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78화
기이한 모습이었다. 꼭 으깬 감자 같기도 하나 그보다 희고 하얀 순두부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부드러워 보인다.
홍엽비는 고민 끝에 자신의 혀로 직접 판단하기로 했다.
따스한 온기와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그 맛은 생각했던 것처럼 달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짝 깝쪼름하고, 부드럽지만 진한 육즙의 맛이 남아 있어 묵직하게 혀 위에서 중심을 잡았다.
“이건…….”
“설화계뇨(雪花鷄淖)입니다. 닭의 가슴살만을 발라내어 곱게 간 다음 육수와 소금, 계란 흰자로 반죽해 부드립게 끓여낸 음식인데 매운맛을 잘 잡아줘 곁들이기에 좋죠.”
“확실히, 혀가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네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대답한 안양비는 다시 한번 매운 음식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이번에 그녀가 관심을 보인 것은 그 유명한 사천의 명물 부처폐편(夫妻肺片)이었다.
검붉은 고추기름이 번들거리는 내장조각은 그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꺼림칙해 보였지만 내장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혀를 내두를 만한 진미였다.
“듣기로는 사천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는 내외가 도살장에서 버리는 소의 내장이 아까워 발명한 요리라고 하는군요. 본래 부처페편의 폐는 버릴 폐(廢)인데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그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허파 폐(肺)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소년의 설명에 감탄하며 홍엽비는 벌건 내장조각을 들어 올렸다. 온갖 질깃질깃하고 감칠맛 나는 내장은 그녀의 연약한 턱관절 단련에도 도움을 주리라.
소년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그녀의 단점 중 하나로 연약한 턱을 꼽았다.
턱 근육이 약하기 때문에 그녀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소년은 홍엽비의 식사에 턱을 강화할 수 있는 질긴 음식을 자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질겅질겅 소의 천엽을 씹는 홍엽비에게 우스갯소리로 사실 부처폐편에는 소의 허파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하며 면밀하게 그녀의 식습관을 관찰했다.
이제 얼굴에는 제법 발그레한 혈색이 돌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선 숨길 수 없는 만성피로감이 엿보였다.
영양소 부족, 그리고 충분한 운동부족. 후궁이라는 감옥 안에서 지금처럼 계속 생활한다면 분명 단명하고 말 것이다.
역시 사람이 살 곳이 아니구나. 이 후궁은.
소년은 아무리 좋은 대접을 받아도 후궁의 비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홍엽비에게 식후 후식을 먹을 것을 계산해달라 간청했다.
바쁘고, 활기차고. 그렇기에 더욱더 애절한 식사 시간이 끝나자 홍엽비는 우울한 한숨을 토해냈다.
마침내 소년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삼 일간의 식사가 끝이 났다.
내일부터는 또 담백함이라는 말로 좋게 포장된 무미한 황실의 식사가 이어지겠지. 차라리 이 맛을 몰랐다면 덜 고통스러웠을 것을.
하지만 홍엽비는 담담하게 다가올 나날을 받아드렸다. 앞으로도 가끔있을 뜻밖의 행운을 기다린다면 길고 긴 일상도 나름 견딜 수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그녀를 위해 행인두부(杏仁豆腐)를 내온 소년이 홍엽비의 한숨을 포착했다.
말을 꺼내기에 좋은 시점이다. 용기를 가지고 주변의 시녀들을 물러달라 청한 소년이 멍하니 수저를 쥔채 소년이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리는 홍엽비에게 자신의 담대한 포부를 설명했다.
“식사회……요?”
“정확히는 건강 개선 식사회입니다. 후궁에 매여 만성 운동 부족, 영양소 불균형 섭취에 시달리시는 황후 후보 여러분을 위해 이번에 양태감님께서 야심 차게 준비하신 계획이지요.”
소년은 온갖 미사여구를 더하는 것은 물론 식사회에 낼 요리를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홍엽비의 관심을 끌었다.
