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77화
범속한 이들은 말한다. 황제가 인중룡이라면 그 유일한 맞수는 인중호, 안양비라고.
여인의 몸으로 그런 평가를 사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뭇 호사가들을 침묵하게 하는 그녀의 기세는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훤칠한 키, 범처럼 부리부리한 눈과 곧은콧대. 입술을 붉고 피부는 희지만, 그것은 창백해 병약해 보이기보다는 밝고 건강한 활기가 넘쳐흘렀다. 그녀는, 안양비는 그야말로 웅크린 범같은 여인이었다.
처음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소년은 정수리에 벼락이 떨어진 것만 같은 충격을 맛보았다.
소름 끼칠 만큼 아름답고 분노한 신처럼 장엄한. 그야말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아까운 자였다.
하지만 소년은 그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황급히 납작 엎드렸다.
그야말로 비굴함의 극치, 동전 서 푼에 마누라도 팔아먹을 쓰레기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간사함을 온몸으로. 온 힘을 다하여 보여주었다.
간드러진 목소리를 헐떡거리는 소년에게 안양비는 대번에 관심이 식었음이 얼굴에 드러났다.
비록 고개를 들지 못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대번에 심드렁해진 목소리는 소년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아, 성공했구나!
안양비가 말하는 내내 굽신거리며 예예 거리기만 했던 소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대부분 ‘열심히 헌신하면 그럴듯한 보상을 해주겠다’가 대부분이었기에 태감에게 전할 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소년은 그녀가 자신을 한심하고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훗날 부를 일이 있을 테니 기다리 거라.”
“예, 그리하겠나이다.”
“그만 가보거라.”
두 번 세 번 고개를 조아리며 무릎걸음으로 물러나는 소년을 보며 안양비는 한심함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비굴하고. 자존심 없으며. 간사한 인간.
기개 있는 사내를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도저히 같은 공간에서 숨쉬기 조차 싫을 지경이었다.
장 태감이 경과를 보려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안양비는 참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까지 온갖 금칠을 다하며 칭찬했던 인재가 그렇게 어처구니없을 만큼 비굴한 인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말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야. 만약 그런 놈을 천고의 인재로 봤다면 자네 눈도 다 된 모양이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리둥절해 하는 태감에게 안양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살다 살다 그렇게 비굴한 놈은 처음 보네. 간에 쓸개에 있다면 자기 양물까지 빼줄 기세더군.”
참담함이 절로 드러나는 한마디였지만 장 태감은 헛기침을 하며 혹시누가 그녀의 상스러운 말을 듣지는 않았을지 걱정했다.
두 번 세 번 확인하고서도 불안해 방안을 한 바퀴 돌며 혹시 누가 들었을까 염려한 장 태감은 확신이 생기고 나서야 자리로 돌아와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허허, 그 친구가 그랬다는 말이군요?”
“알고 있겠지만. 난 그런 이들을 가장 싫어하지. 차라리 내 목을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적이 더 사랑스러워. 야망도 없이, 대의도 없이, 목표도 없이. 어차피 그런 놈들은 메인 목줄이 조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할 뿐이지. 진짜로 나서야 할 때는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법이야.”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때. 그가치를 빛낼 수 있는 자만이 그녀의 총애를 얻을 수 있다.
갈기를 달고 색을 물들여도 고양이는 사자가 될 수 없는 법이다. 안양비는 단호하게 그 녀석은 쓰레기였다, 등용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당하게 품평을 마치는 안양비를 보며 장 태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애석하게도 그 친구를 영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군요.”
기이한 말이었다. 마치 소년의 능력이 부족해 영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안양비의 능력이 부족하여 소년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투였으니.
안양비는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하지만 장 태감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양 태감님의 수완이 보통이 아니군요. 아직 기회가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만…… 하아. 아쉬운 일입니다.”
“자네가 보기엔 그렇게나 훌륭한 인재였다고? 하지만 그 태도는…….”
안양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태도였지만 장 태감은 한결같았다.
“후우…… 처음 보았을 때는 설령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강인한 심지가 엿보이는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말로 잘 꼬드기면 어떻게 넘어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친구도 후궁살이의 더께가 쌓이다 보니 연기도 늘고 사람 속일 줄도 알게 되었군요. 그 친구가 비굴하고 간신배처럼 굴었다면 이미 그 친구의 마음이 안양비 님께는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조금 더 빨리,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으로 그 친구를 데려왔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안양비는 마치 통한의 실수라는 듯 이 혀를 차는 장 태감을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떨꿨다.
