호에서 소년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여행, 새로운 일을 앞에 둔소년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긴장한 몸을 풀었다.

“오운.”

“예. 말씀하십시오.”

의욕을 불태우는 소년에게 태감은 마치 먼 미래의 광명을 보는 듯한 목소리로 홀린 듯이 물었다.

“게는, 어떻게 먹는 것이 제일 맛있을까?”

“예?”

태감은 이미 손안에 게를 쥔 듯이 그윽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게를 발라먹는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손에 묻고, 비린내도 나지. 거기에 깨진 껍질 조각이 손톱 밑을 찌르기라도 하면 퉁퉁 부어올라 삼일은 그것에 신경이 팔려서 잠도 못잘 지경이야. 어떻게 하면 게의 그옥한 풍미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까?”

소년은 조용히 태감에게 되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진심이다. 물론 호사가들이 게는 직접 까먹는 것이 제맛이라고 떠드는 것은 나도 알고 있고 일부 공감하는 면 또한 있다. 하지만 언제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었느냐? 나의 필요성과 너의 실력이 결합한다면 직접 까먹는 것 이상의 요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뢰와 확신이 담긴 눈동자로 소년을 바라보며 태감은 소년의 메마른듯 하지만 다부진 어깨에 손을 짚었다.

쇠한 듯 메마른 그 어깨는 가늘어보였지만 강인한 힘이 꿈틀거리고 있어 태감은 두근거리게 했다.

‘넌 늘 내가 바라는 것 이상을 보여줬지. 이번에도 나에게 멋진 신세계를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극상의 게를 먹게 해다오!’

기대감에 가득 찬 태감을 보며 소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함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했다. 고민하고, 궁리해본 끝에 소년은 넌지시 다시 물었다.

“정말 다른 뜻 없이 순수하게, 게를 드시고 싶으셨다…… 이 말이죠?”

“그렇다만?”

일말의 주저도 가책도 없이. 순진 무구한 태감을 올려다보며 소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양청호 어쩌고 했던 것은 소년의 망상일 뿐이었다.

어느새 자신도 후궁 생활에 찌들었구나……. 하는, 부끄러움과 자기연민에 빠진 소년은 그런 시시콜콜하고 어두침침한 고민과는 전혀 연이 없는 것처럼 해맑게 게 요리를 기대하는 태감을 보며 허탈함을 가라앉혔다.

자괴감에 찌든 소년은 인생의 허망함을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며 일어섰다. 물방울과 함께 복잡한 감정도 털어낸 그는 한껏 꾸며낸 활기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오늘은 게를 먹읍시다!”

소년의 장절한 표정이 어찌 되었든 태감은 크게 기뻐했다.

* * *

밤 어둠이 슬그미니 담장 너머로 깔리기 시작하고 연좌궁을 상징하는 연등이 내걸릴 무렵 태감의 집무실에도 하루의 끝이 성큼 다가왔다.

무의미하게 서류와 목간을 흩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태감을 보며 위정은 오늘은 더 이상 업무가 불가능하겠다는 예감을 받았다.

어차피 이제 호롱불을 켜지 않으면 서류가 보이지 않을 시간이니 슬슬 마감하는 것이 좋으리라. 위정은 장소에게 저녁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 지를 알아보라 한 다음 태감이 널브러뜨린 서류를 정리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마무리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거 명안일세.”

“예, 마침 장소에게 저녁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아보라 시켰으니 미리 식당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정은 허둥지둥 일어나는 태감을 보며 그의 인생에 흔치 않았던 웃음을 지었다.

그리도 좋으실까.

하지만 게를 좋아하는 것은 위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진한 내장에 쌉싸름한 청주 한잔을 곁들이면 그 풍미의 결합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내일은 갈 때 게를 몇 마리 사 가야겠군.’

업무의 특성상 퇴궐하는 시간이 늦은 편이니 오늘은 힘들겠지만, 비번인 내일은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게를 먹으며 시간을 보낼 생각에 입꼬리가 슬그미니올라간 근엄한 장년인의 얼굴에 태감은 실소를 내뱉었다.

“사랑스러운 아내 생각 중이신가?”

“어흠……그저 태감님의 안위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하하. 마음은 이미 콩 밭이구만.”

