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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75화 (75/314)

환관의 요리사 75화

표자승은 네깟놈이 할 수 있겠느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콩과 도구를 가져왔다.

“흠, 보아하니 당신이 먹은 것은 터키 커피, 정확히는 달임식 커피인 모양이군.”

“뭣이?!”

“제즈베(Cezve)를 보니 바로 알겠군.”

표자승이 가져온 것은 구리로 만들어진 작은 컵에 손잡이를 단 제즈베(Cezve)였다.

이 작은 냄비에 커피가루와 물을 넣어 직화로 끓여내는 것. 소년 또한 터키나 그리스 쪽으로 미식 수행을 다닌 시절에 몇 번인가 맛본 적 있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용어가 나오자 표자승은 몹시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런 꼴을 본체만체한 채 오직 커피콩에만 관심을 쏟았다.

“흠, 일단 콩을 좀 보지.”

“그래, 얼마든지 봐라.”

작은 주머니를 끄르자마자 봉해져있던 그윽한 향기가 물씬 피어올랐다. 표자승은 멀리서 그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소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원두를 꺼내 색을 관찰했다.

“로스팅이 상당히 진하게 되었는걸. 혹시 볶지 않은 생두는 없나?”

“……생두는 없다.”

“쯧, 어쩔 수 없군.”

소년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멀뚱히 서 있는 표자승에게 필요한 도구를 주문했다.

“맷돌은 그렇다 쳐도, 도대체 뭘 만들기에 그런 재료가 필요한 거지?”

“일단 가져나와. 끝내주는 걸 마시게 해주지.”

어느새 주객이 전도 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일단은 두고 보겠다는 심정으로 표자승이 하인들에게 명령하는 동안 소년은 눈을 지그시 감고 상상에 빠져들었다.

커피였다.

십수 년 만에 마시는 커피. 그 황홀한 향기를 다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소년의 굳어버린 심장이 서서히 맥동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중국 요리사가 커피가 웬 말이냐고. 중화요리에는 당연히 좋은 차야말로 답이 아니냐고.

하지만 직업과 취미의 영역은 서로 다른 것이었으며 소년은 아주 급진적이고 열렬한 커피 애호가였다.

커피라면 에스프레소부터 핸드드립, 프렌치 프레스까지. 사람은 어쩌면 직업이 아닌 취미에 몰두할 때 진정 집중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최소한 소년은 그런 인종이었다.

커피와 완전히 단절된 세계에서 잠들었던 취미라는 이름의 광기가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17~18세기 무렵에는 유럽각지에 커피가 대중화되었고, 도시 곳곳에 커피 하우스가 생겼다.

우아한 신사 숙녀들은 당시의 차문화에 새로운 변혁을 가져온 커피라는 대체재에 호의적이었고 사람들은 지금껏 즐겨왔던 홍차와는 다른 매혹적이고 감미로운 향기에 중독되었다.

하지만 까다로운 신사들은 마시고 나면 입안에 텁텁한 가루가 남는 터키식 커피에 불만을 표시했고 이는 곳 리넨 천을 이용한 필터 커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현대의 드립 커피에 사용되는 종이 필터를 처음 개발하고 특허로 등록한 것은 독일의 가정주부 멜리타 벤츠로 그녀는 1908년 6월 20일에 세계 최초로 드립커피의 시대를 세상에 알렸다.

물론 이 세계엔 편리한 필터도 드리퍼도 없다. 그렇기에 소년이 준비한 방식은 드립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인 융드립 방식을 이용하기로 했다.

종이가 아닌 천 주머니를 이용해 커피를 여과하는 이 방식은 드립 필터가 커피빈의 유분기를 걸러내 진하고 풍성한 맛이 떨어지는 보통의 핸드 드립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물론 개인의 취향 차이는 있다.)소년의 주문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주머니가 배달되었다. 돈을 넣고 다니는 비단 전낭(錢囊)이나 찻잎을 넣는 다낭(茶囊)부터 성긴 삼베주머니까지, 소년은 수십 개의 주머니를 일일이 만져보며 그중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내 거기에 원형의 철사를 삽입해 벌렸다.

“이렇게 하면 가루를 담아 물을 내릴 때 입구가 오므라들지 않지. 그리고 거치대가 필요한데. 없으니까 댁이 들고 있으쇼.”

“뭐? 내가 들고 있으라고?”

“최고의 가배(咖啡)를 먹고 싶지 않나?”

