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72화
호롱불이 금빛 향로와 집기들 아래로 음산한 그림자를 길게 늘여 춤을 추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마치 악랄한 음모를 꾸미는 것처럼 음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황제와 그의 심복인 태감이었다.
“후후, 그 녀석이 눈을 떴단 말이지…….”
“예, 의원의 말로는 귀신같은 회복력이라 하더군요.”
고상한 모리화차(茉莉花茶)를 입안에 머금으며 태감은 소년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고작 3일 만에 자기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힘든 노동은 무리였지만 눕지 않고 앉아서 마차를 타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회복력은 비상식적인 수준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족히 두세 달은 정양해야 할 상처였음에도 소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를 진찰하던 의원이 놀라 뒤집힐 지경이었다.
“역시. 그 녀석도 혈통을 타고난 건가?”
“모를 일이지요. 지난 대전에서 많은 가문이 멸문지화 되었지만, 핏줄은 강한 법 아니겠습니까.”
가혹했던 지난 대전에서 수없이 많은 명문가가 멸문당하였고 수많은 씨족이 멸족당했다.
심지어 최초에 제국을 건국했던 혈족 중에서도 완전히 대가 끊긴 이들이 나왔을 정도이니.
그러니 그 전란 속에서 싹튼 피가 우연히 황궁으로 들어섰을 수도 있다.
기껏 살아남은 혈족의 피를 내칠만큼 황실은 포용력 없지 않다. 황제 또한 침음을 흘리며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의 뒤에서 들여온 구세대의 이름은 대제국의 지배자라 할 지라도 망설이게 했다.
문일.
전란의 영웅이자 전 동창 태감. 그리고 선황의 심복.
현시대의 지배자라 할지라도 과거의 그늘에선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현황제의 지위는 모두 선황이 다진 반석 위에 세워진 것. 수없이 많은 전장에서 선두에 서서 승리로 이끌고 반란을 잠재운 선황의 업적 앞에선 제아무리 황제라 할지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쓴 침을 삼키기 위해 차를 입에 머금었다. 그야 황위를 선양받은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선황이 반석을 다진 나라 위에서 치세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쉴 틈 없이 달려온 시간 동안 제국은 내전의 상처를 잊었고 이제는 드디어 선황의 이름도 잊히는 듯했다.
그런데 어째서, 잊힌 채로 묻혀야 할 당신께서…….
황제의 눈동자 속에 아득한 옛날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다.
한때 대륙의 심장부를 지배하던 가당 강대한 일족의 몰락, 금룡 진가의 몰락은 거대한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어렸던 황제의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던 전쟁의 나날들.
거대한 혈족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몰락한 권세의 자리에 새로운 깃발이 세워졌던 군웅할거의 시대.
선황은 아직 어렸던 황제의 영웅이고, 우상이었으며, 끝내는 열등감의 대상이 되었다.
그도 언젠가는 아버지인 선황과 함께 말을 몰고 초원을 질타하리라 생각했다.
언젠간 노쇠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금룡기를 빼들고 천하를 호령할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선황제의 신화적인 정벌 끝에 전쟁은 빠르게 끝났고 황제의 앞으로 돌아온 것은 곱게 포장되어 상속받게 된 제국의 황좌였다.
설령 함께 누운 여인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속내였으나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인 태감이었기에 황제는 한탄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늘 그분을 넘어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지. 하지만 어찌 넘어설 수 있겠는가. 전란을 종식시키고 제국에 평화를 가져온 구원자를.”
“민간에선 여전히 선황 폐하를 신장으로 모시는 사당이 있다 하더군요.”
전장을 가로지르며 항상 불리한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내 신화와 같은 위업을 쌓았으니, 무지몽매한 이들에겐 신의 화신과도 같아 보일 것이다.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한 이라면 더더욱.
태감이 담담히 내뱉는 말에 황제는 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대고 팔을 늘어뜨렸다.
기골이 장대한 장부의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실망감과 피로감이 떠올라있었다.
다른 이들에겐 위대한 군주일지 모르나 그의 권위를 물려받은 적자에겐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린 그.
