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74화
누군가는 오랜 공복에서 깨어나 배를 채우고 있을 무렵. 후궁의 그늘에선 늙은 환관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장 태감.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나이를 실감하며 욱신거리는 허리를 두드렸다.
이제는 부하들에게 일을 몰아주고 자신은 의자에 앉아 보고나 들어야 할 나이인데도 여전히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열정적인 모습은 뭇환관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이고, 십 년만…… 십 년만 젊었어도.”
젊은 시절엔 몸이 가볍고 날래 어떤 일이든 직접 발로 뛰며 해결했던 장 태감도 이제는 달음박질 잠깐 하는 것으로 폐가 찢어질 것처럼 아려오는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누구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지만 왠지 자신에게만 조금더 온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쩐지 억울함을 느끼며 장 태감은 노쇠한 무릎과 허리를 채찍질해 북림궁으로 향했다.
나인들이 하나둘 등불을 끄는 시간이었기에 달빛은 북림궁의 기둥 사이로는 기이한 그림자는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할 것만 같은 기이한 문을 장 태감에게 드리웠다.
아직 환관 명도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라면 분명 저곳을 지나며 두근거렸으리라.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장 태감에게 그런 감수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굳은 뼈마디를 재촉해 날이 가기 전 궁에 당도한 그를 반겨주는 것은 뭉근한 차향기였다. 서호에서 온 최고급 용정차. 뛰어난 명인의 솜씨로 우려내 그윽한 향기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고생했네, 태감. 차 한잔하겠는가?”
“오오, 향기가 아주 좋군요.”
갈라진 입술에 따스한 액체가 스며 들자 장 태감의 입에선 온화한 숨이 토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느긋하게 차를 들이켜던 안양비는 장 태감의 표정이 풀리자 일의 경과를 물었다.
“다행히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서 어떻게든 여론이 악화되는 것은 막았습니다. 다행히 양 태감께서도 이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으신 것 같군요.”
“후후, 덕분에 우리 쪽에선 상처를 봉합할 시간을 벌 수 있겠군.”
정치의 힘 싸움 역시 사람이 하는 일답게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고 받은 것이 있다면 그만큼 양보도 해줘야 한다.
안양비는 이 일로 언젠가 양단과의 싸움에서 한 수 져줘야 함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궁에서는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설령 훗날 양단에게 이득을 나눠줘야 할 지라도 지금 실수를 봉합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임을 안양비는 알고 있었다.
안양비와 장 태감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은 제아무리 담대한 안양비라 할지라도 식은 땀을 흘리게 하였다.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지휘관의 부재가 불러온 참사였다.
다행히 미리 선을 대 두었던 무관이 능동적으로 나서 일을 해결했기에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었지만,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쯤 그들은 양단의 매서운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 기특한 일을 해준 무관이 누구지?”
“예, 금군 좌별장 혁문기의 아들인 비음단주 혁문수라 하옵니다.”
“혁 단주라…… 그 친구에게 적절할 포상이 있어야겠군.”
안양비는 말간 찻물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다. 본래 그에게 선을 대두기는 했지만 이렇게 일이 터졌을 때 스스로 나설 정도로 확고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가 스스로 나서 일을 처리한 것은 그녀의 파벌로 입단하겠다는 의사 표현이었으니 그녀로서는 기꺼울 수밖에.
하지만 그녀는 공을 세운 이에게 충분히 포상할 줄 아는 호탕함도 있었지만 굴러 들어온 복이라 할지라도 일단 의심해보는 지혜로움도 있었다.
행운에 방심하여 그 내부에 숨겨진 칼을 방관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낙마하게 되는 곳이 후궁이었다.
안양비는 혁부위에게 내릴 포상을 고르는 한편 그를 감시할 인력 또한 새로 뽑았다.
“흐음…… 일이 터지자마자 행동한 판단력, 그놈들이 살아 있을 때 일어날 정치적 파장을 가늠한 정치력, 그리고 기회주의적인 면도 있군. 아주 좋아. 하지만 그 교활함이 우리를 위해서만 사용될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 문제군.”
“교활한 사냥개에게는 항상 목줄을 채워 두셔야지요. ”
“그래. 그렇지. 이건 고민해 볼 문제군.”
지나치게 뛰어나다면 아쉽더라도 솥에 삶아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똑똑한 부하는 오히려 멍청한 부하보다 위협적이라는 것은 수많은 고사를 통해 증명되어온 사실이 아닌가.
미간을 일그러트리고 고뇌에 잠긴안양비를 보며 장 태감은 문득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언제쯤 만나시겠습니까?”
“응? 아아, 양단의 요리사 말인가?”