“……육시랄 놈 같으니!”

조금 굵게 갈아낸 커피콩과 미리물에 한 번 불려 물기를 짠 주머니, 그리고 뜨겁게 데운 물은 주둥이가 가는 주전자에 담아 준비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표자승은 경건함 마저 느껴지는 소년의 얼굴을 보며 털이 숭숭 난 자신의 손에도 식은 땀이 나는 것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고작 틀을 잡고 있는 것뿐인데도마치 무언가 대단히 신성하고 막중한 책무를 떠안은 것만 같은 긴장감과 압박감이 그의 심장에 자리 잡았다.

“시작할까.”

천천히, 대붕의 날갯짓처럼 느릿하고 웅장하게 소년의 손이 위로 들렸다.

천천히, 메마른 가루가 살짝 젖어들도록, 촉촉하게. 가루가 물에 젖으며 살짝 부풀어 오르는 것을 확인한 소년은 주전자를 내렸다.

“이걸로 끝인가?”

“아니, 잠시 뜸을 들이는 거다. 물이 원두에 스며들 시간을 주는 거지.”

소년의 말은 표자승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시간의 갈피 사이, 관념과 관념의 사이에서 원두라는 무기질적인 단어는 수없이 많은 생동감 있는 느낌으로 변해 피어오른다. 비로소 커피가 된다.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던 소년이 마침내 다시 한번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서서히 원을 그리며 천천히. 하지만 너무 느리지는 않은 물줄기가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소년은 필터에 직접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끈기있게 물줄기를 조절했다.

커피를 받아내는 드립 서버가 유리가 아닌 도기였기 때문에 커피를 추출하는 양은 온전히 소년의 직감에 의존해야 했다.

적게 추출하면 너무 진할 것이고 과하게 추출하면 너무 연할 것이다.

추출된 커피가 떨어지는 소리, 가벼워지는 주전자의 무게, 그 모든것에 신경을 쏟던 소년의 심상에 오래전 처음 ‘맛있는’ 커피에 감탄했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주전자가 들렸고 소년은 지체 없이 필터를 치우고 잔을 들어 올렸다.

자신이 생각한 완벽한 정량이 담긴 잔은 쥔 손안 쪽으로 따스한 온기를 아낌없이 내주고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그 온기는 불쾌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것이 네가 말한, 네가 우려낸 가배(咖啡)인가?!”

표자승은 곰 같은 얼굴을 들이밀며 소년을 노려보았다. 핏발이 선 두눈동자는 먹이를 보는 맹수의 것이었고 입에선 더운 숨이 뿜어졌다.

달인의 솜씨를 목도한 감탄을 넘어 영혼을 저당잡은 광신도와 같은 열기는 제아무리 대단하다는 황궁의 무관들이라 한들 전율하게 할만한 대단한 것이었지만 소년은 코웃음을 치며 잔을 들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뭐-하-는- 짓-이-냐!”

그 순간 분노한 거인의 노성(怒聲)이 천둥처럼 점내를 휩쓸었다.

단순히 큰 소리를 넘어 물리적인 압박감마저 느껴지는 포효를 뿜어낸 표자승은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를 산발한 채 당장에라도 소년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애꿎은 심약한 직원이 거품을 물며 쓰러지고 소란을 듣고 달려온 상단의 호위무사가 질겁하게 만드는 분노를 눈앞에 두고서도 소년은 태연하게 웃었다.

“이봐. 네 눈앞에 있는 것이 최고의 가배일 것이라 생각하나?”

“……그래, 어쩌면!”

“그렇다면. 너라면 이 최고의 가배를 가장 먼저 먹는 것이 누구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지금 이 순간에도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는 가배가 식어가는 것을 보며 표자승은 신체의 말단부부터 피가 메마르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지금 당장에라도 저 곱사등이 놈을 때려죽이고 가배를 빼앗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표자승은 씹어뱉듯이 말했다.

“당연히 내가 아니겠느냐!”

소년이 웃었다.

“그렇다. ‘나’지.”

이것이 진정 최고의 가배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어찌 다른 사람과 이 결과물을 나누겠는가!

소년 목울대가 탐욕스럽게 가배를 삼키는 순간 표자승의 이성도 함께 끊어졌다.

솥뚜껑 같은 주먹이 상점의 계산대를 때려 부수자 그 안에서 두툼한 도껏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대한 자루에 무시무시한 도끼날은 날만 해도 이십 근은 넘어 보였다.