황제는 자신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무언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 순간 황제는 해묵은 기억 속에서 자신을 위태롭게 만드는 쓰디쓴 추억의 상실감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전쟁 속에서, 가장 참혹한 시대에 그가 잃어버린 것. 그의 영혼의 반쪽의 빈자리에서 황제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잃어버린 그의 누이. 그의 영원한 맞수. 그 상실감은 이제 황제에게 충족되지 않을 욕망으로 남았다.
“뭔가, 맛있는 것이 먹고 싶군…….”
그것은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영혼의 굶주림이었다. 제아무리 값지고 좋은 것들로 배를 채웠다 한들 메마른 영혼을 적셔줄 한 방울의 단비가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좋은 술, 좋은 음식, 좋은 차로 배를 채웠지만, 황제는 참을 수 없는 굶주림과 갈증이 그의 목구멍 너머에서 넘실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황제는 자신의 욕망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제 욕구를 드러낸 황제의 혀가 미치도록 소년의 요리를 갈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황제는 소년을 원했다. 그를 향해 기꺼이 정직한 칼을 들이댈 수 있는, 그런 적. 그의 공허함을 잠깐이나마 메워줄 수 있는.
황제란 제 욕망껏 살 수 없는 자리다. 한번 움직이면 수백 명의 신하가 따르고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을 곡해해 끔찍한 결과가 빚어지기도 한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안아야 할 때도 있고 아까운 인재를 의도적으로 죽여야 할 때도 있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세력의 판도가 달라지고 정치적인 결과가 생기니 매사 조심할 수밖에.
황제란, 만인의 위에 선 이란 항상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대의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결국 용의 아들이라 한들 사람이었다. 황제는 문득 피어오른 작은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불꽃이 되어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팠다. 미치도록.
황제가 허리를 펴고 기도를 가다듬자 금세 제왕의 위엄이 피어올랐다.
잠깐 동안 세상만사에 피로를 느끼는 우울한 장년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문일, 문일이라 했느냐.”
“예 폐하.”
그 장절한 기세에 태감은 황제의 시시콜콜한 말동무가 아닌 그의 심복이자 후궁의 권력자가 되어 황제의 명을 기다렸다.
그 앞에서 황제는 불을 토해낼 것만 같은 부릅뜬 눈으로 옛 시대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더 이상 옛 영광을 좇아 세월을 낭비하지 않겠다. 칩거하신 선황께도, 그분과 함께 은퇴한 문일에게도 우린 여전히 끌려다니고 있구나. 더이상 그럴 수는 없다. 이 제국은 나의 것이다! 내가 황제다!”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근육이 탄탄하게 붙은 장신의 그가 일어서자 안락한 천막 안이 꽉 차는 듯했다.
“오운, 네 이름을 준 그 아이를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하겠다 용의 이름으로 선언하겠다. 그 아이가 역도의 자식이라도, 씻을 수 없는 죄인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이 황제의 이름으로 보증하겠다! 이것은 설령 선황께서 돌아오신다고 한들 깰 수 없는 맹약이니! 문일이라 한들 경거망동한다면 나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격정적으로 분노를 토해낸 황제에게 태감은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로써 소년의 핏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용의 이름으로 하는 선언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소년은 그 어떠한 정치적, 물리적 외압으로부터 황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험난한 궁중 생활에, 가뜩이나 다혈질인 소년에겐 최고의 보증이었다.
황제는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마시며 끓어오른 속을 다스렸다. 화가 식은 그에게 태감이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폐하, 대략적인 계획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흠, 난화비를 황후로 올린다는 계획 말이냐.”
태감의 말에 황제는 찻잔을 들여다보며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태감으로서는 결코 어정쩡하게 넘길 수 없는 화제였기에 그는 다시 한번 황제에게 말을 올렸다.
“페하.”
“그래, 계획대로 하거라.”
“괜찮으시겠습니까?”
황제는 식은 차만을 홀짝거릴 뿐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태감 역시 침묵을 지켜 천막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느리게 흘렀다.
한참 동안 말없이 차를 입안에서 굴리며 그 향을 즐긴 황제는 차 향기를 듬뿍 머금은 향기로운 숨을 토해냈다.
“그래, 현 시국에서 황후의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난화비겠지.”