“매운 요리를……. 다른 분들도 좋아할까요?”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매운 요리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들어 있습니다. 고추와 산초의 매운맛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또 매운맛을 적절하게 즐긴다면 그간 쌓인 정신적 피로감을 해소하는 것에도 상당량 효능이-”
반백 년의 관록이 살아 있는 언변은 저잣거리에서 신묘한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를 압도 했다.
그의 말을 듣는다면 제아무리 의심병에 사로잡힌 자라도 호주머니를 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리라.
소년의 말을 들으며 황홀경에 빠져있던 홍엽비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식사회에는 어떤 분들이 참석하시나요?”
소년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그것을 질문해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소년은 소처럼 눈을 끔뻑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처럼 왜소한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궁의 정점이자 황후 후보자 중 한 명이었다.
소심하나 우둔하지는 않다.
눈을 깜빡거리며 가만히 소년을 들여다보는 홍엽비와 시선을 마주하며 소년은 긴 시간 그의 가슴속에서 싹터온 부채감이 다시금 싹트는 것을 느꼈다.
소년은 솔직하게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할 시간임을 깨달았다.
아무 죄도 없는 그녀를 독살할 결심을 한 그 날부터 소년은 그녀의 종복과 다름이 없었다.
더는 무엇을 숨길까. 소년은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우선은 난향비 님과…… 부여비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 두 분을…….”
이번엔 홍엽비가 장고에 빠질 시간이었다. 그녀는 모든 경우를 가정해 손익을 계산했다.
어쩌면 그 끝자락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황후라고 하는 영광된 자리까지도.
황후. 제국의 지배자가 선택한 여인. 용의 아들의 정실. 어떤 여인이 그 자리를 거절할 수 있을까.
그녀도 사람인 이상 그 자리가 가지는 마력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후궁에 매이기만 한 존재가 아닌 직접 실권을 휘두르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
그 막중한 책임과 두 손안에 가득거머렬 보상을 생각하며 안양비는 애꿎은 행인두부의 매끄러운 겉면을 수저로 헤집었다.
문득 홍엽비의 시선이 새하얀 식탁보에 떨어진 한 방울의 붉은 자국에 미친 순간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미래를 곱씹으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그 두 분이 매운 요리를 좋아하면 좋을 텐데요.”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홍엽비의 결정에 속으로 환호와 사죄를 동시에 보내며 소년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게 점점 갚을 수 없는 빛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같다.
* * *
3일간의 식사가 끝나고 비로소 정든 직장으로 복귀한 소년을 기다리는 것은 아침부터 안달복달을 하며 고민에 빠져 있는 태감이었다.
홍엽비를 설득했으니 이제 계획의 주체를 설득하는 것만이 남았다. 이제 길고 길었던 그들의 계획에 드디어 첫 단추를 끼울 수 있게 되었는데도 고뇌하며 서성거리는 태감은 도통 서난궁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연못 위로 튀어 오르는 비단잉어를 멀거니 보던 소년은 이내 짜증을 내며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태감에게 한소리 했다.
“아 거 언제 갈 겁니까? 이러다 해 떨어지겠네.”
“누가 안 간 댔느냐? 때 되면 간다.”
“그때가 언접니까? 오늘 안? 아니면 내일?”
“……그래, 어차피 여기서 둥그적거려봐야 뚜렷한 수도 없을 테지. 가자.”
소년은 아직도 난화비를 밀어줘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태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그리도 불만이십니까? 이미 내부적으로 다 회의 끝내고 맞출 거다 맞혀보지 않았습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난화비 님이라면서요.”
“그래도 혹시나 변수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변수가 나면 제가 처리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소년은 품에서 슬쩍 등근 패를 꺼내 보였다. 용의 아들께서 하사하신이래 단 한 번도 몸에서 떼어본 적없는 참주패였다.
둥근 패에 용사비등한 필체가 음각된 옥패는 언젠가 쓰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광택이 햇빛을 반사해 빛났다.
태감은 그 광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늘 말하지만, 목숨을 너무 가볍게 휘두르지 마라. 좋은 시절 앞에 두고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냐.”