“개자식, 때려죽이겠다!”

* * *

“카악- 퉤!”

머리가 산발이 되고 좋은 비단으로 만든 환관복이 나달나달 찢어진 소년이 가래침을 뱉자 그 앞에선 표자승이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내가 누구라고?”

“후…… 후궁의 오상호 님이시죠.”

“그렇지.”

“예.”

“잘하자. 웃으면서 할 때.”

“예.”

권력의 힘은 대단했다. 소년은 자신이 처음으로 권력을 휘둘러본 것에 감격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역시, 사람들이 좋다는 건 이유가 있는 거야.

“아무튼, 다시 내린 거 한번 맛 좀보지.”

“어이구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 광전사처럼 도끼를 휘두르던 그도 천생 상인은 상인이었는지 배실배실 웃음 지으며 잔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런 사교적인 웃음도 잠시였다. 잔을 받아들자마자 코로 밀고 들어오는 그윽한 향기는 그의 사고를 오직 하나로 묶어버렸다.

코로 즐기고, 눈으로 관찰하며 마침내 입으로 가져갔을 때, 투박한 눈가에선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장의 작품에 감명받은 애호가는 그의 작품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뜨거운 사나이의 눈물로 수염을 적시며 표자승의 혀는 천국의 바다로 잠수했다.

“이런 맛이었나. 가배란 것은.”

진한 달임식 가배의 진한 향과 쌉싸름한 맛을 줄이기 위해 넣은 설탕의 단맛만이 가배의 전부라 생각해온 표자승에게는 영혼을 울리는 충격이었다.

“밝고, 풍부하며 깊지만 배타적이지는 않아. 짜릿할 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탄탄하고 거칠지 않고 온화하고 부드럽다. 무겁지는 않지만 진하고 혀에 착 감기는 감촉은 농밀하다. 최고야, 더는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칭찬할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던 표자승이 벼락같이 소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동안 쌓아온 사회인으로서의 체면과 자존심 따윈 이미 헌신짝처럼 내던진 그모습에선 강렬한 열의가 전해졌다.

“스승님, 가배란…… 가배란 무엇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그 모습에 소년은 잠시 현인의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가배란 무엇인지, 그것은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렇다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입으로 먹고. 손으로 느껴야지.”

곰의 앞발 같은 표자승의 손 위로 자신의 작지만,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힌 투박한 손을 겹치며 소년은 대담하게 미소 지었다.

“네가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하지만 네가 찾아낸 답은 어떠할까?”

그 이상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던 표자승의 얼굴에는 이내 단단한 결의가 맺혀있었다.

“난 궁에 매인 몸이니 시간을 그리많이 낼 수는 없다. 그것은 상단주인 너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스승님의 귀한 시간을 잠시나마 내주신다면 이 표모, 다시없을 삼생의 홍복으로 알겠습니다.”

남자의 인연엔 시간도 대화도 필요없었다. 그저 뜻이 맞는다면 그것으로 좋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둘의 사이에는 다시 없을 강력한 인연의 끈이 맺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새로운 가배를 선보이지.”

“예? 지금 바로 말입니까?”

“그래. 명색이 상단인데 내가 부르는 재료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말씀만 하십시오. 서역 너머부터 제국의 땅끝까지, 저희 표가 상단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표자승은 상단주라는 중책에 앉아있으면서도 현장에서 발로 직접 뛰는 것을 즐기는지 소년의 말에 당장 달려나갔다.

그것을 보며 소년 역시 새로운 커피와 함께할 구움 과자류를 굽기 위해 상단에 마련된 주방으로 향했다.

참깨를 듬뿍 뿌린 지마병(芝麻餠)이나 라드를 이용해 만드는 홍콩식 페이스트리류. 그것들을 뜨거운 철판에서 막 꺼낼 때쯤 큰 항아리를 통째로 등에 짊어진 표자승이 비호처럼 뛰어들어왔다. 항아리에서 넘실대는 것은 다름 아닌 우유였다.

“이봐, 도대체 가배를 얼마나 내리려고?”

“하하. 제가 원체 손이 커서 말이지요.”

“상관없겠지. 구운 과자류도 준비해 두었고, 커피도 미리 내려 두었으니.”

“식어도 괜찮은 겁니까?”

“우유를 데우면 되니 괜찮아. 그리고 차게 마셔도 꽤 별미지.”