홍엽비는 대가 약할 뿐만 아니라 외척인 대장군에게 지나친 힘을 실어주게 되니 안 되고, 이국의 공주인 라하비은 애초에 국모로 올릴 수는 없는 신분이다.
부여비는 나쁜 인선은 아니나 취미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으니 황제만큼이나 바쁘게 살아야 하는 황후의 자리엔 어울리지 않는다.
“안양비는…….”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며 황제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기이한 여인이었다.
여인답지 않은 큰 키에 범과도 같은 미인. 표독스럽고 오만하나 그녀는 분명히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가 되는 여인이었다.
함께 살을 섞은 관계이나 동시에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사이였음에도 황제는 그녀에게 묘한 전우애, 동지애와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녀는 위험하지. 그녀는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어, 자신의 대의를 믿고 따르게 하는 힘이 있다. 전란의 시대였다면 최고의 아내였겠지만 이 평화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여자는 아니야.”
그녀를 황후로 올린다면 틀림없이 전란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더넓은 땅, 더 많은 부를 위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황제는 고개를 저으며 태감에게 답을 전했다.
“그래, 적임자는 역시 난화비겠지.”
“예, 폐하.”
확답을 얻은 태감은 깊게 고개를 숙이며 황제의 용단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황제가 올라온 상소문을 검토하기 위해 불을 가까이 들여오고 목간 뭉치를 꺼내자 태감은 말없이 묵례를 올리고 천막을 나섰다.
어느덧 하늘은 불그스름한 빛에 물들어 온갖 따스한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다들 저녁 준비로 뭉근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음식을 만드는 냄새가 허기진 배에 식사 시간임을 알리는 시간.
하지만 그 따스함은 황제가 있을 천막까지는 드리우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황후 자리는 논하면서도 그자리에 걸린 이권과 정치적 영향만을 생각했지 황제의 취향, 그의 마음까지는 고려할 수 없었다.
태감은 천막 앞을 떠나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참 동안을 망설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황제에게 지금이라도 진심을 말해달라 말할 수는 없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하는 자리. 황제란 그런 것이었기에 태감은 그를 동정할 수는 없었다.
노을 너머에서 차가운 밤기운이 올라을 때까지, 태감은 한참을 더 망설이며 천막 앞을 떠나질 못했다.
* * *
“후우…… 후우…….”
소년의 몸이 들썩일 때마다 입에선 격정적인 숨이 토해졌다. 바닥에는 땀이 흥건하게 고였고 소년의 팔은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크으으으!”
다시 한번 소년의 몸이 크게 내려가고, 이마 위에선 비 오듯이 땀이 흘러내렸다.
소년의 팔이 다시 한번 소년의 몸을 일으켜 세웠고 그때마다 상의를 탈의한 등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흔히 말하는, 팔굽혀펴기라는 운동이었다.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킨 소년이 일어서자 곁에 있던 위정이 그에게 물잔을 건넸다.
물을 몸에 쏟아붓듯이 마신 소년은 감사 인사와 함께 빈 물잔을 건네고 다음 운동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 할 운동은 유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다는 밧줄 오르기.
하지만 악력이 제법 되고 몸이 가벼운 편인 소년은 제법 수월하고 밧줄을 탔다.
그것을 보던 위정이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굳이 이 운동을 하는 이유가 있나?”
“허어 허어 예? 아아, 이 운동이 상반신 근육과 악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라 그렇습니다. 전다리가 안 움직이니 그만큼 멀쩡한 팔이라도 키워야죠.”
그 말을 들은 위정은 어딘가 심란한 표정이었다. 안타깝다는 듯이 그를 보던 위정은 손에 힘이 풀려 바닥에 떨어진 소년에게 수건을 건넸다.
“굳이 운동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예?”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소년이 이제와 수련을 한다 한들 큰 전력이 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지나친 과욕이 해를 끼치는것이 아닌가 싶어 위정은 조금 쓴소리를 하기로 했다.
“혹 저번 일 때문에 그런 것이냐?”
“뭐 그런 것도 있지만…….”
소년은 몸의 땀을 털어내며 팔을 내려다보았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날부터 쉼 없이 단련해 온 결과 창백한 팔뚝에는 마른듯 하지만 제법근육이 갈라져 융기해 있었다.