“나라의 안위를 위한 일인데 어찌 가볍게 쓴다 하십니까. 전 제국의 앞날을 위해 기꺼이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소년의 모습에는 군인이 가져야 할 위국헌신(爲國獻身)자세가 살아 있었다.
아마 다른 무관이 말했다면 박수를 치며 그 기상을 치하했겠지만 태감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 대신 쓴웃음과 핀잔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네가 죽으면 내 식사는 누가 책임지라는 거냐? 지금까지 내 혀를 버려놓은 책임을 져야지.”
“세상 대단하다는 요리사가 다 모였다는 경사인데 한 명 정도는 태감님 마음에 쏙 드는 요리사가 있겠지요.”
“경사를 다 뒤져보았지만 없더구나. 어찌할 테냐?”
“뭐, 그것도 팔자려니 해야지요.”
소년은 퉁명스럽게 그를 대하기는 했지만 실은 그의 뛰어난 미각에 늘 감탄하곤 했다.
그 뛰어난 미각은 때론 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더 담금질하게 하는 시금석이 되어주기도 했다.
소년은 새삼스럽게 태감을 다시 돌아보았다. 이래저래 얄미운 면도 많고 음식 투정도 심해 귀찮았지만, 그 덕분에 소년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가장 강성했던 시절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고 자만했던 시절엔 고민하지 않았던 것을 고민하며 소년은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간의 요리들을 되돌아보는 소년에게 태감이 말을 걸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예?”
“이번이 난화비를 계획의 중심인물로 세우는 것을 번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말이다.”
진지한 태감의 말에 소년 역시 안색을 굳히며 반문했다.
“아직 부여비 님을 뵙지도 않았는데 말입니까?”
“그래.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전의 실수 때문인지 안양비는 무섭게 세력을 키우고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어. 더는 난화비와 부여비 둘중 누구를 세울지를 고민하여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이젠 우리에게도 구심점이 필요해.”
조금 더 앞을 내다보고 행동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중압감에 눌린 그를 어떻게 위로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를 위로할 수 있을까. 태감은 그의 상관이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그토록 안절부절못한 거였군. 첫 단추를 바로 끼우지 못한 계획은 속절없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본래대로였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진행했어야 할 일이다.
좀 더 그 속내를 깊게 볼 수 있도록, 식사회로 친목을 다지고 사적인 만남으로 속내를 캐며 그녀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가 진정으로 황후의 자질이 있는지.
실은 안양비 이상으로 표독스러운 권력욕을 흉금에 숨기고 사람 좋은 미소로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황제의 지냥이라 불리는 그녀는 어쩌면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굽어보던 안양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오만 하고 강인했으며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강렬한 기억과는 달리 난화비와의 짧은 만남은 늘 온화하고 부드러워 사람의 긴장을 풀게 하는 말랑말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연기였다고?
소년은 품 안의 옥패를 움켜쥐며 이를 꽉 물었다.
“일단 만나보지요. 그리고 계획대로 합시다.”
“그리고?”
“난화비 님이 저희생각대로 온화하시고 폐하의 위엄을 능멸하려 들지 않으며 그분을 잘 내조하실 수 있는 황후 감이라면 계획대로 하고, 아니면 뭐. 다른 계획대로 하는 것이지요.”
태감은 다시금 전가의 보도처럼 자신의 목숨을 휘두르는 소년에게 쓴소리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결연한 의지가 배어든, 조용히 타오르는 눈동자를 앞에 두고선 태감도 더는 그가 장난으로 목숨을 걸었다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소년은 말하고 있었다.
당신의 잘못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급자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하는 자신의 상황에 분노하고, 자신의 나약함에 격노하며 태감은 차가운 불꽃으로 머리를 채웠다.
날카로운 표정을 주물러 부드럽게 풀어주고 입꼬리를 매만져 세상 모든 여인의 방심을 녹여 버릴 달콤한 미소를 장전했다.