물론 제국인이라면 한여름이라도 뜨거운 걸 마시겠지만. 소년은 피식 웃으며 우유를 데우고 그 위로 커피를 들이부었다.

“자, 섞기 전이 가장 아름답지.”

“허어…….”

커피가 우유와 섞이며 그려내는 프랙털 문양은 표자승에게 신선한 수학적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짙은 갈색과 순수한 백색이 만나며 보드라운 연한 갈색으로 변하는 모습에 넋을 놓고 있던 표자승은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이거라면 다른 이들에게도 먹히겠군요!”

가배를 처음 들여왔을 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자신했던 표자승에게 매번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가배의 새카만 색이었다.

그 색을 불길하다 여긴 사람들이 그윽한 향을 맡기도 전에 자리를 피했으니 장사는 시작부터 난황이었다.

“하지만 우유를 섞으니 보기만 해도 가슴이 푸근해지는 갈색이 되는군요. 이거라면…….”

“그래. 지금은 우유로 했지만, 우유는 자주 수급하기 어려울 테지? 두유로 해도 나름 특별한 맛이 있지.”

스타X스의 소이라떼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소년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제국인들은 유당불내증이 있을까?

없을까? 후궁에서 대접할 때는 다들 잘 먹어 딱히 유당불내증을 떠올릴 일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또 모르는 일이다.

“스승님?”

“아니, 일단 마셔보지.”

걱정스러워 하는 표자승에게 고개를 저으며 소년은 국자로 밀크커피, 정확히는 드립 커피를 사용했으니 카페오레를 떠 표자승과 자신의 잔에 부었다.

“오오…… 오오오! 이 얼마나 고소하고 진한지! 모난 부분 한 점 없이 사려 깊고도 달콤하구나!”

감격에 몸을 떠는 표자승을 보며 소년이 한숨지었다.

“……이봐 표자승이, 혹시 이 경사에 다관(茶館)이 얼마나 있나?”

“그야 셀 수도 없지요. 명색이 문화의 도시 경사 아니겠습니까.”

“유명한 곳은 장사도 잘되겠군.”

“그야 당연하지요. 먹물 자국 좀 남으신 유생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차를 찾아 아침부터 다관에 눌러앉는 게 일상이니 말이지요.”

그리고 그런 할 일 없고 돈은 많아 주체하지 못하는 시간을 무가치하게 소비하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들은 모두 유행에 민감하며 뒤처지는 것을 불명예로 안다.

소년은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광명이 뇌리에서 번득이는 것을 느꼈다.

“……표자승이, 너 나하고 일 하나같이 해야겠다.”

“예?”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자.”

명색이 대상단의 본점답게 상점 내부에는 귀한 손님을 맞이할 접객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소년을 모신 표자승은 마치 첫 거래를 준비하는 새내기 상인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소년을 대접했다.

“마실 만한가?”

“예. 이 표자승, 제국 전역은 물론 서방과 남방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자부하지만 이런 가배는 처음입니다.”

“인기도 있겠지.”

“그야 물론이지요. 아, 물론 스승님께는 감사의 보답을 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그것이 도리지요.”

미처 배려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표자승을 만류하며 소년이 커피를 들이켰다.

그는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모시는 분은 후궁의 양단이라는 분이시다.”

“……후궁의 사례태감…… 말씀이십니까?”

감히 평소엔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거물의 이름에 표자승이 질겁을 했다. 하지만 소년이 표자승에게 원한 것은 양태감의 지위를 이용한 공포와 압박이 아닌, 이름난 미식가로서의 입지였다.

“알고 있겠지? 그 양반이 얼마나 까다로운 미식가인지.”

“예. 그분의 까다로운 입맛은 이미이 경사에서는 전설적이지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귀한 음식이라도 입에 대지 않고 맛이 있더라도 한입 이상은 먹지 않는다는 그의 유별난 까다로움은 경사의 수 많은 요리사에게 도전욕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리고 소년은, 그의 요리사였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요리사로 일하고 있지.”

“그렇다면…….”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멱살을 잡고 잡아끌었다. 불타오르는 두 눈동자에선 거센 탐욕과 도전욕이 싹트고 있었다.

“어때? 나와 함께 자칭 문화인이라고 젠체하는 놈들을 사로잡아 볼 생각 있나?”

가배라는 새로운 차와 내가 너에게 알려줄 사례태감의 입맛을 사로 잡은 달콤한 간식, 어떠냐. 한번 걸어볼 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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