그것이 연기였다고?
“그렇다면 나의 시선을 피하고자, 일부러 비굴한 척 바닥을 기었단 말인가?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하지만 그 비굴함, 눈동자 안쪽 깊숙하게 스며든 세월의 회한과 비참한 본성은 진짜였다. 하지만 장 태감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 어째서?
하지만 안양비는 장 태감이 틀렸을 거라는 확신을 내리지 못했다.
눈앞의 사내는 진짜였다. 유일하게 안양비가 수하가 아닌 정치적 동반자로서 선택한 남자.
환관계의 이인자는 인중호라 불리는 여자가 직접 고르고 먼저 손을 내밀 가치가 있는 남자였다.
비천한 무지렁뱅이의 아들로 태어나 은전 서푼에 후궁으로 팔려 들어와, 채소나 재배하는 환관 조직의 가장 말단인 사원국에서 비료를 뿌리는 일이나 하던 이가 황궁에서 가장 큰돈을 움직이는 내관감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대단하다는 안양비라도 그의 판단을 수긍할 수밖에.
안양비는 천천히, 마치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듯이 주의 깊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어째서 비굴한 태도를 보인 거지? 보통 권력자의 반감을 사려면 보통 대쪽같은 반골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지. 나처럼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다수 사람은 입안의 혀처럼 구는 인간을 좋아하니까. 만약 장 태감당신의 말대로 그 녀석이 일부러내 관심을 피하고자 연기를 한 거라면, 차라리 대놓고 나에게 반감을 보였어야 하지 않나?”
그야 대놓고 당신을 욕보였다면 대번에 목이 달아날 테니 차라리 스스로 오욕을 뒤집어쓴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 태감은 한숨을 내쉬며 놓친 고기를 아쉬워했다.
실력이야 시간이 지나면 쌓이는 것이나 사람 보는 눈은 그리 쉽게 길러지지 않는 법이다.
그 어린 것이 안양비 님의 앞에서 굽실거리며 속없이 군 것은 이미 사전에 안양비의 성정을 반은 파악하고 들어왔다는 뜻이 아닌가.
흘러간 시간을 다시 잡을 수 없는것을 아쉬워하며 장 태감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야 안양비 님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태감에게 보고하기 위해 절뚝거리며 달여온 소년이 물 한 바가지를 비운 후에 태감에게 말했다.
“믿었다고? 안양비를?”
“예. 지금까지 들어온 그분의 성향이나 행적 등으로 보아 아마 비굴한 이보다는 사내답고 기개 있는 자를 더 좋아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만약 아니었다면?”
“까짓거 등용돼서 이중첩자 노릇한번 해보는 거지요. 어쩌면 그편이 더 이득이었겠군요.”
소년은 대범하게 웃어넘겼지만 태감은 그리 쉽게 웃을 수 없었다.
“하아…… 장 태감. 그가 널 포섭하려 하다니. 그는 의심이 강해 적을 포섭하기보다는 제거하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던 자다. 그런 그가 널 포섭하려 했다는 것은…….”
소년은 섬뜩한 것이 자신의 목덜미 언저리를 쓸고 지나가는 듯해 목을 쓸어만졌다. 소름 끼치는 예감은 늘 뒤늦게 찾아오곤 했다.
“후궁의 싸움. 정치의 싸움이란 결국 명분 싸움이다. 내가 동창의 제독이라 하여 쉽사리 안양비를 칠 수 없는 것이 그런 이유이고 반대로 안양비 역시 자신의 지휘를 이용해 날 칠 수 없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사례태감이자 동창제독이며 황제의 심복인 양단은 후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은 다른 모든 비를 능가할 정도였으니 그 대단하다는 안양비라도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 없는 것은 다 그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명목상 안양비의 지위가 나보다 높기 때문에 난 안양비를 쉽사리 공격할 수가 없지. 정치판에서 미친 짓을 하기 위해선 미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다.”
만약 양단이 암살자를 보내 안양비를 죽이려 든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미친 짓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며 그 일로 인하여 경질되는 것은 물론 중한 형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미친 짓을 할 만한 명분이 있다면?
예를 들자면 안양비로 인해 양단이 가장 아끼는 수하가 끔찍하게 살해당했다던가, 혹은 양단 자신이 큰상처를 입었다던가 하는 명분이 있다면 그 미친 짓도 용인될 수 있다.