싸우러 갈 준비를 한 정치인다운 모습이다. 소년은 각오를 다진 그의 옆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가장 순결한 꽃 한 송이와 같은 자태를 뽐내는 태감과는 다르게 비루먹은 개 같은 꼴이었지만 그 덕분에 태감과는 좋은 대비가 되었다.
“네 말이 옳다. 후궁에서 살다 보면 의심병만 늘어 사람 본연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지. 좋은 모습도 비꼬아 보고 나쁜 모습은 확대해서 보게 돼. 그렇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람의 좋은 면을 보는 것에 겁을 먹게 되었구나.”
결국, 흙탕물 속에서 홀로 고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깨끗하고 훌륭한 것도 오물 옆에 두면 때를 타는 법.
후궁의 사람들은 그렇게 비틀리고 비물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나 꼭 필요한 것이었다.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님고자 한다면.
어느새 마음속에 여유가 싹튼 것을 느끼며 태감은 서난궁의 입구로 성큼 들어섰다.
결연한 의지로 방문한 둘에게 서난궁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녹색 새순이 움트던 계절을 지나 진한 녹색이 만발하는 시간.
그 사이사이에는 여름 한 철을 위해 만발한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인공수로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나뭇가지 사이로 들리는 새소리, 그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수풀 사이로 조금 더 걸으면 탁트인 공안에 작은 정자가 있다. 그안에서 난화비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오셨어요?”
한점 적의 없는 미소로 따뜻하게 그들을 맞이하는 난화비를 본 순간 소년은 다잡은 마음이 헤실헤실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무구한 미소를 지어주는 상대에게 적의를 품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닐까? 내가 이렇게까지 비뚤어진 놈이었나?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저 미소조차 연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경계심이 더 높아졌다.
소년은 그것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려 애쓰며 가져온 꾸러미를 내놓았다.
“경팔건(京八件) 입니다.”
경팔건은 여덟 가지 형태와 여덟가지 맛을 가진 북경의 전통 차 과자로 본래 청나라 궁중의 어선방(御膳房)에서 민간으로 전해진 간식이었다.
붉은 칠을 한 사각형의 상자에 곱게 담긴 여덟 가지 과자는 보기만 해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 것이었다.
노란 완두콩으로 만든 완두황(豌豆黃), 찹쌀떡을 팥소를 넣고 말아 콩가루를 묻힌 려타곤(驴打滚), 찹쌀떡속에 설탕과 견과류, 말린 청매 등의 소를 넣어 만든 애와와(艾窝窝), 강낭콩으로 만든 소를 넣은 은두권(芸豆卷) 등 여덟 가지 과자들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하게 하였다.
난화비는 그중 고민 끝에 가장 친숙한 려타곤과 노란 양갱 같은 완두황 두 개를 먼저 골랐다.
“옛말에 태산 구경도 식후경이라하니 우선은 맛부터 볼까요?”
애교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난화비가 려타곤을 집어 들었다.
콩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받치고 입으로 가져가 기까지, 소년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는 것도 잊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방금 볶아 가루 내 신선하고 고소한 콩가루와 쫄깃한 찰떡, 그 안에서 아낌없이 단맛을 뽐내는 팥소는 우애 깊은 삼 형제나 다름없었다.
서로 특별히 두드러지거나 모난 구석 없이 정교하게 계산된 맛의 맞물림은 이후 건조해진 혀를 적셔줄 단비 같은 차를 불렀다.
과연 차를 마시기 위해 발명된 간식들답게 어느 것 하나 쌉싸름한 차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달콤한 천국을 탐닉하며 풀어진 분위기는 태감의 날을 세운 마음도 누그러트렸다.
사소한 날씨 이야기, 별것 아닌 궁에서의 사소한 일상 이야기들. 그저그런 미지근한 이야기만을 나누며 끝낼 수 있었다면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태감이 묵례를 하며 분위기를 바꾸었고 난화비는 달콤했던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마치 하루의 두 번째 꿈과도 같았던 행복했던 시간이 지워지고 차갑고 날카로운 현실의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자 난화비는 자신의 어린 시녀들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태감에게 이야기를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