“예. 그 친구는 예의를 아는 친구이니 빈손으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흐음…….”
안양비의 혀끝에 저번에 먹었던 찰떡의 맛이 아스라이 지나갔다. 계피맛 소와 귤 향기 달콤했던 진피 맛소중 어떤 것이 더 좋았더라?
그녀는 권력욕만큼 식욕 또한 강했다. 한번 혀끝에서 식욕이 샘솟자 조금 전까지 온갖 계략과 음모가 판을 치던 그녀의 머릿속에서 찰떡이 뭉게뭉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거 미치겠군, 갑자기 찰떡 생각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겠어.”
“하지만 벌써 밤입니다. 보십시오. 달이 중천에 뜨지 않았습니까.”
“……야식을 먹기 좋은 시간이군.”
“안양비 님?”
그녀의 식욕은 불길과 같아 한번 착화되면 쉬이 꺼지지 않았다. 장태감은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탄하며 하는 수 없이 잠든 나인들을 대신해 북림궁 주방으로 떡을 찾으러 갔다.
* * *
홍엽비에게 매콤한 중경식 마라소면으로 아침을 차려준 소년은 조금 일찍 궁을 나섰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주윤에게 추나 시술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여전히 수상한 골목길은 외지인의 발걸음을 거절하는 마경이었다. 도저히 혼자 길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소년은 오늘도 이삼을 길잡이로 삼아야 했다.
이삼에게 빙당호로(冰糖葫蘆)를 물려준 소년은 자신도 그중 하나를 입에 물었다.
설탕 옷을 입힌 산자 열매의 시큼함에 혀가 저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비타민이 많고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니 참고 먹을 수밖에.
“저번이랑 다른 가게에서 샀는데 저번 가게가 더 나았던 거 같네요.”
“그런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삼은 시지도 않은지 아삭아삭 설탕 옷을 깨뜨려 그 안의 산자 열매를 씹어먹었다.
보기만 해도 입안이 저린 듯해 소년은 자신이 두어 개 빼먹은 빙당호로를 이삼에게 들려줬다.
거참, 잘도 먹네. 신 걸 좋아하나?
이삼은 양손에 빙당호로를 하나씩 들고 거침없이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반으로 빠갠 양 머리와 오리와 닭모가지가 줄줄이 걸린 정육점을 끼고 돌아 아마 절대로 합법적이지 않을 약방 앞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허물어진 담벼락 위를 걸어가서…….
소년은 그 난잡하기 그지없는 비 계획적인 건축물들 사이를 지나며 현대의 도시가 얼마나 세련되고 정교한 계획에 의해 세워진 것인지를 새롭게 깨달았다.
제멋대로 지어 올린 건물들 대부분은 좁은 공간에 위태롭게 증축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꼭 숲에서 서로 가지가 뒤엉킨 채로 자라난 나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위태로운 건물들만큼 건물에 들어선 가게들도 기이할 정도로 통일성이 없었다.
홍등을 건 기루 옆에는 생뚱맞은 불법 환전상이 있었고 그 옆에 있는것은 밀주(密酒)상이었다.
“보통은 비슷한 업종끼리 모여서 장사를 하는 게 보통 아닌가요? 특히 기루나 주점 같은 업종은.”
“합법적인 가게라면 그러는 편이 장사에 도움이 되겠지만, 여긴 아니니까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과 같은 거죠.”
“아아, 단속을 피하려고?”
확실히 외지인은 길을 잃기 십상인이런 동네라면 제아무리 대단하다는 포도청 나리들도 쉽게 오라를 받으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사는 이들의 생명은 대단하니, 뿌리 뽑는다 한들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겠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꼭 홍콩 느와르 영화의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마구잡이로 지어진 목조건물들이 햇살을 가리고 축축하고 서늘한 그림자는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콩의 슬럼가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홍콩에서도 꽤 오래 일했는데 구룡성채나 충킹맨션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었다.
물론 두 곳 다치안 안 좋기로 유명한 슬럼가이니 구태여 방문할 필요는 없었지만, 홍콩 느와르 영화의 마니아로서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장소를 방문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소년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맨날 일에만 치여 살아 정작 유명한 관광지에서 근무했음에도 제대로 관광 한 번 해본 적 없는 인생이 문득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온 돈도 한 푼 못써보고 가다니, 인생무상이 따로 없구나.
이렇게 허무하게 갈 줄 알았으면 좀 더 쓰고 살걸. 뭐가 그리도 아깝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는지.
“아, 도착이에요.”
“역시, 저 혼자서는 못 찾아오겠네요.”