“그것이 후궁의 전쟁이다. 명분을 만드는 것. 권력이 좋은 것은 더욱 쉽게, 또는 힘을 써 억지로라도 명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
그것은 안양비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소년은 오늘 자신이 어이 없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를 그 자리에서 즉참하고 그 후에 제가 안양비 님을 암살하려 했다하여 태감님을 칠 수도 있있겠군요?”
“그렇지. 안양비라면 그 일에 실증을 더하기 위해 제 얼굴에 상처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위인이다.”
황제의 총애를 얻어야 하는 비가 스스로 무기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각오에 소년은 몸서리쳤다.
확실히 그 범과도 같은 기세의 여인이라면 스스로 아무렇지 않게 제 얼굴로 칼을 가져갈 테지.
“어차피 흉터야 관리만 잘하면 없어질 테고. 그 대가로 태감님의 수족을 자르려 들겠군요.”
“뭐, 나도 지위가 있는 만큼 낙마시킬 수는 없겠지만, 한동안은 곤란해지겠지.”
소년은 당장 이 염병할 장소를 탈출해 한가한 전원에서 목가적인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중동을 사무치도록 느꼈다.
언제나 말보다 빠른 주먹을 선호해온 그에겐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사직서를 던지고 싶은 소년의 욕망을 눈치첸 태감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물론 그런 복잡한 문제는 내가 해결할 일이지. 너에게까지 머리 쓰라고는 안 할 테니 걱정할 것 없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내일 홍엽비 님 상에 올릴 재료를 준비해야 하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왠지 무시당한 기분이었지만 소년은 당장 눈앞의 화근이 없어진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가 반백 년을 살며 얻은 교훈은, 언제나 책임질 위치보다는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하급자가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 * *
어느덧 홍엽비의 상을 차리는 임무도 마지막이 다가왔다. 비록 삼일이었지만 매끼를 든든하게 먹은 홍엽비는 어느 정도 발그레한 혈색이 돌기 시작해 소년을 안심시켰다.
여전히 여윈 그 모습은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이었으나 소년의 앞에서 배시시 웃으며 ‘오늘은 뭘 해주실거 예요?’라고 웃는 홍엽비 앞에서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하하,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아주 화끈하고 맵싸한 거로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임을 말하는 소년의 말에 순간 홍엽비의 안색에 서글픔이 스쳐 지나갔지만 금세 낯빛을 바꾼 그녀는 화사한 표정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요리는 사천 자공(自貢)의 명물인 수자우육(水煮牛肉)과 취운수자어(翠雲水煮魚), 그리고 수자비장(水煮肥腸)을 중심으로 차려보았습니다.”
사천의 요리를 분파로 따지면 상하방(上河幇) 요리, 하하방(下河射) 요리, 소하방(小河幇) 요리로 나눌 수 있다.
상하방 요리는 성도(成都)를 중심으로 하는 맛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며 하하방 요리는 중경(重慶)을 중심으로 하는 맛이 짙은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자공(自貢)을 대표로 하는 소하방 요리는 상하방과 하하방 사이의 특징을 취해 맛이 다양하고 매운맛이 부드럽고 향긋한 것이 특징으로 특히 자공은 예로부터 소금을 채취하는 제염업이 발달해 염방(鹽幇) 요리라고도 한다.
“수자(水煮)라 하면 제염공들이 염수(鹽水)를 퍼 올리기 위해 부리던 소가 늙으면 그것을 얇게 씰어 소금물에 끓여 먹는 방법에서 비롯된 요리방식입니다.”
“사천의 제염공……한번 실제로 보고 싶어요. 산 깊은 곳에서 소금물이 솟아나는 땅이 있다니…….”
“오래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대단히 힘든 노동이지요. 얼마나 힘들면 일하는 소도 반년이면 지쳐 죽겠습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그 제염촌에는 소고기 요리가 발달하게 되었지요.”
전생에 실제로 방문했던 제염공들의 작업장은 어마어마했다. 벽과 서까래에도 소금기가 엉겨 붙어 하얗게 반짝였고 거대한 솥에선 소금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가마에 장작을 집어넣은 일꾼들은 콩을 갈아 콩물을 내어 소금의 불순물을 제거했다.
거대한 작업장 내부는 끓어오르는 소금물로 인해 사우나실처럼 부옇고 무더웠으며 그 안에서 움직이는 제염공들은 깡마른 몸에 가죽채찍 같은 탄탄한 근육이 붙어 있었다.
과연 그들은 그 혹독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까? 소년은 지금도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홍엽비가 보지 못하게 쓴웃음을 정돈한 소년은 맑게 웃으며 제염방식에 대한 부연설명을 더 했다.