소문난 애주가인 위정만큼이나 술을 사랑하는 그의 부인이 생각나자 태감은 그에게 안부도 전해달라 할 겸 찬장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

흑룡강성 호죽림(湖竹林)의 명물 죽엽청 창호(倉湖)를 건네받은 위정은 절대로 부하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술병을 갈무리하는 위정을 보며 태감은 넌지시 농담을 건넸다.

“그럼 내일을 위해서 그 녀석에게게 요리를 몇 가지 배워보는 것은 어떤가? 안사람도 분명 좋아할 텐데.”

평소의 근엄한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퇴청한 위정의 취미는 요리였다.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자인 것이다. 태감이 그 점을 꼬집어 놀리자 위정은 품위 있게 반격했다.

“그것도 좋겠지만, 역시 전 방금 찐 게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나와는 의견이 갈리는걸?”

게 본연의 맛을 즐겨야 한다는 근본주의와 오래된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게의 새로운 맛을 탐구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대립이 첨예하게 이어졌다.

그들의 대립은 장소가 문을 박차고 구르듯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어졌다.

“단단한 게의 껍데기를 어찌 귀찮다고 생각하십니까? 관점을 달리하면 오히려 단단한 껍질을 벗기고 그안의 황금 같은 내장을 취하는 과정을 즐겁다 여길 수도 있지요. 마땅한 시련과 그에 따른 보상을 취하는것은 순리에 따라 자연스러운 일일텐데 어찌 그 순리를 버리시고 가벼이 보상만을 취하려 하십니까? 참된 노동 끝에 얻은 과실만이 이치와 도리에 어긋나지 않은 정당한 보상 아니겠습니까? 순리에 따르지 못한다면 망할 것이요 순리에 따른다면 살아남아 번성하리라. 옛 성현의 가르침이 이번 논의에도 해당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순천자존(順天者存) 역천자망(逆天者亡)의 가르침을 예로 들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관철하는 위정의 괴변에 태감을 말을 잃었다. 옛 성현의 가르침까지 끌고 와 괴변을 늘어놓으니 당장의 대답이 궁색하였다.

하지만 후궁 정치의 중심축답게 태감은 노련한 답변으로 위정을 공격했다.

“불편한 것을 고치고 창조하고 발명해가며 인간은 진화해왔다. 그것이 역천인가? 아니, 오히려 순리일터! 단단한 게 껍데기는 우리가 넘어야 할 시련이 아닌 편안하고 안온한 식사의 방해물일 뿐이다! 게 껍데기를 제거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발전이요 인류의 참된 미래가 아니겠느냐! 날카로운 껍질에 손끝을 찔려 눈물을 흘리는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너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인류애를 들먹이며 반박하는 태감의 말에 이번엔 위정이 크게 위축되었다.

주종 간의 신뢰와 수많은 고난을 함께 넘어온 우정을 넘어선 두 미식가의 불꽃 같은 대립 사이로 파리한 안색의 장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삼자의 개입에 위정과 태감이 동시에 말했다.

“장소,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유사 이래 가장 쓸데없고 격렬한 의견대립을 눈앞에 두고 장소는 두려움과 공포에 몸을 떨며 흐느끼듯이 말했다.

“그가……그가 와요…….”

“그? 누가 온단 말이냐.”

“오운 님이…… 오운 님이 와요!”

이제 곧 저녁 식사 시간이니 소년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에 관해 묻기도 전에 문의 너머에서 소름 끼치는 기세를 포착한 위정이 순식간에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오래전 겪어본 가장 치열했던 난전의 감각. 삶과 죽음이 자리를 바꾸며 일어나는 싸늘한 공백, 오직 주검을 파헤치는 짐승만이 승자로서 남는 참혹함이 문 너머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치 명계의 군세를 끌고 오는 듯한 공포스러운 기세에 품 안의 검자루를 더듬는 위정의 손이 떨릴 정도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전율적인 목소리와 함께 소년이 들어섰다. 핏발선 눈동자 아래로 음험한 매부리코가 섬짓하게 빛났다.

귀신의 흉소를 그리는 입에선 당장에라도 저주의 말을 토해낼 것 같았다.

늘어선 군사의 창칼보다도 무시무시하고 지옥 유부의 악귀보다도 섬짓한 모습으로 소년은 그 자리에서 있었다.