“다음에도 제가 함께 오면 되죠, 뭐.”
이삼은 배시시 웃으며 소년을 잡아끌었다.
어딘가 수상쩍은 고물상을 지나 저번보다 간판이 더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은 주윤의 추나 시술소에 도착했다. 오늘도 배를 두드리며 빙긋웃는 얼굴로 맞아준 주윤에게 소년이 닭을 내밀었다.
“오늘은 닭튀김을 하려 하는데, 혹시 튀김 싫어하십니까?”
“지나치게 좋아해서 탈이지. 내 배의 삼 할은 튀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거 다행이군요. 아, 괜찮으시면 백윤이라는 분도 불러도 괜찮을까요?”
“응? 어르신과 아는 사이냐? 나야 상관없다만…….”
주윤이 뒤뚱거리며 백윤을 부르러가는 동안 소년은 서둘러 요리를 준비했다.
오늘의 요리는 산동의 명물 향소계(香酥鷄) 중국 중앙정부의 고위관리를 지낸 서특립(徐特立) 국무위원이 극찬했다고 하는 산동 청도의 명요리다.
향소계(香酥鷄).
통닭을 깨끗이 손질해서 큰 뼈를 잘라 내고 발과 주둥이를 잘라 버린다.
다음 통닭의 겉면에 산초와 소금을 바르고 속에는 파와 생강, 정향, 팔각을 넣어서 두 시간을 재워둔다.
오늘은 미리 재워둔 닭을 가져왔으니 이 과정은 생략한다.
“꼭 요리방송을 하는 기분인데.”
어렸을 때 요리방송을 볼 때면 항상 시간관계상 오늘은 미리 준비해온 걸 사용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보고 짜증을 냈었지.
그때는 요리가 얼마나 시간이 오래걸리는지, 얼마나 공이 많이 드는지를 몰랐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소년은 찜통을 얹을 솥에 물과 간장, 설탕, 술, 육수를 섞어 넣고 찜통을 올려 닭을 쪘다.
“어? 튀김 아니었나요?”
“아아, 한번 찌낸 다음에 튀길 거예요. 이렇게 하면 향이 잘 배고 기름에 튀기는 시간이 짧아서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거든요.”
살짝 쪄낸 닭은 한 김 식힌 다음 닭 뱃속의 파와 생강, 정향, 팔각을 꺼내서 버리고 간장을 골고루 바른다.
닭을 준비해 두고 기름을 달굴 때 쯤에 차양에 드리운 발을 헤치고 백윤이 시술소 안으로 돌아왔다.
“뭐야, 뒤지게 얻어터졌다고 해서 병신된 줄 알았는데 멀쩡하군.”
“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들어나 오쇼.”
몇 달 만에 다시 본 그는 여전히 꼬장꼬장하고 추레했다. 볼품없이 그슬려 있는 쥐 수염과 옹졸한 얼굴은 세월의 풍상을 혼자 다 맞은 듯했다.
허리춤에 술병을 덜렁거리며 들어온 노인네가 바닥에 주저앉는 동안 소년은 달궈진 기름에 닭을 튀겼다.
기름이 자글자글 끓으며 닭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하고 향긋한 향기가 피어오를 때쯤 소년은 닭을 꺼내 한입 크기로 토막 친 다음 산초 소금을 곁들여 상에 냈다.
“호오, 산초 소금을 곁들인 닭튀김이라……그러고 보니 오래전 산동에서 이런 음식을 먹은 적이 있는데…….”
“맞수다. 산동 청도의 춘화루(春和樓)의 명물 향소계요.”
“역시! 내 혀는 틀리지 않는군.”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연한 닭튀김은 산초 소금에 콕 찍으면 향도 좋고 맛도 훌륭했다. 술맛을 아는 어른들은 벌써 술을 찾았다.
“크으 바삭한 닭튀김 한 조각에 알싸한 죽엽청 한잔. 죽이는군.”
“어르신, 한잔 더 받으시죠.”
“자네도 들게.”
소년은 말간 청주를 들이켜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며 닭 다리를 뜯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 그 소식 들었나?”
“아아, 이번에 저 먼 남방에서 온 상단 말씀이시죠?”
“그래. 온갖 기기묘묘한 것들이 있다던데…… 애송이, 너도 한번 가보지 그러느냐?”
“흠, 남방의 식재료라……뭐 특별한 것이 있으려나?”
그렇다면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남방에서 나는 열대과일을 이용한 디저트를 만들어 볼까?
부여비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을 좋아한다고 하니 춥고 건조한 경사에서는 먹기 어려운 남방의 음식으로 마음을 사로잡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단은 어디를 거쳐 들어온 거요?”