하려면 진즉에 할 수 있었지.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하기 싫었던 것이다.
“변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변명?”
“예. 어차피 병신이니까, 어차피 해도 보통 사람보다 못할 테니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변명하며 외면해왔지만…….”
소년은 다시 나뭇가지에 매어둔 밧줄을 잡으며 말했다.
“제 목에 칼을 들이미는 놈들이 그 변명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더군요.”
물론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장소나 이삼이 그를 보호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태감의 호위가 아닌가.
다가오는 모든 위협에서 그들의 보호를 바라며 대책 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최소한의 자구책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그 모습에 말을 잃은 위정을 뒤로 한 채 소년은 또 다시 밧줄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전완근이 경련하고 비명을 지르는데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위정은 소리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과연 저 소년이 몸이 정상이었다면 어땠을까. 식칼이 아닌 진짜 검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한때는 무관으로서 살아온 위정에게 무관으로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가장 불리한 순간에 투지를 불태울 수 있는 것. 타고난 신체보다도, 뛰어난 기술보다도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타고나는 수밖에 없다.
그가 본 소년은 자신이 본 그 어떤 무관보다도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가지고 있었다.
말없이 소년을 지켜보던 위정의 소매가 순간 살짝 흔들렸다.
쐐애애애액!
빗살처럼 허공을 가른 무언가가 소년이 오르던 나무에 틀어박혔다. 소년이 황급히 내려와 그것을 확인했지만, 자루까지 틀어박힌 그것은 소년의 힘으로 뽑을 수가 없었다.
“유성락(流星落)이라고 하는 비수다.”
“비수란 말입니까?”
소년이 엄두도 못 내던 비수를 위정은 쉬이 뽑아내었다.
날의 길이는 한 뼘 정도. 하지만 비수라고 하기엔 날이 너무 두팁고 무거웠다.
위정은 그것의 자루를 쥐고 날리는 시늉을 해 보았다.
“본디 비수란 암습을 위한 것이나 이것은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병기가 아니다. 이것은 기마병들이 활을 쓰기엔 애매한 증거리에서 상대를 낙마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병기이지.”
소년은 그것을 보며 이삼이 비수를 던지던 모습을 떠올렸다. 새의 깃털처럼 가볍고 얇은 비수 수십 개를 일제히 투척하는 그 모습은 날갯짓하는 봉황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것으론 불가능하겠지. 소년이 쥐어본 유성락이라는 비수는 도저히 비수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두꺼운 날은 차라리 손도끼라는 이름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무겁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자루를 던질 수도 없고 많은 양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지. 하지만 그 대신.”
위정이 다시 한번 유성락을 투척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날이 무거워 던질 때 손목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유성랑의 투척 자세는 마치 투창을 하는 것처럼 자루를 역수로 쥐고 직선으로 회전 없이 던진다.
파앙!
다시 한번,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성과 함께 유성락이 나무에 틀어박혔다.
이번엔 심지어 나무를 완전히 관통하고 그 뒤의 나무에 박힌 것을 보고 소년은 말을 잃었다. 이것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결과물이란 말인가?
“보다시피 위력은 말을 탄 무사를 낙마시킬 정도다. 너에게 이것을 전수하고 싶구나.”
“확실히, 다른 무술보다는 효율적이겠군요.”
다리가 이 모양이니 권법이나 다른 무기술을 배울 수도 없고 활을 쓰자니 휴대가 불편하다.
기교가 필요한 다른 비도술을 배우자니 도대체 얼마나 수련해야 쓸만 해 질지 알 수가 없다.
위정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여차할 때, 정말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순간에 숨겨둔 무기로 쓰기에는 적격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직접 전선에 나서서 싸울 것도 아니니 많이 소지할 필요도 없었다.
소년은 그 두툼하고 곧은 날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두 번 세 번 날을 뒤집어가며 그것을 관찰했다.
“이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 그렇지 않으냐?”
“예, 그렇지요.”
단단한 자루를 쥔 손은 당장에라도 그 위력을 확인하고 싶어 움찔거렸다. 손에 쥔 비수의 무게는 평생 사용해온 식칼의 무게와 비슷했다.