“오늘은 조금 기합을 넣어서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냐…….”

지나치게 기합을 넣은 소년의 흉상(凶狀)에 태감은 삶의 마지막을 목도 했다.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말라는 감성을 차가운 이성으로 짓누르며 태감은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겨 소년의 뒤를 쫓았다.

환한 연등의 불빛마저도 잠식되는 듯한 귀기(鬼氣)를 뿜어내는 소년의 등을 따라 걷는 동안 태감은 잠깐의 주마등마저 맛보았다.

최후의 식사는 게인가…….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스한 훈풍이 훅 밀려와 피부를 간지럽혔다.

옅은 옥색의 식탁보가 깔린 식탁에는 화사한 해당화가 장식된 꽃병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선 이삼이 식사에 어울리는 나지막한 곡을 대금으로 불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식전주는 국화꽃으로 담근 밀화주(蜜化酒)입니다.”

보기 좋은 노란색 맑은 술은 향기로운 국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했다.

태감은 감로수를 마시듯 백자 잔을 들어 술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달콤하고 향긋하군.”

달콤한 잔향은 오랜 시간 혀끝에 머물렀다.

해묵은 세월의 틈새를 파고들어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국화와 꿀의 달콤한 향기가 몸 안을 맴돌자 태감은 비로소 모든 공포의 굴레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느꼈다.

태감은 소년을 돌아보며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야차처럼 보였는데, 다시 보니 천상의 신선 같구나.”

“변죽도 좋으십니다그려. 그럼 슬슬 요리를 올릴까요?”

“그래, 어디 한번 먹어보자꾸나.”

소년이 첫 번째로 내온 것은 작은 대나무 찜기였다. 뚜껑을 열자 앙증맞은 소롱포 세 개가 들어 있었다.

“대갑해의 내장과 알, 살을 발라내 만든 해분소롱포(蟹粉小籠包)입니다.”

태감이 조심스럽게 소롱포를 집어들어 사기 숟가락 위에 올렸다. 젓가락으로 집어 들자 찰랑거리는 육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의 긴장된 젓가락이 소롱포의 피를 찢자 맑은 육수가 솟아 나오고 그 안으로 황금빛 해분(蟹粉, 게의 내장과 알)이 엿보였다.

태감은 입술이 델라 천천히, 마치 이 한 접시를 위해 희생만 게들에게 양해를 구하듯이 조심스럽게 새어나온 육수를 마셨다.

“진하다…… 진하구나…….”

입안에 착 달라붙는 그윽한 게의 감칠맛이 뺨을 녹여 버릴 것만 같았다.

무더웠던 여름 동안 게가 비축해온 녹아내린 황금의 맛이 태감의 온몸에 스며들었다.

흑식초에 절인 생강채를 소롱포에 올려 한입에 삼킨 태감은 연달아 두개의 소롱포를 입안이 데일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입에 삼켰다.

부드러운 피가 터지며 스며 나오는 농후한 게 내장 섞인 육수의 맛. 그 충족감.

황홀경에 빠진 태감이 진정하기도 전에 두 번째 요리가 나왔다. 이번엔 아직여물지 않은 작은 호박이 통째로 상에 올라왔다.

노란 호박의 윗부분을 열자 아이 주먹만 한 큼지막한 대하가 게살과 내장으로 만든 소스에 적셔진 채 잠들어 있었다.

“여물지 않은 호박을 그릇 삼아 최고로 신선한 대하를 데쳐 닭 육수에 화퇴(火腿), 와 게살, 내장과 알을 넣어 만든 국물을 곁들였습니다.”

취호해분수정하구(翠湖盤粉水晶蝦球).

태감은 마치 잠든 용을 깨우는 것처럼 신중하게 새우를 건져 올렸다.

두툼한 새우살은 아주 살짝 데쳐내 그 질감은 포동포동하고 탱글탱글했으며 씹을 때마다 앞니를 튕겨낼 것만 같았다.

거기에 실처럼 가늘게 채를 썬, 짭짤한 소금기가 배어든 민물 게의 내장과 알은 소금기와 대비를 이뤄 지나칠 만큼 달콤했다.

몇 가지게 요리를 더 내온 소년이 마지막으로 내온 것은 껍질째 찐게였다.