“아마 운남을 거점으로 움직이는 상단이라 들었다. 그쪽이 월남(越南)이나 면전(緬旬), 노과(老撾)와 맞닿아있으니.”
“운남?”
운남이라, 그러고 보니 운남하면 보이차가 또 명물이지. 독서 좋아하는 사람치고 차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좋은 차를 구해 선물하면 호의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이 고민하는 동안 백윤은 닭튀김을 물어뜯으며 주워들은 소문을 풀어놓았다.
“듣기로는 이번에 가배(咖啡)라고 하는 기이한 콩 같은 것을 가져왔는데 이것을 차처럼 끓여서 마실 수 있다고 하더군. 근데 먹어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향이 묘하고 맛은 탕약처럼 쓰다고 하더군. 남방 사람들은 그런 이상한 것을 먹나 봐.”
“그렇게 쓰다면 일상적으로 마시기는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요?”
“뭐, 사람 입맛은 다 다르지 않나. 이 술도 맛은 쓰지만 우린 달게 마시지 않누?”
“하하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농담을 나누며 주윤과 술잔을 기울이던 백윤이 문득 멍하니 젓가락을 들고 앉아 있는 소년을 보곤 말을 걸었다.
“갑자기 왜 그러냐? 뼈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영감, 지금 뭐라고 했소?”
“음? 뼈가 목에…….”
“그거 말고, 그 상단이 뭘 가져왔다고?”
“가배(咖啡) 말이냐?”
그 순간 소년이 앉은 자세 그대로 뛰어올랐다. 마치 잊힌 전설의 도래처럼, 지옥의 야차가 뛰쳐나온 것 같은 자세로 바닥에 착지한 소년은 앞길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찢어 죽이겠다는 야차의 얼굴로 뛰쳐나갔다.
지금 이 순간 고민해왔던 부여비를 포섭하기 위한 것들의 마지막 한 조각이 맞춰졌다!
가배란 무엇인가. 바로 커피(Coffee)! 커피를 말하는 것이다!
소년은 절뚝거리는 다리로도 놀라운 속도로 뛰쳐나갔는데 그 기세가 비호와 같아 뒤따라 나온 이삼 조차 그를 따라잡기가 벅찰 정도였다.
“저, 저자는 대체 누구인가!”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않구나!”
발걸음은 표홀하니 구름을 밟는 듯 가볍고 될 때는 벼락처럼 빠르니 그모습이 실로 야수와 같다.
소년은 구르듯이 상단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 계산대에서 손님을 맞는 점원에게 달려들었다.
“히익! 강도입니까!?”
“손님이다! 가배를 있는 대로 주시오!”
“예? 가배를 말입니까?”
살코기를 눈앞에 둔 굶주린 야수처럼 울부짖는 소년 앞에서도 점원은 쉬이 가배를 내놓지 않았다.
그 대신 계산대 뒤쪽 창고에서 천둥처럼 울리는 포효가 튀어나왔다.
“가배를 청한 놈이 누구냐!”
양쪽 어깨에 족히 백 근을 될만한 포대기를 짊어지고 창고 문을 나선이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곰 같은 사내였다.
입고 있는 옷은 고급스러운 비단옷이었으나 상반신을 풀어헤쳐 놓았는데 땀으로 번질거리는 근육과 풍성한 가슴 털이 무성했고 기름을 발라 번들거리는 머리 아래로는 야차 같은 눈과 퉁방울 같은 코, 아귀 같은 입과 염라대왕 같은 수염이 있었다.
“상단주님!”
“상단주? 거짓말하지 마라, 아무리 좋게 봐줘도 총표두겠지!”
“이놈이?! 내가 바로 표가 상단의 상단주인 표자승(約資昇)이다. 네놈이 가배를 사겠다고?!”
혹시나 성질을 거슬러 안 팔겠다할까 봐 소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제가 가배를 사러 왔습니다. 한 근에 얼마쯤 합니까?”
“난 아무에게나 가배를 팔지 않는다!”
표자승은 맹수 같은 눈을 부릅뜨며 으르렁거렸다.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린 그의 표정에선 지금까지 가배를 제값에 팔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실패하고 만 그의 울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가배에 대한 사랑이 서려 있었다.
“가배란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겐 천금의 가치가 있으나 가치를 모르는 자에겐 그저 쓰고 이상한 콩일 뿐이지! 네가 진정 가치를 아는 자라면 그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그 자격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당당하게 대답한 소년이 마음에 들었는지 표자승이 재밌다는 듯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간단하지, 직접 가배를 우려와 봐라! 내 혀로 너의 자격을 검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