“콩물이 열에 응고되는 과정에서 염수의 불순물이 콩 찌꺼기에 함께 엉겨 붙는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자공의 소금은 바다 소금 보다도 투명하고 희다 합니다.”
“그랬군요…… 제가 살던 곳에서도 꽤 가까운 곳이었는데, 한번 가봤으면 좋았을 텐데요.”
한번 가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는 후궁 밖으로 나설 수도,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일생을 보아온 부모의 얼굴 한번 볼 수 없는 날개 꺾인 새의 슬픔은 소년이 공감할 수도, 공감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동정이 더 가슴 아플 수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년은 그저 고개를 숙여 표정을 감출 뿐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표나지 않을 수 있을까. 홍엽비는 애써 웃으며 시녀를 시키지도 않고 직접 국자를 들었다.
“어떤 것부터 먹는 게 좋을까요?”
“맛이 연한 순으로…… 수자어, 수자우육, 수자비장 순으로 먹으면 될것 같습니다. 잠시만요, 고추와 산초를 걷어드리겠습니다.”
“예? 고추를요?”
매운 걸 걷어낸다는 말에 깜짝 놀란 홍엽비에게 어차피 걷어내도 맵다고 안심시키며 소년은 고추와 산초알갱이를 걷어내고 말간 붉은색 국물 위로 떠다니는 콩나물과 얇게 저며낸 메기살을 건져 올렸다.
“뼈는 전부 제거했으니 그대로 드시면 됩니다.”
탄력 있는 흰 살점은 포동포동하니 탄력 있게 씹혔고 콩나물은 아삭아삭했다. 훌륭한 식감의 조화는 향긋한 고추와 산초 향이 우러난 국물이 톡 쏘는 알싸함을 더했다.
“먹다 보니 조금씩 매워지네요?”
“예, 먹으면 먹을수록 더해지는 매운맛, 그것이 수자어의 매력이죠.”
소년이 두 번째 수자우육을 떠내자 홍엽비의 시선이 소고기로 쏠렸다.
매끄러운 표면 때문에 생각보다 매운 양념이 흡수되지 않은 수자어와는 달리 질기지 않도록 곱게 칼집이 들어간 수자우육은 보기만 해도 매운 양념이 흠뻑 적셔져 있었다.
“음……!”
고기는 상상 이상으로 부드러웠다.
기름이 많은 부분을 저민 것인지 촘촘히 지방이 박힌 소고기는 칼집을 넣고 오래 익혀 입천장에 대고 혀로 눌러 끊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거기에 혀 위로 흠뻑 적셔지는 매운맛의 향연! 기름으로 추출한 고추의 캡사이신과 산초의 산쇼올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혀를 공격했다.
맵고, 아리다 못해 저리다. 짜릿한 이중주에 홍엽비는 전신의 모공이 열리며 기분 좋은 땀을 쏟아냈다.
“이런 기분 좋은 매운맛…… 오랜만이에요. 정말로.”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제는 추억으로만 떠올려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홍엽비의 눈물샘에 고였다.
하지만 후궁의 비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그 한 방울의 눈물을 막았다.
그 대신 흘러내리는 땀과 함께 눈물기를 훔친 홍엽비는 기세 좋게 국물까지 들이마셔 그릇을 싹 비웠다.
황실에 어울리지 않는 식사법이었지만 소년은 그녀를 제지하기는 커녕오히려 부추기듯이 그녀가 젓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경쟁적으로 다음 요리를 퍼 올렸다.
수자어, 수자우육, 수자비장의 삼대수자 요리에 얇게 썰어 데친 돼지고기를 마늘과 고추기름으로 무친 산니백육(蒜泥白肉)과 홍엽비의 요청으로 한 번 더 만들게 된 구수계(口水鷄), 말린 고추를 듬뿍 넣고 볶아낸 새우요리 향랄하(香辣蝦), 각종 내장을 고추기름으로 버무린 부처폐편(夫妻肺片), 마파두부(麻藥豆腐) 등 온갖 매콤한 요리 사이를 누비며 황홀경에 빠져 있던 그녀의 고추기름 번들거리는 젓가락이 순간 경직되었다.
“저기……. 이 요리는?”
도저히 그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는 기이한 요리에 홍엽비는 입가에 묻은 고주기름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소년에게 물었다.
희고 몽실거리는 기이한 요리는 너무나도 하얗고 부드럽고 순진무구해보여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소년은 설명 대신 악동 같은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 정체는, 입으로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소년의 말에 홍엽비는 오랜만에 알지 못하는 미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