“식사의 마지막이니 한 마리 정도는 통으로 먹어보시죠.”

대갑해(大闸蟹) 찌는 법.

게의 다리와 집게를 안쪽으로 구부려 넣고 도마에 대고 꾹 누른다. 이것을 소포를 싸듯이 십자 모양으로 하여 이중으로 묶는다.

차조기 잎을 깐 찜통에 늘어놓고 강한 불에 십오 분가량을 찐다.

게를 낼 때는 향기로운 검은 식초와 생강 채를 함께 준비한다. 게의 껍데기를 깔 나무망치와 손을 씻을 핑거볼도 준비한다.

소년이 준비한 것은 알은 없지만, 내장의 맛은 암컷보다 더 농후한 숫게였다.

귀찮다는 듯이 입술을 내민 태감에게 소년은 순식간에게 껍데기를 까내고 먹기 좋게 손질한 게를 내밀었다.

“어쩔 수 없구나. 이렇게 손질까지 해주었으니 먹어볼 수밖에.”

태감은 싫은 듯 틀를거렸지만, 그의 시선은 게딱지에 가득 차오른 노란 내장에 꽂혀 있었다.

생강 채를 조금 들어 내장에 흑식초를 살짝 뿌리고 동그란 은 숟가락으로 내장을 떠내자 그 농후한 향기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결국 왕도는 왕도란 말인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결한 내장의 맛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농축된 감칠맛은 입안의 홍수가 되어 태감을 뒤흔들었다.

내장을 다 먹고도 아쉬운지 살을 먹어볼까 하는 태감을 소년이 만류했다.

“관두십쇼. 내장은 천하일미지만 살은 그저 그런 편이니. 그냥 국물만 쭉 빨아 먹고, 집게발은 좀 나으니 요건 까드리겠습니다.”

소년이 나무망치로 껍데기를 깨고 솜씨 좋게 살을 꺼내자 태감은 그것을 낼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음……. 늘 생각하는 거지만 살은 역시 그저 그런 것 같다.”

“살은 확실히 꽃게가 맛있지요.”

소년은 좀 실망한 듯한 태감에게 후식을 준비했다고 알렸다.

게는 맛은 좋지만, 몸을 차게 하는 성분이 있어 과식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은 따뜻한 생강차에 껌은 깨 소를 채운 경단을 넣은 강차탕환(薑茶湯丸)을 준비했다.

매콤달콤한 생강차를 후루룩 들이켜고 그 안에 매끈매끈한 경단을 씹으면 쫄깃한 떡 안쪽으로 고소한 검은깨 소가 드러난다.

식후의 행복감을 무한정 확장시키는 달콤한 디저트가 태감의 몸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식후의 비릿했던 맛을 생강차가 깔끔하게 씻어주는군. 완벽한 저녁이었다.”

“마음에 드셨다니 대행이군요. 앞으로 한동안은 게가 맛있는 철이니또 드시고 싶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마지막 한 모금까지 전부 마시고 여운을 털어낸 태감은 평소의 냉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환호하고 눈물 흘리던 사람의 자식에서 냉엄한 정치의 화신이 된 태감앞에 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홍엽비와 난화비를 포섭했으니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예, 부여비 님이지요.”

“그래. 그녀를 끌어들여 삼각 동맹을 구축해 안양비에 대적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여비의 힘이 필요해. 홍엽비의 군부의 지지와 난화비의 자금력, 거기에 부여비의 정치적 입지를 더해야만 안양비와 맞설 수 있다.”

대장군의 여식인 홍엽비와 대상단의 지지를 받는 난화비, 거기에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도찰원에 뿌리를 둔 부여비의 이름값을 더한다면 안양비라 할지라도 쉬이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선결과제로 부여비를 포섭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태감이 물었다. 할 수 있었겠냐고.

“부여비는 겉으로는 비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처럼 보이나 그 속은 탈속하며 자신의 욕구를 끄는 것이 아니라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으로는 홍엽비 이상으로 포섭하기 어려운 비이지.”

할 수 있있겠냐? 태감의 질문에 소년은 대담하게 웃었다.

“그리하라고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럼 결과로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실로 오만한 답이었다. 그러나 무척이나 듬직한 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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